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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자마자 동생이 침대 위로 집어 던진 것은, 다름아닌 '은,희,경,소,설,책'이 아닌가. 다른 것도 아닌 내 '책'을, 다른 작가의 것도 아닌 '은희경'의 소설을! 감히 집어 던지다니, 이것은 나에 대한 도전임에 분명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즉각 전투태세를 취하고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을 무섭게 노려봤다. 나는 누가 내 서랍을 헤집어 놓아도, 소파 위에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어도 별로 게의치 않지만 유독 책에는 유난을 떠는 습관이 있다.

책을 사서 읽을 때에도 책장을 조심조심 넘기고 혹시나 책장이 접히거나 표지가 더러워지는 꼴은 차마 볼 수 없다. 그래서 왠만한 친구들에게는 책을 잘 빌려주지도 않지만, 어쩌다 빌려 준 책에 허락없는 밑줄이 그어져서 돌아올 때면 난 즉시로 야수로 돌변하여 친구를 몰아세우게 된다. 그런데 내 동생은 내가 보는 앞에서 내 책을 패대기를 쳤다. 게다가 '은희경' 소설을!

지금도 물론 무지하지만 문학의 'ㅁ'도 모르던 대학 시절 처음으로 내 마음을 움직인 작가가 바로 은희경이다. 특히나 우울할 때 그녀의 책을 읽으면 '세상 그 까짓 것' 왠지 모를 씩씩함이 생기곤 했다. 첫 정이 무섭다고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로도 많은 책들을 읽어 왔지만 은희경의 책에는 특별한 울림이 느껴져서 좋다.



'아니, 심심해서 읽었는데 괜히 정신만 사나워지고, 끝까지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더라고. 책 읽느라 시간 버려, 생각하느라 머리 아파, 심술이 안 나게 생겼어? 이 여자 정신이 좀 이상한 거 아니야?' 동생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듣고 나서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공대 출신인 내 동생이 집에 사 들인 책 목록을 보면, 아침형 인간 등의 자기 계발책, 1년 동안 10억 벌기 등의 경제 관련책, 설득의 심리학 등의 처세술책 등이 대부분이다. 하다 못해 '어린 왕자'를 읽고 나서도 '그래서?'라고 묻던 동생이 아닌가.

그러나 내가 동생에게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은 가장 큰 까닭은 그것이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숙제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읽은 문학을 제외하곤 단편 소설하나 스스로 읽지 않았는데 어떻게 제대로 읽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문득 예전에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 수능 시험을 끝내고 시간을 그저 소모하고 있을 때, 같은 교회에 다니던 대학생 오빠에게서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그러나 당시의 내 지적 수준은 너무나도 낮았기 때문에 그 책의 가치를 알아 보지 못했다.(솔직히 고백하건대 지금까지도 그 책이 왜 그토록 좋은 책이라고 추앙받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 무지한 눈으로 읽는 상실의 시대는 그저 '야한 책'에 불과했고 내 동생이 그랬듯 끝까지 다 읽고 나서도 작가의 의도를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자 나는 나에게 그 책을 선물한 그 오빠의 인격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나에게 억울하게 '변태'로 낙인찍힌 그 오빠를 멀리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그 일을 잊어버리게 됐을 때, 내가 은근히 동경하던 여자 선배에게서 상실의 시대에 관한 서평을 들을 수가 있었다. 단순히 야한 책인 줄로만 알았던 그 책이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한 책이었다는 것을 그 때야 알게 되었다. 이미 책을 버린 지 오래라 나는 다시 도서관에서 그 책을 읽어 봤다.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어서 그랬는지 처음에 들었던 거부감은 없어졌지만 두 번째 읽었을 때에도 큰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게 나의 문학 지수라고 생각한다.

밥 한 그릇 먹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문학은 뭔 놈의 문학이냐고, 배 부른 소리 좀 그만 하라고 나를 질타하실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자기 계발책을 한 권 더 읽어서 유능한 인재가 돼야지 말 장난에 불과한 소설 나부랭이를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려울 수록 잊으면 안 되는 것이 기본이고 배 고플 수록 채워야 하는 것이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 한 줄을 읽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세상 살이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시 한 수 읽는 여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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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부터 요란하게 울리던 전화벨 저쪽 너머엔 분명히 잔뜩 찡그린 후배의 얼굴이 있을 것이다. 잠결에 손만 뻗어 받은 전화였지만, 그녀가 한 말이라곤 고작 '여보세요'가 다였지만 그 한 마디에 실린 한숨의 무게가 어찌나 무거웠는지, 폭발 직전의 그녀와 마주앉아 있는 듯 했다. '왜, 또.' 앗 실수다. 순전히 자다가 깨서 엉겁결에 나온 말이지 나는 그런 심드렁한 말로써 전화 건 사람을 힘빠지게 만드는 그런류의 사람이 아니다. 실수로 내 뱉어진 말때문에 나는 잠까지 확 달아났지만 다행히 후배는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얘기의 물꼬를 터 주니 후배는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 놓는다.

통화를 하는 동안 '응,응'만 하면서 들은 얘기가 어찌나 충격적인지 후배의 목소리가 조금만 장난스러웠더라면 거짓말이라고 단정지을 뻔 했다. 그러나 만우절도 아닌데 허튼 소리를 하려고 휴일 아침부터 전화를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있지 않은가. 총 오십 육분 동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분노에서 시작해서 생각할 수록 어이가 없다는 것으로 끝을 맺은 그녀와의 수다.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어이를 넘어서서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간호사인 내 후배는 교대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야 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사는 자취방 문을 열었는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더란다. 다른 날보다 좀 더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뒷머리가 쭈뼛 서는 경험을 했단다. 아무도 없어야 할 자취방에 어떤 여자가 화장대에 여상스럽게 앉아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요상맞은 여자가 쓰고 있었던 화장품은 후배의 것이었고, 한창 화장 중이던 그 여자 역시 어깨가 들썩여질 정도로 깜짝 놀라더란다. 너무 놀란 후배는 비명마저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한참동안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겸연쩍은 듯한 미소를 띄며 뒤를 돌아보는 그 여자는 다름아닌 주인집 아주머니였다고!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 들어오나봐'라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주인집 아주머니, 화장대에 닿은 아주머니의 흔적만 없었다면 꿈인 것 같았단다. 사실 몇 달동안 계속 옷장 속의 옷들이며 화장품 등이 다른 사람의 손을 탄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설마 했었는데 오늘 덜미를 잡은 것이란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문 밖을 나가버린 주인집 아주머니를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나도 자취 생활을 해 봤기에 후배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무슨 일이었던지 평일에도 학교에 가지 않고 방에서 내내 잠을 자고 있었다. 잠결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귀찮은 마음에 열어 주지 않고 계속 잠을 잤었다. 그런데 잠시 후 철컹하며 문이 열리더니 주인집 아주머니가 들어오신 것 아닌가. 너무 놀라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방문을 열었더니 아주머니는 수도가 잘 나오는지 보러 오셨다며 너무도 당연하게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 줘야 하는데 마침 집에 있었네 하셨다. 손에 들린 열쇠꾸러미를 보니 우리집 뿐만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같은 건물의 모든 집에 자유롭게 드나드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언젠가는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집으로 들어갔다가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에 서 있는 아주머니와 마주친 적도 있다. 그러니 후배가 겪은 이런 황당한 일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자취방을 경영(?)하는 아주머니의 입장에서는 관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 보조 열쇠가 필요하겠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는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 들어 사는 동안에는 나만의 집이었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의 손에 그토록 쉽게 문이 열릴 수 있다니 말이다. 이런 황당한 경험을 했으니 아마도 후배는 집을 옮기게 될 것이다. 부디 다음에 이사하는 곳에서는 조금 더 상식적인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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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산의 여왕' 김지선의 넷째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아이가 셋인데 또 자녀를 가진 것을 보면 참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일도 가정도 열심인 그녀가 다시 한번 대단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기분 좋기만한 그녀의 임신 소식에도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시물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악플을 습관적으로 다는 사람들의 무례함이 그대로 느껴져서 내가 다 미안해지려고 했는데, 그 개념없는 악플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임신 소식=돈 자랑'이며 돈이 있으니 자녀도 많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똥이 전혀 다른 쪽으로 튄 것이긴 하지만 (김지선의 임신 소식에 그런 식의 덧글을 다는 것은 우습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혜택을 주겠다는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이,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깊게 생각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기에, 선뜻 자녀 계획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교육에 별 관심이 없고 아직 모성애가 빈곤한 나는, 아이를 너무 귀하게 키우지 않는다면 생각만큼 많은 돈이 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부모들이 욕심을 줄여 학원에 덜 보내고 값비싼 장난감이며 옷을 저렴한 것으로 바꾼다면 그다지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억' 소리는 '육아'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앞에서 밝혔듯 나는 닥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은 모성이 빈곤한 상태라 육아에는 큰 욕심이 없다. 그런데 '억' 소리 나는 전쟁이 출산 전부터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산모'(즉 미래의 나)와 관련된 것이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과장해서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그 과정을 어떻게 지혜롭고 철저하게 지내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평생 삶이 좌우된다. 임신과 출산 이후의 관리 상태에 따라 완전히 퍼진 아줌마와 여전히 예쁜 아줌마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요즘에는 임신부 특유의 체형과 모습을 띈 사람들 보다는 오히려 아가씨 보다 더 예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뒷모습만 보면 전혀 임신부인 줄 모르다가 불룩 나온 배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배만 나왔지 다른 곳에는 별로 살이 찌지도 않았고 화장과 머리 손질도 세련돼서 앞모습을 보지 않고선 절대 알아차릴 수 없다. 임신복들도 어찌나 예쁘게 잘 나오는지 출산 이후에도 헐렁하게 입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그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해진 임신부들이 많아 진 까닭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예인들을 보면 만삭 화보를 찍을 만큼 임신 후 여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일반인이라고 다를 건 없다.(최근에는 일반인들도 임신 후 더욱 여성스러워진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만삭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이 유행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공짜일 수는 없다. 물론 스스로 악착같이 자신을 관리하는 똑소리나는 산모들도 있겠지만, 평생에 몇 번 없을 임신 기간인데 이 정도도 못할까 싶어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임신이 안정기에 접어드는 4개월째부터는 체중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태아 건강과 순산을 돕기 위해 임신 요가, 발레, 수영 등의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더불어 임신 후 호르몬의 불균형때문에 칙칙해지고 푸석해진 피부 관리에 들어간다. 또한 잘못 방치하면 배, 가슴, 엉덩이, 허벅지 등의 살이 터서 평생 보기 싫을 수 있기 때문에 임산부 몸 마사지도 병행하게 된다.

몸 가꾸기의 절정은 출산 이후에 시작된다. 40주 동안의 임신 기간을 끝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관리에 돌입해야 되는데 출산시 자궁이 많이 뒤틀리고 뼈도 약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산후조리를 잘못하면 평생 고생이다. 그래서 적어도 보름 동안은 따뜻한 실내에서 많이 움직이지 말고 되도록 누워만 지내야 된다. 이 때 많은 수의 산모들이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면서 몸을 추스르는데 이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보통이 300~500(2주일)만원 정도라니 큰 맘을 먹지 않으면 갈 수도 없겠다. 그래도 전적으로 쉴 수 있고 전문가들이 아기도 돌봐주며 육아 교육도 시켜주니 이 돈이 아깝지 않다는 의견이 더 많다. 거기다가 산후조리원에서는 산후체조, 벨리댄스, 산모마사지, 신생아마사지, 부모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어 날이 갈 수록 인기다.


산후조리원을 졸업하고 나면 몸의 붓기를 빼주는 한약과 기력을 보충해 주는 한약을 먹고 출산후 3개월이 되면 체형을 임신 이전으로 돌리기 위한 운동과 마사지가 다시 시작된다. 출산후 6개월 이내에 체중을 되돌리지 못하면 영영 푹 퍼진 아줌마로 지내야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래서 출산 이후가 출산 이전보다 더욱 중요하다. 대충 썼는데도 이 정도니 잘 몰랐던 분들은 많이 놀라셨을 것 같다. 물론 모든 임신부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많은 자녀=부유함'이라는 말이 나올만도 하지 않는가. 이제 막 결혼을 하여 아직 자녀 계획이 없는 부부라도 아내의 변치않는 미모를 위해 임신 통장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도 좋겠다. 부디 '억' 소리나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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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여자의 옷차림에서부터 온다더니 봄바람이 살랑일 수록 자꾸만 지갑이 가벼워진다. 작년 봄이라고 벌거숭이 빈손으로 다녔겠냐마는, 출퇴근길에 지나치는 매장마다 색색깔의 예쁜 옷과 소품으로 내 마음을 흔드니 자꾸만 새로운 상품들에게 눈길이 가는 것이다. 나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는 편이라 사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 온라인 쇼핑몰부터 뒤지게 되는데 오늘은 가방이 유독 궁금했다. 며칠 전 새로 장만했다는 친구의 고급 가방이 부러웠던 지 퇴근길에 유난히 다른 사람들의 가방에 눈길이 갔던 것이다. 화사한 봄날 나홀로 우중충한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관심있게 보니 다른 사람들은 특별히 가방만은 명품을 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슬슬 지름신이 강림하시려는 찰나에 사이트 하나를 찾아냈다.

사실 나는 명품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내 경제 상황으로는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니 아예 관심을 안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비싼 만큼 예쁘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나이 탓인가? 비싼 가방 하나 살 돈으로 싸고 예쁜 가방 여러 개를 사서 질릴 틈 없이 들고 다니겠다는 내 굳건한 의지가 요즘들어 살짝 흔들리고 있다. 명품의 'ㅁ'도 모르던 내가 상표만 보고 척척 이름을 대는 것도 그렇지만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가방의 무늬들도 왠지 모르게 고급스럽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주머니 사정이 뻔한데 그 비싼 가방을 덜컥 살 정도로 무모하진 않다. 대체 얼마나 예쁘고 값은 어느 정도인지 그저 인터넷으로나마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솔깃한 사이트 하나를 찾아냈다. 이름하여 '명품 스크레치전' 행사를 하고 있다는 사이트였다. 아무리 명품이라도 흠집 난 가방을 파는 마당에 비싼 값을 부를 수는 없겠지. 이름있는 쇼핑몰에서 하는 행사니까 당연히 진품일 것이고 잘 하면 좋은 가방 하나 건지겠는걸? 흐흐흐. 가슴 속 저 아래에서 지름신이 뽀글뽀글 올라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행사 상품을 클릭하니 익히 잘 알고 있는 낯익은 무늬의 가방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크기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맘에 들었다. 이미 명품이라는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졌으니 어떤 크기의 어떤 모양일지라도 다 훌륭게 느껴졌을 것이다. 재고라고는 해도 이 정도면 하나 장만해도 괜찮겠는걸,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가방의 가격을 확인하는 순간, 헉! 콩깍지가 순식간에 홀랑 벗겨져 버렸다. 뽀글거리며 가슴을 설레게 하던 지름신도 민망했는지 홀연히 사라진지 오래고, 어이없어하는 내 얼굴만 모니터에 비춰졌다.


이게 얼마야? 일십백천만십만, 대부분의 가방은 50만원에서 70만원 사이였다. 원래 그 가방의 가격을 보니 50% 정도 깎아 준 것이었다. 아무리 고급 브랜드라지만 흠집있는 재고 가방을 몇십만씩 줘야 한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 돈이면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새 가방들도 살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 같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대부분의 가방이 품절 상태였던 것이다. 우리 나라 여성들이 이 정도로 명품을 좋아하는구나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흠이 있더라도 명품이기에 거액을 주고도 횡재한 기분이 드나보다. 아무리 내가 요즘 명품에 눈이 멀어 있더라도 나는 그 돈을 주고 흠집난 재고품을 살 정도로 그 브랜드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또한 영영 모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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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집 근처 포장마차에 들러서 내가 좋아하는 분식 삼종모둠을 모두 사 왔다. 요것들 없이 내가 어찌 살까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떡볶이, 순대, 튀김을 들고 집으로 오노라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순대는 소금에 튀김은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정석이지만 나는 모두 빨갛고 감칠맛나는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주인 아주머니께 늘상 떡볶이 국물 좀 넉넉하게 달라고 애교를 부리곤 한다. 쫄깃쫄깃 매콤한 떡볶이와 탱글탱글 고소한 순대, 그리고 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인 튀김을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중국에서의 경험이 떠올라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매일은 먹을 수 없지.

그렇다. 특히나 튀김은 더욱 그렇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제 아무리 튀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매콤한 떡볶이 국물이 아닌 간장에 튀김을 찍어 먹는 사람이라도, 간장 없이도 고소한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결코! 매일 튀김만을 먹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중국 음식이 기름지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 자장면을 한그릇을 욕심내서 싹싹 비운날에 속이 더부룩한 까닭도, 달달한 탕수육과 고소한 군만두를 좀 격하게 먹은 후 속이 뒤틀리는 경험을 하는 까닭도 그 속에 들어 있는 방대한 양의 기름 때문일 겨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먹는 중국 음식은 대부분 한국인 입맛에 맛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느끼한 음식들도 사실은 기름의 양을 대폭 줄인 것들이다. 중국 본토에 가서 그들의 음식을 먹기 전까지는 중국 음식이 기름지다는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 상상할 수 없다. 정말이다.

좋은 기회가 생겨서 중국인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총 체류 기간은 일주일이었는데 4일은 친구 집에 머물면서 근처 관광지와 중국 현지인들의 문화를 체험하고 나머지 3일은 친구 집 근처로 이동을 하는 경로로 계획된 여행이었다.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중국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 그들의 삶의 방식을 같이 체험해 보는 것이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각오를 했다. 일주일동안 그 사람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기로 작정한 것이다. 샹차이(중국 특유의 향이 가득한 야채인데 처음 먹는 사람은 몸서리 쳐지는 끔찍한 맛을 경험한다.)가 듬뿍 들어가 있든 팔각(불가사리 모양으로 생긴 향신료인데 껍질을 까면 통후추처럼 생긴 동그란 모양이 나온다. 잘못 씹으면 치약처럼 화한 향이 가득퍼진다.)이 셀 수 없이 많든 주저없이 먹기로 결심을 하고 떠났다.


그런데 예상외의 복병은 골이 흔들리는 샹차이도 폭탄처럼 터지는 팔각도 아닌 별것 아닌(?) '기름'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아침부터 기름에 짭짤하게 튀겨낸 도너츠 같은 것(요티아오)을 먹는다. 속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아서 맑은 죽과 함께 먹는데 기름이 어찌나 푹 스며들어 있는지 아침부터 먹기엔 속이 너무 느글느글했다. 그네들은 의외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점심 저녁을 풍성하게 먹는데 식탁 위에 상큼한 맛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이름 모를 국과 기름을 넉넉하게 넣고 볶아낸 각종 아채들, 육류 본래의 기름에 땅콩 기름까지 더 해진 탕수육 비슷한 음식들, 소스에 기름이 걸죽하게 들어있는 생선요리 등 모든 음식엔 기름이 듬뿍 듬뿍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이틀을 연이어 먹고 나니 속이 너무 불편했지만, 손님이 왔다고 신경을 많이 써 주시는 걸 잘 알기에 맛있게 먹는 척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친구 어머니는 중국 음식이 맛있는 이유가 프라이팬에 기름을 가득 붓고 팔팔 끓인 다음 센 불로 재료를 익히기 때문이라고 비법까지 살짝 전수해 주신다. 그들의 말로는 볶음이지만 내가 보기엔 튀김인 그 음식들은 너무 기름진 탓에 재료만 다르지 맛은 모두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짠 튀김, 달콤한 튀김, 매콤한 맛이 조금 든 튀김, 모두 튀김이었다. 식탁 가득 차려진 기름 가득한 진수성찬을 뒤로 하고 생나물에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삼일 째 아침 또 기름이 푹 밴 도너츠를 먹는데 헛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아침부터 애꿎은 콜라만 몇 잔씩 들이키다가 나는 내 결심을 뒤엎고 친구 몰래 가게로 뛰어갔다.


느끼함에 이미 이성을 잃은 내가 정신없이 가게에서 찾아낸 것은 바로 한국 컵라면! 튀김만 먹은지 삼일 만이었다. 미친듯이 계산을 하고 그 자리에서 물을 붓고 국물부터 들이키니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묵었던 체증이 싹 가시는 느낌이 든다. 누가 라면을 기름진 음식이라고 말했던가. 그렇게 담백하고 얼큰한 음식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었다.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정말 맛있게 먹고 나니 이젠 슬슬 잔 꾀가 나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어머님 힘드신데 한국 음식점에서 식사 대접을 해 드리는게 어떻겠냐고 친구를 꼬이는 것으로부터 타국에서 한국 음식점을 찾으니 반가운 마음에 아니갈 수 없다는 눈물겨운 거짓말까지.

귀국 후 중국 음식의 후유증에서 겨우 벗어난 후, 고소한 튀김 생각에 퇴근 후 다시금 사 먹고 있긴 하지만 기름 솥에 빠진 것만 같았던 끔찍했던 그 날들을 잊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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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 '내조의 여왕'은 월화요일 밤 나의 피로해소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얼짱 친구와 얼꽝 친구의 인생 역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속이 시원하고, 전부 사실은 아닐지라도 아내들의 불꽃 튀는 내조 전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게다가 코믹인듯 아닌듯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적인 구성도 마음에 들고 약간은 모자란 감이 있지만 남자 주인공들의 역할도 다채롭다. 뿐만 아니라 김남주와 이혜영 등을 통해서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봄날씨에 어떤 옷차림과 화장으로 대처해야 할지 너무나도 확실한 답까지 제공해주고 있으니 나에겐 안성맞춤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벌써 여러 검색 사이트에서는 김남주의 머리 모양과 화장법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으며 그녀가 입었던 옷들에 대한 논평도 쫙 깔린 상태이다. 이혜영 또한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답게 최근에 발표한 미용관련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미모와 패션 감각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은 생각주머니를 이등분해서 한 쪽은 드라마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들의 맵시를 보느라 참 바쁘다.


그런데 나는 드라마를 볼 때면 늘 내가 좋아하는 인물에다가 감정이입을 하는 편인데(전형적인 아줌마 스타일) 이번에는 좀 갈팡질팡 하게 된다. 사실 인생살이란 누구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악역이 달라질 수도 있기에 전적으로 악한 사람과 전적으로 선한 사람을 칼로 무 자르듯 딱 잘라 낼 수 있는 것이 더 맞기는 하다. 그래도 다른 드라마에서는 내용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한 인물쪽으로 마음이 기울곤 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현재의 악녀 이혜영과 과거의 악녀 김남주 사이에서 갸웃거릴 때가 참 많은 것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답게 한 번 살아 보겠다고 아둥바둥거리며 친구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김남주의 꼴이 참 한심스러우면서도 가엾다. 그러나 모든 일의 씨앗은 어린 시절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지 않는가. 극중 김남주와 이혜영은 초등학교때부터 단짝이었지만 얼짱과 얼꽝으로서 극과 극의 삶을 살아 오고 있었다. 친구가 돼 보겠다고 온갖 시중을 다 들면서 김남주의 곁을 떠나지 않던 이혜영을 보기 좋게 묵사발 냈던 사람이 바로 김남주였고, 그로 인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이혜영이 현재 역전된 상황에서는 거꾸로 김남주를 골탕 먹이기고 있다.


과연 누가 더 악녀이며 드라마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때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행복한 결말이라고 좋아하게 될까? 어린 시절 공주처럼 살아왔던 김남주가 털털한 아줌마가 다 돼서 이것저것 손 걷어붙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편이 돼 이혜영이 미워졌다가, 어린 시절 외모를 가지고 놀려대던 김남주를 떠올리면 샘통이다 싶다. 또 어린 시절 온갖 멸시를 받으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이혜영이 완벽하게 멋진 모습으로 우아를 떨땐 그래 김남주도 똑같이 당해봐야지 하다가도 지지리 궁상맞은 현재의 김남주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과거에 악녀였던 김남주, 현재의 악녀인 이혜영. 과연 누가 더 나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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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르르 좋아서 웃어대는 친구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걸 자랑이라고 하는건지, 아니면 대놓고 흉볼 수는 없으니 그렇게라도 돌려서 말하고 있는 중인지 잠시 판단이 서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는 순간까지도 내내 밝은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봐서는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 모양인데, 사랑의 콩깍지여 제발 벗겨지지 말기를, 말기를, 말기를...... .

나와 같은 고향 출신인 내 친구는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일찌감치 '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타지에서 생활하는 자취생들이 그 지역에 잘 적응하고 자신을 올바로 보살피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매끼니를 제대로 챙겨먹는 것이다. 다행히 이 친구는 어릴 적부터 눈썰미가 좋아서 각종 반찬이며 맛있는 음식들을 어깨 너머로 익혀두었기에, 길었던 자취 생활동안 배곯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단다. 초반에 습관을 잘 들여두어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절대로 밥을 굶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는 내 친구.


초록은 동색이라고 이 친구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힘의 근원은 밥이다. 나 또한 혼자 지내면서 배고픔 만큼 서러운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플 때라도 악착같이 끼니를 챙겨 먹고, 출근길 시간이 없을 땐 샌드위치나 김밥 등을 흔들리는 지하철에서도 잘만 먹는다. 절대 체하는 일은 없다. 이렇듯 없어서 못 먹는 우리들에게 먹기 싫어서 끼니를 거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물론 다이어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굶주림은 이해한다.) 일을 하다보니 밥 먹을 시간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순도 100%의 거짓말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정말로 음식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일에 열중하다 보면 두 끼쯤 굶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로 있었다는 말이다. 놀랍게도.

서론이 너무 길었으니 다시 친구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이가 텔레비전을 재미있게 보고 있길래, 이 때다 싶어서 냉장고에서 반찬들 꺼내서 가위로 작게 잘라서 큰 그릇에 싹싹 비벼 줬거든? 시금치랑 콩나물이랑 그런 야채들도 같이 넣어서 말이야. 멸치 볶음까지 넣었는 지는 정말 모를걸? 된장찌개 조금 넣어서 싹싹 비비고 그 위에 달걀 부침까지 얹으니까 감쪽 같더라고. 응? 나? 나야 요새 살이 너무 쪄가지고 대충 나물들만 넣어서 조금 비볐어. 응. 그래가지고 그릇 째 그이한테 줬더니 텔레비전 보면서 한그릇을 뚝딱 비우더라고.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꺄르르...... .'


여기서 '그이'라 함은 절대 내 친구의 아이가 아니라 모두가 예상한 바와 같이 내 친구의 '남편'이 맞다. 외동 아들로 태어나서 경쟁하는 형제가 없었던 친구의 남편은 어릴 적부터 밥 안 먹기 대장이었다고 한다. 자녀가 둘만 되더라도 본능적으로 타고 나는 경쟁의식 때문에 과자 하나 밥 한 숟가락을 더 먹기 위해서 아웅다웅 싸울텐데(나는 여자임에도 라면 한 젓가락 더 먹겠다고 남동생과 피터지는 싸움을 참 많이도 했었다.) 외동이니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라 더욱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았다. 밥 안 먹는 아들 때문에 속 꽤나 끓이셨을 어머니의 품을 떠나 아내의 품으로 옮겨(?) 오면서, 밥 먹이기 전쟁은 연장전을 치루게 됐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지긴 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한없는 사랑으로 자녀를 끝없이 보살피겠지만, 아내들은 어머니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가 아닌가(사랑하기에 그만큼 더 무섭다는 의미이니 오해마시길) 내 친구의 지극정성 끝에 친구 신랑은 결혼전보다 체중도 많이 늘고 훨씬 더 멋있어졌다. 그러나 밥 먹는대도 취미를 붙여가고 있다고는 하나,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밥 안 먹는 아이가 밥 안먹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내 주관적으로 계산한 통계에 따르면 외동으로 귀하게 자란 사람들 중에 밥 안 먹는 아이=어른이 많다. 그리고 형제가 많을 수록 한 입이라도 더 먹으려고 숟가락 전쟁을 한 경험이 많다. 물론 밥을 너무 많이 먹는 것보다야 소식하는 것이 건강에 좋지만 밥에 취미가 없으면 곤란하지 않는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만들어가는 관계들이 얼마나 많은데. 쓰다보니 아이 많이 낳기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처럼 돼 버렸지만, 밥 안 먹는 어른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밥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는 환경을 어릴 적부터 만들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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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이 끝난 후,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 잡은 드라마 '내조의 여왕'이 정말 재미있다. 방송이 시작하기 전부터 '내조의 여왕'은 활발하게 홍보 작전을 썼기에 주인공들과 그들의 활약상을 익히 들어왔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는 채널 선택이었다. 김남주와 이혜영이 여고생으로 나온다는 얘기와 오랫만에 드라마에 출연하여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소식은 괜한 거부감 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홍보 전략이 나에게는 실패한 셈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에덴의 동쪽을 봐 왔던 내가 느즈막에 '꽃보다 남자'를 보기도 그렇고 더더구나 '자명고'는 더욱 매력이 없게 느껴졌기에 무료했던 월요일 밤에 나는 습관처럼 MBC를 보고 있었다.

사실 남자들의 드라마였던 '에덴의 동쪽'도 재미있어서 고정 시청자가 된 것은 아니다. 첫회부터 봤다는 의리감 하나로, 질질 늘어지고 막판에는 내용도 진부해진 에덴의 동쪽을 얼마나 견뎠(?)던가. 내가 생각하기엔 의미도 없게 느껴지는 주먹질을 그저 견디면서 그 긴 에덴의 동쪽을 마지막회까지 다 봤다. 정말 끝나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인지 드라마가 정말 유치해서인지 '꽃보다 남자'는 더 재미가 없었다. 주위에서 하도 F4, F4 하길래 몇 번 보려고 시도를 한 적은 있지만, 역시나 내 취향은 아니었었다. 그래서 꽃남 열풍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있는 요즘이지만 나에겐 왠지 다른 세계 얘기 같기만 하다. 아무튼 무료했던 월, 화요일 밤이 새로운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등장으로 다시금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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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남주&이혜영

'내조의 여왕'은 여자들 취향에 딱이다. 물론 이 드라마에는 꽃보다 더 멋있다는 미소년들은 나오지 않는다. 한 때(?)는 조각 미남이었지만 어느새 주름이 돋보이는(그래도 잘생겼다.) 오지호와 꽤 오래 활동했지만 큰 빛은 보지 못했던 윤상현, 카리스마와 연기력은 단연 최고인 최철호가 남자 주인공이다. 남자 주인공으로만 봐서는 그저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 드라마에서 남자들의 역할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부진을 한방에 날려줄 김남주와 이혜영이 여자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 듯, 김남주와 이혜영은 주부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여자 연예인이다. 그 둘의 패션 감각과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외모 때문에 그녀들은 질투와 동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도 이 둘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 것인지가 가장 화제가 됐었다. 예쁘게만 보여줄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이혜영은 초반부터 과거 회상신에서 아주 심하게 망가졌지만 그 덕에 여론 몰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실신에서는 김남주가 더 망가질 예정이므로 앞으로도 얼마간은 계속 언론의 관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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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오랫만에 드라마에 출연했기 때문에 앞으로 연기 대결도 쟁쟁하겠지만 그 보다 더 불꽃 튀는 것은 미모 대결이 아닌가 싶다. (다소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조의 여왕'은 여고생으로 돌아가서 그녀들이 교복을 입은 모습부터 보여주었다. 비록 이혜영은 맡은 역할상 못난이 여고생이 될 수밖에 없어서 억울했겠지만 김남주는 변함없는 동안피부를 자랑할 수 있었다. 이혜영 또한 현재로 돌아와서는 아주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 둘의 옷차림이나 화장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자신을 더 돋보이게 만들런지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나도 장면이 바뀔 때마다 그녀들의 외모부터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니까 방송이 거듭될 수록 그녀들의 코디법에 관한 문의들이 많아질 것 같다.

2. 불륜의 향기

발랄하고 가벼운 드라마의 분위기상 '사랑과 전쟁'과 같은 끈적끈적한 불륜을 선보이지는 않겠지만 내용이 전개되는 상황을 보니 엇갈린 만남이 곧 시작될 것 같다. 여자들은 불륜드라마를 태생적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니 대리만족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내용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커져감에 따라 드라마의 재미도 더해질 것 같다.

사랑하는 것 하나는 확실하지만 지지리 운이 없어서 궁상맞게 살아가고 있는 김남주&오지호 커플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치 않은 결혼을 했다. 이혜영의 치밀한 노력끝에 결혼에 성공하게 된 이혜영&최철호 커플이나 집안 간의 경제적 상황 때문에 결혼한 선우선&윤상현 커플에게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철호는 원래 김남주를 사랑했었고 선우선은 대학 시절 오지호를 좋아했었다.(막장같은 설정인가?) 이들이 어떤 상황과 어떤 이유로 엇갈린 사랑을 하게 될른지는 아직 완전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질 것만은 확실하다.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서는 정말 그정도까지 해야 되는 것인지, 정말이라면 기권하고 싶어지기도 하는 열혈 내조 전쟁, 이 드라마는 여자들의 세계를 아주 여성스럽게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 몸이 덜 풀렸는지 김남주와 이혜영의 연기가 조금 뻣뻣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워낙에 내용이 재미있고 그녀들의 패션스타일을 보는 것 만으로도 유용한 드라마 '내조의 여왕'을 보는 것이 나는 참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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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별 생각없이 차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줌마들은 참' 하는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남자친구를 봤더니 뾰루퉁해져서는 눈짓으로 대각선 뒷쪽을 가리킨다. 내 귀에는 차들이 오가는 소리와 사람들이 분주히 타고 내리는 소리 사이에서 그제서야 한 아줌마가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왜? 저 아줌마 목소리가 시끄러워서?'
'응. 근데 너무 이상한게 아줌마들은 꼭 저런 목소리더라.'
'저런 목소리라니?'
'굵고 큰 소리말야, 시끄러워서 돌아보면 백발백중이야. 아줌마인게 확 티나지. 아줌마들은 왜 꼭 저러는지 모르겠어.'



아뿔싸. 내 남자 친구에겐 누나가 없었지. 남자 친구의 볼멘 소리에 대충 맞장구치면서 호응해 주고는 말끝을 흐렸지만, 순진한 이 남자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여자들의 목소리에 관해 잘 모르는 듯 했다. 남자들이 잘 모르는 여자들 내숭록 1장 1절에는 상황과 기분에 따라서 베이스와 소프라노를 넘나드는 목소리편이 존재한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살아 온 남동생마저 놀라게 하는 목소리 기술의 보유자이기에 조금 전 남자 친구의 목소리 운운에 찔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전화를 받을 때와 집 밖에서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가늘고 높은 소프라노 목소리를 유지하지만 나라고 늘 상냥할 수 있겠는가. 평상시 가족들을 대할 땐 알토 정도의 심상한 목소리를, 동생이 깐죽댈 땐 힘차면서도 굵직한 테너의 목소리를, 동생과 심하게 싸우거나 모든게 귀찮을 땐 저음의 베이스 소리를 큰 어려움 없이 자유롭게 발성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천재적인 목소리 변주가 어렸을 적부터 타고난 것은 아니었고, 성장해 가고 사회 경험이 다양해질 수록 계속 계발되면서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의식적으로 바꾸어야만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상대와 상황에 따라 인공지능으로 알아서 척척 바뀌어지는 것이다.


내가 집에서 동생과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특히 남자들의)를 받을 때, 내 동생은 갑자기 급상승하는 내 목소리 톤에 놀라고 가증스러워서 도끼눈이 된다. 삼십 년을 봐 왔어도 여전히 못마땅하기 때문이겠지만 내 동생은 나로 인해 여성들의 놀라운 목소리 변주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았을 것이다. 내가 잘못 걸린 전화에도 이미지 관리를 한답시고 상냥함을 유지할 때 동생은 어이가 없어서 소파 위로 쓰러지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인공지능 목소리 바뀜이기에 알아서 척척이니까 잘못 걸린 전화라고 해도 낯선 사람에겐 소프라노이다.

다시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버스 안에서 아줌마가 유독 굵고 거친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한 까닭은 상대가 아주 친한 사이이거나 가족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비록 아줌마는 집 밖에서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테너에 가까운 소리를 냈지만 그것은 아줌마가 처한 상황에따라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재설정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유자재로 쉽고 편리하게 바꿀 수 있는 목소리이긴하지만 매순간 적절한 소리를 내는 것이 사실은 은근히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50대로 보이는 아줌마 또래에겐 이제는 별로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더 쉽고 간결한 방향으로 목소리 변화의 폭을 줄였을 수도 있다.


누나와 여동생이 없어서 여성들의 내숭에 관해서 잘 모르는 남성들은, 방심한 여자 친구의 낯선 목소리를 듣더라도 크게 놀라지 마시길 바란다. 잠시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문제가 발생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여자친구에게서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가끔은 모른척 눈감아 주시길 바란다. 늘 상냥하고 고운 목소리를 내는 일도 은근히 피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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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도 아니고 같은 직장 동료도 아니니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해 두자. 어찌어찌 하다가 알게 된 이 사람은 중국인 유학생이다. 작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조금 더 경험을 쌓고자 체류하는 중인데 중국에 돌아가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될 거란다. 중국에서부터 한국어를 배웠기에 그녀는 한국어에 능통하여 웬만한 의사소통에는 무리가 없다. 그런데 묘하게 어긋나는 화법상의 오류때문에 그녀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괜시리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문제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비앙카와 왠지 닮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 중인 비앙카는 그녀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과 걸죽한 사투리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할머니께 한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한국어가 서툰 것은 당연하며 외국인에게 완벽한 우리말 구사를 요구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 비앙카를 옹호하는 쪽의 의견이다. 반면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살아 온 세월이 있는데 무례한 줄 뻔히 알면서도 언어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방송에 나와서까지 막말을 일삼는 것이 곱게 보일리 만무하다는 것이 반대 편의 입장이다. 나는 방송을 보면서는 어린 비앙카의 말이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외모가 예쁘장해서 그런지 부산 사투리도 귀엽고 다른 사람들은 거칠게 느껴진다는 직설 화법도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실제로 비앙카와 비슷한 외국인을 만나보니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한국어를 아예 하지 못하면 덜 할텐데 제 할 말은 다하는 그녀가 유독 높임법에는 서툴다는 것이 특히 문제였다. 나보다 정확히 9살 어린 그녀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반말을 뱉어 내니 그녀를 보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가르치는 외국 학생이려니 하고(나는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하듯 내가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하는 시범을 보이고 되도록 친절한 어투로 높임말로 응대하곤 했었다. 그런데 고개 숙여 인사하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그녀와 만나는 횟수가 잦아질 수록 은근히 앙금이 쌓였나보다. 더구나 그녀는 중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될 것이 아닌가.

나와 그녀를 동시에 알고 있는 한 남자분은 외국인에게 발끈하는 나를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지만, 남자들의 그런 우유부단이 그녀를 더 버릇없게 만들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남자분의 말씀처럼 내가 옹졸해서 그녀를 포용하지 못하고 있는건가? 아니면 나이 어린 여자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3년 이상 공부하고 살아오면서 올바른 경어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닐텐데도 말이다.


어쩌면 그녀가 우리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중국인이기 때문에 내가 더 발끈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말도 술술 잘 하는 그녀가 외모마저 비슷하니 문득문득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우리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최근에는 그녀와 되도록 오래 만나지는 않으려 하고 있다. 아무튼 이제 미녀들의 수다에서 비앙카를 볼 때면 그 귀엽던 말투와 외모가 곱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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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뷔폐 식당. 똑바로 앉아 있기도 버거운 내가 부른 배를 부여잡고 주위를 살피고 있다. 아까는 먹느라 바빠서 제대로 못 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음식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뷔폐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음식을 즐, 기, 고 있을까? 내 생각엔 모두가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후식으로 조각케이크와 아이스크림과 커피까지(두 잔) 마신 후 숨쉬기도 불편한 내가 음식을 진정으로 즐기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뷔폐 식당에 있는 사람 중 절반은 본전을 뽑기 위한 경쟁이라도 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면서도 가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찾는 뷔폐 식당에선 많이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찬 난 모순 덩어리이다. 과식을 하게 되면 많이 먹은 것에 대한 불쾌함과 그 열량을 소모하기 위한 신경전, 그리고 식사 후 불룩해진 배를 다시 납작하게 만들기 위한 무수한 노력이 들게 된다. 그러니 본전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적게 먹는 것이 맞지만 뷔폐 식당에 들어선 그 순간에는 오직 '많이 먹는 것=본전을 뽑는 것'이라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니 정말 이상한 일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내 일행들은 모두 그렇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이지만 각자 음식을 가져다 먹기에 바빠서 함께 자리해서 느긋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배가 어느 정도 부른 이후에야 본격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대화 중에도 본전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꼭 누군가는 다시는 뷔폐 식당에서 만나지 말자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말을 꺼내고, 그러면 나머지는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평소에 적게 먹는 우리에게 뷔폐 식당은 손해라고 우겨대기 시작한다. 남들이 볼까봐 두려운 한 편의 코메디처럼 말이다. 그리곤 식탁의 한쪽엔 다 먹지도 않은 채 밀쳐 둔 접시들이 수북한데 또다시 음식을 가지러 자리를 뜬다. 순전히 본전을 뽑기 위해서.

나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막식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막식가는 많은 접시를 비워 내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며 음식의 종류나 조리법에 관계 없이 내키는 대로 마구잡이로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본전을 뽑아야 된다는 생각이 가득하여서 배가 부른 이후에도 계속해서 먹는 경향이 있는데, 나중에는 먹다가 지쳐서 다시는 뷔폐 식당에 오지 않을 것을 맹세하지만 곧 이를 잊고 다시금 뷔폐 식당을 찾아서 마구잡이로 먹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뷔폐 식당에는 우리처럼 무식(?)한 막식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부산스럽게 왔다갔다하며 정신없이 접시를 비워낼 동안 아주 기품있는 동작으로 천천히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정한 순서에 따라서 뷔폐의 음식을 맛보는 듯 보였는데, 일행들과 충분한 대화를 하며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이 참 우아해보였다. 그들은 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미식가'였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접시의 수가 문제가 아니며 많이 먹는 것을 가지고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미식가가 아닌 막식가이기에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뷔폐 식당에 오는 지 잘은 모르겠다. 보기 좋을 정도로 담아 온 음식을 놓고 한참을 음미하는 그들의 식사 모습은 분명히 좋아보이긴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주머니 가벼운 내가 자주 찾지 못하는 뷔폐 식당에서 미식가가 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 또 올 지 모르는데 우선은 먹어두고 볼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처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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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가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요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아져서 텔레비전 방송도 많아졌고 관련 책들도 다양해졌다. 그래서 건강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채소는 어디에 좋고, 어떤 질병에는 무슨 음식이 좋은지를 좔좔 꿸 수 있게 됐다. 항암 효과도 있고 노화 예방도 된다는 고마운 토마토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며 그냥 맛있게 먹어 주면 되는 것이다. 토마토는 맛도 좋아서 날 것으로도 많이들 먹지만, 익힐 경우 토마토에 들어 있는 라이코펜 성분이 더욱 활성화 된다는 것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어떻게 익혀 먹을 지가 관건인 것이다.

볶거나, 데치거나, 끓이는 조리법으로 토마토를 건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미리 밝힐 것은 절대로 거창하지 않고 전문적인 음식도 아니라는 것이다.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조리법 세 가지이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기를.


1. 볶기
중국인 친구에게서 배운 방법인데, 조리법이 간단하고 맛도 좋아서 내가 가장 애용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중국 서민들에게 가장 흔한 음식이기도 해서 집에서나 식당에서나 쉽게 보고 자주 먹는 음식이란다. 처음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향신료가 두려울 경우에는 이 음식을 주문해서 먹으면 안전(?)하기도 하겠다. 바로 달걀 후라이인데, 속으로 에게? 하신는 분들은 조금만 참아주시길 바란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소금 뿌려 미리 풀어 놓은 달걀을 먼저 휘저으며 익히다가 토마토를 넣어서 같이 볶아 내면 끝이다. 조리법이 간단하다고 별로라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 쉽고 익숙한 음식이기에 전혀 거부감 없이 맛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생토마토에 소금을 뿌려서 드시는 분들도 많으니 거기에 달걀까지 더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다.

중국인들은 기름에 토마토 달달 볶다가 물과 함께 풀어놓은 달걀, 김 등을 넣어 국을 끓여서도 먹는데, 우리 식성상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국물을 달게 마시기엔 조금 거부감이 들 수도 있으니 국보다는 볶음이 낫겠다.



2. 데치기

다음으로 소개할 방법은 간호사인 친구에게서 들은 방법이다. 친구의 직업을 굳이 밝혀 놓은 까닭을 귀엽게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친구는 밤 근무에 피곤해서 영양을 보충하고 싶을 때 수시로 이 음식을 해서 먹는데, 사실은 그냥 주스다. 쉽게 마실 수 있는 토마토 주스이지만 데친 토마토를 사용하는 것이 요점이다. 토마토에 미리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낸 다음 팔팔 끓는 물에 데치면 껍질이 쉽게 벗겨진다. 홀라당 껍질 벗은 토마토를 믹서에 갈면 끝인데, 건강을 생각해서는 약간 식힌 다음 그냥 마시는 것이 좋겠지만 기분에 따라 다른 첨가물을 넣어도 괜찮다. 시원하게 마시고 싶으면 데쳐서 갈아 둔 토마토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주스나 사이다, 요구르트 등를 적당량 넣어서 마시면 된다.


3. 끓이기
이 방법은 서양권 친구에게서 배운 것이다. 매운 라면에 맛을 들여서 한동안 매일 라면만 끓여 먹던 친구인데 각종 야채와 고기까지 넣어서 먹다가, 어느 날은 가장 맛있는 방법을 알아 냈다며 자랑스럽게 나에게까지 그 방법을 알려 주었다. 바로 토마토를 넣어서 먹는 것이었다. 나더러 하도 해 먹어보라기에 속는 셈치고 라면에 토마토를 넣어봤는데, 솔직히 라면과 토마토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한 번 끓여 먹은 이후로 라면에는 절대로 토마토를 넣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치찌개와 토마토가 환상적인 궁합이라며 친구가 권유를 해 왔다. 한번 낭패를 봤기에 고개를 저었지만 끝없는 설득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얼큰한 김치찌개에 잘 익은 토마토를 넣어서 함께 끓여 먹으면 끝이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맛일지 걱정반 기대반으로 찌개를 먹어봤는데, 뜻밖의 맛이 났다. 매콤하면서도 약간 시큼한 것이 태국 음식의 풍미를 가져다 준 것이다. 태국 여행 때 먹어 봤던 똠얌꿍하고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김치찌개와 토마토라니 너무나 안 어울려서 처음에는 씹는 맛도 어색하기만 했지만 먹을 수록 괜찮았다.

그러고보니 토마토를 맛있고 건강하게 익혀 먹는 방법은 정말 무궁무진 한 것 같다. 평소에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어떤 음식이든 주저하지 말고 토마토를 살짝 섞어보는 것은 어떨까? 퓨전이 달리 퓨전인가? 나는 김치볶음밥과 돼지고기 두루치기, 탕수육 소스에도 토마토를 넣어서 먹고 있다. 아주 맛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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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다. 뜨끈한 탕을 좋아하는 나는 목욕탕에 갈 때면 사우나나 냉탕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은 채 온탕만 들락날락 하는 것이 특기이다. 이 날도 간단히 샤워를 끝내자마자 시원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온탕으로 직행을 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탕 안에서 오래 버티는 것이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평소 나 답지 않은 날이었다. 건식, 습식 사우나를 기웃거려도 보고 찬 바람을 쐬러 탈의실에도 들락날락 해 봤지만 영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어떤 아주머니를 발견하게 됐다.

좀 죄송한 얘기지만 온탕에서 견디기 힘들어질 때, 다른 사람들을 은근히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이 날은 그 아주머니를 좀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눈에 띄지 않게 말이다. 내가 유독 그 아주머니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 아주머니의 수상쩍은 행동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목욕탕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하더니, 젊고 예뻐보이는 여자들이 보이면 민망할 정도로 훑어보고 계셨다. 목욕탕 문이 열리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꼭 한 번씩 쳐다보는 것도 이상했다. 일행을 찾고 계신 것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심상치 않은 눈초리였던 것이다.



아주머니는 두리번거림을 마치더니 드디어 한 여자분에게로 접근을 하셨고 그 모습을 포착(?)하게 된 나는 금세 흥미진진해졌다. 마침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재미있었다. 귀를 쫑끗 세우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내용이 참 야릇했다.

아주머니는 한 눈에도 앳되보이는 여자에게 일단 무턱대고 새댁이라고 부르시더니, 아이고 아직 아가씨인가? 하며 얼굴과 몸 구석구석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당황한 여자가 아직 미혼이라고 밝히자마자 아주머니는 그렇지? 반색을 하시며 의자를 끌어당겨 굳이 그 옆에 앉으시고는 아는 사람이 '의사'인데 말야...... . 하며 슬슬 본색을 드러내셨다. 아주머니는 말로만 듣던 마담뚜였던 것이다. 목욕탕이 주된 작업장인지 아니면 목욕을 하면서까지 프로 정신이 투철하신지는 모르겠지만 목욕탕에 온 그 순간부터 신붓감을 물색하신건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한 여자분을 점찍은 것이다.


"올 해 나이가 몇이지?", "스물 여섯이에요.", "스물 여섯? 응 그래그래 딱 좋네 딱 좋아. 직장은 어디로 다니고?" ...... .

생각해보니 중매쟁이에게 목욕탕만큼 좋은 장소도 없는 것 같았다. 일단 여자 목욕탕만큼 다양한 여자들이 많이 오는 곳도 드물다. 그리고 화장발도 옷발도 아닌 천연 그대로의 외모 상태를 점검하기에도 딱이고, 특별히 원하는 지역이 있으면 그 동네 목욕탕에 가면 되기 때문이다. 비용도 저렴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목욕은 할 수 있으니 밑져봐야 본전이 아닌가? 아주머니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니 상대가 당신의 아들은 절대 아니고 직업군도 다양한 것으로 보아 아마추어는 아닌 듯 싶었는데, 벌거벗은 면접이 다소 민망해 보이긴 해도 끝까지 인적 사항을 알아 내는 모습이 프로는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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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대 역을 막 지났을 무렵일 것이다. 내가 갑자기 정색하며 친구를 다그친 것은...... . 정말 괜찮으니 솔직히 말해 달라고 물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친구의 눈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커졌지만, 나는 미쳐 친구를 배려할 겨를이 없었다. 네 옷차림이 우스꽝스럽지 않냐니 갑자기 무슨 말이냐며 되묻는 친구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나는 내 긴 머리는 어떠냐며 동문서답을 했다. 너무도 놀랐기 때문이며 결코 예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금 전 전철 문이 열릴 때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유유히 사라졌던 그 여자 말이다.

3월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추운 날씨 때문에 오늘 아침에 한참을 고민했다. 빨아서 넣어 둔 내복을 다시 꺼내야 하는가, 아님 레깅스로 만족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레깅스를 통이 큰 건빵바지 안에 입고 겹겹이 상의도 두툼히 입은 다음에야 안심을 하며 집을 나설 수 있었다. 3월말까지만 봐 주기로 한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다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원래의 내가 되기로 다짐 하며, 아직 남아 있는 추윗 속에선 멋내기를 잠시 미뤄두기로 타협을 했다. 그런데 집에서 멀어질 수록 일찌감치 봄 옷을 꺼내 입은 여인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친구와 함께 탄 전철 안에도 온 몸으로 봄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유독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청자켓에 짧은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가방을 옆으로 맨 모양이 딱 봐도 대학 새내기다. 그래, 한창 땐 추운 줄도 모르고 그저 예쁘게만 입기 마련이지. 허리까지 내려오는 까만 생머리의 그녀를 보고 있으니 살겠다고 투실투실하게 껴 입은 내 옷차림이 좀 부끄러워지기도 했지만 날씨가 추워도 너무 추웠다. 그래도 자기를 가꾸기 위해 멋을 낸 차림을 보니 예쁘긴 예뻐서 자꾸 쳐다보게 됐는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가 불쑥 내 쪽을 쳐다 본다. 헉! 소리가 밖으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놀랐다.

도도하게 날 바라보는 그녀는 못 돼도 사십대 중반은 돼 보였기 때문이다. 뒷모습은 영락없는 대학 새내기였는데 앞모습을 확인하니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의 여인이었다니 정말 반전이었다. 아찔한 킬힐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녀가 전철에서 내리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그 모습이 결코 예뻐 보이지 않았다. 아줌마라고 해서 청자켓을 입지 말라는 법도 없고 머리를 기르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어울리지가 않는다. 나는 그제서야 내 모습을 떠올려 봤다.


나는 어렷을 때 서른이 되면 머리를 싹둑 자르겠노라고 다짐을 했었다. 나이 들어서 긴생머리를 유지하는 것 만큼이나 볼품없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 땐 나에게 서른이라는 나이는 결코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어느새 내 나이는 서른 한 살. 그러나 머리를 자르지는 못했고, 웨이브 파마를 한 지 시간이 오래 돼 파마가 풀리니 생머리에 가까운 머리 모양이 됐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 한 것이다. 옷차림은 또 어떤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정색하고 친구를 다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듣고 나서 친구는 한바탕 웃는다. 별, 일, 아, 니, 라, 는, 듯. 우리처럼 어중간(?)한 나이에 자칫 머리를 잘못 잘랐다간 아줌마 되는 건 한순간이라며 절대 머리를 자르면 안 된다는 친구다. 그래도 파마가 많이 풀린 건 사실이니 말 나온 김에 미용실에 가는 건 어떠냐고 묻는다. 이효리도 서른 하나고, 장나라도 서른 하나인데 우리가 미니스커트르 못 입을 이유도 없단다. 정말 그럴까? 내 뒷모습을 보고 대학생 쯤으로 생각했다가 앞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는 어린 친구들이 있을까봐 나는 너무 두렵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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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이런 방송이 있었다. 동양에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 관한 도저히 믿지 못할 이야기가 들려 온다는...... . 그 나라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밤 늦게까지 고등학교 건물의 불이 꺼지지 않는데,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과연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더욱 있을 수 없는 것은 학생들이 아침에 등교하는 시간이 7시 30분이라는 것.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꼭두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실제로 이런 내용으로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고등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단다. 믿거나 말거나라는 씁쓸한 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이 방송 얘기를 하면서 농담 반 냉소 반으로 우리들이 겪던 심적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더욱 놀라운 말을 들었다.

내 친구는 중국 산동성에 있는 대학교의 한국어학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친구는 타국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 무척 보람된다면서도 중국 학생들의 뜨거운 학구열을 볼 때면 위기 의식을 느끼기도 한단다. 가끔은 활발한 동아리 활동도 없고 특별한 재밋 거리도 없는 중국 대학생들이 가엾게 보일 때도 있지만 술문화가 너무 심하게 발달(?)돼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걱정된다는 소리이다.

친구가 말해 준 중국 대학생들의 생활은 이렇다.(산동성에 있는 대학교의 상황이며 다른 곳은 또 사정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요즘 중국 경제가 많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대학 시설은 그다지 좋지 않은 듯 했다. 6인 1실로 돼 있는 기숙사에는 철근으로 만들어진 3층 침대가 양쪽으로 놓여 있고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겨울에도 난방이 잘 되지 않으며 뜨거운 물도 잘 나오지 않는다.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철저해서 밤 10시 이후론 전기를 쓸 수도 없는 대학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학생들은 특별한 불평을 하지는 않는단다.

단체로 기숙사 생활을 해서인지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데, 학생들은 밤 10시에 잠을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7시가 조금 넘으면 모든 학생들이 아침 자율학습을 하러 교실로 향한다. 수업은 오전 8시부터 시작되는데 우리와는 달리 모든 강의가 2시간 씩이다. 50분 수업에 10분 쉬는 것을 2번 반복하는데 특이한 점은 고등학교 때처럼 수업 종이 울린다는 것. 수업 시작과 끝에 종이 울리기 때문에 교수들은 정확히 그 시간을 맞추어야 된다. 우리 나라 대학처럼 2시간 짜리 수업을 대충 1시간 15분쯤 하고 일찍 끝내버리는 일이 중국에선 있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에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휴강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의아해하면서도 좋아했던 적이 많았지만 중국에서는 휴강이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수업은 대체로 6시에 끝나는데 저녁 식사를 하고 난 이후에도 야간 자율학습이 있단다. 보통 9시까지 자습을 한 다음에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게 된다. 아침부터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학교가 중국에도 있었다. 그것도 시간표에 따라서, 그것도 대학교에서. 정말 놀라웠다. 만약 우리나라 대학교에서 이렇게 강제적으로 공부를 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학생들은 시간에 맞게 수업을 하는 것이 습관화 돼 있어서 종료 종이 울리지 않으면 아무도 끝까지 움직이지 않는단다. 친구가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시간 안배에 실패를 해서 10여분 정도 일찍 수업이 끝나버린 적이 있었는데, 왜 수업을 일찍 끝내냐며 눈을 말똥거리는 학생들 때문에 민망해서 혼났다고 했다. 어떻게든 일찍 끝내고 싶어서 안달인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것은 벌써 꽤(?) 오래 전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들의 모습과 지금 대학생들의 모습이 어쩌면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엄청난 학비를 들여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들이는 돈에 비해서 학생들이 너무 적게 얻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본전 생각을 하기에 우리 대학생들이 지혜롭게 대학 생활을 해서 등록금을 본전 뽑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도 좋고 각종 어학 시설이나 복지 시설 등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준비만 돼 있으면 적은 돈으로 교환 학생이나 해외 연수도 갈 수 있다. (물론 중국도 대도시는 다르겠지만)중국 대학생들은 좁아터진 기숙사에서 밤 10시 이후엔 전기를 쓸 수도 없는 환경에서도 악착같이 공부하고 있단다. 우리나라 대학교는 정말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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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 지경이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정녕 우리 여자들은 한시도 다이어트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단 말인가? 드디어 임신을 하여 3개월 째에 접어든 사촌언니와 오늘 점심을 같이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입덧이 심하지 않아서 언니는 모든 음식을 달게 먹을 수가 있다기에 우리는 몸에 좋고 맛있는 된장 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먹었다. 각종 나물과 함께 곁들여 먹으니 꿀맛 같아서 나는 밥 한 그릇을 뚝딱 해 치우고 또다시 밥솥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머쓱해지고 말았다. 조금 민망했던 나는 실실 웃으면서 임신부는 아기 몫까지 먹어야 하니 언니도 한 그릇 더 먹으라고 부추겼는데, 돌아온 언니의 대답이 너무 놀라웠다.

임신을 하면 무조건 잘 먹고 투실투실 살을 찌우는게 당연시 여겨졌던 옛날과 달리 21세기 임신부들의 최대 고민은 다이어트라는 것이 아닌가? 특히나 언니의 경우는 입덧이 없어서 더욱 조심해야 된단다. 아기의 건강을 우선시 여기는 엄마들이 미용을 위해 체중 관리를 할 리는 없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런데 임신을 한 40주를 세 등분하여 임신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었을 때 초기에는 예전에 먹던 식사량 그대로 먹으면 되고 중기에는 150~200g을 후기에는 350~400g을 더 먹어 주면 된단다. 중간중간에 과일과 고구마 등을 간식으로 먹어주면 더 이상의 열량 섭취는 불필요하다는 말이다.식빵 한 쪽이 150g이라고 하니 임신을 했다고 하여 2인분의 밥을 먹는 것은 안 될 말이라고 한다.


이렇게 임신 기간동안 체중 관리를 하는 이유는 임신후 체중 증가가 너무 심하면 임신 중독증을 비롯하여 여러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고, 산모도 원래의 체중을 되찾기가 어렵지만 아이도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임신 전 체형에 따라 7~15kg 정도만 체중이 증가하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된단다. 임신을 하면 20~25kg 정도 살이 찌는 것을 예사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또한 3개월째인 언니도 그렇지만 5개월까진 배가 나오지도 않는단다. 5개월 이전에 배가 불룩한 산모가 있다면 필시 체중조절에 실패한 까닭일 것이다. 배가 나온 이유가 아이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의 사진을 보면 임신 후에도 너무나 날씬해서 역시 연예인들은 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무지한 것이었다. 그녀들도 의사의 조언에 따라 철저하게 영양 조절을 했을 것이다. 임신부는 양보다는 질을 생각해서 음식을 먹어야 되고 임신부들이 많이 먹는 과일도 의외로 칼로리가 높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단다. 또한 아이를 갖게 되면 활동량을 줄이고 누워 있는 시간이 긴데 이것도 좋지 않은 것이란다. 임신 초기에는 유산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가벼운 산책만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 유산의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 때부터는 걷기, 수영, 임신부 체조 등 운동을 병행해야 산모와 아이 모두가 건강해질 수 있다.


그동안에는 누가 임신했다고 하면 임신과 동시에 배가 나오고 임신 기간 동안에는 무조건 잘 먹고 조심해야만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드라마를 보면 한밤중에도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면 남편을 가게에 보내어 아이스크림이나 딸기, 떡볶이 등을 밤참으로 먹는 장면이 나온다. 시도 때도 없이 아내가 원하면 언제나 어디에나 쌩하니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구해오는 것이 남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의 얘기를 듣고 나니 밤중에 배가 고파서 힘들어 하는 아내를 잘 다독이는 것이 더 중요한 남편의 몫인 것 같다.

언니를 따라 산부인과 병원에 같이 갔는데 입구에 들어서자 표어가 눈에 띄었다. '작게 낳아서 크게 기르자' 영양이 과잉 되면 아이도 커 지고 아이의 무게가 4kg이 넘으면 자연 분만이 힘들어 진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가장 주의를 주는 것이 체중 조절이고(요즘 산모들은 지혜로워서 다른 것은 일러주지 않아도 잘 아니까) 언니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본 임신 관련 책자에서도 비만에 관한 내용이 너무나도 많았다. 원래부터 통통했던 언니도 막달까지 8kg 정도 몸무게가 늘 것을 계획으로 영양 조절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임신부가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산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좋다고 하니 우리 여성들에게 다이어트란 평생 같이 지내야 하 친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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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름만 들어면 척하니 알아차리는 유명한 사람들, 그들에 관해 더 알고 싶을 때 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터넷 검색창에 알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치는 것이다. 인터넷은 우리가 이름만 써 넣으면 생년월일에서부터 최근의 근황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인터넷 세상 속에는 정말 유명한 사람들만 존재할까?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동료와 함께 컴퓨터를 하다가 쉬는 시간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봤다. 좀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1년에 몇 번씩은 검색창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와 이름을 검색해서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부끄러운 흔적들을 지워줘야만 한단다. 응?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자세히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그녀는 대뜸 자주쓰는 아이디가 뭐냐고 묻는다. 검색창에 내가 즐겨쓰는 아이디를 써 넣고 검색해 봤더니, 정말 많은 자료들이 꾸역꾸역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유명인사도 아니고 그동안 별로 드러내고픈 성과를 거둔 것도 없어서 과연 어떤 내용들이 인터넷에 남아 있을지 걱정부터 됐다. 대학생때부터 몇 개 안 되는 아이디를 가지고 각종 사이트나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카페에 가입해서 활동을 했던 모든 내용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대학원 재학시절 학교로 아침마다 샐러드를 배달시켜 먹었는데 배달 오류가 있었던지 그것에 관한 내용을 문의하는 글에서부터 각종 이벤트에 응모 및 당첨 된 내용들과 카페에 호기심으로 올려두었던 지난날의 기막힌 사진까지 부끄러운 흔적들이 가득했다.

예전에 그런 글들을 쓸 때야 다 이유가 있었겠지만,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읽기가 힘들 듯 몇 년 묵은 옛 게시물들은 얼굴이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나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없애고 싶은 나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다 지웠다. 그럴 일은 드물겠지만 누군가 내 아이디를 검색창에 쳐 봤다면 그동안 인터넷을 통한 나의 행적들을 다 보았을 것이 아닌가. 정말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1년에 한 번씩은 검색창에서 나를 검색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나처럼 오랫동안 인터넷을 사용해 오면서 여기 저기 많은 흔적들을 남겨 두신 분들은 지금 검색창에 자신의 아이디아 이름을 쳐 보시길 권해드린다. 어쩌면 얼른 지워야할 게시물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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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펀지 2.0의 '알아야 산다'라는 코너는 내가 관심있게 보는 방송 중 하나이다. 매번 보지는 못해도 나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 방송될 때면 한껏 집중해서 보곤 한다. 코너의 이름처럼 정말 제대로 알아야만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내용들로 가득해서 삶에 참 유용한 정보가 많다. 그렇지만 방송되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방송을 보고나면 세상에 믿을 음식, 믿을 제품이 또하나 줄어들었다는 상실감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나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는 경우가 가장 화가나면서도 걱정스러운데, 무심코 먹었던 단무지에서부터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줄만 알았던 두부까지 믿을 수 있는 제품이 없다.

그러다 세안용 화장품에 관한 내용을 봤다.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할 때 쓰는 갖가지 화장품들이 오히려 피부의 노화를 더 빨리 진행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화!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단어 중 하나가 아닌가. 나는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방송에 집중했다.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세수를 하는 데도 참 많은 종류의 화장품을 쓴다. 먼저 화장을 지워내는 화장품도 자신의 피부 상태에 따라 클렌징 크림, 젤, 오일, 워터, 로션 타입으로 나뉘어 진다. 화장을 말끔히 지워내고 나면 본격적인 세수가 시작되는데 대부분의 여성들은 클렌징 폼으로 거품을 가득 내어 얼굴을 씻는다. 이 때에도 한 번만 씻어내는 경우가 없고 두번 세번 연거푸 씻는 것이 당연한듯 여겨졌다.

나는 화장을 진하게 하는 편이라 클렌징 오일로 화장을 녹여낸다음 클렌징 폼으로 두 번 정도 꼼꼼히 세수를 한다. '화장은 하는 것 보다 지우는게 더 중요하다'라는 광고 문구가 대박으로 유행한 이후로 소중한 내 피부를 위해 뽀드득 소리나게 씻어 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으로는 화장의 잔여물과 더러움을 다 씻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꼭 두 번씩은 세수를 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이중 세안은 기본이고 삼중, 사중, 오중까지도 들어봤다. 그런데 씻으면 씻을 수록 얼굴이 빨리 늙어진다고 하니 경악할 따름이다.

스펀지에서 밝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나처럼 화장을 한 번 닦아 내고 난 다음 두 번이상 세수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세안용 화장품으로 더러움을 씻어낼 때 얼굴에 꼭 필요한 유분과 수분까지 같이 씻어버리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여성들은 피부의 촉촉함과 탄력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성분까지 싹 없애버리고 피부를 버석버석한 사막과 같은 상태로 만든 다음 화학 물질 덩어리인 화장품으로 그 빈곳을 채운다. 이것을 반복하다 보면 피부는 스스로 건강해지기를 포기하고 화장품에만 의존하게 된단다. 그리고 얼굴은 점점 더 주름지고 건조해지게 된단다.

깜짝 놀랐다. 씻으면 씻을 수록 어려지는 줄 알았지 내 얼굴을 점점 더 망가뜨리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방송을 본 이후로 클렌징 폼의 사용량을 대폭 줄였다. 스폰지에서 실험에 참가한 여성들이 한 번 세수할 때 실로 엄청난 양의 세안용 화장품을 쓰는 걸 보고 경악하기도 했지만 얼굴에 좋지 않을 것이니 완전히 끊지는 못해도 최소한으로 줄여보자는 결심에서였다. 일단 아침에는 미지근한 물로만 세수를 하고 저녁에 자기전에만 세안용 화장품을 사용했다. 하던 대로 처음에는 클렌징 오일로 화장을 녹여낸 다음 클렌징 폼을 콩알만큼만 덜어서 사용했다. 아무래도 습관이 있다보니 한번만 씻어내는 걸로는 부족한 듯 하여 두 번째는 쌀알 만큼만 덜어내어 거품을 내 씻었다.

의외로 적은 양으로도 많은 거품을 낼 수 있으며 노폐물도 잘 지워졌다. 폼클렌징을 가득 덜어내어 얼굴을 박박 문질러 씻지 않아도 얼굴에 더러움이 많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꼭 뽀드득 소리를 듣지 않아도 안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외출할 일이 없어서 집에만 있었을 땐 미지근한 물로만 세수를 했다. 그 전에는 집에만 있어도 왠지 얼굴이 기름져 있는 것 같아서 꼭 폼클렌징을 썼었는데 미지근한 물로만 씻어내니 얼굴이 한결 더 촉촉하고 건강해지는 것 같다. 방송을 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세안용 화장품의 양 줄이기를 하고 있는데 결과는 대 만족이다. 생각만으로는 잘 씻어내지 않아서 뾰루지나 여드름이 생길 것 같았지만 내 얼굴은 그 전보다 더 건강하다.

피부의 노화를 걱정한다면 화학품 덩어리인 화장품의 사용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보자. 우리 피부는 스스로도 건강해질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동안 너무 화장품에 의존한 것인지 아닌지 반성도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건강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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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만날까? 묻는 나의 말에 친구 같은 사촌 언니는 이번에도 역시나 집으로 오란다. 퇴근후에 언니네 집으로 가니, 내 예상대로 언니는 맛있는 음식들을 소담스럽게도 차려 놓았다. 각종 요리책을 섭렵한 언니는 최근에 레스토랑 음식을 따라잡아 준다는 요리책을 보고 또 보며 집에 손님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취미가 돼 버렸단다. 요리에 취미를 붙이고 나서는 밖에서 밥 먹기가  너무 아깝다는 언니를 이해는 하지만, 이러다 영영 집 밖을 못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 너무 걱정스럽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언니라 우리는 자주 만나서 가끔은 근사한 음식점에도 가고 어떨 땐 분식점 떡볶이와 순대도 사 먹었다. 꼭 살 것이 없더라도 동대문이며 명동 쇼핑몰을 구경하는 일도 많았고, 달랑 커피 두 잔 시키고선 네다섯 시간 동안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랬던 언니가 결혼 후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집 밖을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언니뿐만이 아니다. 결혼한 친구들은 자주 만나기도 어렵지만 대부분 약속 장소를 자기의 집으로 정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현상은 솜씨가 좋은 친구들을 수록 더한데, 스파게티 만드는 법이 생각보다 그리 까다롭지 않음을 알게 된 친구들은 만원이 넘는 스파게티를 식당에서 사 먹지 못하며, 별 것 아닌 김치찌개나 볶음밥 등을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사 먹는 경우에는 원가 생각에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단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커피숍에 갈 수가 있단 말인가. 사실 우리가 만나서 하는 일이 뻔하니, 친구 집에 앉아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과일을 먹으면 정말 편하게 맘껏 수다를 떨 수 있다. 조금만 수고하면 적은 돈으로 맛있는 것을 양껏 먹을 수 있고 공짜로 텔레비전도 볼 수 있으니 정말 경제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집안의 안주인이 되면서 알뜰살뜰 가계부를 작성하다보니 집 밖을 나가는 순간 모든 것이 돈으로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또한 스스로 장을 봐서 살림을 하고 밥상을 차리다 보니 원가가 뻔한데, 터무니 없는 값을 치르고 밥을 먹는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단다. 이런저런 까닭으로 자신을 스스로 집 안에 구속하게 되니, 전업 주부인 경우에는 장을 보거나 가끔씩 집 앞에 나가는 것 외에는 외출할 일이 너무 없다. 외출할 일이 없으니 새 옷을 장만할 필요도 없고 화장을 안 해도 상관이 없으며 부스스하고 추레한 몰골이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 러, 나, 나는 아줌마들이 가끔씩은 집 밖으로 나와서 '원가'걱정 말고 신나게 놀기를 바란다. 비록 집에서 만든 음식이 더 영양가 있고 더 맛있더라도 분위기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만든 음식을 편안하게 즐길 여유가 있길 바란다. 이따금 결혼 전과 동일한 진하기의 화장으로 자신을 꾸미고 세련된 옷차림으로, 음악과 조명이 좋은 커피숍에서 고상한 듯 웃으며 수다를 떨기를 바란다. 자신을 위한 돈도 쓸 줄 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려워진 나랏살림 탓에 더욱더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가족들에게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우리나라 아줌마들, 그녀들이 가끔 외출한다고 해도 우리는 아줌마들을 이해할 것이다. 진, 심, 으,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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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 지금은 그의 이름 앞에 자연스레 '파렴치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그에 관한 글에는 온갖 종류의 욕설들이 가득하게 돼 버렸지만 그도 한 때는 빛났던 순간이 분명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그는 단연 당대의 가장 유명한 스타였고 모든 방송은 당연하거니와 상점들과 거리에서도 그의 노래가 제일로 인기 있었다. 그 특유의 해맑은 미소는 수험생활에 찌든 나도 따라 웃게 만들어줬고 그와 함께 웃었던 사람은 분명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공공의 적인 유승준이 그 때는 참선이었고 그가 행하는 선한 일로 인해 우리나라 곳곳이 따뜻해졌음은 물론이다.

쾌활한 모습으로 노래하고 춤추길 좋아하던 청년이었던 그가 우리나라에서 가수로 재기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의 거주지인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간간히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직도 냉담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방송 활동을 하는 그를 보고 비웃음으로 일관하던 댓글은 내가 봐도 너무했다. 고3 시절 그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즐거워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나는 그의 진정한 팬은 아니었다. 유승준은 나에게 그냥 내가 여러 연예인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유승준의 군대 사건을 지켜보면서 그에게 많이 실망했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그를 원망했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다른 사건 사고를 저지른 연예인처럼 길면 3년 빠르면 2년 이내에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군대라는 특수한 사건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건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에 유승준의 영구 퇴출에 관한 100분 토론이 있었는데 만약 지금 다시 이 일로 토론을 진행한다고 해도 그 때와 같은 뜨거운 열기로 토론이 진행될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유승준 사건이 조금도 잊혀지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유승준이 조금도 용서받지 못한 이유에 관해 생각을 해 봤다. 우선 그가 저지른 잘못이 다른 것이 아닌 군대라는 특수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예인의 허물에 대해 크게 언급하지 않으시는 아버지께서도 유승준의 '유'만 나와도 얼굴을 찌푸리시며 한바탕 하시는 것을 보면 여자인 내가 생각하는 군대와 남자들이 생각하는 군대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왈가왈부 할 처지가 못 된다. 군대는 내가 이해하려고 해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유승준은 대중들이 그의 잘못을 잊을 겨를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연예인이 어떤 잘못을 저지른 다음에는 자숙하는 시간을 갖는데, 사람들은 모든 비난을 한꺼번에 다 쏟아낸 다음에는 그 연예인과 해당 사건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이면 해당 연예인이 왜 일정기간 방송을 하지 않았는지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 사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어진다. 방송에서 얼굴을 보지 않으면 저절로 잊혀지기에 좋든 싫든 용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유승준의 경우에는 군대 문제이기 때문에 남자 연예인들이 입대와 제대를 할 때마다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이번에 인터넷에서 김태우가 당당하게 제대를 했다는 소식을 봤는데, 그의 바람직한 군 생활과 멋졌던 제대 모습에도 어김없이 유승준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었다. 유승준과는 비교된다는 말이었다. 현역 입대를 앞두고 있는 연예인들의 기사 말미에도 누구누구는 이렇게 시원스럽게 가는 군대를 가지 않으려다 영원히 퇴출된 유승준의 이름이 불명예스럽게 씌여 있다. 기사에 없으면 댓글에는 백발백중이다. 그 뿐인가. 남자 연예인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공익 판정을 받을 때도 공익 근무요원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다가, 재입대한 싸이를 찍고 유승준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그리고 제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남자 연예인들이 입대와 제대를 할 때마다 기사와 댓글을 통해 유승준이 다시 언급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그의 일을 잊을 기회가 없고 그는 결국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최근에는 군복무가 남자 연예인에게 좋은 이미지를 쌓는 기회가 되는 것을 많이 봤다. 그래도 2년여 동안 공백기를 가져야 하고 낯선 곳에서 적응을 해야하니, 막상 군대에 가려면 걱정스러운 점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건강상의 뚜렷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현역으로 입대하는 것이 멀리 봐서 좋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쓴 까닭이기도 하다. 군대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쉽게 잊혀지지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건장해 보이던 남자 연예인이 무슨 이유에서건 공익으로 판정이 되면 그 꼬리표는 아마도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유승준이 결코 용서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버지와 남동생이 패밀리가 떴다를 볼 때마다 김종국이 왜 공익이냐며 짜증을 내는 것을 봐도 안다.


비록 몸은 힘들었겠지만 현역 제대라는 속시원한 끝을 본 멋있는 남자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은 제대와 동시에 대한민국의 당당한 아들로 칭송받고 입대 전보다 훨씬 더 호감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남들 다 가는 군대 다녀 온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남들이 다 가는 군대이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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