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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다. 텔레비전을 켜면 쉴 새 없이 나오는 '비비디 바비디 부' 때문에 자면서도 비비디, 장 보러 가서도 비비디, 글을 쓰다가도 비비디거리다가 겨우 그 늪에서 빠져 나온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뜻도 모르면서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를 정지훈의 음색과 호흡을 완벽하게 기억하면서 끊임없이 따라불렀었다. 그 노래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소녀시대다.

'지지지지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지지지지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때문에 아주 죽을 지경이다. 멜로디가 두어 마디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면 그 뒤에 형광색 바지를 입은 무리들이 개다리 춤을 추고 따라나오기를 온종일, 이러니 내가 지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원래 요즘 노래를 잘 모른다. 어린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을 선두로 한 가요계의 우상들을 보고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고 멀뚱멀뚱 눈만 껌뻑이시는 어른들을 보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는데 벌써 그 나잇대가 돼 버린 것이다. 유행가를 모르면 나이가 든 것이라는 내가 내린 정의 때문에 억지로 꾹 참고 가요 방송을 본 적도 있지만 감동은 커녕 정신없다고 느끼게 된 이후로는 체념하고 거의 보지 않았다. 당연히 아주 유명한 가수가 아니면 얼굴도, 이름도, 그들의 노래도 알 지 못한다.

소녀시대는 알았지만 그녀들의 노래는 몰랐던 내가 하루종일 지지지거리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는데, 이 모든 것은 주말 예능 방송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여섯 남자가 앙증맞은 분장을 하고 지지지거림과 동시에 멜로디가(어쩜 그렇게들 따라하기 쉽고 입에 착착 붙는지) 귀에 익었고 중간중간에 같이 나온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 덕에 어떤 풍의 노래인지도 알게 됐다. 뒤이어 1박 2일의 국악고 소녀들의 지지지와 패밀리가 떴다의 초대손님이었던 윤아의 지지지를 듣고 나니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나만 이런게 아닌 듯, 주말을 지내고 온 모든 사람들이 슬쩍 개다리 춤을 춰 보기도 하고 지지지를 휘파람으로 불기도 한다. 그 선율에 중독된 사람들은 가사를 모르고 음만 아는 부분에서는 무한도전의 그들이 그랬던 것 처럼 마음대로 가사를 붙여가며 마치 뮤지컬처럼 대화를 하기도 하고 말이 끝나면 합창으로 지지지지 베이비 베이비, 지지지지 베이비 베이비를 외쳤다. 무전기로 소통하다가 통신이 끝날 때 '오버'라고 하듯,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선율에 맞추어 마음대로 하다가 말이 끝남을 알릴 때 지지지거렸다. 한 두번은 재미있었지만 온종일 그 멜로디에 지배당하니 이제 정말 벗어나고 싶은데 맘처럼 쉽지가 않아서 큰일이다.

예능 방송을 보기 전에는 이 노래가 유명한 줄도 몰랐는데 모든 방송에서 끌어다 쓰고 싶어한 걸 보면 유행은 유행인가보다. 물론 각 방송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변용하긴 했지만 모든 예능에서 소녀시대를 차용하는 바람에 방송 내용이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비슷해지고, 지금 내가 지지지거리는 이유가 무한도전 때문인지, 1박 2일 때문인지, 패밀리가 떴다 때문인지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조차 알 수 없으니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아무튼 당분간은 이 멜로디를 나에게서 떼어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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