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저찌해서 모 명품 브랜드 보석 전시회에 초대를 받게 됐다. 평소 명품의 'ㅁ'도 모르고 지냈고 그 흔한(?) '구'삐리리 짝퉁 가방 하나 없는 내가 뜬금없이 명품 브랜드에 초대를 받게 되다니, 참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나는 칠렐레팔렐레 들뜬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드레스 코드가 검정과 하양이라길래 오늘 입으려고 별렀던 비둘기색 상의를 포기하고 결혼식 때 장만한 검은 예복 상의를 꺼내 입었다.
그래도 명색이 보석 전시회인데 꾸질꾸질한 맵시로 갈 수는 없지. 공들여 치장을 하고 거울을 보니, 와우 새삼 아름다운걸?
전시회가 열린 모 호텔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보석 전시회에 가면서 실반지 하나 안끼고 나온 것이 맘에 걸려서, 결혼 예물이라도 좀 걸치고 나올 걸 후회를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카메라가 있으니까. 남편의 카메라다. 내 위상에 날개를 달아 줄거라고 남편이 가져가길 권유하길래 못 이기는 척 매고 나온 값비싸고 무거운 카메라, 이게 있어서 조금 든든하긴 했다.
날씨도 참 좋았고 경치도 좋아서 룰루랄라 신이 나서 전시회장에 도착했다. 블로거의 본분을 지키고자 여기저기 사진부터 찍고 내 동선을 하나도 남김없이 기록으로 남긴 후 입구로 향했다. 생각보다 큰 행사였던 듯 호텔 밖에서부터 오늘 행사를 알리는 사진, 알림판 등을 마련해 두었고 행사장 입구에는 초대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꼼꼼히 확인하는 안내원들이 여럿 있었다. 보석 관련 행사였던 만큼 만일에 사태를 대비하는 경호원들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이름을 확인하고 안내를 받아 들어 간 곳에는 연회 음식이 마련돼 있었다. 음식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있어도 샌드위치나 머핀 등에 커피 정도를 줄 줄 알았는데, 이건? 대체로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호텔 뷔페 못지 않았다. 하긴 그곳이 호텔이었으니까.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은근한 조명이 켜져 있는 그 곳에는 일찍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냠냠 음식을 먹으려는데, 순간 나의 여섯 번째 감각이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예리하게.
거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내가 그동안 봐 왔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천천히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니 그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이고 들렸다. 일단 그녀들이 입은 옷들이 내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비록 몇 년 된 것이긴 하지만 나도 내 생애 가장 비싼 옷(결혼 예복)을 입고 갔는데도 말이다. 나도 보는 눈은 있어서 비싼 것을 구별할 줄은 아는데 여기저기 비싼 것 투성이였다. 요즘 유행한다는 봉긋한 어깨가 멋스러운 고급 옷들, 화려한 레이스, 형형색색 찬란한 실크 블라우스, 잡지를 넘기다 헉소리가 절로 나와서 대체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 세고 또 세 봤던 그런 류였다.
신발은??? 가방은??? 그제서야 나는 내가 간 곳이 '꽃 보다 남자'의 구준표나 갈 법 한 VVIP들만의 비공개 파티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 난 일행도 없이 겁도 없이 혼자 간 것이다. 무심코 아래를 봤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동네 아줌마들에게서 참 편할 것 같다는 이유로 별점 5개를 받은 인터넷에서 삼만 오천원 주고 산 고무재질의 내 신발이, 그녀들의 아찔하고 미끈한 킬힐과 뒤섞여 있으니 참 우스웠기 때문이다.
뭐 어때? 나도 내 나름대로 VVIP인걸, 그들과 그럭저럭 섞여서 음식을 먹고 여종업원에게 음료도 받아 마시고 최대한 두리번 거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나름대로 그곳에 적응을 하고 있는데, 카메라가 자꾸만 걸리적 거렸다. 블로거들의 모임에서야 크고 값비싼 카메라가 좋아보이겠지만 이런 모임에서는 홀대받기 딱 좋은 소품이었다. 기자인지 손님인지 구별도 잘 안 가고 카메라가 걸리적 거려서 음식을 담을 때도 신경쓰이고.
금잔디가 왜 구준표의 파티에서 음식을 엎지르고 커피를 쏟는지 경험해 보니 알겠다. 어색한 그 자리에서 나도 소스통 한 번 엎지르고, 숟가락 하나 떨어 뜨렸으니까. 혼자서 아구아구 먹으려니 흥도 안 나고 재미도 없어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옆 방에 마련 돼 있던 보석 전시실로 갔다.
예쁘긴 예뻤던 24억 짜리 목걸이와 참 싸게 느껴졌던 10억 짜리 반지,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팔기도 한다고 좋아하며 반지, 귀걸이를 보여 달라던 어떤 사람, 그 사람이 착용 해 볼 보석들을 흰 장갑을 끼고 고이고이 벨벳 소재의 상자에 담아 가는 경호원, 가장 있어 보이는 어느 부부에게 찰싹 붙어서 정성껏 보석들을 설명해 주며 이번 기회에 하나 들여가시라고 권유하는 여직원, 그 틈에서 나 홀로 붕 떠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하게 전시실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24억짜리 목걸이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는 그 목걸이를 할 때는 어떤 옷을 입어야 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삼만 오천원 짜리 내 신발은 같이 신기 민망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