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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다. 뜨끈한 탕을 좋아하는 나는 목욕탕에 갈 때면 사우나나 냉탕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은 채 온탕만 들락날락 하는 것이 특기이다. 이 날도 간단히 샤워를 끝내자마자 시원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온탕으로 직행을 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탕 안에서 오래 버티는 것이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평소 나 답지 않은 날이었다. 건식, 습식 사우나를 기웃거려도 보고 찬 바람을 쐬러 탈의실에도 들락날락 해 봤지만 영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어떤 아주머니를 발견하게 됐다.

좀 죄송한 얘기지만 온탕에서 견디기 힘들어질 때, 다른 사람들을 은근히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이 날은 그 아주머니를 좀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눈에 띄지 않게 말이다. 내가 유독 그 아주머니에게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 아주머니의 수상쩍은 행동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목욕탕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하더니, 젊고 예뻐보이는 여자들이 보이면 민망할 정도로 훑어보고 계셨다. 목욕탕 문이 열리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꼭 한 번씩 쳐다보는 것도 이상했다. 일행을 찾고 계신 것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심상치 않은 눈초리였던 것이다.



아주머니는 두리번거림을 마치더니 드디어 한 여자분에게로 접근을 하셨고 그 모습을 포착(?)하게 된 나는 금세 흥미진진해졌다. 마침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재미있었다. 귀를 쫑끗 세우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내용이 참 야릇했다.

아주머니는 한 눈에도 앳되보이는 여자에게 일단 무턱대고 새댁이라고 부르시더니, 아이고 아직 아가씨인가? 하며 얼굴과 몸 구석구석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당황한 여자가 아직 미혼이라고 밝히자마자 아주머니는 그렇지? 반색을 하시며 의자를 끌어당겨 굳이 그 옆에 앉으시고는 아는 사람이 '의사'인데 말야...... . 하며 슬슬 본색을 드러내셨다. 아주머니는 말로만 듣던 마담뚜였던 것이다. 목욕탕이 주된 작업장인지 아니면 목욕을 하면서까지 프로 정신이 투철하신지는 모르겠지만 목욕탕에 온 그 순간부터 신붓감을 물색하신건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한 여자분을 점찍은 것이다.


"올 해 나이가 몇이지?", "스물 여섯이에요.", "스물 여섯? 응 그래그래 딱 좋네 딱 좋아. 직장은 어디로 다니고?" ...... .

생각해보니 중매쟁이에게 목욕탕만큼 좋은 장소도 없는 것 같았다. 일단 여자 목욕탕만큼 다양한 여자들이 많이 오는 곳도 드물다. 그리고 화장발도 옷발도 아닌 천연 그대로의 외모 상태를 점검하기에도 딱이고, 특별히 원하는 지역이 있으면 그 동네 목욕탕에 가면 되기 때문이다. 비용도 저렴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목욕은 할 수 있으니 밑져봐야 본전이 아닌가? 아주머니가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니 상대가 당신의 아들은 절대 아니고 직업군도 다양한 것으로 보아 아마추어는 아닌 듯 싶었는데, 벌거벗은 면접이 다소 민망해 보이긴 해도 끝까지 인적 사항을 알아 내는 모습이 프로는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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