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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박명수가 자신을 스스로 거성이라고 칭했을 때 우리는 모두 웃었다. 헤헷 제(?) 까짓 것(?)이 거성이라니, 하는 심리였을 것이다. 사실 그 때는 박명수 조차 그 상황을 웃기게 만들기 위해 거성이라는 말을 꺼냈지 자기가 진짜로 연예계의 큰 별[巨星]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듯 그는 2인자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나는 거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박명수가 떠오른다. 그것도 '님'자를 붙여 거성 박명수 님으로 말이다. 실제로 거성쇼까지 맡아서 하고 있는 박명수는 자기을 스스로 거성이라고 부름으로써 진짜 연예계의 거성이 되었다.

여기에서 이름 짓기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뱉은 대로 된다는 언어의 신성성이 실제 드러나는 순간인 것이다.

한채영은 바비 인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이 별명을 그녀의 소속사에서 붙인 것이라고 확신 한다. '거성=박명수'처럼 한채영이 나올 때 마다 늘 부록처럼 따라 나오는 '바비 인형'이란 수식어가 그녀를 진짜 바비 인형으로 만들어 주었다. 한채영과 한고은이 나오는' 신이라고 불리는 사나이'를 보면서 나는 옆에 있던 남편에게 물었다.

한채영이 더 예뻐, 한고은이 더 예뻐? 남편은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참 특이한 기억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아주 아주 유명한 국민 연예인이 아니고서는 볼 때마다 누가 누군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저기 좀 더 벗은 한채영이고 좀 덜 벗은 여자가 한고은이야('신이라고 불리는 사나이 첫 회'에선 진짜 그렇게 설명할 수밖엔 없었다.)라고 했더니 한고은이 더 예쁘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한채영이 바비 인형이지?

명품코 민효린도 그렇다. 민효린이 잡지에만 얼굴을 비추면서 나 처럼 한 번 본 연예인(특히 예쁜 여자 연예인)의 이름과 얼굴을 절대 잊어 버리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만 유명하던 시절, 소속사에서는 민효린의 코를 가지고 그녀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명품코, 콧대가 오똑하고 예쁜 것이 특징인 민효린에게 참 지혜로운 별명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질투심 많은 어린 네티즌을 자극해 유명세를 쉽고 빠르게 치르기에도 좋았다.

민효린이 명품코라는 별명을 스스로 가져 오자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성형을 했네, 자연 미인이네라고 편을 나누어 싸우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 소속사가 의도적으로 올렸을 사진이 나타날 때 마다 그 유치한 싸움은 새로 시작했다. 그 싸움 속에 당연히 민효린은 없었고 결과적으로는 명품코 민효린이라는 이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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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내 별명은 참 어디에 내 놓기가 부끄러운데, 어디 가서 별명이 일레드라고 얘기할 때마다 왜 일레드냐고 물어 볼까봐 조마조마할 때가 참 많다. 블로그 이름은 어떤가? '미녀들의 수다'라니! 손발이 오그라든다. 모 연예 방송과 똑같은 제목을 쓰고 혼자 운영하는 블로그에 '~들'을 붙이다니 참 성의가 없긴 없다.

만사가 귀찮아서 뒹굴뒹굴 대던 어느 날, 오늘은 기필코 블로그를 만들어야 된다는 의무감만 있었던 것 같다. 별명을 뭘로 하지? 글쎄, 빨간색을 좋아하니까 레드로 하지 뭐. 어, 레드는 이미 있는데? 그래? 그럼 빨간색을 제일 좋아하니까 그냥 앞에다 일(1) 붙이지 뭐. 그래서 태어난 민망한 내 별명 일레드. 이제는 참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게 됐는데 이다지도 초라하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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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파랑도 좋아하니까 어쩌면 삼원색이 될 뻔 했던 내 별명!

만약 시간을 돌려서 내가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별명을 뭐라고 지을까? 거성 박명수처럼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나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아, 뭐 든 짓기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더 힘들다. ...... 갑부동안미녀?......에라잇 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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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면서도 몸에 좋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뭘까? 조금만 신경을 쓰면 적은 돈으로도 근사한 영양 다이어트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마흔이 넘는 나이에도 어린 피부를 자랑하던 어떤 아줌마(텔레비전에서 본 동안 선발대회 출신)의 비법은 결혼하면서부터 매일 먹었다는 올리브 기름과 익힌 토마토. 요즘처럼 토마토가 귀한 시기엔 장바구니에 토마토를 담으려먼 손이 벌벌 떨리지만 피부과나 비싼 화장품에 비하면 세발의 피니까 눈 딱 감고 먹어 주기로 한다. 

지갑에 돈이 가득(?)하지만 집에만 있기 때문에 전혀 쓸 일이 없었던 나, 나를 위한 투자로 먹는 데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기로 결심했다. 토마토, 연어, 파프리카, 브로콜리, 닭 가슴살. 이 다섯 가지가 내가 선택한 건강한 먹거리인데 솔직히 그 동안엔 매일 구입하기엔 좀 망설여지는 때가 많았다. 채소값이 너무 올라서 볼품없는 브로콜리 한 송이에 2천원이 넘어가고 파프리카의 가격엔 입이 딱 벌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올해부턴 내가 선택한 이 다섯 가지 건강 먹거리 만큼은 풍성하게 맘껏 먹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실천하는 중이다.
 
오늘 아침엔 중국에서 배워 온 달걀 토마토 볶음과 연어 샐러드를 먹었다. 중국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달걀 토마토 볶음을(거기에 물을 붓고 향채를 넣으면 달걀 토마토 국이다.) 먹는데 올리브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달걀을 풀어서 볶다가 잘게 썬 토마토를 함께 넣어 볶으면 끝(기호에 따라 소금도 적절히)!

마침 마트에서 방울 토마토를 할인 행사 하고 있기에 얼른 한 상자 집어 왔다. 전단지 할인 행사라 가격도 착했다. 거기다 하나 가격에 2개 묶음으로 팔고 있는 훈제 연어를 양상추에 곁들이고 소스대신 기름 뺀 참치와 파프리카를 약간의 마요네즈와 버무려서 얹어 먹었더니 참 맛있는 연어 샐러드가 됐다.

바쁜 아침 식사로 먹기에 딱 좋은데 배도 부르고 차리기도 쉬우니 영양가 있는 다이어트 음식을 찾고 계신 분들은 따라 해 봄직하다. 게다가 연어는 다크 서클을 없애주고 피부에 윤기도 준다니 피부가 까칠해지기 쉬운 지금 같은 때에 딱 알맞은 음식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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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부싸움은 며칠 지나면 왜 다투었는지, 정말 다투긴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소소한 이유 때문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화성에서 왔느니 금성에서 왔느니 식상하게 다시 이야기하지 않아도 원래부터 다르게 살아 온 두 사람이기에 늘 쿵짝이 잘 맞을 수는 없고 가끔씩 욱하거나 꽁해질 때가 있다. 오히려 욱할 땐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하니까 일이 쉽게 풀리지만 꽁할 때가 문제다.

작은 삐걱거림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이야기 하는 것이 치사하게 느껴져서 속으로 삭이는 순간, 곧 우리 부부의 전쟁은 시작된다. 내가 갑자기 입을 꼭 다물고 꽁해지는 것은 곧 선전포고이며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싸움이라고 해 봤자 별 것 없다.

나는 나 대로 남편은 남편 대로, 각자 자신의 컴퓨터만 노려 보면서 몇 시간이고 버티는 것, 침묵하는 것,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나도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 텔레비전에서 우스운 장면이 나와도 혀를 깨물며 웃음을 참는 것, 배가 고파 꼬르륵 소리가 나도 '밥'이란 단어를 먼저 꺼내지 않는 것, 그러다 자신의 휴대 전화가 울리면 아무렇지도 않는 심상한 아니 쾌활한 목소리로 신나게 통화를 하는 것. 그래서 손하나 까딱 않고 상대의 마음을 할퀴는 것...... .

우리의 싸움은 오래 버티기 내기와도 비슷해서 더 많이 화가 날 수록 더 오래 꽁해져 있는데, 이럴 때 남편이 먼저 미안하다고 그만 화 풀라고 너스레를 떨어 주면 참 좋으련만 '당신의 행복은 나의 행복, 당신의 불행은 나의 불행'을 무슨 공식 처럼 외우고 있는 내 남편 님은 '당신의 꽁은 나의 꽁'으로 응수해 버리니 참 심란하다.

늘 그래왔기에 나는 내가 화를 푸는 순간 마법이 풀리듯 남편의 화도 풀리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일정시간을 버티면서 스스로 속상했던 감정을 달랜 후에는 남편과 현명하게 화해하기에 돌입한다. 컴퓨터를 하다가 잠깐씩 남편을 쳐다보는 것, 책이나 달력을 보며 뜻도 없이 괜히 혼잣말을 하는 것, 간간히 웃는 것 그러다 다시 한번 남편을 바라 보는 것 등이 전쟁의 끝을 알리는 신호이며 이제 그만 휴전하고 싶다는 전갈이다.


그러다 문득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깍둑깍둑 재료를 손질하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면서 남편에게 간을 봐 달라고 한다. 나는 이미 남편의 식성을 잘 알고 있는 일등 아내이므로 평소에는 간을 봐 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지만 이럴 땐 찌개를 호호 불어 남편의 입가로 가져 가는 것이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밝은 음색으로 남편을 부른다. '당신의 행복은 나의 행복, 당신의 불행은 나의 불행'이 공식이니 당신의 화풀림을 대입하면 당연히 나의 화풀림이라는 답이 나온다.

또 어떨 땐 뜬금없이 책을 읽겠다는 표현을 하면서 하필이면 꼭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한 책을 남편에게 좀 내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려진 책이 '명심보감'일 때도 있지만 당연히 상관없다. 나도 남편도 그 책의 제목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말이다.

한편 가장 쉬운 화해 방법은 역시나 아이를 이용(?)하는 것인데 둘이서 아기 목욕을 시키거나, 옷을 갈아 입히거나 발달 상황을 점검해 보거나 혹은 꺄르르 웃는 아기의 얼굴을 바라 보게만 해도 남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을 스르르 풀어 버리게 된다.

여자의 마음은 복잡한 실타래 같아서 그것이 꼬여 버리면 하나 하나 풀어내기가 어간 어렵지 않으나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엉킨 부분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 버리면 손쉽게 원상복구 시킬 수 있는 것 같다. 남자 친구나 남편들과 작은 다툼이 있었을 땐 어떤 방법을 쓰든 상관없이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웃고, 무언가를 같이하면 남자들은 어느새 전투 중이었음을 잊고 대답하고, 따라 웃고, 동참해 줄 것이다. 단, 사소한 다툼이었을 때에 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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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띠 친구 구해요.', '삼십 대 초반 친구 찾아요'

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는 낮에 혼자 있기 심심하다며 친구를 찾는 아줌마들이 참 많다. 게시판을 통해 아줌마들은 가끔 만나서 차도 한 잔 마시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허물없는 친구를 원한다고 했다.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가급적이면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아줌마들이?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 .

오해하지 마시라, 아줌마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새로운 친구는 바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동네 아줌마 친구이니까 말이다.
 
아기를 낳은지는 꽤 됐지만 아직 아기가 어려서 집 밖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는 엄마들은 이따금씩 자신들이 창살없는 감옥 살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물론 아기를 돌보는 일이 보람되고 행복한 것이기는 하지만 매일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다보면 문득문득 울컥해질 때가 생기는 것이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 버리고, 어쩌다 보면 황금 같은 주말도 휙 사라져 버리니 맘 먹고 외출하지 않으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집 안에서만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그렇다.

Bathroom reading
Bathroom reading by thejbird 저작자 표시비영리

아기와 하루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다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해서 자신의 아이와 비슷한 또래를 기르고 있는 새 친구를 만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주로 아기의 나이에 맞추어서 새 친구를 찾는데 운이 좋게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 급속도로 친해져서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음식과 차를 나누어 먹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육아에 관한 정보도 나누고 속 이야기도 터 놓으면서 말이다.

...... .
나는 오늘 녹초가 돼 늦게까지 자고 있는 남편에게 차마 외출을 하자는 말을 못해서 호기롭게 혼자서 집 밖을 나서게 됐다. 일주일만에 바깥 공기를 마시는 순간 너무나 기분이 상쾌해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고개를 들어 '나는 자유인이다'를 속으로 외치면서 통통통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오랫만에 화려하게 화장도 하고 곱게 단장도 했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밀쳐내고 거의 1년 만에 구두도 신었다. 

남편과 아기와 함께 나오지 못한 것이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나는 능동적인 사람이기에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고 아직 감기를 다 벗어내지 못한 아기가 찬 바람을 쐬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각또각또각, 몇 발짝 즈음 걸었을까? 대체 어디에 가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 지,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고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었다.

May their JOY Embrace U!(Bali Kuta Beach)
May their JOY Embrace U!(Bali Kuta Beach) by Kenny Teo (start from scratch...)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늘 가던 길과는 다른 길로 한 번 걸어 가 보기로 했는데 이십 여 분이 넘도록 똑같은 이름의 아파트만 나왔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동네였다. 오랫만에 신은 구두 때문에 발뒷꿈치는 점점 불편해져 오고 아무 빵집에라도 들어가 샌드위치와 주스를 먹을까 하다가 괜히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고 갈 곳은 없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참 서글픈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참을 더 걸으니 다행히 번화가가 나왔고 저 멀리 큰 마트가 보였고 나는 안심하듯 그 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오랫만에 혼자서 외출을 했으나 내가 한 것이라곤 반찬거리를 두 손 가득 들고 돌아온 것 뿐...... . 어쩌면 나도 우리 동네에 사는 마음 맞는 친구를 찾기 위해 인터넷 카페 게시판을 기웃거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수록 아줌마들의 건전한 즉석 만남은 참 지혜롭고 좋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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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의 '지붕뚫고 하이킥'인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6이 막을 내렸다. 방송을 하고 하고 또 하는  케이블의 특성상 텔레비전에 케이블이 나오는 집이라면 누구나 영애씨의 막돼먹은 행각을 한 번 쯤은 봤을 것이다. 나는 시즌 1부터 6까지 한 회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보던 애청자이기에 끝나버린 시즌 6이 아쉬움과 동시에 5월에 방송 예정인 시즌 7이 무지 기다려진다.

영애는 시즌 1에서부터 6까지 한결같이 뚱뚱하고 못 생겼지만 의리있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일도 사랑도 열심히 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중간 중간 머리 길이가 짧아 졌다 길어 졌다를 반복하고 살도 조금 빠졌다가 다시 찌기를 반복했으며 영애가 좋아하는 남자들도 많이 바뀌었지만 영애라는 인물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

김현숙이 연기하는 영애에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나는 영애가 약간 통통하긴 해도 절대로 못 생겼다거나 비호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영애는 과감하게 짧은 치마도 입고 뾰족하고 예쁜 구두도 자주 신는다. 그리고 또 날이 갈 수록 세련되 보이는 그녀의 화장법은 또 어떤가. 그래서 '막돼먹은 영애씨'에 나오는 남자 출연자들 중 가장 잘 생긴 사람은 결국 영애를 사랑하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시즌 6에서는 영애를 가냘프게 보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유민상과 싸우다 정이 들어 버린 잘생긴 김산호가 둘 다 영애를 사랑하게 된다. 민상은 영애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했으며 산호는 외모 지상주의인 자기가 정말로 영애를 사랑하게 돼 버렸는지 아직도 갸우뚱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벌써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듯 싶다. 사귀게 될 경우 장단점을 확실히 따져보자는 산호의 계산에서 처럼 영애는 못생기고 뚱뚱한 것 빼고는 모든 것을 갖춘 여자이니까 말이다. 내 주위에 있다면 꼭 친구 삼고 싶은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시즌 7의 거의 끝자락에서 새삼스레 영애의 나이가 내 귀에 거슬렸다. 이미 알고 있었고 그동안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왜 갑자기 영애의 나이가 마음에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좀 그랬다. 극중 영애는 나 보다 한 살 더 많은 서른 세 살이다.(실제 김현숙의 나이도 그렇다.) 미혼인 자녀의 나이가 서른 셋 정도가 되면 부모님들은 슬슬 결혼 얘기를 꺼내실 때도 됐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시즌 1에서부터 영애네 엄마는 영애를 결혼시키지 못해서 안달이었던 것 같아서 말이다. 영애만 보면 늘 결혼을 하라고 잔소리였으며 영애도 자신을 노처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시즌 1에서 영애는 노처녀가 아니었던 것 같다.



궁금해서 시즌 1의 시작 시기를 찾아보니 2007년이었다. 그럼 그 당시 영애 나이 서른, 그리 급한 나이는 아니었는데도 우리 영애는 억울하게 노처녀라고 들들 볶였던 것이다. 그런 설정(못생기고 뚱뚱한데다 노처녀이기도 해서 뭇 남성들에게 거절당하기만 했던 영애)을 해야 드라마가 더 재미있고 시작할 때엔 지금처럼 큰 사랑을 받을 지는 몰랐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이미 영애의 팬이 돼 버렸으므로 괜히 지난 날의 애꿎은 애물단지 대우가 속상하게 느껴진다.

시즌 6에서는 한심함의 대명사 지순에게도 영복이라는 사랑이 찾아 왔고 지원과 서현은 결혼해서 행복해졌다. 혁규는 여전히 처가에 얹혀 살면서도 철이 안 들었고 지지리 복 없는 일류대생 용주는 끝내 취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애 동생 영민이가 사고를 쳐서 삼(?)수생 신분으로 애아빠가 되고 그 때문에 영애네 부모님은 속이 성할날이 없었는데 과연 시즌 7에서는 또 어떤 재미있고 사실감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나를 즐겁게 해 줄까?

시즌 7에서는 장동건 과장이 다시 돌아온다고 하던데 막돼먹은 영애씨의 고군분투가 얼른 다시 시작되길 진심으로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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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2주일이 지났을 때 나는 산후 조리원에 달려 있는 뷰티센터에서 체성분 측정을 했다. 몸무게는 53kg, 체지방은 30%였으며 당연히 복부 비만이었다. (임신 중 최고 몸무게가 58kg이었고 원래 내 몸무게는 46kg이었다.)산후 조리원에서 요가를 가르쳐 주던 요가 선생님도 그랬고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그랬다. 출산 후 3개월까지 본래 몸무게로 돌아가지 않으면 영영 살을 빼지 못하니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틈틈히 운동을 하고 스스로 음식도 조절해서 먹어야 된다고 말이다.

어른들이 엄마가 잘 먹어야 모유가 잘 나온다고 터무니 없는 양의 밥과 국과 간식과 영양식을 주실테니 요령껏 거절하고 기를 쓰고 피하면서 음식의 유혹을 잘 넘겨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 왔다.

그러나 아기가 50일이 될 때까지는 산후조리를 하면서 아기를 기르자니 운동은 커녕 일어나서 다니는 것도 힘이 들었고 100일이 되니 집 안에 틀어 박혀서 꼼짝 않고 지내는 것이 오히려 익숙해졌다. 운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모유 수유를 핑계로 밥만 꼬박꼬박 먹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굳게 결심을 하고도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애벌레처럼 꼬물거리며 살기를 반복하면서 어느덧 6개월을 보냈다.

핑계라면 핑계인데 모유 수유를 하니 밥의 양을 조절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절대로 굶어서는 안 되지만 임신 하기 전과 동일한 양을 먹으면 충분한데도 밥 한 그릇을 비우고도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다시 배가 고팠다. 밥 먹다가 아기가 울면 식사를 중단하고 아기를 달랬는데 그러고 나면 1/3밖에 남지 않은 밥그릇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미 2/3는 내 뱃속으로 들어갔을 텐데 그 밥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다시 허기가 지기도 했다. 역시 모유 수유를 한다고 저절로 살이 쏙 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출산 후 6개월 동안 거의 집에서만 지내다시피 했는데도 자연스레 몸무게는 조금씩 조금씩 계속 줄어들었다. 천천히 1kg씩 줄어들더니 47kg에 체지방 24%가 됐다.(이번에는 집에 있는 체지방률도 나오는 체중계로 쟀다.) 천성이 게을러서 매번 계획만 거창했을 뿐 운동은 거의 하지 못했고 집안에 콕 틀어박혀서 지냈는데도 6개월만에 몸무게가 거의 다 돌아온 셈이다. 운동을 꼬박꼬박 했다면 근육도 적절히 생겨서 탄력있는 몸매로 되돌릴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해서 체중은 비슷한데 체형은 전혀 달라져 버렸다.

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 전에 입던 스키니바지를 입어 봤는데 조금 불편하지만 단추는 채울 수 있었다. 잘 맞는 느낌은 아니었고 뭐랄까 꽉찬 서랍속에 옷들을 마구 쑤셔 넣으면 억지로 서랍을 닫을 수는 있듯, 바지 속으로 뱃살을 마구 구겨 넣는 느낌이었다. 입고 나서 거울에 비춰보니 허벅지와 엉덩이에도 정리되지 않은 살들이 많아서 옷태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아, 이제 봄이고 곧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 올텐데 그 전에 운동을 꼭 시작해야만 한다. 아니 시작은 자주 했으니 제대로 끝을 맺었으면 좋겠다. 몸무게가 돌아 온 것은 내 노력이 아니니 이제부터는 내 노력으로 몸매를 다듬어야 될 시간이 되었다. 1년 365일 머리 속으로는 계속 진행중인 다이어트,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내가 경험을 해 보니 임신 기간 중 적절히 몸무게가 는다면 (임신전 몸무게에 따라 7~13kg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아무런 노력없이도 6개월 정도가 지나면 몸무게는 제자리로 돌아 온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모유 수유를 하면서 집안에서만 생활했음에도 그랬으니 말이다. 대신 살이 흐물흐물 탄력을 잃고 정리가 안 되므로 유산소 운동과 특히 근력 운동을 해 주어야 임신 전 체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덧붙임. 생후 6개월(거의 180일) 아기 성장 보고서
다솔이는 키 48.3cm에 몸무게 2.84kg(병원에서 측정)으로 태어났다.
약 6개월이 지난 현재 키는 약70cm에 몸무게 8.5kg(집에서 측정했기에 오차가 심할 것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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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 나서부터 그르렁 그르렁 콧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역시나 감기에 걸려 버린 다솔이. 3월이 되어 이제 다솔이는 태어난지 6개월에 접어드는데, 그동안에는 엄마에게서 받은 면역 성분 때문에 어떠한 바이러스에도 끄떡없이 이길 수 있었으나 이제는 스스로 면역력을 길러야 될 때가 된 것이다. 엄마에게서 두 번째로 독립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첫 번째는 엄마의 탯줄에서 독립하여 그저 영양분을 받아 먹기만 하다가(생각해보니 그저 받아 먹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자기에게 꼭 필요한 성분으로만 내 몸에서 쏙쏙 빼 갔으니까 말이다. 내가 무엇을 먹든 마시든 상관없이, 태아였던 다솔이는 단백질, 칼슘, 비타민 등등을 필요에 따라 슬쩍슬쩍 가져갔다. 지방을 더 많이 가져갔으면 좋았을 것을...... . ) 자기 스스로 입을 오물거리면서 젖을 빨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면역력 독립이 두 번째이다.

육아 책에서 본 그대로였다. 안 그래도 생후 6개월 이후부터 잔병치레가 많아질 것이라고 하길래 마음을 준비 하고 있었는데 다솔이가 처음으로 감기를 경험하고 아파했다. 콧소리가 심했지만 첫날에는 콧물은 나지 않았고 열과 기침이 조금 있었고 둘째날부터 콧물이 나왔다.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자신의 증상에 대해 요목조목 설명을 할 텐데 다솔이는 그저 칭얼거릴 수밖에는 없었다. 평소보다 더 많이 잠을 재우고 평소보다 덜 먹으려고 하는 다솔이를 더 오래 안아주었다. 아픔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다솔이는 코를 훌쩍거리다가도 내가 재미있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희안한 얼굴 표정을 보여주면 금세 헤헤거리면서 좋아했다. 언제쯤이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지.

손톱으로 자기 얼굴에 자주 생채기를 내는 것을 보면 아직 아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뚜렷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확실하다. 피가 날 정도로 깊은 상처를 내고 그 상처가 다 아물면 또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니까 말이다. 감기 증상을 보인지 삼일이 되니까 기침은 완전히 사라졌고 콧물도 거의 없어졌다. 체온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아직은 조심해야 되기 때문에 되도록 외출은 삼가고 주의해서 다솔이를 관찰하고 있다.

커 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엄마에게서 독립을 하고 있는 다솔이, 다음 번 독립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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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 지 얼마 안 되는 가은이 엄마는 나와 동갑내기이다. 고등학교때부터 친하게 지내 온 내 친구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골드(?) 미스들이 많아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마음을 완전히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은이 엄마는 일찍 결혼한 까닭에 벌써 두 아이의 엄마이고 나와 여러모로 잘 맞는 것 같아서 나는 그녀와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신나는지 모른다.

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서 '시집살이요'를 같이 배웠지만 시집 무서운 줄 모르는 친구들에게 시금치가 쓰게 느껴지는 까닭을 백 번 이야기 해 봐야 헛일이요, 아기라고는 명절 때 조카들 얼굴 잠시 본 친구들이 내가 걸렸던 유선염의 아픔과 아기 키우는 재미를 이해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은 서로 존대를 하는 가은 엄마와 얼른 친해져서 가끔은 남편 흉도 좀 보고 때로는 육아 문제도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가은 엄마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아이도 일찍 낳아서 큰 아이 가은이가 벌써 여섯 살이 됐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다솔이를 안아 보며 귀여워 하는 그녀에게 나는 '무심코' 셋째 계획은 없냐고 물어봤다. 정말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그랬는데 가은 엄마는 '저도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가은 아빠가 괜찮다고, 딸 둘이라도 괜찮으니 잘 기르자고 했어요'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식당 놀이방에서 가은이와 함께 손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는 가희가 눈에 들어왔다. 딸만 둘인 가은, 가희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들 계획 없냐'는 얘길 들어왔으면 별 뜻없이 한 내 말에 그렇게 반응했을까. 나는 정말 미안해져서 엄마에게는 아들보다는 친구같은 딸이 더 좋다며 나도 둘째는 꼭 딸을 낳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지만 내 진심이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한편, 다솔이가 백일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였다. 그 사진관에는 미리 촬영을 하고 있던 아기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돌사진을 찍으러 온 듯 보였다. 그 아이의 촬영이 끝나고 다솔이 차례가 되어 나는 내 아들의 활약을 신나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아기들이 사진 찍을 때 부모는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 밖엔 할 일이 없다.) 앞서 사진을 찍었던 그 아이도 다솔이의 모습을 함께 보고 있었는데 나는 또 '무심코' 아이를 안고 있던 아이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아기 몇 킬로예요?' 나는 그저 돌 즈음이 되면 아기들의 몸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 지가 궁금했었을 뿐이었다.



아이 엄마는 조금 당황하는 듯 하더니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고, 그러나 절대로 아기가 약하지는 않다고 완고하게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그 엄마가 아기의 몸무게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다솔이가 신생아일 때 한동안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가서(2.5kg남짓) 매일 매일 체중만 점검하던 때가 떠올랐다. 다시 봐도 그 아기는 그렇게 말라보이지 않았는데도 엄마 된 입장에서는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던진 내 말이 그녀의 아픈 곳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낯선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줌마가 되니 왜이리 오지랖이 넓어지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일에도 이러쿵 저러쿵 참견하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실수를 몇 번이나 저질렀을까. 말은 어떨 땐 칼보다 더 날카롭기도 하다 그러므로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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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가 경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잠을 뒤척였을 23일, 연아 양을 응원하는 우리 국민들도 그녀와 함께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우리 언론은 물론 온 세계인들이 당연히 금메달은 김연아의 것이라며 추켜세웠고 그것은 '부담감'이라는 가시가 되어 밤낮없이 연아를 괴롭혀 왔다.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 드디어 피겨 스케이팅 쇼트 경기가 열린 24일이 되었고 어쩌면 피하고 싶었을 지도 모를 그녀의 올림픽도 시작됐다.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경기에서는 늘 이변이 있었다. 누구나 다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상했던 선수는 부진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새로운 은반의 여왕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봐 왔다. 올림픽과 유독 인연이 없었던 전설의 피겨 여왕 '미셸 콴'은 인터뷰를 통해서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사람들의 극진한 관심과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만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올림픽 경기는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마치 생사의 갈림길에 홀로 던져진 것 같았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김연아는 역시 김연아였다! 바로 앞 경기에서 '아사다 마오'가 73.78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림없이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78.50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쇼트 경기에서 당당히 1위를 지킨 김연아는 여전히 그녀에게 맞설 상대가 없음을 또 한 번 만 천하에 알리게 되었다.


나는 오늘 쇼트 경기를 쭉 지켜 보면서 내가 만약 저 자리에 선다면?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봤다. 으, 나는 극심한 소심쟁이이기 때문에 수 만명이 나를 한꺼번에 쳐다본다는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러니 절대로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부러운 이유가 딱 한 가지 있는데 바로바로 그녀들의 화려한 경기복이 탐나기 때문이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은 하나같이 가녀리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데 피겨 의상은 그런 그녀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순정 만화에나 나올 법한 근사한 옷을 입고서 은반위를 나비처럼 날아 다니는 피겨 선수들. 피겨 스케이팅은 가장 멋진 옷을 입고서 경기하는 스포츠가 아닐까? 이 글에서는 오늘(2월 24일) 있었던 쇼트 경기 중 1위에서 5위까지 성적을 낸 선수와 16위를 기록한 곽민정 선수의 화려한 피겨 의상을 살피려고 한다. 왜냐하면 너무너무 부러우니까!

실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의상마저도 김연아의 것이 단연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 쇼트 프로그램때 입은 검은색 본드걸 의상은 김연아를 더욱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하나 세심하게 연아의 장점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숨은 손길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의상 전체에 크고 작은 비즈를 달아서 무척 화려하고 비즈가 작은 움직임에도 반짝반짝 빛을 내면서 몸의 각도에 따라 다른 빛을 뿜어내고 있어서 정말 아름답다. 김연아는 목이 길어서 더 우아한 여성미를 보여 주는데 목을 휘감는 장식이 있어서 그런 그녀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어서 조금 추워 보일 수 있을 텐데 목 부분 장식으로써 그 부분을 보완했다. 뒷 모습을 보면 한 쪽 어깨에서 세 개의 선이 늘어뜨려져서 그녀의 고운 뒤태를 완성시키며 치마의 옆트임이 다리를 더욱 길어 보이게 해 준다. 옷이 너무나 예뻐서 스케이트 대신 구두로 갈아 신으면 당장이라도 파티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올 시즌 최고 기량을 선 보이며 완벽한 연기를 펼친 '아사다 마오'이다. 최선을 다 해서 트리플 악셀까지 성공했지만 모든 부분에서 김연아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본인 스스로 만족할 만큼 훌륭한 경기를 펼쳤으니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아사다 마오'는 키와 체형이 김연아와 비슷하지만 김연아가 귀여움과 관능미를 다 갖춘 것에 비해 '아사다 마오'는 귀여운 느낌이 더 큰 것 같다. 이번에 그녀가 입고 나온 의상은 붉은 색 원피스인데 검은 색으로 포인트를 주어서 세련돼 보인다.
 
손목까지 길게 이어진 소매가 전체적으로 다부진 느낌을 주는데 이번 올림픽에서 변치 않은 실력을 선보이고 싶어 한 '아사다 마오'의 신념이 옷에서도 보이는 것 같았다. 여러겹으로 망사가 덧대져 있어서 정열적이면서도 고혹적인 느낌을 주는 마오의 의상은 배와 등 부분에 프린세스 라인이 잡혀 있어서 늘씬한 그녀의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다. 치마는 하늘거리는 소재여서 회전하거나 점프를 하는 등 큰 움직임이 있을 때 마다 나폴거리면서 아름답게 흔들렸다.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입고 싶어하는 붉은 색 원피스가 정말 잘 어울린다.


이번에는 3위를 기록한 캐나다의 '조애니 로셰트' 선수의 모습인데, 그녀는 24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에 비해 한층 성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이 셋 중 가장 작으면서도 혼자서 연기하는 모습만 보면 오히려 더 커보이기도 한다.

오늘 '조애니 로셰트'의 경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눈물에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이틀 전 딸의 경기를 지켜 보려고 동행했던 어머님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조애니 로셰트'는 어머니를 잃은 가슴아픈 상황에서 경기를 치뤄야만 했다. 서글픈 탱고 선율에 맞춰 준비한 연기를 모두 마친 후에야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냈고 그것을 지켜 보던 관중들도 기립해 그녀를 위로했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그녀의 의상은 마치 어머니를 추모하는 듯 검은 색이었다. 그 위로 세 가지 색 비즈가 화려하게 박혀 있는데 붉은 색으로는 장미를 녹색으로는 장미 줄기를 수 놓고 있어서 그녀를 한층 더 성숙해 보이도록 만들어 주었다. 특히 뒷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허리까지 깊게 파고 드러난 등에 커다란 장미 몇 송이가 그려진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아찔하기까지 했다. 역시나 그녀를 잘 아는 디자이너가 만든 의상인 듯 싶다.


4위에 그친 '안도 미키' 선수는 '올림픽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며 김연아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언론들의 관심을 자기에게로 끌어오고 싶어했다. 그러나 김연아를 자극하여 네티즌들을 발끈하게만 만들었을 뿐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올림픽에서 4위를 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 아닌가. 올림픽에 도전을 했으니 메달을 따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을 '안도 미키'에게도 수고 했다고 말 해주고 싶다. 김연아가 워낙 잘 하니까 쉽게 그 기량을 따라갈 수 없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내가 생각할 때 '안도 미키'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참 큰 것 같다. 앞서 김연아를 자극하는 발언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했던 점에서도 그렇고 늘 파격적인 노출 의상과 짙은 화장을 선보이는 그녀의 경기 장면을 봐서도 그렇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예전 보다는 다소 절제된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짙은 자주 색과 검정 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옷이었다.

앞섶을 깊게 파고 길게 십자가 모양의 화려한 비즈를 달았고 몸매 선을 따라서도 반짝이는 비즈 장식을 했다. 왼쪽 오른쪽이 비대칭을 이루면서 엇갈리게 팔이 드러나는 소매 장식이 독특한데 역시나 그녀의 강한 개성이 이 의상에도 반영된 듯 보인다. 평범한 것을 보다는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여성들이라면 '안도 미키'의 의상에 높은 점수를 줄 것 같다.


다음은 말괄량이 소녀를 연상시키는 미국의 '레이첼 플랫'이다. 다른 선수들 보다 다소 통통해서 더욱 익살스럽고 귀여워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소녀들이 좋아할 것 같은 진한 분홍 색에 눈이 내린 듯 반짝거리는 비즈 장식을 단 경기복을 입고 나왔다. 그녀의 흰 피부색과 진한 분홍색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프로필을 보니 키도 조금 작은 듯 하고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도 영락없는 발랄 그 자체이다.

그런 외모 탓에 앞섶이 깊게 파진 옷을 입었음에도 마냥 귀여워만 보이는데, 앞뒤가 균일하게 계곡 모양으로 파져 있고 뒤에는 끈장식이 더해 져 있다. 비즈가 박혀 있기는 하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옷이 심심한 느낌이 들고 왠지 모르게 무성의함 마저 드는 '레이첼 플랫'의 의상, 연아의 것과 비교하니 너무 초라하다.


마지막으로 귀염둥이 곽민정 선수를 살펴 보자. 군포 수리고에 재학중인 열 여섯 살 곽민정 선수는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서 프리 스케이팅 출전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 53.16점을 얻어 16위에 올랐는데 목표를 이룬 만큼 프리 스케이팅 경기에서는 즐기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경기를 치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연성을 타고 났다는 평을 들으며 스핀과 스파이럴이 강점인 곽민정은 아직은 부족하지만 점점 성장하고 있으니, 김연아와 함께 우리 나라를 피겨 강국으로 이끌어 줄 새싹임에 틀림없다.

오늘 민정 양이 선보인 의상은 보라와 검정이 절묘하게 섞인 상큼한 경기복이었다. 옅은 색에서 짙은 색으로 점층적으로 색이 변화하고 한쪽 어깨끈에서부터 시작된 비즈가 세로로 이어져 있었다. 비즈도 세로에 꽃모양으로 물결 치듯 수 놓여 졌는데 색이 위 아래로 섞여있는 것과 비슷하게 반짝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반짝임의 강도를 조절해 조화를 이루어 놓았다. 시원하게 드러낸 허리를 오른쪽 어깨끈에서 이어지는 물결치는 비즈 장식으로 감싸 주어 가녀린 허리를 더욱 잘록하게 보여 주었다.


2월 26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피겨 스케이팅 여자 프리 스케이팅 경기가 열린다. 쇼트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냈으니 김연아 선수가 이제는 부담감을 조금 떨쳐 버리고 연습하듯 담담하게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선 보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쇼트 1위=프리 1위라는 공식이 있듯 이 날에도 우리의 연아가 분명히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또 1등을 할 것이 분명하다. 다가오는 금요일에는 연아가 또 어떠한 자태로 우리에게 감동을 줄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김연아 선수 아자! 곽민정 선수도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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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햇살이 좋아서 친구와 만나러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온 몸으로 담뿍 그 빛을 받는다. 기분 좋게 덜컹이는 버스와 적당한 따스함이 한가로운 주말 오후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꺄르르 상큼한 웃음이 버스 안에 가득 퍼진다. 아마도 여고생들인 듯 싶다. 눈을 떠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몇 가지 중 하나다.

말 소리는 짧고 웃음 소리는 길었는데, 무엇이 그 아이들을 그토록 즐겁게 하는지 슬쩍 호기심이 생겼다. 눈을 감은 채 온 신경을 귀에 집중시켜 아이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니 그 나이 또래의 여학생들이면 누구나 그렇듯 무슨무슨 오빠들에 관련된 이야기가 한 가득이었다. 귀여움이 하늘을 찌르고 어떨 땐 요염하기도 하다는 그 오빠들은 요즘 그 아이들이 사는 이유였다.

승훈이 오빠, 정수 오빠, 시백이 오빠도 멋있어!
태범이 오빠는?
그 오빠는 상화 언니랑 사귀잖아?
아니야 그냥 친구랬어.
9년 동안이나?
응. 9년 동안 절친이래.

엥? 왜 이렇게 이름들이 낯익을까? 슬쩍 눈을 떠 봐도 모르는 여자 아이들인데 그 애들이 이야기하는 이름이 낯설지가 않았다. 아이들이 최고로 멋있어서 미니 홈피까지 다 훑었다는 그 오빠들은 바로바로 밴쿠버 동계 올림픽 대표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연예인을 봤을 때도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한 소녀는 이제서야 자신의 이상형을 만났다며 호들갑이었는데, 아줌마인 내가 봐도 마음이 흐뭇해 지는데 아이들의 눈에는 오죽할까?

나도 여자인지라 그 아이들처럼 남자 선수들에게 더 관심이 갔는데, 국가 대표를 얼굴로 뽑았는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훈남일까? 우리 선수들은 경기복을 입은 모습도 참 멋있지만 일상 생활에서 찍은 사진들도 무척 근사했다. 실력과 외모를 겸비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이승훈 선수(스피드 스케이팅 5000m에서 아시아 최초로 은메달/ 100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승훈 선수는 원래 쇼트트랙 선수 출신인데 국가 대표에 탈락하게 되자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꾸었단다.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으면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바꾸어서 연습한지 1년도 안됐는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딸 수가 있었을까? 그것도 아시아인 최초로 말이다. 아시아인은 체격상, 체력상 불가능하다고 했던 종목인데 당당히 새로운 역사를 쓴 셈이다. 노력만 한다면, 끊임없이 노력만 한다면 사람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또 다시 보여준 이승훈 선수. 작은 일에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할 수 없다'고 말하던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5000m에서 금메달을 딴 '스벤 크라머(네덜란드)' 선수는 인터뷰에서 마지막 세 바퀴를 도는 동안 이를 악물고 달렸는데, 온 힘을 다 했는데도 이승훈 선수의 추적이 자신을 미치게 하였다고 말했다. 생애 최고의 경기였다고 이승훈 선수의 실력을 인정하였단다.

이정수 선수(쇼트트랙 1500m/ 1000n에서 금메달을 땄다.)

귀여운 외모와 개구진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블로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이정수 선수. 이 선수가 금메달을 따던 경기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었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반성하게끔 했던 순간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아쉽고 속상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정수 선수가 금메달을 따 주어서 그 날 쇼트트랙 경기를 보던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정수 선수는 미니홈피에 각종 재미있는 사진들을 공개해 놓고 있어서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귀여운 외모를 더욱 빛나게 해 주는 다부진 근육질 몸매와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연습을 했다는 승리를 위한 열정이 인상적인 선수다. 아, 그리고 이정수 선수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진행하는 '표정 올림픽'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는데, 표정 올림픽은 올림픽 시상대에 선 선수들 중 가장 인상적인 표정이나 몸짓을 취한 인물을 네티즌이 투표를 하여 선정한다.

모태범 선수(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 1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모터범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태범 선수. 그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오기로 더 열심히 경기에 임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도 했던데, 그 만큼 이번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보여 준 기량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무도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이렇게 많은 메달이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 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너무도 값진 메달인데, 그의 말처럼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기에 참 외로운 땀방울을 흘렸을 것 같다.

한편 이상화 선수와 9년 지기 친구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자 인터넷에는 이 둘의 다정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널리 퍼지면서 너무 잘 어울리니 이 기회에 한 번 사귀어 보는 것은 어떻겠냐며 네티즌들은 모태범 선수와 이상화 선수를 연결시키지 못해 안달이다. 한 블로그에는 이 둘을 '우리 결혼했어요'의 결정판으로 패러디하기도 했는데 그 정도로 최근 이 둘의 인기가 대단하다.

성시백 선수(쇼트트랙에서 금메달에 도전중이다.) 
아, 아직까지도 아찔한 기억이 채 가시지 않았다. 1500m 경기에서 넘어져 아깝게 메달권에서 벗어났던 성시백 선수. 그 때 성시백 선수의 마음을 헤아리니 너무나 안타까워서 속상한 마음에 폭포 같은 눈물을 쏟아 냈다는 이야기가 여러 블로그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별명이 섹시백일 정도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수다. 성시백 선수는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2004년에 국가 대표가 됐는데 올림픽에는 이번이 첫 출전이란다. 2006년 국가 대표에서 탈락하고 난 후 쇼트트랙을 그만 두려고 할 만큼 슬럼프에 빠졌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1위로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이미 경기를 치른 1500m를 포함해 1000m, 500m, 5000m 계주 등 전 종목에 출전할 예정이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이니 남은 경기에서 지금의 씁쓸함을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그가 도전할 종목이 여럿 남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특히 성시백 선수를 따를 자가 없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주 종목 500m 경기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여심을 설레게 하는 훈남 선수들을 살펴 보았지만 올림픽 대표팀에는 훈녀 선수들도 만만치가 않다. 남자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기량도 뛰어나지만 미모도 어찌나 뛰어난지 경기가 끝나고 난 후 선수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놀라는 경우가 참 많다. 물론 구슬땀을 흘려가며 연습한 우리 선수들에게 외모가 뭐 중요하겠냐만 하나같이 다 예쁘고 멋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이상화 선수(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기대주로 손꼽히던 이상화 선수가 한국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사상 첫 금메달을 땄다. 동계 올림픽 하면 쇼트트랙만 생각해 오던 우리 나라가 스피드 스케이팅에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자 선수 중에서는 김연아 선수만 화려한 조명을 받았기에 대회 시작 전후로 이상화라는 이름 한 번 제대로 들어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무심함 속에서도 꾸준하게 연습에 임했던 이상화가 금메달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이뤄냈다. 이로써 앞으로는 스피드 스케이팅도 효자 종목으로 거듭날 것이 분명해졌다.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딴 이승훈, 모태범과는 모두 한국체육대학교 07학번 동기라고 하는데 특히나 모태범과는 어렸을 적 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사이라서 각별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이상화가 미니 홈피를 통해 일상 생활에서 찍은 사진들을 공개하자 많은 네티즌들이 그녀의 미모를 감탄하고 있는데, 경기복을 입고 얼음판 위에 있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에프터스쿨의 '유이'와 닮은꼴로도 화제가 되고 있는 이상화 선수, 정말 고생이 많았고 진짜 잘 했다.

서정화 선수(모굴스키에서 아깝게 결선 진출을 하지 못했다.) 

서정화 선수는 모굴 스키 선수이다. 모굴이란 여러 사람이 스키를 타고 슬로프를 달리는 동안 눈이 패이고 쌓이기를 반복하면서 슬로프 면이 울퉁불퉁하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모굴 스키란 슬로프에 인위적으로 모굴을 만들어 놓고 점프와 회전 기술을 이용해서 스키를 타는 것인데 1992년에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모굴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리는 것 처럼 우리 나라에서는 비인기 종목이라 대중들과 언론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때문에 서정화 선수는 코치진도 없이 고독하게 연습을 해야만 했고 피땀흘려 노력했으나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그러나 보통 세계적인 스키 선수들이 서른 즈음 전성기를 맞는데 서정화 선수는 이제 스무 살이다. 게다가 모굴 스키는 장애물을 통과해야 되기 때문에 체구가 아담한 동양 선수에게 더욱 유리하다고 하니 서정화 선수의 앞날이 더욱 밝다.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빠지지 않는 미모까지 갖추고 있어 엄친딸로도 유명한 서정화 선수는 서울외고를 졸업하고 미국의 남가주 대학에 진학한 상태인데 일리노이주립대, 조지워싱턴대, 뉴욕대, 에모리대까지 다섯 개의 대학에서 러브콜을 받은 인재이기도 하다.

김연아 선수(피겨 스케이팅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김연아 선수! 20일에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로 날아갔는데 그것 하나만으로도 밴쿠버가 들썩였다고 한다. 각국의 취재단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려고 했기에, 김연아 선수가 연기했던 007의 한 장면 처럼 공항이 떠들썩했단다. 한편 미국에서 한 설문조사에서 동계 올림픽의 미녀 선수 중 열 명을 뽑았는데 동양인 선수로 유일하게 김연아 선수가 들어 있다. 역시 김연아 선수는 동서양을 초월하여 미모와 실력 모두를 인정받은 셈이다. 이제 며칠 뒤면(24일) 김연아 선수의 경기가 열리게 된다. 많이 부담도 되고 떨리겠지만 차분히 연습대로만 경기를 치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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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성시백 선수의 쇼트트랙 1000m 준결승 경기를 다시 봤다. 벌써 여러 번 본 경기지만 볼 수록 더 마음이 아프다. 이정수 선수와 이호석 선수가 금, 은메달을 따던 날, 메달 소식 덕에 기뻤지만 솔직히 기쁨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이정수 선수와 이호석 선수의 환희 사이로 자꾸만 성시백 선수의 눈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쇼트트랙 1500m와 1000m 경기에서 아쉬운 경기를 치룬 성시백 선수. 나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성시백 선수도 이번 동계 올림픽을 통해서야 알게 됐지만 이 선수에게 특히 마음이 쓰인다.

2위로 들어 오다가 넘어져 버렸던 1500m 결승전 이후 성시백 선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잊어버려야 다음 경기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위로와 응원의 말들을 했겠지만 그의 마음은 쉽사리 그 순간의 속상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1000m 준결승전,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성시백 선수는 부정 출발까지 했다.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속이 상하다 못해 활활 타버릴 것 처럼 떨렸을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다른 선수들 보다 앞서 발이 나갔을 것이다. 그의 경기 장면을 보고 또 보고 자꾸 자꾸 보다 보니 그의 마음까지 읽어지는 듯 한데, 볼 수록 나도 성시백 선수와 마찬가지로 속이 아렸다.


계속해서 경기장면.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고 두 번째 출발신호를 기다렸는데 이번엔 약간 늦게 출발하였으나 역시나 곧 1등으로 치고 나가게 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눈 깜짝 할 사이에 미국의 '오노'와 캐나다의 '찰스 해멀린'에 밀려 3등이 되고 만다. 진짜 잠깐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성시백이 틀림없이 선두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지막 바퀴에서 '찰스 해멀린'에게 선두를 내줬고 바깥 쪽을 견제하다가, 안으로 치고 들어온 오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왔다.

우리나라 중계석에서는 끝까지 성시백의 결과를 판단하지 않았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가 오노보다 조금이라도 더 먼저 들어왔기를 기도해 봤지만, 결국 0.0006초 차이였다.

0.0006초. 가늠하기도 어려운 시간이다. 이 찰나의 시간 때문에 우리 성시백 선수는 또 다시 뜨거운 울음을 삼켜야 했다. 아니 이제는 삼킬 수 조차 없을 만큼의 눈물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경기가 끝나고 성시백 선수는 그의 미니 홈피를 통해 딱 반이 지나갔다며 남은 경기에 최선을 다해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에 그는 또 한번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 경기를 준비할 것이다.

이제 남은 경기는 그의 주 종목인 500m와 5000m 계주이다. 경기의 결과가 좋아서 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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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열까지 너무나 다른 남자와 여자, 집에 손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보이는 반응도 하늘과 땅 차이다. 갑작스레 집에 친구가 찾아온다는 전갈을 보내왔을 때 남자들은 '반갑거나, 귀찮거나' 중 하나이지만 여자의 경우는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하고도 복잡한 심정에 휩싸이게 된다. 절대로 갑자기 여자를 방문하면 안 되는 이유도 이와 같은데 아무런 준비 없이 손님을 맞게 된다면 여자의 분노가 하늘에 닿을 것이니 남자들은 유념하기 바란다.

손님이 온다는 소식을 들음과 동시에 여자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없을 수록 여자는 더욱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데 머리속에 집안의 구조를 재빨리 떠올린 다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장소부터 치우고 쓸고 닦는 일을 순식간에 해 치우게 된다. 갑자기 원더우먼이 된 여자를 보고 남자들은 사람 사는 곳이 다 마찬가지인데 뭐 하러 호들갑을 떠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친구에게든 남편의 친구에게든 아파트 광고 속에 나오는 가장 이상적인 안주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여자들의 심리이다.

청소가 끝나면 대접할 음식 준비로 넘어간다. 이 때도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평소에는 잘 해 먹지 않는 이름 모를 소스가 뿌려진 샐러드며 후식으로 내 놓을 과일에 음료까지 하나라도 흠잡을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평소에는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지만 손님상엔 특별히 주문받지 않는 이상 절대로 커피를 내 놓지 않는다. 홍삼차 한 잔에 수많은 상징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건강을 생각하고 여유가 있으며 기품있는 안주인의 모습이 차 한잔으로 완성된다.


올 설에는 어떤 홍삼차를 드릴까요? 라고 한 마디 덧붙임으로써 '뭔가 있어 보이는' 데에도 성공했다. 우리집에는 특별한 정성원의 홍삼 제품들이 있는 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홍삼차와 홍삼 엑기스는 마셔봤겠지만 홍삼에 꿀이 들어 있는 것이나 홍삼에 마가 들어 있는 것은 처음 접해보기 때문이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포닌'이라는 전문 용어를 적절히 섞어 주면서 마시는 것 하나도 건강을 생각해야 된다면서 기력을 보강하는 데에도 피부에 탄력을 더 하는 데에도 홍삼만한 것이 없다며 생색을 냈다. 좀 비싸고 먹기가 번거로워서 그렇지 우리 몸에 홍삼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다들 알기에 손님들도 흔쾌히 맞장구를 쳐 주셔서 화기애애한 후식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남자 손님들은 거의 홍삼 100%가 들어 있는 오리지널의 기분좋게 쌉싸름한 맛을 원했고 여자분들은 달콤한 꿀이 포함돼 있는 허니를 원했다. 그리고 젊은 분들일 수록 부드러운 마가 더 들어 있는 천마 홍삼을 드셔보고 싶어 하셨다. 내 놓은 음식이며 차를 손님들이 달게 드실 때 안주인의 기분도 최고로 좋아지는데 그런 뜻에서 이번 명절 손님 맞이는 성공적이었다.

손님이 많이 오셔서 손이 바쁠 땐 믹스커피 보다 타기 더 쉬운 파우치 형태의 홍삼차를 내면 되니까 쉽고 편리하게 건강한 홍삼차를 드릴 수 있었고 우리 가족들끼리 오붓하게 마실 땐 엑기스 형이 더 좋았다. 기호에 따라 상황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어서 더 좋은 것이 정성원 매일매일 8시 홍삼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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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원의 홍삼 time 중 오리지널에는 홍삼이 100% 들어 있다. 이름값하느라 비싸면서도 홍삼 함량은 터무니 없이 낮은 제품들이 참 많기에 가격과 성분을 잘 살피면서 똑똑하게 골라 마시는 지혜가 필요하다. 홍삼차는 약이 아니기에 한 잔으로 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고 매일 꾸준히 마셔야 되는데 이 제품은 100%를 자랑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하니까 매일 마셔도 부담이 없다.

손님들이 밀물처럼 밀려 왔다가 썰물 처럼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던 설 연휴가 끝나고 가족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즐기면서도 우리는 몸에 좋은 홍삼차를 마셨다. 아버지는 오리지널, 남편은 천마, 나는 허니. 세 사람이 각자 좋아하는 것 한 병씩을 맡아서 기호에 따라 한잔 씩 마셨는데, 역시나 건강에 좋은 것이 맛도 좋다며 온 몸으로 그 효능을 표현해 주는 가족들이다. 가족들과 마셔도 친지들과 마셔도, 역시 있어 보이고 싶을 땐 홍삼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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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서의 일이다. 밖이 그렇게 추웠나? 새삼스레 창문을 여시고 바깥 날씨를 가늠하는 엄마께 그저 헤헤헤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이동하고 마트 안은 따뜻할 것이기 분명하므로 얇은 니트 가디건 하나 걸치신 엄마와는 달리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완전무장이었다.

귀까지 덮는 군고구마 장수 모자에 목 위까지 깃을 올린 패팅 점퍼에 어그부츠까지. 몸 안으로 바람 한 점 안 들여 보내겠다고 작정을 한 것 같이 보였을 것이다. 그 위에다 목도리를 두를까 마스크를 쓸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역시 마스크가 더 안전할 것 같아서 눈만 빼꼼 내 놓고 마트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 마트 안은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바글거렸고 나는 내 똑똑한 판단력을 기특해하며 안심하고 장을 봤다. 난방을 얼마나 했는지 삐질삐질 땀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나는 털모자를 벗지도 마스크를 내리지도 않았다. 좀 갑갑하고 불편한 것이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내 친정은 경북 안동이다.
서울 사람들은 절대로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지역의 번화가 풍경인데,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에게?' 정도 될까? 무슨 뜻이냐 하면 친구와 함께 시내 중심에서 약속을 하고 음, 구체적으로 안동에서 가장 큰 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그 친구와 만나 서로 간단히 안부를 물은 후 커피를 마시든 밥을 먹든 분위기 좋은 곳을 골라 들어가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십여 분 쯤 거리를 배회했다고 치자.

오랫만에 만난 친구라 할 말도 많고 마땅히 들어갈 장소도 없었다면? 아마 이들은 십여 분 동안 시내를 세 바퀴쯤 뱅뱅 돌며 모든 밥집, 찻집 간판을 다 훑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일 것이다. 한참 얘기를 하다가 마주 오는 행인이 낯이 익어서 어디서 본 사람이었더라, 기억을 더듬으면 아까 두 바퀴째 돌 때 나를 앞질러 가던 사람이고 그 사람과 또 마주칠 확률은 70% 이상. 지역의 번화가는 주말에도 비교적 한산하기 때문에 좀 길게 놀 경우 같은 사람과 다섯 번 이상 마주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까닭에 나는 친정에 내려갈 때면 집 앞에 있는 수퍼마켓에 갈 때에도 추레한 몰골로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손바닥 보듯 빤한 동네에서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다녔다간 금세 누군가에 눈에 띌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었다는 소리, 늙었다는 소리, 살 쪘다는 소리는 진짜 듣기 싫은데 동창이라도 만나게 되면? 생각만해도 자존심이 상한다. 몰골이 말이 아닐 땐 아예 집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가야 될 땐 비비크림에 립글로스는 필수, 머리가 부스스하다면 모자는 선택이다. 귀찮음이 극에 달해서 씻기는 싫고 장은 봐야 되면 완전무장으로 신분을 숨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기 낳더니 아줌마 다 됐네, 역시 나이와 주름살은 속일 수가 없어, 어머! 쟤 살 찐 것 좀 봐. 평생 이런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이 모든 여자들의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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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예쁘장한 여학생 한 명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톡톡 치는 것이 눈에 띈다. 한 눈에 봐도 '도'를 공부하고 있는 아가씨가 분명하다. 옛날이었다면 모를까 이제는 언론을 통해서도 정체가 들통난 마당에 그녀의 손길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을 터. 역시나 행인들은 벌레라도 본 듯 몸서리치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만하면 상처가 될 만도 한데 여학생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오히려 터질듯 방긋거리며 또 다른 사람의 어깨를 톡 건드린다.

초보인가, 아무나 붙잡고 늘어지는 폼이 한 명에게도 '도'를 전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경기 탓에 도의 세계도 먹고 살기가 힘든 까닭인지 이 사람 저 사람 닥치는 대로 일단 붙잡고 보려는 심산인 듯 보였다. 그래도 예전에는 관상을 보는 척(얼굴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는 말을 해야 되므로) 한참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가 적당한 목표물(?)이 나타나면 말을 걸던데 이제는 딱 봐도 아무나 집적댔다.

나는 한 때 사나흘에 한 번 꼴로 '도를 아십니까?'에 걸렸었다. 길을 물으려나 싶어 대꾸를 했다하면 백발백중, 내 미모에 반해서 말을 거나 생각하면 역시나! 얼굴에서 이상하게 기운이 느껴진다며 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속삭이던 사람들이었다. 죽상을 하고 다닐 때였으니까 노량진에서 교원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몸이 피곤하거나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꾸미지 못했을 때, 그래서 몰골이 말이 아닐 때 꼭 그런 사람들에게 붙잡였었다.


하루는 나이가 좀 있는 아줌마와 젊은 여자가 학원 수업을 받고 집으로 가는 나에게 도를 권하길래 대체 어쩌려나 보려고 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척을 했다. 그랬더니 가까운 커피숍에 가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좀 하잔다. 얼른 눈에 띄는 곳에 셋이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는데 나더러 계산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나를 위한 것이니까 내 정성이 들어가야 된다고...... . 그럴 줄 알았음 멀더라도 편의점으로 가는 거였다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쨌든 나이 든 아줌마는 사주를 보듯 내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묻더니 내가 덕을 많이 쌓아 조상님들이 나를 도와주신다고 듣기 좋은 말들을 쫙 늘어놓았다. 앞으로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이고 집안 식구들과 내 건강은 어떤지 지난 날에 힘든 일은 없었는지 물으며 이야기가 한참을 빙빙 겉돌더니 결국 종착한 곳은 '돈'이었다. 조상님들이 내 앞길을 터 주시려고 애쓰는 만큼 나도 그에 맞는 보답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성의껏 재물을 준비해서 제사를 준비하면 되는데 당시 나처럼 백수인 사람들은 보통 백만 원 정도로 한다고 했다. 지역별로 제사를 지내는 곳이 마련 돼 있는 듯 나에게 OO동으로 얼른 같이 가자고 부추겼다. 아무리 들어도 허무맹랑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커피값 만 이천 원이 아까워서 죽을 지경인 나에게 백만 원을 준비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대낮에 커피숍에서 듣기엔 참 민망하고도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대체 이런 아줌마와 왜 함께 다니는지 궁금하기도 걱정스럽기도 해서 젊은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는데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도 인상이 안 좋아서 너무 놀랐지만 짐짓 태연한척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도 그녀는 묵묵부답. 대신 아줌마가 대답을 해 주었다.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안 좋은 기운을 그녀가 온몸으로 다 받아내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할 수도 없고 저리도 힘들어 하는 것이란다. 뭐 아까는 내 얼굴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보인다고 하더니 손바닥 뒤집듯 잘도 말이 바뀌었다. '네, 잘 들었어요'하고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은데, 오랫만에 한 건 올린다 싶어 열변을 토하던 아줌마가 쉽사리 놔 줄리 없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겨우겨우 그녀들에게서 벗어난 것 같다.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호기심에 그녀들을 따라갔었는데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니었을까? 해맑은 얼굴로 사람들 사이에 서서 도를 권하는 여학생이 참 추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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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에 있던 남편을 부르던 내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틀림없는 '환호'였다.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는 것 같으면서도 불만이나 불안함 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이 더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여러 번을 반복했던 일이기에 다솔 아빠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대강 눈치를 챈 듯 서둘러 나에게로 달려왔다. 역시나 웃는 얼굴이었다. 이제부터는 분업이다. 아랫도리를 벗겨내고 나서도 심하게 버둥거리는 다리를 잡는 것은 남편의 몫, 나는 기저귀를 벗겨 낸 다솔이의 은밀한 부위를 세심하게 닦아 내는 일을 하면 된다.

욕조에 물을 받아서 엉덩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면 끝.

모유를 먹어서 며칠에 한 번씩 '응가'를 누는 다솔이는(모유는 분유보다 흡수력이 좋기 때문에 그렇단다.) 가끔 큰 일을 보는 대신 그 양이 어마어마한데 나는 그것을 치우는 일이 더럽기는 커녕 무진장 재미있다. 기저귀가 흘러 넘칠 듯이 꾸역꾸역(?) 나오는 그것을 볼 때면 혼자 보기가 너무나 아까워서 꼭 남편을 부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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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기들은 소화기관이 짧기 때문에 변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젖이 짧은 소화 기관을 빨리 통과하게 되면 소화액 때문에 녹변을 보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황금색변을 보여주는 다솔이가 어찌나 기특하고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임신 중이었을 때 시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어머님은 할머님과 함께 아기(현재 나의 남편)를 돌봤는데, 가장 속상했던 것이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이셨단다. 다솔이 아빠는 어머님께도 첫 아이였지만(처음이자 마지막) 할머님께도 첫 손자였기 때문에 무척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래서인지 기저귀를 갈 때가 되면 어머님이 손을 댈 겨를도 없이 할머님께서 쓱싹 해치워버리셨단다.

시어머님은 아들의 기저귀를 당신 손으로 갈아 본 적이 없어서 그게 너무 서운하셨다고. 나는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처럼 종이 기저귀가 흔한 시기도 아니었기에 천 기저귀로 작은 일 큰 일을 다 받아내야 했을텐데 누군가 냄새나고 수고로운 일을 대신 해 주면 고맙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어느 날 어머님은 할머님 몰래 아기 곁에서 기저귀를 지키고 앉아 계시다가 기저귀 갈 때가 되자 얼른 그걸 가지고 화장실로 가셔서 문까지 잠그시곤 감격하며 빨래를 하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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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그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이, 내가 낳은 아이여서 그런지 내 젖을 먹고 눈 '그것'이어서 그런지 기저귀를 갈 때 전혀 냄새가 나지도 않고 더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오죽하면 수시로 다솔이의 아랫도리를 킁킁거릴까. 다솔이는 용변을 보고도 보채지 않고 잘 노는 까닭에 냄새를 맡아 봐야 된다. 요즘엔 뒤집기가 숙달이 돼서 툭하면 엎드려서 노는데 응가를 하고 나서도 엎드리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럴 땐 '오 마이 갓'을 저절로 외치게 되지만 그 모습마저 정말 귀엽다.  

친정 엄마는 맨손으로 응가를 거침없이 만진다며, 나 더러 '엄마'가 다 됐다고 하셨는데 나에게 기저귀 갈기란 엄청나게 즐거운 놀이의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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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인 윷놀이 경기를 열기로 한 설날 저녁이다. 식구가 너무 많은지라 떡국은 가족별로 집에서 먹고 윷놀이 시합은 우리집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져 있는 외갓집에서 하기로 했다. 외갓집에 들어서니 미리 모여있는 며느리들에 사위들까지 이미 북새통이었는데 한쪽 방에서는 꼬마 녀석들이 벌을 서는 중이었다. 야단을 맞은 모양인지 우리 가족들이 들어서는 대도 뾰루퉁해 있었다.

무슨 잘못을 했길래 설날 저녁부터 저러고 있을까 궁금해하다가 이내 답을 찾고는 푸시식 웃음부터 터뜨렸다. 안방의 한 쪽 벽면에 전에 없던 추상화가 한 가득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열심히 낙서를 했는지 빈틈이 별로 없었다. 색색깔로 그려져 있는 사람 얼굴, 동물 얼굴과 한글을 모방해서 만든 듯 한 요상한 글씨들까지...... . 새로 벽지를 바르지 않고선 절대 원상태로 돌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우리의 등장으로 아이들의 벌도 사면을 받았는데 녀석들은 벌써 기력을 되찾았는지 헤헤거리면서 또 이 방 저 방을 우르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마도 벌을 받을 땐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야 빨리 용서 받는 다는 것을 알고 눈치껏 연기를 한 모양이다. 영리한 것들!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니 잠시 과일을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고만고만한 아이들 셋이서(나이는 5살 안밖이다.) 벽지를 도화지 삼아 그림 그리기 삼매경에 빠져 버렸단다. 도배한지 얼마되지 않는 데다가 그림을 그린 도구가 사촌 언니의 샤넬 립스틱을 포함한 값비싼 화장 도구들이라 가중죄가 적용됐다.

자연스레 화제는 '아이들이 자랄 수록 집안이 황폐해진다'는 것으로 옮겨갔고 다솔이(5개월)가 자라 보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금방 깨닫게 될 것이라고 잔뜩 겁을 주었다. 4살, 5살 연년생 형제를 키우는 사촌 언니가 가장 큰 한숨을 쉬었고, 말괄량이 딸아이를 둔 덕에 아들 둔 엄마 못지 않은 수고를 하고 있다는 사촌 오빠도 거들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가전 제품이며 살림 살이가 남아나질 않는데 그런 것들이야 고장나면 다시 살 수 있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아이들의 안전이란다.

그래서 서랍들의 손잡이는 모조리 빼고 가스레인지 손잡이도 빼고 냉장고 문처럼 여닫이는 다 묶어 놓아야 한단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들이 벽에다 낙서를 하는 것 정도는 눈감아 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릴 땐 자꾸만 벽에다 낙서를 하고 싶어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의 창의성이 개발될 것 같기도 해서다.

나는 다솔이의 방을 꾸밀 때 아예 낙서를 할 수 있게끔 만드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다솔이의 방은 이렇다. 신랑의 이야기를 들으니 남자 아이들은 요새 만들기를 좋아하과 구석지고 약간 어두운 곳에서 놀기를 즐긴다니까 침대 아래에서 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천장은 구름이 떠 있는 하늘 모양으로 도배를 해 주고 싶다. 그리고 벽면엔 낙서가 지겨워질 때까지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큰 종이를 붙여주고 싶다. 대신 꼭 크레파스로만 그리기로 약속을 하고 말이다.

지금 내가 가장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 방의 벽지인데 예전 내 방은 그냥 모든 면을 똑같은 벽지로 발랐었다. 그런데 다솔이 방에는 가능하면 구간을 나누어서 다른 벽지를 발라주고 싶다. 예를 들어 어떤 한 면엔 귀여운 인형들이 가득한 벽지를 또 다른 면엔 숲이 울창한 벽지를 또 한 면엔 파도가 넘실거리는 벽지를 말이다. 물론 아랫 쪽에는 낙서를 할 수 있도록 큰 종이를 붙여야되겠지. 아이 방을 생각하다가 내 상상력과 창의성까지 저절로 길러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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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조리극이 따로 없었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 그럴 수밖에 없다는 듯, 온 가족들은 각자 있던 자리에서 모두 나와 거실로 모였지만 모두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다. '아, 내 글, 내 글, 날렸으면 어떡하지'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 나를 비롯하여 무슨 일인지 재차 확인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곧이어 할 텔레비전 드라마를 아쉬워하는 동생과 틀림없이 내일 아침까진 이럴 것이라는 아버지의 체념까지 전부 자신의 말만 잔뜩 쏟아놓았다.

밤 10시가 가까웠을 때였다. 갑자기 '팟'하는 소리와 함께 일순간 어둠이 해일처럼 나를 덮쳤고 불빛하나 없는 방안에서 잠시 두려움에 몸을 떨었던 것 같다. 곳곳에 있던 가족들은 하나같이 이게 무슨 일이냐며 더듬더듬 길을 찾아 거실로 모였는데 각자 처한 상황이 달라서인지, 모두들 걱정이 컸기 때문인지 우스꽝스러운 현대 부조리극의 한 장면처럼 자기 말을 하기에 바빴다.

그 극의 주인공은 단연 '나'였던 게 분명한데 가장 심하게 절규한 사람도 가장 나중까지 안정을 찾지 못한 사람도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내 글'을 외치며 소파에 얼굴을 잠시 묻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내 글'을 외치다가 옆에 있던 곰인형을 흔들면서 '안돼'라고 소리친 것도 나였다. 몇 분간 아수라장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내 양초를 찾아 불을 켜고 전력 공사에 전화를 거는 등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나는 컴퓨터로 쓰던 글이 한꺼번에 날아 갔을까봐 끝까지 전전긍긍했다.



휴대폰을 켜 주변을 조금 밝힌다음(휴대폰을 발명한 사람에게 축복을) 양초를 2개 찾아 불을 켰다. 그것만으로도 실내는 꽤 밝아졌고 심지어 낭만적인 분위기마저 만들어졌다. 새삼스럽게 전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우리집은 전기레인지로 밥을 해 먹고 수돗물도 전기를 통해서 끌어오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전기는 소중했다. 심지어 화장실 물도 내릴 수 없었다.

옛날 사람들은 호롱불 하나 켜고도 살았다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새삼 존경스러웠고 동시에 안쓰러웠다. 야행성인 우리는 다음날 아침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경우 이 밤을 무엇을 하면서 보낼 것인지에 관해 조금 이야기를 했는데, 어디서 '몰래카메라'라도 찍고 있는 듯 정말 우스운 장면이 연출 됐다. 주전부리라도 있으면 그걸 먹으면서 시간을 보낼텐데 그 날따라 사다 둔 과자도 없고 물을 끓일 수 없으니(전기레인지) 라면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부조리극에서 코미디로 장면이 바뀐 듯 엄마께서 할 수 있는 건 운동 뿐이라시며 다이어트공 위에서 탱탱탱 몸을 튕기시자 아빠도 덩달아 훌라우프를 돌리기 시작하셨다. 시간은 열시 삼십 분이 조금 넘었고 집 밖도 하나 같이 깜깜한 것으로 보아 온 동네가 정전인 것이 분명하고 우리 집은 수개월 전 '00동'에서 '00리'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촌동네라 금방 고쳐질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일찍 잘까 더 기다려 볼까 고민을 하다가 누워서 기다리겠다는 절충안을 내고 소파에 드러 누워 버렸다.


다이어트 공이 탱탱탱 굴러가는 소리와 훌라우프가 휙휙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락말락하는 사이에 불빛이 몇 번 깜박깜박 하면서 불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더니 거짓말처럼 눈 앞이 환해졌다. 그세 정전의 원인이 밝혀진 모양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가족들은 재빨리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왔고 집안 분위기도 다시 활기차졌다. ...... 나만 빼고.

다시 켠 컴퓨터 속에 역시나 내 글은 존재 하지 않았고 다들 평온을 되찾았는데 나 혼자만 더 큰 절규를 외쳤다.
'내 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전을 경험해 보니 전기는 진짜 진짜 소중한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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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경기가 끝났다. 한 쌍의 페어 스케이팅 커플이 낭만적이고도 멋진 경기를 끝낸 후 관객들을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담뿍 담아 인사를 건넨다. 숨죽이며 그들의 연기를 보고 있던 관객들은 그제서야 안심을 하며 맘껏, 소리높은 환호를 쏟아낸다. 페어 스케이팅은 곡예 묘기 동작이 포함돼 있어서 보는 이들을 더욱 긴장시키기 때문에 관중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는데, 자신이 응원하는 커플이 나오기라도 하면 너무나 아찔하고 걱정스러워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성공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난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데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인사를 마친 후 남자 선수가 돌연 한쪽 무릎을 꿇고 빙판 위에 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사전에 이야기가 없었던 듯 경기 진행팀들은 당황했으며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웅성거렸다. 당황하긴 여자 선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얼마 후 전광판에 남자 선수의 입모양이 잡히고 곧 상황을 파악한 관객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모아 외치기 시작했다.

'Yes, Yes, Yes, Yes...... .'

대회 도중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남자 선수가 자신의 파트너에게 청혼을 한 것이었다. 마침내 여자 선수도 'Yes'라고 대답했고 그들은 눈물과 환회가 섞인 감미로운 키스를 나누게 되었다.



영화 속 한 장면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이 이야기는 '레나 이노우에'와 '존 볼드윈'의 실화이다. 페어 스케이팅은 환상적인 호흡이 경기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선수들이 실제 연인이나 부부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케이팅은 대개 어린 나이에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한 번 짝을 이루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줄곧 같은 사람과 연기를 하므로 이들은 가장 훌륭한 동료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일 수밖에 없다.

페어 선수들은 은쟁반 위에서 때로는 열정적인 사랑을 때로는 냉담한 이별을 연기하는데 사력을 다해 감정을 표현하기에 진짜 사랑이 싹 트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숨이 멎을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사람, 오랜 시간을 함께 연습 해 왔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천상의 페어 스케이팅 커플이라고 불리던 '예카테리나 고르디에바(애칭: 카티아)'와 '세르게이 그린코프'도 실제 부부사이였다. 내가 부부사이였다고 말하는 까닭은 세르게이가 28세라는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카티아가 10살, 세르게이가 14살일 때 이 둘은 처음 짝을 이루었는데 세계 선수권 우승 4회, 올림픽 금메달 2개라는 대단한 성과를 이루게 된다. 이들은 1991년에 결혼하여 이듬해 딸을 낳고 행복이 절정에 이르렀지만 신이 질투를 했는지 가슴 아픈 결말에 이르게 된다.


 

1995년 연습을 하던 도중 세르게이가 아이스링크에 쓰러져 의식을 잃고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의사들은 그가 선천적으로 심장에 결함이 있었다고 밝혔다. 카티아는 갑작스레 닥친 시련으로 인해 실의에 잠겼고 언론은 그녀가 다시는 스케이트를 신을 수 없을 것이라고 수근거렸지만 3개월 후 그녀는 새로이 얼음판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홀로, 그러나 기억 속에 있는 세르게이와 함께 그를 추모하는 공연을 연 것이다. 이 공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아픈 선물이 되었고 이후 그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텔레비전 방송으로 무수히 만들어졌다. 세월이 흘러 카티아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됐지만 사람들은 '예카테리나 고르디에바'와 '세르게이 그린코프' 커플의 환상적인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2010년 벤쿠버 올림픽에 참가한 페어 선수들 중에도 은쟁반 위에서 열연을 펼치다 실제 부부로 발전한 팀이 꽤 있다. 이번 대회에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인 중국의 '쉔 슈에'와 '자오 홍보'도 자오가 빙상 위에서 청혼 해 결혼에 이른 닭살 부부인데 벌써 20년 째 함께 할동하과 있는 노련한 팀이다. 쉔-자오 팀은 은퇴했다가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복귀했는데 대단한 실력을 선 보이면서 돌아와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같은 중국의 페어 팀인 '장 단'과 '장 하오' 선수도 부부인데, 이들은 4대륙 피겨 선수권 페어 쇼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팀이다. '장-하오' 팀을 떠올리면 토리노 동계 올림픽 때의 그 아찔한 장면도 어김없이 기억날 것인데 그들이 빙판 위에 선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다. 공중 4회전을 하고 착지하던 장 하오가 무릎을 얼음판에 강하게 찧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공중 회전 이후 일어난 일이라 그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지독한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을 보고 모두들 무릎 골절이 의심될 정도로 큰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하오는 경기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관객들의 격려 속에서 연기릘 재개, 결국 은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멋진 경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부부인지 연인인지 알 수는 없으나 너무나 잘 어울려서 진짜 사랑하는 사이였으면 싶은 팀도 있다. 우리 나라는 페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때로는 감미롭게 때로는 아찔하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이들의 아름다운 경기 장면을 보면서 조금은 여유롭게 우승팀을 점쳐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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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아버지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계셨다. 그 날 따라 일이 너무 많은 탓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으셨단다. 야간 운전 중 최대의 적은 졸음이고 아버지도 어김없이 졸음과 싸워야만 했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기를 수십 번. 애를 써 봤지만 너무 피곤하셨기에 당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에 빠져 버리셨고 얼마 쯤 지났을까,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떠 보니 어찌 된 상황인지 눈 앞이 깜깜하셨단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을 있는 힘껏 밟으셨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사고를 예감하시곤 운전대에 머리를 숙이고 담담히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셨는데...... .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고개를 드시고 천천히 좌우를 살피며 상황을 가늠했는데, 당신이 앉아 계시던 곳이 차 안은 맞았으나 자동차가 있던 곳은 고속도로 위가 아닌 휴게소 주차장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지 않는 까닭에 '필름이 끊기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지를 못하셨었는데, 이번에 '술'이 아닌 '잠'에 취하셔서 난생 처음으로 필름이 끊기는 경험을 하시게 된 것이었다. 한참 후에야 기억은 조각조각 돌아왔고 그 조각엔 휴게소 주차장에서 잠깐 주무시기로 한 아버지의 모습도 있었다.

'아빠, 그럴 땐 이 방법을 쓰시면 되는데요...... .'
내 머리를 스치고 간, 잠을 쫓아내는 용한 비법이 있어 아버지께 전수해 드렸다.

나는 예전에 몸서리나는 '임용고사' 시험을 대비해서 공부했었다. 3년 동안 한 공부로도 임용에 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공부하는 기술은 꽤 익혔다. 야간 운전과 마찬가지로 시험 공부를 할 때에도 가장 큰 적은 졸음이다. 교사 임용 시험은 1년에 한 번 밖에 없고 그 시험에 불합격하면 또다시 1년을 공부해야 했기에 수험생들은 누구나 자기 몸을 던져서 공부를 해야만 한다. 장기간 공부를 하는 까닭에 늘 피곤에 쩔어 있었고 항상 잠이 부족했다.

그 때 나는 졸음을 한 방에 해결하는 비법 하나를 터득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건강에는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커피 더하기 ㅂ카스' 이것이 내가 남몰래 써 먹던 비법인데 너무 싱거운가? 그런데 정말 효과가 있다. 계획했던 공부의 양에 비해 성과가 턱없이 부족할 때, 당장 모의고사가 코 앞인데 책상에서라도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이 죽을 지경일 때 이 방법을 한 번 써 보자. 정말 용하다.

나는 원래 갈색 병에 들어 있는 음료를 마시지 못했다.(맥주는 제외하고) 어린 시절 엄청나게 구역질 나던 물약으로 된 멀미약이 갈색 병에 들어 있었던 까닭에 그것을 연상시키는 다른 음료까지 마시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누구에겐가 물 밖으로 튕겨져 나가 다 죽어가던 금붕어에게 ㅂ카스를 부어 주니 기력을 회복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를 들었다. 들을 땐 웃어 넘겼지만 공부를 하다가 몸이 너무 힘들었을 때 믿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갈색병에 든 ㅂ카스를 마셔 보았는데 생각보다 맛도 괜찮을 뿐만 아니라 꽤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을 응용하여 졸음이 쏟아져 더 이상의 공부를 하기 힘들 정도가 될 때 가끔씩(장기적으로 먹으면 몸에 좋지 않으므로 절대로 ㅂ카스를 자주 마시면 안된다.) '커피 더하기 ㅂ카스'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고 연이어 ㅂ카스를 마셔 주는 것인데, 어마어마한 양의 카페인이 한꺼번에 몸 속으로 쏟아져서 그런지 마시는 순간 마약한 사람처럼(물론 마약을 한 사람의 모습이 어떤지 정확하기 알 지는 못한다.) 기분이 두둥실 뜨면서 묵직했던 몸까지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하루 정도는 말짱한 정신으로 밀린 공부를 말끔히 끝낼 수 있다.

공부를 하든, 운전을 하든 이길 수 없는 졸음 때문에 너무 힘이 들 땐 커피 더하기 ㅂ카스를 마셔보자. 다시 한 번 당부해 드리지만 절대로 자주 이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보름에 한 번 꼴로? 그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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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지하철을 탔다가 7인용 노약자석을 봤다. 와, 신기하다! 했는데 친구의 말이 이것(노약자석 확대) 때문에 얼마나 말이 많았는데 이제야 알았냐고 한다. ...... 그랬던가? 노약자 중 '노(老)'에 대한 반발이 심했었다는데 어쨌든 나는 '임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통과.

임신 9개월이 될 때까지 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대중 교통을 이용했다. 뭐 그 때쯤 되면 별로 외출할 일도 없거니와 밖에 나갔을 때도 먼 곳에는 갈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버스와 지하철로 다녀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운동 삼아 지하철을 타면서도 항상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습관처럼 빈 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리게 됐다.

엘리베이터는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타 보겠냐 싶었고, 자리 찾기는 오히려 움직일 때는 괜찮은데 달이 찰 수록 한 곳에 오래 서 있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빈 좌석을 찾으면 앗싸라비아지만 없으면 출입문 쪽 막대 손잡이에 몸을 기대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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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6개월이 넘어서 배가 어느 정도 볼록 나오게 됐을 땐 지하철을 탈 때마다 누군가가 양보를 해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도 했지만 생각보다 지하철 인심은 야박했다. 배가 덜 나와서 그냥 살 찐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싶어 일부러 배를 쓸어내리는 시늉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번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배 쓸어내림'을 하다가 왠지 치사한 생각이 들어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포기는 빨랐고 그 편이 현명했다. 자리가 없으면 아예 출입문 쪽으로 서고 만다. 하긴 생각해 보면 똑같이 차비 내고 타는 지하철인데 임신부라고 특별히 앉을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불편할 줄 뻔히 알면서 왜 굳이 지하철을 탔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8개월 때까진 그런대로 서 있을 만 했고 요령껏 즐길 줄도 알았다.

임신 8개월 때부터는 슬슬 3인용 노약자석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나도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는 늘 불안했다. 소문히 흉흉했다. 갓 임신한 여성이 그 자리에 앉아 깜박 졸다가 새파랗게 어린 것이 어른 공경할 줄 모른다는 고함소리에 기함할 뻔 했다는 얘기,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맞았는데 놀라 쳐다보니 웬 할아버지의 부채였다는 얘기, 그 자리에 앉을 땐 절대로 한 눈을 팔아서는 안되고 배를 있는 힘껏 내밀고 주위를 살펴 경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들이 떠돌아 다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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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리를 양보 받아서 목적지까지 편하게 가 보겠다는 심보가 고약하긴 하지만 지하철에서 임신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야박한 것은 사실이다. 일찌감치 자리를 포기하고 출입문 옆 막대 손잡이에 기대가던 어느 날, 누가 봐도 만삭이 분명한 여성이 7인용 좌석 앞에 서 있는 것을 봤다. 그 여성도 도움을 구하는 '배 쓸어내림'을 하는 듯 했지만 끝끝내 앉아 갈 수는 없었다.

3인용 노약자석 위 그림 속에는 분명히 배가 볼록 나온 임신부가 있는데 그 자리엔 경쟁률이 너무 치열해서 임신부 따위(?)는 엉덩이를 들이밀 수 없었다. 이제(친구는 이미 한참 전이라고 말했지만) 지하철에 7인용 노약자석이 생겨났으니 오갈 데 없는 임신부들이 맘 편히 차지할 자리가 하나 쯤은 생겨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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