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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것도 텔레비전의 영향인 듯 싶다. 말하려니 좀 우습지만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을 때, 난 약간 사선으로 벌린다리를 꼿꼿이 펴고 허리를 숙인 후 스트레칭이라도 하듯 물건을 집는다. 그리고 나서는 앞쪽으로 흘러내린 긴 머리를 휙 넘기며 다시 일어난다. 내 스스로 이런 방법을 터득했을 리가 없으니 역시 텔레비전 영향이다.

생각해보니 아주 어렸을 때 본 어떤 드라마에서 미모의 여자 주인공이 사진을 찍으려고 자세를 낮출 때도, 신발끈을 묶을 때도, 바닥에 있는 소지품을 주울 때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요런 요상스러운 행동을 취했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주인공의 모습이 예뻐 보였나보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내가 본 그녀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었고 나는 그녀와는 다르지 않는가. 내 뒷태를 누가 본다고 운동화 끈을 묶을 때도 다리를 꼿꼿이 펴고 불편하게 그러느냐고 웃으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주 어렸을때부터 시작된 이런 행동이 이제는 버릇이 돼 버렸기 때문에 나에게는 자연스럽다. 그래서 오히려 무릎을 굽혀서 하는 모든 것들이 내게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혼자있는 욕실에서 세수를 할 때도 무릎을 쫙 혀고 허리만 굽혀서 씻는데 어떤 날은 다리 뒷쪽이 당기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스트레칭이 되는 것이라고 혼자서 흡족해하곤 했었는데 나의 이런 잘못된 생활 습관이 관절을 노화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릴 때는 허리의 힘만 쓰기 보다는 무릎을 굽혀 다리 힘도 같이 써야 좋단다. 나 처럼 다리는 쭉 펴고 허리와 팔의 힘만으로 물건을 들어올리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다. 퇴행성 관절염은 노인성 질환이지만 요즘에는 삼사십대에도 흔히 생길 수 있다고 하길래 덜컥 겁이 났다.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생활 습관으로 내 관절을 보호해야 되겠다는 사명감이 생긴 것이다.


특히 가사 일을 많이 하고 하이힐을 신는 우리 여성들에게는 무릎 관절 건강이 가장 나쁘다기에, 생활에서 조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봤다. 그랬더니 엉거주춤 생활 하는 것 이외에도 같은 자세로 오래 있지 않기, 쪼그려 앉지 말기, 맨바닥에 양반다리 하고 앉지 말기, 걸레질 할 때 대걸레 이용하기, 계단 내려올 때 천천히 조심하기, 되도록 의자, 침대 사용하기 등이 나왔다.

나에게는 엉거주춤도 힘들고 또한 양반다리 하지 않기도 너무 어려운 항목이다. 엉거주춤하기는 자꾸만 잊어버려서 아차 싶을 때가 많은데, 오늘도 세수를 하다가 갑자기 엉거주춤으로 바꾸려니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나는 의자 위에서도 양반다리를 해야만 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 자세를 애용하는데 강의 준비를 하거나 컴퓨터를 사용할 때 다리를 아래로 쭉 뻗고 바로 앉으려니 생각만으로도 불편하다. 사실은 내가 그동안 해 오던 자세들이 불편해야 맞는데 오히려 바른 자세를 불편하게 생각하다니 습관이 무섭긴 무섭다. 그래도 건강해진다는데 어쩌겠는가, 삼십년 묵은 습관도 떨쳐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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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다. 텔레비전을 켜면 쉴 새 없이 나오는 '비비디 바비디 부' 때문에 자면서도 비비디, 장 보러 가서도 비비디, 글을 쓰다가도 비비디거리다가 겨우 그 늪에서 빠져 나온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뜻도 모르면서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를 정지훈의 음색과 호흡을 완벽하게 기억하면서 끊임없이 따라불렀었다. 그 노래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소녀시대다.

'지지지지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지지지지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때문에 아주 죽을 지경이다. 멜로디가 두어 마디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면 그 뒤에 형광색 바지를 입은 무리들이 개다리 춤을 추고 따라나오기를 온종일, 이러니 내가 지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원래 요즘 노래를 잘 모른다. 어린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을 선두로 한 가요계의 우상들을 보고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고 멀뚱멀뚱 눈만 껌뻑이시는 어른들을 보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는데 벌써 그 나잇대가 돼 버린 것이다. 유행가를 모르면 나이가 든 것이라는 내가 내린 정의 때문에 억지로 꾹 참고 가요 방송을 본 적도 있지만 감동은 커녕 정신없다고 느끼게 된 이후로는 체념하고 거의 보지 않았다. 당연히 아주 유명한 가수가 아니면 얼굴도, 이름도, 그들의 노래도 알 지 못한다.

소녀시대는 알았지만 그녀들의 노래는 몰랐던 내가 하루종일 지지지거리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는데, 이 모든 것은 주말 예능 방송을 보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여섯 남자가 앙증맞은 분장을 하고 지지지거림과 동시에 멜로디가(어쩜 그렇게들 따라하기 쉽고 입에 착착 붙는지) 귀에 익었고 중간중간에 같이 나온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 덕에 어떤 풍의 노래인지도 알게 됐다. 뒤이어 1박 2일의 국악고 소녀들의 지지지와 패밀리가 떴다의 초대손님이었던 윤아의 지지지를 듣고 나니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나만 이런게 아닌 듯, 주말을 지내고 온 모든 사람들이 슬쩍 개다리 춤을 춰 보기도 하고 지지지를 휘파람으로 불기도 한다. 그 선율에 중독된 사람들은 가사를 모르고 음만 아는 부분에서는 무한도전의 그들이 그랬던 것 처럼 마음대로 가사를 붙여가며 마치 뮤지컬처럼 대화를 하기도 하고 말이 끝나면 합창으로 지지지지 베이비 베이비, 지지지지 베이비 베이비를 외쳤다. 무전기로 소통하다가 통신이 끝날 때 '오버'라고 하듯,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선율에 맞추어 마음대로 하다가 말이 끝남을 알릴 때 지지지거렸다. 한 두번은 재미있었지만 온종일 그 멜로디에 지배당하니 이제 정말 벗어나고 싶은데 맘처럼 쉽지가 않아서 큰일이다.

예능 방송을 보기 전에는 이 노래가 유명한 줄도 몰랐는데 모든 방송에서 끌어다 쓰고 싶어한 걸 보면 유행은 유행인가보다. 물론 각 방송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변용하긴 했지만 모든 예능에서 소녀시대를 차용하는 바람에 방송 내용이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비슷해지고, 지금 내가 지지지거리는 이유가 무한도전 때문인지, 1박 2일 때문인지, 패밀리가 떴다 때문인지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조차 알 수 없으니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아무튼 당분간은 이 멜로디를 나에게서 떼어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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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아직 치우지도 않은채 한쪽으로 슬쩍 밀어만 두고 볼록 나온 배를 기분좋게 쓰다듬다가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란다. 역시 나쁜 습관을 들이기란 이렇게도 쉬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당연하지만 나는 굳이 밥상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역시 바닥이 보인다. 어찌나 알뜰히 잘 먹었는지 휑한 느낌마저 주는 국그릇을 보고 잠시 심란한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은 국물을 먹어야 속이 든든하다더니 며칠째 살뜰이도 들이마신 국물 덕에 속은 물론이거니와 정신까지 든든해진 기분이다. 며칠 전 설마하다가 찬 바람에 뒷통수를 맞았을 때 꽁꽁 언 몸을 녹이려고 모처럼 뜨끈한 국을 끓였고 한참 만에 맛본 끝내주는 국물의 짜릿함에 어렵게 들인 좋은(?) 습관이 와르르 무너지고야 말았던 것이다.

내 글을 읽고서 어떤 분들은 국을 먹었으면 먹었지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1년 365일 다이어트를 계획(만) 하는 통통(?)녀이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영양소의 집합체이며 뱃살의 주범이라는 국물을 꽤 어렵사리 끊고 살아왔다. 그랬다가 갑자기 분 찬바람을 핑계삼아 며칠 째 국물을 들이키고 있으니 내 딴에는 정말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인 내가 다른 음식도 아닌 국물을 나쁜 음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에는 계기가 있다. 나와 키는 10센티미터 이상 차이가 나면서 몸무게는 똑같은(!) 친구 때문인데, 우리는 친하다보니 함께 밥 먹을 기회도 많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먹는 것 같은 친구가 늘 마른 체형을 유지하는 비법이 궁금했기에 그녀의 식사습관을 꾸준히 관찰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물론 다른 이유도 참 많지만 나는 국물을 대하는 태도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라면을 먹어도 늘 국물을 먼저 탐하는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태생적으로 국물을 멀리하는 까닭이었다. 라면을 한 냄비에 끓여서 작은 그릇에 덜어먹을 때 그 친구는 국물을 한 숟가락도 떠 먹지 않는다. 정말 그런가 싶어서 일부러 면과 국물을 함께 그릇에 떠서 주면 그 친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러면 맛이 없다고 질색을 한다. 면은 국물과 함께 촉촉하게 먹어야 맛있고 면을 먹는 중간중간 라면 국물을 후루룩 마셔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꼬들꼬들하게 말라가는 라면을 먹는 것이 훨씬 더 맛있다며 국물은 쳐다보지도 않는 그녀. 다른 국이나 찌개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부터 국물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식사를 끝낸 친구의 국 그릇에는 건더기만 건져먹고 남은 국물이 가득 남아있었다.


옳다구나! 그 이후로 나는 국물을 먹지 않았다. 보글보글 찌개를 끓였을 때도 건더기만 건져 먹을 뿐 국물은 먹지 않으려고 애썼고 라면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물을 후루룩 먹어야만 밥 먹은 것처럼 느껴지던 내 식습관을 고치자니 정말 힘들긴 했다. 특히나 날씨가 추울 땐, 각종 해물과 얼큰할 것이 틀림없는 짬뽕 국물, 뽀얀 색감으로 먹기만 하면 건강해질 것 같은 설렁탕, 신김치로 끓이면 더욱 맛있는 김치찌개, 고기 익는 냄새가 구수한 쇠고기무국 등 국물이 끝내주는 음식들만 생각나니 말이다.

그런데 국물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는 것은 사실이다. 국물이 살찌는 원인은 크게 소금과 기름 때문인데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각종 재료의 염분과 지방이 국물속에 녹아난다. 국물이 고소한 것은 육류에서 빠져나온 기름 때문이며 짭짤하고 감칠맛나는 국물맛은 소금이 좌우한다. 그래서 국물은 열량이 높으며 이것을 마시면 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비만 문제 뿐만 아니라 밥을 먹을 때 국물과 함께 먹으면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하니, 건강을 생각한다면 눈물겹지만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국물 음식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아예 끊을 수는 없으니 국물보다는 건더기 위주로 먹도록 습관을 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끝내주는 국물의 유혹을 이기기란 정말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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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물광 화장법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물광이라면, 구두를 닦을 때 번쩍번쩍 광을 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화장법에도 그런 것이 있다니 처음엔 다소 어색했다. 그러나 곧 잘 나가는 연예인들은 한결같이 얼굴결을 그대로 드러내어 원래부터 좋은 피부였던 것 처럼 번들거리는 얼굴을 하고 방송마다 등장했고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화장법이 되었다. 피부를 한껏 물을 머금은 듯 촉촉하게 표현하는 것이 물광 화장의 비법이었고, 정말로 물광 화장을 한 연예인들은 화장은 별로 하지 않은 것 처럼 보이면서도 더욱 어려보이고 건강해보이기까지 했다. 나 또한 따라해보고 싶었지만 방법을 잘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윤광 화장법이 대세란다. 모르는 사람들은 물광이나 윤광이나 그게 그거인 줄 알지만 이 두가지 화장술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물광법은 피부결을 정돈해주는 파우더를 전혀 쓰지 않는데 비해 윤광법은 파우더를 쓰기 때문이다. 대신 윤광은 파우더의 양을 최소화하여 반짝반짝 윤은 내지만 피부의 결점들은 조금 더 가려줄 수 있다. 쉽게 말해 물광은 번쩍, 윤광은 반짝, 물광은 완전히 적나라하게, 윤광은 조금은 가리는 화장술이라서 초보자라면 물광보다는 윤광이 따라하기 더 쉬울 것 같다. 한편 물광이나 윤광은 둘 다 피부결이 그대로 드러나 보일 정도의 자연스러움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파운데이션을 잘 선택해야 된다. 묽으면서도 적은 양으로 피부의 광택을 주면서 건강하면서도 예쁘게 표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반짝거리는 연예인들의 얼굴을 보면서 너무너무 따라해보고 싶어서 계속 망설이다가 나도 윤광화장품을 하나 장만했다. 그동안에는 얼굴을 만져보았을 때 뽀송뽀송하게 느껴질 때까지 파우더를 바르는 것이 내 화장법이었는데 반짝임을 주려면 파우더는 최소화해야했다. 자세한 방법은 이렇다. 우선 기초와 베이스 화장을 한 다음 아주 소량의 파운데이션을 붓으로 펴 발라 준다. 붓의 경계선이 사라지도록 손으로 두드려서 흡수를 시킨 다음 파우더도 붓으로 소량만을 얼굴을 쓸어주듯 바른다. 그 다음에는 이마, 콧등, 앞턱, 양볼에 반짝이 가루를 바르고, 양쪽 옆선에는 진한색으로 음영을 주어서 얼굴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색조화장은 자신이 하는 방식대로 조금 연하게만 하면 된다.

공들여 윤광 화장을 하고 거울을 보니, 내가 기대했던 송혜교의 얼굴과는 너무 다르다. 화장은 했으나 얼굴에 있던 수많은 잡티들이 그대로 다 보이고 번들거리는 얼굴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피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보기에도 영 아니었으나 약속시간이 다 되어 모임에 나갔더니 역시나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힘든 일이 있는지 피부가 많이 상해 보인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에는 바탕 화장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서 원래 피부가 좋은 것 처럼 꼼꼼하게 화장을 했었는데, 파운데이션도 최소화, 파우더도 최소화했으니 피부가 좋아보일 리 없었다.

스키니 바지가 하체가 길고 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기 위한 옷이었으면, 물광&윤광 화장법은 타고난 피부가 깨끗하고 건강한 사람이 자신의 투영한 피부를 자랑하기 위한 화장술이었던 것이다. 키가 작은 사람이 스키니에 운동화를 신으면 짤막한 다리가 더욱 강조가 되어 보기가 싫듯, 전지현이나 송혜교가 한 화장법이 예뻐 보인다고 잡티가 많은 내가 그것을 따라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깨달음을 얻고서 나는 이왕에 산 화장품이니 내 방식대로 변형해서 화장하기로 했다. 파운데이션을 양껏 발라서 잡티는 적당히 가리면서도 피부가 수분을 머금도록 했고 파우더는 내가 하던대로 뽀송뽀송 발라주었다. 대신 반짝이 가루를 적절하게 써 주어서 얼굴에 윤을 냈다. 변형 윤광인 셈이다. 뭐니뭐니 해도 화장의 목적은 예쁘게 보이는 것이니까 최신 화장술이 아무리 유행한다고 해도 그것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자신의 피부상태와 얼굴 생김에 따라서 최고의 화장법을 스스로 터득해야만 한다. 자기 얼굴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역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위해 최고의 코디네이터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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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교회의 조별 소모임에서 2009년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다. 돌아가면서 한 명씩 자신이 바라는 바를 말했는데 영 쑥스럽고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솔직하게 내 바람을 얘기했다. 작년 말 벼르고 벼르던 은희경의 소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그제서야 읽고서 너무나도 큰 설렘을 다시금 경험했기에, 나는 2009년부터는 더욱 많은 소설책을 읽으리라 결심했던 것이다. 콕 집어서 소설책이라고 말하는 나를 모두들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싫든 좋든 꼭 읽어야 하는 것이 시, 소설, 희곡, 수필 등의 문학이었다.(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나는 그 중에서 특히 현대소설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여류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 은희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데, 세상을 다소 냉소적으로 보는 듯한 그녀의 책을 읽으면 왠지 더 씩씩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았다. 나는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마다 은희경의 책을 읽고 또 읽었고 그러고나면 어쩐지 내가 처한 상황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좋아하는 작가들도 더 늘어났고 따뜻한 감성을 자극하는 소설도 읽기가 좋았다. 이를테면 정이현 작가의 달콤한 나의 도시 같은 소설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설책을 읽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경제 관련 책이나 자기계발류 같은 실용서들만 잔뜩 읽게 되었다. 소설의 ㅅ도 모르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2007년에 출판된 은희경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작년 말에야 읽고나서 다시 문학 소녀(?)로 돌아가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의아한 눈초리에 잠시 당황했지만 부연 설명이 필요한 것 같아서 이러한 상황을 짧게나마 얘기를 했다. 그런데 조원 중 한 명이 대뜸 하는 말이, 그 얘기를 처음에 들었을 때는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책 중에서 소설책을 읽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단다. 나는 아직도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실용서들은 그래도 조금씩 읽는 편인데 소설과 같은 문학책은 오랫동안 전혀 읽지 않아서 그런 나의 책읽기 습관에 대한 반성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처음부터 문학책이라고 했으면 이해하기 쉬웠을텐데 한다. 아, 사람들이 소설이라는 갈래에 갖는 인식이 이렇게도 낮구나 싶었다.

그도 그럴것이 요즘같은 세상에 태평(?)하게 소설책을 읽고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 시간에 10억 만들기 류의 경제서나 처세술에 관한 책을 한 줄 더 읽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과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고상한 사람과 소설을 좋아하는 시시껄렁한 사람이 사실은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더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전공자이기 때문에 다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배려하지 못한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 계획을 스스로 지키고자 당장 소설책을 사려고 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은 탓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문학상 수상집을 두어 권 사서 읽기로 했다. 드디어 설레는 맘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대상을 받았다는 그 훌륭한 소설이 너, 무, 나 재미가 없었다.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생각으로 그 글을 썼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사평을 읽어보면 한결같이 좋은 소설이라는데 내게는 지루하고 따분한 소설에 불과했다. 그러나 공신력 있는 문학상을 받은 글이니 소설 자체의 문제라는 생각보다는 내 문학적 감수성이 빈곤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제 겨우 첫번째 책을 읽었으니 다시 차곡차곡 소설을 읽어서 정신과 이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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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임용고사 공부를 하던 친구들이 한 데 모였다.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낸 사이라서 그런지 더욱 허물 없이 지내는 친구들인데, 오랫만에 '노량진' 학원가 풍경도 볼 겸 그곳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지긋지긋하던 수험 생활 기간동안 노량진을 벗어나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지 시험에만 합격하면 절대로 그곳에 발 조차 들여놓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맑은 날에도 학원가의 기상은 왠지 모르게 꾸물꾸물 우울하게 느껴졌는데 자그마치 3년의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함께 공부를 했지만 친구들의 직업은 각기 달랐다. 바늘 구멍을 통과하여 국공립교사가 된 실력 좋은 친구도 있지만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친구도 있다. 징그러운 임용 고사에 합격을 했든 하지 않았든 다시 찾은 노량진은 생각보다 산뜻했다. 우리는 모퉁이 돌면 와플가게, 50미터 지나면 햄버거가게, 그 옆에 오코노미야끼 포장마차 등 그 많은 길거리 음식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내며 기특하다는 듯 깔깔댔다. 까마득한 옛 일이라도 되는 것 처럼 말했지만 매일 반복되던 생활 동선이 또렷이 기억나는 것이 당연했다. 그곳을 떠난지 4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먹거리 이외의 것은 잘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만큼 수험 생활을 할 때 '먹는 것'에 민감하기도 했지만 공부를 제외하고는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별로 움직임이 없었어도 공부하는 동안엔 배가 참 자주도 고팠다. 처음 학원 생활을 할 때는 어묵꼬치 하나를 먹어도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갔지만 수험 생활에 지칠 무렵엔 대부분 혼자 끼니를 해결하게 된다. 그것이 당연한것 처럼 말이다.

나는 임용고사 공부를 할 때 혼자 밥 먹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그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혼자 먹는 밥은 늘 껄끄러웠다. 끼니를 해결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학원 식당가에는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일행이 아니어도 같은 상에서 밥을 먹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너도 혼자, 나도 혼자지만 그게 어찌나 어색한지 처음에는 고개도 들지 않고 서둘러 밥만 먹었었다. 그러다 요령이 생기고 나서는 텔레비전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밥 먹는 내내 재미있는 척 하며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보기도 하고, 절대 뒷장으로 넘어가지 않는 무가지 신문을 읽는 척 하기도 했다.

여기다. 학원 건물 바로 아래에 있는 식당. 내가 자주 갔던 곳. 친구들을 졸라서 허름하고 볼품없지만 내 한(?)이 서려있는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가로로 일정하게 써 있는 메뉴판도 변함이 없었고 각종 메뉴를 주방에 알리느라 목청이 쉴 틈 없는 식당 아줌마의 분주함도 한결같았다. 그리고 화장기 0%에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혼자 온 여자 수험생들의 쓸쓸함도 여전했다.우리는 방을 차지해 들어가 앉으면서 그 옛날 몇백원을 아끼느라 가장 싼 음식만 먹었던 처지와 2% 부족한 배를 달래기 위해 먹었던 각종 군것질거리들에 관해 다시 추억하기 시작해지만 아무도 혼자 먹는 쓸쓸함에 관해서는 입도 떼지 않았다. 다들 좁은 그 식당을 채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 먹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길거리 군것질 음식을 그리도 잘 기억하는 까닭은 결국 식당에서 혼자 먹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끼니를 군것질거리로 때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에게서 내 모습을 찾는데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읽을 거리를 가지고 있는 등 항상 무언가를 하며 밥을 먹는다. 결코 주위를 두리번 거리지 않으며 식사에만 열중하는 그들의 마음 속엔 얼른 허기를 채우고 그 식당을 나가기만을 바랐던 그 옛날 나의 우울한 심정이 가득한 것일까?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나에게 공감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분명히 혼자 먹는 방법을 터득해서 그것을 즐길 줄 아는 분들도 있으실 것이다. 혼자서 맛있게 밥 먹을 줄 아는 당신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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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잠은 안 자고 침을 꼴깍거리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 자그마치 24인분에 사은품까지 주는데 3만 8천 900원이란다. 이 정도 가격이면 거저 주는 거나 다름 없단다. 많이 매운 모양인지 모델들은 콧잔등에 땀을 송글송글 흘려가면서도 밥도 없이 매운 낙지볶음을 연신 먹어대고 있다. 딱히 살 것도 아니면서 왜 나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낙지볶음 홈쇼핑 방송을 보고 있는 것일까? 맛있다를 연발하는 그들을 보면서 침을 흘리고 있자니 왠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서 슬그머니 채널을 돌린다. 그러다 멈춘 곳에서는 좌우 같은 사람인게 분명하지만 확실한 화장술의 승리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여인이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구성을 챙겨주는데 겨우(?) 9만 9천원이란다.


오늘도 지름신은 내게 강림하신 것일까?

홈쇼핑이 맨 처음 선을 보였을 때 나는 정말로 사도 되는 것인지 의심부터 하고 봤다. 쇼호스트들의 말도 모두 감언이설로 들렸고 품질도 의심스러웠으며 시중보다 싸게 파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이름있는 회사의 물건을 하나 둘 사게 되면서 어느새 홈쇼핑을 즐기게 됐다. 홈쇼핑이 신뢰를 얻고 성장하게 되자 제품들도 훨씬 더 다양해졌고 무엇보다 방송이 재미있어졌다. 늘씬늘씬한 모델들이 선 보이는 옷들은 하나같이 예뻐보였고 음식 광고를 할 때는 꼬르륵 소리가 절로 날 만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정말 돈이 되기는 되는 모양인지 얼마전부터 연예인들도 자기 이름을 건 제품들을 홈쇼핑을 통해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특히나 속옷, 옷, 화장품 등은 그야말로 대박난 제품들도 많다. 내 옷장이며 화장대에 홈쇼핑 물건들이 가득하니 나도 그들의 성공에 일조를 한 셈이다. 홈쇼핑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 상품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꼭 사야만 하는 것처럼 들린다.


마침 기초 화장품 세트가 떨어졌다는 좋은 핑계로 홈쇼핑에서 사은품까지 두둑하게 챙겨주는 화장품을 사고 난 이후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기초 화장품 방송을 또 보게 되니 정말 중증인게 틀림없다. 지름신이 너무도 자주 강림하는 것 같아서 애써 채널을 돌려보지만 어느새 또 파마한 것 보다 더 예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준다는 세팅기를 넋놓고 보고 있다.

홈쇼핑을 연출하는 사람들은 천재적이라서 화면 아래에 시계를 만들어 두어 나를 긴장시키더니 이제는 째깍째각 소리까지 더 해서 나를 더욱 가슴 졸이게 만든다. 종료 10분 전, 다시는 없을 좋은 기회라는데, 이번 방송이 끝나면 다시는 이런 구성은 없다는데, 살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방송을 보고 있노라니 애간장이 다 녹을지경이다. 아예 방송을 보지 않는 것이 낫지 한번 수렁(?)에 빠지고 나면 그 제품이 나에게 필요한 이유를 기필코 만들어내기 때문에 지름신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지름신과 사이좋게 지내다가 너덜너덜해진 내 통장 잔고를 보며 훌쩍여봤자 이미 늦었다. 결국 나는 리모컨에서 홈쇼핑 채널을 모두 지우는 것으로 지름신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이미 모든 홈쇼핑 방송의 채널을 다 외우고 있기에 그 전쟁에서 내가 이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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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주에 6일동안 발리의 리조트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이 가장 행복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장장 보름동안이나 나는 여행 계획을 짜면서 즐거워했다. 발리에 관한 블로그 글이나 여행 후기 등을 샅샅이 읽는 것을 시작으로 서점에서 발리의 역사까지 공부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리조트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그 안에서 보낼 계획이었지만 마치 자유 배낭 여행을 하는 심정으로 책을 봤다. 그러나 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준비를 한 것은 다름 아닌 옷이었다. 여행지에서의 입을거리는 무언가 특별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옷을 사는 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발리는 더운 휴양지이니 만큼 나 같은 볼품없는 몸매를 가진 사람에게도 노출이 허용된 곳이다. 그래서 다소 과감한 옷들을 새로이 마련했는데, 화려하고 세련되면서도 값이 싸야만 했다. 나는 거의 매일 인터넷 쇼핑몰을 쥐잡듯이 뒤져서 90% 세일된 가격으로 맘에 드는 옷을 여러 벌 살 수 있었다. 싼 값으로 예쁜 옷을 장만하니 더없이 기분이 좋아져서 발리에서 연예인마냥 생활하고 올 수 있겠다는 허황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동양적인 매력은 가득하면서도 현지인들보다 뽀얀 피부를 가졌기에 한국 여성들은 발리에서 인기가 좋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까닭에서였다.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었고 싱가폴을 경유해서 발리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오전에 출발했으나 저녁 무렵에야 리조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발리에서의 첫날은 피로때문에 제대로 내 아름다움(?)을 발산하지 못했지만 둘째날 아침부터는 달랐다. 나는 가져간 온 중 가장 화려하고도 아슬아슬 한 것을 꺼내 입고 화장도 멋드러지게 했다. 당연히 리조트에 있는 외국인들의 관심은 나에게로 모아졌고 나는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것이 하루로 끝나버릴 줄은 미쳐 몰랐지만 말이다. 리조트 직원에게서 그 날 저녁 한국인 단체 관광객 (120명이 그것도 여성들로만 구성된)이 온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했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뒤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들렸다. 리조트에서 좀처럼 듣지 못했던 하이힐 소리, 나는 그녀들이 몰려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그녀들도 가장 예쁜 옷으로 가장 돋보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내 맞은 편에서 식사를 하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고 나도 뒤를 돌아 그녀들을 확인했다. 역시! 내 예감은 적중했다. 나는 그곳이 미인대회 장인 줄 알았다. 모두들 어쩜 그렇게 예쁜지 각종 동양인들이 섞여 있어도 한국인은 금방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모 화장품 회사에서 온 단체 손님들은 연령대는 다양했으나 모두 자신들의 직업에 맞게 연예인 뺨치는 화장술을 자랑했다. 나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저녁, 내가 간 리조트에는 매일 밤 쇼와 즐길거리가 마련돼 있고 매일 드레스코드를 정한다. 그 날은 검정색이 드레스코드였는데 낮시간에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다가 저녁시간 이후에 쇼를 보러 한 곳에 모이면서 제2막이 펼쳐진다. 그래서 낮에는 드문드문 보이던 검정색 옷이 저녁 식사 시간에 절정에 치달았다. 무심코 식당에 들어가던 나는 깜짝 놀랐다. 무슨 시상식을 보는 듯 했기 때문이다. 한국 여인들은 저마다 어디서 그런 옷을 구해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하나같이 화려하면서도 빛이 났다. 다들 저녁 쇼 시간을 위해 다시 화장을 한 모양인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당연히 다른 나라 여성들은 기가 죽은 듯했다. 그들이 입은 검은색 옷과 한국인들이 입은 검은색 옷은 전혀 다른 종류였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스타일, 홀터넥 스타일, 가슴을 깊이 판 스타일 등 디자인도 다양했고 쉬폰, 실크, 등 소재도 천차만별이었다. 세상에 있는 예쁜 검정색 옷은 여기 다 모아놓은 듯 했다. 내가 봐도 그렇게 예쁜데 다른 나라 사람들 눈에는 오죽할까. 나는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저녁 쇼 시간에서도 그랬지만 쇼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주도 아래 모임이 진행되었다. 세계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돋보이는 아름다움으로 세계를 기죽인 한국 여인들이 나는 참 자랑스러웠다. 거기 모인 각국의 사람들에게 최고 미녀는 단연 한국 여성이라는 인상을 주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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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왔다는 남자들은 종종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 우리 여자들이 생각할 땐 분명히 웃어야할 시점에서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의기소침 해졌을까봐 어깨를 두드려 주려고 하는 찰라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달라도 너무 다르고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남자들의 내면세계에 관해 나 역시 특별한 훈수를 둘 재주는 없다. 그러나 여태껏 살아오면서 터득한 남자들의 뻔한 거짓말 몇 가지를 살짝 알려드릴까 한다. 모르면 연애를 할 경우 여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들이니 잘 읽고 공감해 주시길 바란다.

1. 남자들은 통통한 여자를 좋아한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텔레비전을 보다가 남자들의 영 부실한 시신경(?)에 대해 알게 됐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나라 남자들은 68% 정도가 마른 여자보다는 통통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대답을 했단다. 이게 웬일? 사실 우리나라 여성들 중에 뚱뚱한 사람은 별로 없다. 통통하거나 약간 마른 상태가 대부분인데 아주 마른 체형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들 힘든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얘기를 들으시는 분들은 만세를 부르며 구석으로 밀어두었던 과자 봉지를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그 손을 거두시길 바란다. 앞서 말씀드렸듯 남자들의 어리숙(?)한 눈이 '통통'의 정도를 영 잘못잡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통통해서 좋아한다고 얘기했던 여자 연예인을 예로 들어 보겠으니 놀라지 마시길 바란다. 여자들이 가장 담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대표 섹시퀸 이효리, 남자들은 그녀가 통통하다고 말한다. 대체 어딜 보고? 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오르실 텐데 상체와 하체가 고르게 발달했기 때문이란다. 다음으로 때로는 청순하게 가끔은 털털하게 우리를 사로잡는 송혜교가 남자들이 생각하는 통통녀란다. 송혜교의 사진을 볼 때마다 조금씩 더 말라있는 그녀를 보고 나는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최근의 화제작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털털한 매력을 한 껏 보여줬을 때에도 그녀는 충분히 말라보였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송혜교의 통통한 볼살이 그녀가 통통하게 보이는 까닭이란다. 그리고 통통녀를 떠올리는 남자들의 뇌 속에 한결같이 떠오르는 사람은 이름하여 김혜수! 정녕?


남자들은 입으로는 통통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통통한 볼살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리는 쭉 곧게 뻗었고 가슴과 엉덩이가 매력적인 여성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여성들이 생각하는 통통한 뱃살과 오동통한 팔다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란 말이다.

2. 남자들은 화장안 한 여자를 좋아한다.
잡지에서 남자들에게 이상형을 물은 설문을 볼 때면 늘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 상위권에 속해있다. 화장을 너무 짙게 한 여자들은 나이도 들어보일 뿐더러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생기기 때문에 스킨로션만 바른 청초한 얼굴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덧붙임까지 있다. 과연 정말 그럴까? 남자들이 생각없이 내뱉은 이 말만 믿고 데이트 때 스킨 로션만 바르고 나가는 무모함을 보이지 않으시길 바란다. 남자들이 말하는 맨얼굴이랑 여자들이 생각하는 맨얼굴 역시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혹시 마스카라에 아이라이너까지 그리고 색조 화장만 안 한 날, 다음 남자친구에게 맨얼굴이라고 속여본 적 있는가. 소위 말하는 선수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절반정도는 정말 속는다. 화장을 아주 좋아하는 나는 한 때 완벽한 화장이었지만 조금 연하게 하고 나서 입술은 챕스틱을 바르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나와 같이 일을 하던 남자 동료가 진한 화장에 대해 난색을 표시하면서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아이라인을 짙게 그리는 여자라고 말했다. 자기 앞에 아이라인을 굵게 그린 나를 두고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하기에 정말 모르나 싶어서 나도 아이라인 그렸는데 했더니, 당황하면서 자기는 정말 몰랐다고 허둥댔다.


남자들은 늘 이런식이다. 립스틱만 바르지 않으면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면서 화장이 짙은 여자들은 싫다고 말하는 것이다. 남자들이 말하는 화장안 한 여자란 파운데이션으로 피부의 잡티는 적절히 가리고 아이섀도와 립스틱을 은은하게 발른 여자를 말한다.

3. 남자들은 내숭없는 여자를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남자들이 생각없이 하는 말 중에 자기를 만날 때는 내숭은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이 있다. 편한 차림과 평소 행동으로 털털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더 예뻐보인다면서 내숭떠는 여자는 질색인 것 처럼 표현한다. 그러나 이 말 또한 곧이곧대로 믿었다간 큰 코 다친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는 적당히 콧소리도 내 주고 무거운 것은 눈칫껏 피하는 요령을 익혀야 이득이다. 집에서 그러는 것 처럼 비빔밥을 아구아구 먹거나 기어가는 벌레를 손바닥으로 탁탁 내리치는 것은 삼가란 말이다. 물론 편하게 지내는 것처럼 좋은 것도 없지만 연애할 때는 적당한 긴장감은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것 또한 연애의 재미이지 않은가.

내숭떠는 여자는 그토록 싫다고 하면서 애교있는 여자에겐 꼼짝못하는 것이 남자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애교는 내숭 중에서도 일등 내숭인 것 같은데 남자들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애교와 내숭을 구별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좋아하는 이성을 만날 때면 일부러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정량의 내숭은 우러나오는 법이다. 남동생을 대할 때와 남자친구를 대할 때 확연히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시길 바란다. 내숭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그러니 남자들이 내숭을 싫어한다고 말했다고 해서 일부러 털털한척 하지말자. 그러다가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상한 핑계로 이별을 통보받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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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묻지 말라더니 몇몇 연예인들의 과거 사진들을 보고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의학의 기술이 많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어쩌면 그렇게까지 환골탈퇴를 할 수 있는지 슬그머니 심술이나기도 했다. 어쩐지 그들이 여신 대접을 받는 것은 모두 성형 수술 덕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잘못 나온 과거 사진 몇 장을 가지고 그들이 예전에는 별볼일 없었다고 폄하하지 못하는 것은, 솔직히 지금의 미남 미녀 연예인들은 수술 전부터 이미 될성부른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형 수술의 도움으로 덕을 본 것은 맞지만 본바탕부터가 뛰어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말 그런가? 하는 의심이 자꾸 생긴다.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 중에도 개성있는 무리들이 늘어나고 자신을 잘 가꾸어서 연예인 보다 더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이들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 성형수술도 서슴지 않으며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성형 카페나 동호회(?)까지 만들어서 자신들의 수술 전후를 낱낱히 공개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종류의 사이트를 통해서 본바탕이 어떠했든 의술의 힘을 빌리면 예뻐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뿐인가. 케이블에는 자신들의 절절한 사연만 올리면 공짜로 성형 수술을 해 주는 방송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일상생활조차 힘들어하던 출연자가 단숨에(내가 보기엔) 미남 미녀로 변신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역시 본바탕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성형 수술에 관심이 많아서 성형 카페나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방송을 참 많이도 봐 왔다. 그런 나를 보시던 아버지께서는 나의 낮은 코가 당신때문이라며 코성형을 권유하셨다. 모 여자 연예인의 이름을 거론하시며 코를 세우니까 얼굴이 한결 갸름해보인다시면서 코가 높아지면 당신 딸도 훨씬 더 세련되고 예뻐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정말 21세기 형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그런대도 나는 성형수술이 너무 망설여진다.

쌍꺼플 수술은 너무나 보편화되어서 이제는 성형 수술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도 한 때는 성형 수술을 통해 시원한 눈매를 갖고 싶었다. 내 눈은 쌍꺼플이 속으로 들어가 있어서 아래로 뜰 경우에만 보이고 정면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예인이든 아니든 수술을 한 사람들 모두에게서 볼 수 있는 상처때문에 수술을 하지 않기로 했다.


눈이 커 보이게 하려고 눈 앞머리와 끝을 찢는 수술을 하는데 그게 여간해서는 잘 아물지 않는지, 드라마에서 얼굴을 크게 잡을 때면 그 상처가 너무나 잘 보여서 민망하다. 눈을 감을 때도 영락없이 보이는 칼자국. 소심한 나는 모든이에게 '나 수술했어요'라고 알리고 싶지 않다. 김연아, 소희, 비, 이준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쌍꺼플 없이 날렵한 눈매때문이다. 쌍꺼플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코 수술도 같은 이유이다. 예뻐지는데 공짜는 없는 법이어서 코를 절개 하고 보형물을 넣는 아픔을 참아내야 한다. 그런데 잘라냈던 코 아랫부분의 상처도 여간해서는 감출 수가 없다. 인위적으로 잘라냈으니 본래의 자리로 자연스럽게 아물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코 성형이 의심되면 코 아랫부위를 자세히 보게 되는데 칼자국이 선명하고 인중과의 이음새가 어색하면 영락없다. 또한 보형물때문에 피부가 얇아지기 때문에 쉽게 빨개지고 코 부분이 너무 약해지는 것도 문제이다. 역시 나는 겁쟁이라서 그런 단점들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 대신 코가 낮지만 정말 예뻐보이는 사람을 찾아냈다. 바로 최은경 아나운서이다. 낮은 코 덕에 더 어리고 귀여워보인다.


나는 오늘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연예인들의 성형 여부를 가려내기를 즐긴다. 내가 성형 수술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나처럼 성형에 관심이 많아서 콕콕 짚어내는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무심코 스쳐 지나갈 때 내 뒷통수에 대고 '코 세웠군'이라고 할까봐 두려운 까닭이다.

서양사람들은 홑겹 눈과 낮은 코, 둥글 넙쩍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인형처럼 예뻐한단다. 그들이 가지지 못한 거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적인 미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성형 수술은 꿈도 꾸지 말고 자신이 타고난 미를 소중히 여기고 자랑스러이 생각하길 바란다. 외국인과 만나는 순간 여신대접을 받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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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쉽게도, (2)드디어, (3)어쩌다보니, (4)그러고보니, 설 연휴가 끝났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내가 던진 문장의 답이 다를 것이다. 나는 방학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어서 방학 중에 낀 휴일이라고 해서 더 반가울 것도 없으며,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해야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맛있는 것 먹고 텔레비전 특집 방송을 보며 뒹굴거리다 문득 달력을 보니 설 연휴가 끝나 있었다. (4)번의 경우인 것이다.

그러나 가족애가 진한 사람들은 오랫만에 고향을 방문해서 가족 친지들을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아쉽게도 설 연휴가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많아서 한숨짓던 며느리와 안주인들은 상 차리고 설거지하기를 무한 반복한 끝에 드디어 지긋지긋한 설 연휴를 마무리 했을 것이다. 한편 백수이거나 무심하거나 아니면 쉬지를 못했거나 해서 연휴라고 해도 별다른 감흥없이 일상생활과 같이 지낸 사람들은 어쩌다보니 설 연휴를 그냥 보내 버렸을 것이다.

비록 나는 (4)번의 경우로 명절을 보냈지만 가족 친지들이 다 모이니 그 속에는 (1)~(4)의 경우가 모두 있었는데, 즐겨야 할 명절을 그야말로 '견디는'듯 보였던 며느리들을 보니 마음이 참 짠했다. 오늘은 바로 (2)번군에 관한 짧은 생각을 써 볼까 한다.


우리 큰집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어서 미리 출발하지 않고 설날 아침에 큰아버지 댁으로 세배를 드리러 갔다. 그 댁에는 우리 가족말고도 결혼한 사촌 오빠 내외와 조카들, 역시 결혼한 사촌 언니 내외와 조카들, 그리고 작은아버지의 가족들, 고모네 등이 와 있어서 명절답게 북적댔다. 아이들은 신이나서 저희들끼리 술래잡기를 하는지 히히덕 거리며 쉴새없이 뛰어다니고 정신 없는 와 중에도 어른들은 옛 이야기를 나누시느라 바쁘셨다. 명절에는 왜 그리도 자주 입이 심심해지는지 밥 먹고 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떡이며 과일 상을 또 기다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세대별로 나뉘어서 조금 놀다보면 어느새 또 식사시간이라서 여자들은 별로 쉬지도 못하고 또 부엌으로 직행한다. 그런데 역시나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시집 온 사촌 오빠의 아내인 새언니다. 조카를 둘이나 낳고 길렀으니 시집 온 지 꽤 됐지만 그래도 시댁은 어려운 법. 게다가 친척들까지 잔뜩 와 있으니 어디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있었을까? 쉬면서 우리와 조금 놀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편하게 느껴질 리 만무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슬쩍 친정에는 언제 가느냐고 물어봤는데, 그만 큰어머니께서 듣고야 말았다.


가뜩이나 짧은 연휴인데 새언니의 친정은 경기도이고 큰어머니댁인 시댁은 경상북도이다. 내 생각으로는 아무리 늦어도 설날 점심 먹고 나서는 슬슬 올라갔어야 친정에서도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저녁 먹을 때가 돼 버렸다. 그런데도 큰어머니는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느냐고 그 말을 한 나를 나무라셨다. 물론 새언니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사촌 오빠를 힐끔 쳐다보니 이쪽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텔레비전에 폭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이럴 때 남편이 짜잔하고 나타나서 한마디 해 주면 딱 좋으련만 어찌나 무신경한 지 모르겠다.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새언니를 보니 내가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에는 새언니도 있었지만 시집간 사촌 언니도 분명히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어머니는 당신 딸은 어느새 친정에 와서 편안한 명절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시는 것일까? 자기의 딸은 일찍 친정에 오는 것이 당연하고 며느리는 조금이라도 늦게 보내고 싶어하는 것이 시어머니의 심보란 말인가. 한 번 눈에 띄니 내가 그 쪽으로 치우치게 돼 버려서인지는 몰라도, 계속 큰어머니의 이중적인 생각들이 내 신경망에 걸려들었다. 누워서 침뱉기를 하기 싫어서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지는 않겠으나 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차이는 어머어마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영어로 시어머니는 mother-in-law인데, 이것을 monster(괴물)-in-law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니, 이런 일이 비단 우리나라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날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바삐 움직였던 새언니의 뒷모습이 남일 같지가 않아서 정말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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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선수촌이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한 번 물꼬를 트고 나니 여기저기에서 반가운 아저씨들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최양락, 이봉원, 김정렬, 황기순, 양원경 등 어린 시절 나를 웃게 만들어 주었던 그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일주일 내내 그들이 나온 프로그램을 보며 데굴데굴 굴렀다. 한번에 너무 많은 방송에 나오다보니 겹치는 이야기도 있긴 했지만 어찌나 소재가 다양했던지 들어도 들어도 새로웠다.

특히나 최양락과 이봉원은 지금의 유재석과 강호동 만큼의 인기를 누리던 콤비였으므로 사람들이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가장 큰 것 같다. 최양락은 이미 한 번의 출연으로 예능선수촌의 사회자로 고정 출연을 확정한 상태이다. 그리고 이봉원은 박미선의 개그 소재로 많이 활용된 까닭에 얼굴 없는(?) 개그맨으로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었으니 이제는 자신이 직접 나설 차례이다.
어른들에게는 식상할 지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돌아온 아저씨들이 참 신선하고 재미있다. 최양락이 말한 것 처럼 할아버지와 손주가 같이 앉아서 웃을 수 있는 개그. 아무도 상처받지 않지만 좌중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이 있는 웃음. 즉 착한 우스갯 소리를 하는 것이 자신들이 하는 참 개그란다. 지금의 예능계는 독해질 대로 독해져서 서로 물고 뜯지 않으면 웃길 수 없는 줄 아는데, 이제는 착한 개그가 다시 돌아올 때가 된 것 같다.


현재의 버라이어티에 적응이 된 아이들에겐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낯선 곳에 가서 어떤 체험을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저 자신들의 지나간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인 아저씨들의 개그를 청소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세월은 흘렀어도 사그라들지 않은 입담은 내가 느끼기엔 최고였다. 옷 입는 방식도 옛날로 돌아가고, 입맛도 어릴 적 시골에서 먹던 맛을 그리워하는 복고 열풍이 개그라고 해서 적용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다시 예전처럼 개그를 짜고 연습해서 상황이 주는 웃음, 기발한 대사가 주는 웃음을 새로이 즐겨보고 싶다. 진실이니 대본이니 실랑이 하며 속고 속이는 것 보다 준비된 개그를 열린 마음으로 마음껏 받아들이고 싶다는 말이다. 이봉원은 2008년이 아줌마들의 해 였다면 2009년은 아저씨들의 해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큰 맘 먹고 돌아온 아저씨들이니 만큼 그동안 표출하지 못해서 억눌려 있던 개그 본능을 마음껏 보여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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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이 친구를 데리고 나의 자취방에 놀러왔을 때의 이야기이다.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집안 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게에 가서 과일이며 과자며 반찬 거리들을 잔뜩 사서 돌아왔다. 그리고 혼자서는 잘 해 먹지 않던 갖가지 밑반찬과 음식들을 가득 만들어 두었다. 마치 평소에도 이렇게 살아왔던 것 처럼 말이다. 동생 혼자만 왔어도 그랬을 판에 친구까지 온다니 타지에서도 어엿한 모습으로 잘(?) 살고 있는 이상적인 누나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동생과 친구가 도착했고 그들이 집에 있는 동안, 크림스파게티에서부터 갈비찜까지 없는 실력을 발휘해가며 각종 음식들을 만들어주며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능력있는 누나의 모습을 연출(?)했다. 나는 동생들이 늦게 들어와서 내가 미리 밥을 먹고 난 다음에 따로 밥상을 차려줄 때도 그들의 주위를 떠나지 않고 이것 저것 물으면서 자상한 누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러다 문득 자기 가까이에 있는 반찬만 먹는 동생의 친구를 봤다. 아뿔싸.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친한 척 했던 이런 내 행동이 동생의 친구에게는 얼마나 불편하게 느껴졌을까.


얼른 그들에게서 벗어나 방으로 들어오니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였던 것 같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시면서 동생과 나를 외갓집에 맡겨두셨는데, 나는 다른 집에서 생활했던 3박 4일이 엄청나게 길고 힘들게 느껴졌었다. 부모님이 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어린 동생과 괜한 설움을 이기지 못해 밤에는 몰래 울기도 했었다. 외갓댁 어른들이 잘 대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신세를 지고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었다.

한창 많이 클 때라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식사시간이었다. 그 때 뒤늦은 사춘기를 앓았었는지 어쨌는지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외갓집 식구들인데 왜 그런 압박을 받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불편함 때문에 내 주위에 놓여진 반찬만 먹긴 했지만 분명히 집에서와 같은 양의 밥을 먹었고 반찬도 많았는데도 스스로 눈칫밥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먹고 돌아서면 허기가 졌다. 속으로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먹고 싶은 음식의 목록을 생각해 놓을 정도였다. 한 날은 동생이랑 몰래 근처 가게에 가서 숨겨놓았던 비상금으로 과자를 사 먹었는데, 어찌나 달고 맛있었는지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썼던 것 같다.

옛 기억을 떠올리니 동생의 친구에게 무척 미안해졌다. 내 진심과는 다르게 그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서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동생의 친구도 우리 집에 있는 내내 왠지 모를 배고픔과 허전함 때문에 힘들었을까? 그나마 그들은 종일 집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아니니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왜 눈칫밥은 같은 양을 먹어도 허기가 지는 것일까. 분명히 배는 부른데 먹어도 먹어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눈칫밥의 특징인 것 같다. 어쩌면 눈치 없고 낯두꺼운 사람이 세상 살기는 편하겠다는 눈칫밥 보다 더 영양가 없는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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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트 안이나 거리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저렴한 화장품 가게들을 참 좋아한다. 나는 외출 전에 완벽한(?) 화장을 끝낸 후에는 수정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화장품을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입술이 너무 밋밋해지거나 건조해서 얼굴이 당길 때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서 촉촉하게 립글로스를 바르거나 얼굴에 스프레이형 화장수를 칙칙 뿌리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쓰던 화장품이라도 화장솜이나 면봉으로 입구를 깨끗하게 닦아낸 후에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특별히 거리낄 건 없다.

이번에는 설날 맞이 아이섀도우를 사러 미샤에 들렀는데 저렴한 가격에 발림성 좋은 제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마음에 드는 것이 꽤 있어서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도 함께 사서 계산대에 서니 이색적인 행사 중이었다. 네모난 종이 상자의 위가 뚫어져 있길래, 처음에는 모금함인 줄 알았는데 만원이상 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 상자라고 했다. 상자 안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휘휘 저어 한 주먹 꺼내면 딸려나온 모든 견본을 주는 것이었다. 이럴 땐 손이 작은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시리 떨려서 심호흡을 하고 상자 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견본들을 가득 집어서 꺼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구멍이 작아서 손이 잘 빠지지 않는다. 역시 만만하지 않은 미샤. 몇 개를 떨어뜨리고 나서야 겨우 손이 빠졌는데, 그래도 마음에 드는 수확량이었다. 클렌징 젤, 클렌징 폼(각각 20ml짜리 튜브형), 스킨로션 작은 것 4개, 에센스2개.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흐뭇해 하면서 집으로 오는데, 이번 행사가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모두 기분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샤측에서도 어차피 고객들에게 사은품은 줘야 되는 것인데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준다는 설명이 얼마나 솔깃한가 말이다. 고객들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재량껏 가져올 수 있으니 왠지모를 뿌듯함이 들기 때문에 만족스럽지만, 사실은 입구가 작아서 생각대로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득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이 떠올랐다. 아기 원숭이가 사탕 단지 속에서 손을 꺼내지 못해서 울고 있을 때, 엄마 원숭이가 말한다. '얘야, 손에 쥔 사탕을 조금만 놓아보렴'. 울음을 그친 원숭이가 자기가 움켜 쥔 사탕의 절반을 떨어뜨리자 거짓말 처럼 손이 쑥 빠졌다는 이야기 말이다. 공짜로 얻는 사은품이야 많으면 많을 수록 좋겠지만 그것을 더 가져가겠다고 낑낑대던 내 모습이 아기 원숭이와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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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잡지를 읽다 보면 너무 많은 성형외과 광고에 놀라게 된다. 나도 모르게 찬찬히 하나씩 읽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형을 하고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지는데, 요즘에는 얼굴은 기본(?)이라서 그런지 몸 성형쪽으로 유행이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내가 읽었던 주부 대상 잡지는 두꺼운 두께에 비례하여 광고도 참 많았는데 특히나 가슴 확대 성형에 관한 것이 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이제는 크기보다 클리비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던 한 성형 외과의 광고에서는 (그런 영어 단어를 알 턱이 없는 나는 나중에야 그 말이 가슴골을 뜻한다는 거을 알게 됐다.) 감마기호와 비슷한   모양을 예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특히 강조했다.

나는 가슴이 드러나는 옷은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나 입는 것인 줄 알았었는데, 의외로 일반인 여성들도 가슴골을 훤히 드러내는 옷을 즐겨입는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같은 겨울에도 텔레비전만 틀면 가요 프로그램과 쇼오락 프로그램 등에서 가슴골 정도(?)야 쉽게 볼 수 있으니,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이라면 가슴선을 깊게 파는게 특이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연예인들의 가슴은 다들 어찌 그리 풍만하고 예쁜 것일까? 수술해서 그렇지, 라는 대답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거울을 보고 이리저리 시도(??)해 보니(-.-;;), 퍼진 감마 모양으로 예쁘게 가슴골을 드러내는 비법은 가슴을 모으는 방법에 있었다. 모으기 기술에 따라 B컵도 D컵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가슴의 옆선을 모아주는 것이 중요한데, 브래지어는 쉘브라가 좋겠고 둥글게 캡이 들아간 것이 가슴을 봉긋하게 모아줘서 풍만하게 보이게 할 수 있다. 가슴의 3/4만 감싸주는 것이 더 예뻐보이도록 도와줄 것 같다. 그러면 가슴이 작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 이제 남자들에게는 절대로 말하면 안 될 비밀 얘기를 좀 해 볼까한다.

1. 살색 테이프 붙이기.
B컵이라면 상체를 앞으로 숙여서 갈비뼈를 중심으로 살을 가슴쪽으로 쓸어모아준다. 좀 우습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등살과 겨드랑이 살을 가슴쪽으로 마구마구 쓸어보자. 분명히 가슴의 크기가 더 커졌을 것이다. 살을 충분히 모아줬으면 한쪽 손으로 모아 쥔 상태에서 '살색 테이프'를 밑가슴 1/3 지점에 가로로 붙인다. 양쪽 가슴을 테이프로 붙이는 것이다.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으면서 가슴을 훨씬 더 풍만하게 만들 수 있다. A컵이라면 가슴 옆과 밑에 솜을 두툼하게 댄 다음 같은 방법으로 테이프를 붙이면 한결 더 봉긋한 가슴을 만들 수 있다.

2. 가슴선에 음영 넣기.
헐리우드의 한 여배우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슴골을 손가락으로 그어주는 습관으로 예쁜 모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매번할 자신이 없으면 그 부분에 화장을 해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약간의 펄감이 있는 베이지색 섀도우를 화장용 붓에 충분히 뭍힌 다음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감마 모양으로 쓸어주면 가슴에 음영을 만들 수 있다. 은은하게 반짝이면서 매력적인 가슴선이 생길 것이다. 


3. 속옷의 도움 받기.
이미 많은 분들이 쓰고 있는 방법일 것이다. 브래지어 안쪽에 주머니가 있는 브라를 구입해서 취향껏 패드를 선택해 넣는다. 예전보다 기술이 좋아져서 원하는 크기만큼 공기를 넣을 수 있는 패드도 있고 부드러운 실리콘 재질로 자연스러우면서도 감쪽같은 패드도 있다. 또한 패드에 미세한 알갱이들을 채워 넣어서 가슴이 움직일 때마다 자연스러운 모양을 만들어주는 것도 있다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고를 수 있겠다. 또한 브라 끈이 없어서 여름철에 특히 유행하는 누브라는 피부에 붙이는 속옷이다. 타원형의 패드를 후크로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입는 것인데, 사용하는 사람의 방식에 따라 풍만함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좋다. 누브라 역시 작은 가슴도 골을 만들 수 있다.

솔직히 지나친 노출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내 여자는 청순하기를 바라는 남자들의 이중적인 잣대를 생각하더라도 그렇지만,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너무 드러낸 것은 결코 예뻐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슴골까지 보여 준 이 시점에서 다음에는 또 어디를 또 보여주게 될런지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유행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이왕 유행을 즐기기로 했으면 조금 더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써 보았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곳을 자신만만하게 드러내고 싶어하는 여성들이라면 살짝살짝 매력을 발산하여 타인의 시선을 충분히 즐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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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얼마나 지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듣자하니 문제의 중심이었던 태연과 그녀에게 동조했던 강인이 공식적으로 사과까지 한 사건이니 이제 모든 것은 마무리 된 듯 하다. 그러나 오늘에야 그 사건에 대해 알게 된 나는 뒷북을 쳐서라도 상한 마음을 달래고 싶다. 다음뉴스에서 꽤 시끄러웠던 태연의 간호사 비하 발언 사건, 여기서 태연이란 소녀시대의 한 일원을 말한다. 소녀시대는 9명으로 구성되었기에 나는 솔직히 이름과 얼굴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태연은 패떳에서도 봤고 정형돈과 가상 결혼도 하여서 유독 주의깊게 봐 왔었다. 소녀시대 중 가장 잘 나가는(?)지 라디오까지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 사건은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했는데 정말 별일 아니거니 했었다. 여자 가수들은 남자 가수 팬들의 시기 때문에 작은 일만 있어도 크게 부풀어져 난도질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나는 게시판을 후끈 달구고 있었던 그 사건에 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생각보다 일이 수습이 늦게 되는 것 같길래 오늘에야 사건의 전모를 찾아보게 됐다. 연예계 일에 특별히 관심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아직 모르실 것 같아서 대략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모월모시 태연은 감기 때문에 병원을 찾았는데 하필이면 점심시간이었다고 한다. 식사를 하고 간호사가 밥을 먹다 말고 나와서 조금 기다리라고 했단다. 점심시간이라 의사가 없어서 주사를 놔 줄 수 없다는 간호사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태연이 의아해하자, 간호사는 많이 급하면 병원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라고 했던 모양이다. 환자보다 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처럼 보여서 화가 난 태연, 간호사에게 따지고 싶었으나 소심한 성격탓에 말은 하지 못하고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단다.


나는 내 감정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면서 객관적으로 대략적인 줄거리를 전하려고 애썼다. 자, 누가 잘못한 것 같은가? 태연? 아니면 간호사? 내 생각엔 잘잘못이 쉽게 가려지는 이 일에 네티즌들은 패가 갈렸다. 아무래도 소녀시대의 팬들이 자신들의 스타를 감싸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간호사 관련 발언에도 큰 문제가 있지만 뻔히 보이는 그녀의 잘못을 감싸고 돌 만큼 충성심이 강한 그녀의 팬들이 더 걱정스럽다. 특히나 어린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열광하고 반응하는데, 잘못된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찾아와서 의사의 처방도 없이 간호사에게 막무가내로 주사를 놔 달라고 했던 태연, 그녀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방송에서 마치 간호사가 큰 죄라도 지은양 떠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환자이기 이전에 스타이기에 무언가 특별한 대접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스타에게 무조건적인 일반인들의 인심을 많이 누려봤음즉 하기 때문이다. 위의 글 만으로는 태연이 크게 잘못한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접 라디오의 음성파일과 함께 태연과 강인(이 둘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한다.)이 맞장구를 쳐 가며 간호사에 대해 했던 말을 전사해 놓은 글(이규영 연애영화블로그)(아래)을 보면 어이없는 내 심정이 이해가 되실 것도 같다.

태연: 의사선생님도 안 계신다는거예요. 그래서 주사 좀 놔주세요 했는데 안된대요.
강인: 왜요?
태연: 주사를 놔줄수가 없대요.
강인: 왜요? 주사있어요?
태연: 아 뭔소리. (다시 진지하게) 그분이 이렇게 밥을 먹다가 나오셔가지구 안 된다는 거예요
강인: 밥 아 그러니깐 다른 이유가 아니라 식사 하고 계셔서 주사를 못 놔준다구요?
태연: 네 식사 시간이어서
강인: 그럼 병원 얘기하세요 대놓고 한번
태연: 근데 정 급하시면 잠깐 누워계시래요 침대에
강인: 야 환자가 우선이지
태연: 그 분이 간호사고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이면은 그냥 정말 급하면 누워있으라고 말할 때 주사한방 놔주면 되잖아요
강인: 그쵸
태연: 왜 그걸 못해주시냐구요? 왜
강인: 왜 저는 저한테그러세요? 저는 뭐
태연: 제가 그때 너무 황당해가지고 아픈 와중에도
강인: 한바탕했어요?
태연: 한바탕 하고싶었는데
강인: 참으면 안돼요. 그럴때
태연: 그냥 소심하게 소심하게 그냥
강인: 불의를 보고 참은거야?
태연: 소심하게 그냥 어쩜 그러세요 그렇게 한마디 하고 소심하게 하고 나왔어요.
       근데 참 크게 하고싶었는데
강인: 나 같았으면 가만 안 있었다 진짜
태연: 아파서 정신이 없었어요
강인: 그래서 결국엔 주사 못맞았어요?
태연: 네
강인: 와 그 병원이 어디예요? 위치가 어딘지 얘기 할까요?
태연: 얘기해두 돼요?
강인: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안돼
태연: 안되죠
강인: 요즘 라디오 말많아. 기사많더라
태연: 아픈사람들 제가 그 병원으로 안 보내려구요
강인: 네?
태연: 그 병원으로 안 보내려구요 아픈 환자들
강인: 그래요 그 병원이 문제가 아니라 그분의 그 간호사로써의 마인드나 본인의 그 해야 될목적을 상실했던거같아요 그분이 해야 할 일이 뭔지 까먹고 있었던거 같은데
태연: 아니 점심시간이 있는건 알겠는데
강인: 평생 그냥 점심식사나 하세요
태연: 아니 환자가 그러면 시간을 맞춰서 아파야 되냐구요 점심시간 피해서 아파야 되냐고요
       환자가 지금 아픈사람이 급한건데
강인: 그렇죠
태연: 아 식사 이렇게 밥을 이렇게 볼에다 넣고.지금 의사선생님도 안 계시고 점심시간.
(이하생략)

태연은 이 날 아픈 자기가 잘못이라며 발언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사과는 했다고 하나 어떻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라디오를 진행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는 태연이 한 말실수 모음담이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인기 있는 가수라고 해서 자질이 부족한 사람에게 방송의 진행을 맡기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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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떤 모임에든 꼭 지각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솔직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가끔씩은 늦을 때가 있어서 그리 떳떳하지는 못한 처지지만, 이 친구는 해도해도 너무하다. 10분은 기본이고 30분 지각은 애교인 이 친구가 헐레벌떡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나와 다른 친구들은 도끼눈을 뜨고 한마디씩 하는데, 그녀는 그럴 때면 다시는 늦지 않을 것 처럼 각오를 다지고 필살기인 눈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곤 한다.

배시시 웃으면서 꽈배기 처럼 몸을 꼬는 폼새가 얄밉긴 해도 우리는 못 이기는 척 용서를 해 주고 말지만 사실은 모두들 그녀의 정시 도착을 포기한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그녀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모임 장소를 정했지만 40분이 넘도록 콧배기도 보이지 않는 그 친구 때문에 다들 흥분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다음부터는 약속 시간을 삼십 분 일찍 얘기해주자느니, 계속 이런 식이면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떠들다가 제 버릇 개 못 준다던데 이제 그만 포기하자는 심드렁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랬다가도 언제나처럼 세상에서 가장 미안한 얼굴을 하고 몸일 배배 꼬아대며 애교를 부리는 지각대장이 도착하고나면 별일 아니었다는 듯 눈 한 번 흘길 뿐이었다.


며칠 전 영화 시사회 응모에 당첨이 돼서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영화 시사회는 보통 두 명이 함께 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기 때문에 나는 지각 대장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마침 그 날은 친구의 집과 별로 멀지 않는 곳에서 볼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일을 끝낸 후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좀 쉬었다가 친구와 함께 극장으로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일이 늦게 끝나서 그녀의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영화 시작은 오후 8시, 친구 집에서 극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30분 쯤 걸린다. 7시쯤 출발하면 여유있게 영화표를 받고 음료수도 좀 마시면서 느긋하게 영화를 기다릴 수 있다. 나는 그 날 종일 집에 있었던 친구가 미리 외출 준비를 다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지각이 반복되는 대는 이유가 있었다.

완벽한 야생의 모습(?)으로 나를 반기는 그 친구를 보며 나는 묘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그녀와 학창시절 때부터 친구였지만 그녀의 외출 준비 과정을 지켜 볼 기회는 없었기에 좀 미안하지만 오늘은 '지각의 이유'를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친구가 나를 의식하지 않고 평소대로 외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아무런 재촉도 하지 않고 그녀가 어떻게 하는지를 엿보기로 했다.

현재 시각 5시 40분, 나 같으면 먼저 씻고 나서 저녁을 먹을텐데 그 친구는 아직 여유가 많다며 김치볶음밥을 해 먹자고 한다.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며 김치와 참치를 프라이팬에 볶는 친구,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니 오랫만에 온 손님을 부려먹을 수 없다며 기어이 손수 차려 주겠단다. 김치 볶음밥을 먹다 남은 콩나물국과 함께 맛있게 먹고 치우니 6시 20분이 조금 넘었다. 이제는 슬슬 준비를 하려나 했는데 배가 부르다며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않는다. 준비해야하지 않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다 말았다. 6시 30분이 다 돼서야 욕실로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쏴 하는 물소리가 끊이질 않더니 친구는 20분이나 지난 후에 짠 모습을 드러낸다. 발그레한 볼을 하고서 날씨가 추울 땐 따뜻한 물만큼 행복하게 만드는 게 없다며 착하게 웃는 그녀를 어떻게 미워할까. 현재 시각 6시 50분, 스킨과 로션을 바른 친구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케이블의 재방송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하하하 웃는다. 그래도 서두르면 예상 출발 시간인 7시에 맞출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친구는 이미 본 방송임이 분명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힐끔힐끔 곁눈질로 방송의 흐름을 살피며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늦은 시각에 하는 외출임에도 어찌나 정성껏 바르던지 대충 비비크림만 바를 것이라는 내 예상을 깨고 곱게도 치장하는 그녀, 그녀가 점점 더 고와질 수록 나는 점점 더 부아가 치밀었다. 아예 친구쪽을 보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과월호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깔깔대는 친구. 놀라서 쳐다보니 볼터치를 하다말고 다시 예능 프로그램에 빠졌다. 이미 시간은 7시를 훌쩍 넘었다. 시사회라서 영화표를 받으려면 늦으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아무말 하지 않으리라던 결심을 깨고 친구에게 최대한 심상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여기서 ㅅㅇ극장까지 얼마나 걸리지?

아무튼 아주 가깝다는 친구의 짧은 대답, 눈은 아직도 텔레비전에 고정되어 있다. 얄, 미, 운, 뒤통수. 드디어 화장을 마치고 입고 갈 옷을 고르는 그녀. 선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너무 고민하는 거 아니니. 미리 생각을 좀 해 두지 많지도 않은 옷을 들었다놨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미 시계는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고 나는 여유고 뭐고 8시까지 가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불안해서 손에 땀이 다 날 지경이었는데도 친구는 천하태평이다. 맘 급한 내가 현관에 서서 기다리니 조금 늦으면 될 걸 뭐가 그리 조급하냐며 오히려 나를 달래돈 친구는, 신발을 신다말고 아! 하며 휴대전화를 찾으러 다시 들어간다. 뒤이어 아! 아!를 두 번 연발하더니 교통카드와 열쇠를 못 찾겠단다. 현재 시각 7시 40분.

새삼스레 다시 둘러 본 친구의 집은 자세히 보니 정리 정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듯 했다. 친구는 자신의 물건이지만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듯 했고 그래서 나도 같이 전날 입은 옷의 주머니와 침대 뒷편까지 샅샅이 다 찾아봐야만 했다. 결국 열쇠가 발견된 건 냉장고 위였고 교통카드는 책상 서랍에서 나왔다. 우리 극장으로 가다가 다리를 삐어서 늦었다고 할까? 아님 시간을 잘못 알았다고 할까? 출발과 동시에 변명거리부터 생각하는 그녀. 지각이 몸에 배 버린 그녀 때문에 나는 정말 곤란했다. 아, 나는 정말이지 그 다음부터의 일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혹시 내 친구와 같이 지각을 반복하시는 되는 분이 있으시다면, 2009년에는 다음의 습관들을 꼭 버리셔야만 한다.

1. 준비를 하면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틀어놓는다.
2. 물건을 제 자리에 두지 않는다.
3.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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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무언가를 갈구하는 뱃속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엄마와 함께 과자를 사러 가기로 했다. 훌쩍 커 버린 딸과 부쩍 작아져 버린 엄마가 함께 과자를 사러 간 풍경을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참 색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엄마와 오직 과자를 사러 마트에 간 것은 어린 시절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과자 하나 추억하나 과자 둘 추억 둘, 엄마와 나란히 서서 과자를 구경하면서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즐겨 드셨다는 과자(*동산)와 예전에는 거의 매일 먹었던 (ㅅㅇ깡) 과자를 발견하니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간 곳은 동네 이마트였는데 대형마트다 보니 과자의 종류와 수량이 어찌나 많은지 한참을 골랐다. 짭잘한 맛이 일품인 ㅇㅍ링과 다른 것과는 달리 특별한 촉촉함을 자랑하는 촉촉한 ㅊㅋ칩, 먹고나면 입가가 과자 부스러기로 가득해져 버리는 딸기맛 ㅇㅎ스, 그리고 새로나온 과자인 듯 보이는 행사용 묶음 박스형 과자까지. 욕심을 최대한으로 누르고 최선의 것만을 골랐는데도 한아름이다. 고를 땐 정신이 없었는데 이걸 안고 집까지 가려니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나 같은 짠순이는 아무리 20원이라도 집에 수북한 비닐봉투를 두고 새로 돈 주고 살 리가 없다. 이 많은 과자들을 어떻게 집까지 안전하게 가져갈 지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더니! 나는 의기양양해져서 계산대로 걸어갔다.

지난번에 어떤 블로그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이었는데 오늘 드디어 써 먹어보게 됐다.  내 옆에서 긴가민가 하고 계시던 엄마도 모든 상황이 끝난 후, 그제서야 요즘 애들(?)은 정말 똑소리난다며 만족하셨다. 내가 본 블로그 글은 이마트에서 무료 종이 봉투를 구비하고 있는데, 그것이 손님들의 편의를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산대가 아닌 고객만족센터를 통해서 배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은 내용이었다.

그 글에서는 마트 측에서 손님들에게 무료 종이 봉투의 존재를 알리지도 않았고 일부러 사용하는 빈도수를 낮추려는 듯 계산대와 먼 고객만족센터에 배치하고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 봉투가 고객만족센터에 있겠거니 했는데, 역시 인터넷의 힘은 컸다. 계산이 끝나고 종이 봉투가 있냐는 나의 말에 계산원은 계산대 아래에서 당연한 듯 종이 봉투를 꺼내 주었다. 아마도 그 블로거의 문제제기로 인해 이마트 측의 운영 방법이 달라진 것 같았다.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튼튼한 종이 가방을 얻어서 수북하게 산 과자를 넣어서 나오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엄마께 내가 알고 있는 이마트 종이 가방에 대해 말씀드리고는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되어서 어떻게 보면 무섭기도 하다고 했더니, 엄마는 그것을 잘 다룰 줄 아는 네티즌이 무섭다고 하신다. 이번 일은 잘못된 것을 콕콕 집어서 널리널리 알린 결과 편리한 방향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부디 이렇게 좋은 도구를 가지고는 긍정적인 결과만을 얻었으면 좋겠다.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다른 대형마트에서도 종이 봉투가 무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비닐 봉투는 50원(작은 것 20원) 종이 봉투는 0원이니 잘 활용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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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내 친구 S는 기어이 다시 말 해보라며 추궁하기 시작한다. 아니, 내가 왜 아줌마야? 누나지. 자, 따라해봐 누나...... . 마트에서 믹스커피를 고르다가 내가 사은품에 눈이 멀어 이것 저것 들었다 놨다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왜 저런 상황이 연출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은품으로 밀폐 용기를 주는 커피를 살 것인지, 머그컵을 주는 커피를 살 것인지 도무지 결정이 되지 않아서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보려고 고개를 돌렸더니 생뚱맞은 누나 타령이다. 제 눈에도 삼십 대 누나는 너무했는지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서 있는 아이는 이리 저리 눈을 굴리며 엄마를 찾는 폼이 여차하면 울 태세다. S도 한껏 뿔이 나 있는 상태라 내가 말리지 않으면 더 민망한 상황으로 번질 것 같아서 나는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친구는 동갑인 나에게 자신이 몇 살로 보이냐며 씩씩거린다. 5년 이상을 봐 온 사이이기에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는 여전히 스물 여섯으로 보인다. 그러나 타인의 눈, 특히나 거짓말을 못하는 아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겠는가. 사실 나는 아줌마라는 호칭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대학교 3학년이던 스물 두 살 때 이미 꼬마아이들에게서 아줌마 소리를 숱하게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 당시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가게는 만화책이며 복권에 자판기까지 잡다한 것들도 갖추고 있었다. 5시간씩 삼교대로 돌아갔는데 나는 오후 3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 했다.


시간대 별로 손님 층이 달랐는데, 내 고객(?)은 주로 초등학생들이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놀러 나온 아이들은 만화책이나 만화 영화를 빌리고자 가게로 몰려왔고 그들에게 나는 당연히 아줌마로 불렸다. 열 살 짜리 아이에게 누나는 열 둘이나 열 넷 정도이지 스물 두 살 늙은이(?)가 아닌 것이었다. 개중에는 '누나, 언니'하며 나를 따르는 영특(?)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냥 아줌마였고 나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에게 아줌마는 별로 기분 나쁜 호칭이 아니지만 친구는 몹시 화가 났나 보다.

하긴 호칭이라는 것이 사람의 기분을 좌우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70대 쯤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그 분들의 나이정도 되면 나 정도는 어려보이므로) 길을 물어보실 요랑으로 나를 불러세울 때, 다른 호칭이 아닌 학생으로 불러주셨을 때 반색하며 급친절 상태로 돌입했던 경험이 있다. 행여나 시력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 학생이라고 불러주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호칭 중 가장 듣기 좋은 것이 학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영낙없이 아줌마로 불릴 수밖에 없는 나잇대로 접어들었고 아줌마는 괜찮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라는 호칭은 손자, 손녀에게서가 아니면 정말 듣고 싶지가 않다. 더이상 나아갈 단계가 없어서 그런가, 호칭을 듣는 순간 더 늙어질 것 같아서 그런가, 아직 할머니라는 말은 들어보지 않아서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호칭에 심술이 난다. 요즘에는 60대 어르신들도 아주 젊어 보이셔서 그냥 아줌마, 아저씨로 부르면 될 것 같은데 굳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들으면 괜한 심통이 난다. 친구가 아줌마라는 단어에 나타내는 반응을 나는 할머니에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자취방 주인집 아줌마와 마주쳤을 때, 아줌마라고 불렀더니 기뻐하시는 얼굴을 많이 보았다. 나를 만나면 굉장히 반가워 해 주시는 까닭도 나에게 특별히 김장김치까지 주신 까닭도 이유는 호칭에 있지 않을까?

학생-아가씨-아줌마-할머니 중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학생이요, 가장 듣기 싫은 말은 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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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남녀, 설렜던 데이트를 아쉽게 끝내고 남자가 애인을 택시에 태워서 집으로 보낸다. 좀 위험한 듯 싶어서 생각 같아서는 그녀와 동승하여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러지는 못한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맘으로 그녀를 태우고 떠나는 택시의 꽁무니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수첩을 꺼내 택시의 번호판을 적어두는 세심한 남자. 택시의 번호판을 적어두는 것은 드라마에서 낭만적인 상황을 연출할 때 흔히 써 먹는 방법이고 실제로 여자친구의 안전한 귀가를 걱정하는 자상한 남자친구들이 많이 실천하고 있는 것 중 하나이다.

그런데 나는 내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택시 운전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살짝 상한다. 그들은 무엇을 그리도 걱정하는 것인가. 사십대 초반인 나의 막내 외삼촌은 택시 기사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택시 근무복을 입고 운전하는 외삼촌이 아주 멋있어 보였다. 그러다 자라면서 택시 기사에 대한 주윗(특히 여학생들의)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들을 알게 됐고, 내가 좋아하는 외삼촌이 오해받는 것이 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중과 여고에 재학중일 때는 워낙에 그런 쪽의 얘기를 많이 들어서 우리 외삼촌도 사실은 그럴지도 모른다며 우울해하기도 했었다.


몇 년 전이었을 것이다. 집에 놀러온 외삼촌과 같이 드라마를 보다가 남자 주인공이 택시 기사를 마치 잠재된 치한이라도 되는 듯 대하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여자 친구를 뒷자석에 앉히고 집으로 보내면서 안절부절 못하더니 척 하고 꺼낸 수첩에 다가 당연한 순서로 택시 번호판을 적어 둔다. 그리고 나서는 문자 메시지로 번호판을 적어 두었으니 안심하라는 글과 함께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자기에게 연락하라는 내용을 보냈다. 택시 기사인 외삼촌과 함께 보기엔 내용이 조금 민망해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방금 그 장면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외삼촌은 잠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금새 그럴수도 있지 한다.

요즘처럼 믿을 것 없는 세상에서 연약한 여자가 낯선 남자와 단 둘이 차를 타고 간다는 것이, 당연히 무서울 수 있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택시 기사들도 낯선 동승자가 두려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젊은 택시 운전 기사들 중에는 숱한 성추행과 성희롱을 생계를 위해 이를 악물고 견뎌내야 하는 경우가 많단다. 손님을 가려받을 수 없으니 취객부터 건달까지 얼마나 다양한 사람과 좁은 차 안에서 같이 있어야겠는가.


택시를 타는 여자들은 혼자 탈 경우와 둘 이상이 탈 경우가 확연히 다르단다. 혼자 타는 경우에는 택시 기사가 자신에게 해를 입힐 까봐 덜덜 떠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기사들은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한단다. 그런데 둘 이상이 탈 경우에는 무서워 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 특히나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시시콜콜한 질문에서부터 노골적인 농담과 심한 경우에는 더듬기까지 한다고 했다. 어떤 땐 여러 명이 정신을 쏙 빼 놓는 바람에 목적지까지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도 몰랐던 경우도 있었고, 또 다른 경우에는 목적지가 어느 식당이었는데 같이 식사하고 가라며 반강제로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진 경우도 있단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외삼촌이 나에게 자신이 겪은 모든 이야기를 다 해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콜택시를 하고 있어서 휴대폰 번호까지 노출돼 있기에 별별 요상한 전화에서부터 장난 문자까지 외삼촌을 힘들게 만든다고 한다. 나도 여자이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성추행&성희롱과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성추행&성희롱은 같은 무게로 비난과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 모든 여성들이 택시 기사를 괴롭히지 않듯, 모든 택시 기사가 괴한은 아니다. 택시 기사에 대한 선입견, 그들에게는 말 못 할 상처가 되니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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