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나도 몰랐다. 다솔이의 얼굴에 하나 둘 씩 붉은 반점이 생겨나고, 늘상 잘 웃던 아기가 자꾸만 칭얼거렸지만 영문을 몰랐다. 무언가가 불편했기 때문일텐데 그 무언가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더 속상한 마음이었다. 끙끙대며 보채는 아기를 밤새 보살펴야 했지만 피곤이 대수가 아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울 수밖에 없는 아기가 너무나 가여워서 나도 같이 울 뿐이었다.
나는 출산 후 아기를 혼자서 돌볼 수 있을 때까지 친정에서 머물렀었다. 다솔이의 외갓집은 경북 안동인데 그곳에서도 외곽으로 벗어난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전원 주택이다. 아버지께서는 평생 염원이셨던 가축을 기르고 텃밭을 일구는 삶을 드디어 살게 되셨고 나머지 가족들도 덩달아 자연 친화적인 삶을 새로 얻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흙을 밟고 다녀야 되는 먼지 나는 시골이 탐탁지 않았지만, 막상 아버지의 손길이 닿아 그곳에 철마다 다른 채소들이 자라고 토끼, 닭, 개가 있는 그야말로 그림 속 전원 풍경이 생겨나자 내 눈에도 참 좋아보였다. 나중에 다솔이가 크면 그곳에서 살아있는 자연 교육을 할 수 있겠다는 욕심에서였다.
게다가 황토로 만든 찜질방이 딸려 있어서 산후조리하기에도 딱이었다. 다솔이는 산후조리원을 나와서부터 꽤 오래 안동에 있는 외갓집에서 머물렀었다.
그동안 잘 있었다는 인사를 드리고 분당에 있는 우리집에 와서부터 얼굴에 붉은 것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친정 어머니의 도움 없이 혼자서 아기를 돌보느라 내가 서툴렀기 때문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수소문 끝에 나는 곧 임신 중에 새로 입주한 우리 아파트가 다솔이를 아프게 한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나마 많이 나았을 때의 다솔이 얼굴이다.
세상에!
현대식으로 갓 지어진 아파트에서 아기와 함께 알콩달콩 새롭게 살아보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아기를 아프게 하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새집증후군이라는 말과 사례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특히나 가장 소중한 내 아이에게 일어나다니 참을 수 없이 속상했다.
물 맑고 공기좋은 시골에서 지내다 와서 더 변화를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얼굴과 몸에 오돌토돌한 붉은 것들이 올라와 아기를 상하게 하는 것도 마음 아팠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간지러움이었다. 시간이 지나 아기가 손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긁기 시작했는데, 아직 어려서 얼굴엔 손이 닿지 않아 긁을 수 없으니 애꿎은 귀만 탈이 나도록 긁어댔다.
정확하게 어디가 간지러운지는 잘 모르겠고 간지러움 때문에 짜증은 나고, 해서 쉽게 손이 가 닿는 귀를 피가 날 정도로 잡아 뜯은 것이었다.
안쓰러운 다솔이의 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 말도 못하는 아기가 유해한 환경 때문에 아픔을 겪고 있으니 엄마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친환경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건강하게 사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례를 찾아보니 우리 다솔이의 경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솔이는 워낙에 얼굴이 깨끗했기에 울긋울긋한 것들이 나타나자마자 내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대처하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다른 아이들을 보니 말도 못하게 심하나 경우도 있었다.(그러나 내 아이의 눈에 티끌만 들어가도 가슴이 무너지는 것이 엄마다.)
하도 긁어대서 온몸을 전부에 성한 데가 하나도 없는 아이, 너무 쇠약해져서 도시에서는 도저히 살지 못하고 결국 나무가 많은 곳으로 이사를 해야 되는 아이, 아토피 때문에 밤에 잠도 잘 수 없는 아이, 심지어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아이, 일상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아이. 그 아이들의 엄마는 얼마나 많은 밤을 아이와 함께 울었을까?
많은 전문가들이 원인을 '집', 구체적으로는 집을 지을 때 사용된 화학 성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학교나 집) 보낸다. 그만큼 실내 공간의 환경은 아이들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내 공기 안에는 석유 화학 문명이 만들어낸 각종 화학 제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이지 않는 유독 화학 물질들이 많이 있다.
더 예민할 수록 더 약할 수록 더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데, 세상에서 가장 예민하고 약한 존재는 바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환경 문제에 너무 소홀했다. 눈 앞에 있는 이익에 연연했기 때문이었다. 환경을 지키는 것이야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을 왜 내가 하필 왜 지금 해야 되는지 개연서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이 바로 나, 더 나아가 내 가족, 그리고 내 아이들을 아프게 한다면? 땅을 치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현대인들은 집이나 건물을 지을 때 화려한 외관에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좀 더 비싸보이도록 좀 더 눈에 띌 수 있도록 막대한 화학 물질들을 쏟아 부었다. 자연은 처참하게 무시한 채 말이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화려하게 만든 집들이, 우리의 홀대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환경이 거꾸로 우리를 상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눈에 화려하게 보이는 제품일수록 몸에 치명적인 유해 성분들이 훨씬 더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우리들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목놓아 찾았던 삶의 질 향상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안락하고 편리한 아름다운 집이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고 아프게 한다니 말이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수고롭고 표가 안 나는 일이지만 '겉모양'보다는 '건강'과 '자연과의 화합'을 더 중시한 집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총 68가지의 기술이 적용되었다는 '그린 투모로우'는 건물 효율화를 통해 연간 에너지 수지를 제로나 플러스로 유지해 주고
재생목재, 바이오융합재재 등 친환경 마감재를 사용한 친환경 건축물이다.
에너지가 절약되니 경제적으로도 좋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아서 더 좋다. 그동안 벽이나 바닥에서 나오는 화학 물질이 아이들의 피부와 호흡기를 상하게 했었는데 그린 투모로우는 친환경 마감재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생태복원 개념을 적용한 친환경 조경 등으로 탄소제로를 실현해 국내 처음으로 세계적으로 권위를 갖춘 미국그린빌딩협의회가 주관하는 친환경 인증제도인 LEED 인증 플래티넘 등급을 받기도 했다.)
실제 그린 투모로우는 건물의 최적화 배치와 향, 고성능 단열, 벽체나 창호 등을 통해 에너지 사용을 크게 낮추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계 및 전기 설비를 적용해 기존 주택 대비 약 56% 에너지 사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건설됐다. 여전히 남게 되는 약 44%의 에너지는 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로 자체 생산, 궁극적으로 화석 에너지 사용을 제로화 했다. 그 결과
일반 주택은 40년 생애주기 동안 55.7kg-co2/m2.yr을 발생시키는 반면 그린 투모로우는 이산화탄소 발생이 '0'이다. 이산화탄소 발생률이 제로라니 이제 자연에게 덜 미안해해도 되겠다.
그린 투모로우는 외관은 일반 주택과 비슷하지만 곳곳에 최첨단 녹색 기술이 숨어 있어서 아이들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다.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태양열 발전 시스템은 일반 전기와 급탕용 전기를 생산한다. 지하 10m는 연중 15도를 유지하는 점을 이용, 지열을 끌어와 온수와 난방을 해결해준다. 집은 북동쪽을 높게, 남서쪽을 낮게 지어 여름에는 자연 통풍이 되고(환기만 잘 시켜줘도 집안 내부의 공기가 맑아지기 때문에 아토피의 염려가 덜해진다.) 겨울에는 북쪽의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최소화했다.
찬바람이 씽씽쌩쌩 겨울에도 우리집의 창문은 매 시간 열렸다. 벽지에서 바닥에서 더이상 토해 낼 화학 성분, 포름알데히드가 없어질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환기를 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오염 물질이 들어올까봐 꽁꽁 닫고 살았던 것이 오히려 실내 공기를 탁하고 위험하게 만들었었다. 듣기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다솔이의 피부는 백옥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그리 심하지 않을 때 내가 알아차린 덕분이기도 하고, 꽤 오랜 시간 전원 주택에서 머물면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 안타까운 것은
한 번 화학 성분 때문에 쇠약해져 앓게 된 사람은 상황을 호전시키기도 힘들뿐더러 평생 조심하면서 살아가야만 한단다. 그러니 미리미리 주의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최고다. 옛날 부모님 세대가 사셨던 구닥다리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 그러니 삶의 질을 높여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 환경과 친하게 지내는 삶을 지금부터라도 살아야 된다.
엄마가 되면서 내 인생의 두 번째 막이 열렸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 왔던 '집'의 의미가 그저 평안과 쉼을 주는 공간이었다면, 다솔이가 태어남으로 인해 행복이 넘쳐나는 곳, 사랑이 가득한 곳, 충분한 휴식과 넉넉한 음식이 있는 건강함 그 자체로 바뀌었다. 어릴 땐 흙먼지 날린다고 마땅찮게 생각했던 우리 친정집, 나는 이 곳에서 힌트를 얻어서 이 다음에 다솔이가 좀 더 자라면 흙장난하면서 맘껏 뛰놀 수 있는 집을 선물하고 싶다.
감자를 캐느라 손톱 밑이 새까맣게 돼도 괜찮다. 아장아장 걷다가 풀뿌리에 걸려 넘어져도 괜찮다. 아침이면 아직 어스름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강아지들에게 냠냠냠 맛있는 밥을 주고, 닭이 횃대에서 내려와 제일 먼저 마실 물통을 채워 주고, 토끼가 밤새 잘 잤는지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다.
아이가 꾸는 꿈 속에 무채색 빽빽한 보기 싫은 빌딩숲 보다는 넓고 푸른 숲이 더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아이가 그리는 그림 속에 무표정한 사람들이 가득하기 보다는 이름모를 벌레며 달콤아삭 과일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다솔이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는 집, 다솔이의 생각이 더 크게 자라는 집에서 우리 가족이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