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서의 일이다. 밖이 그렇게 추웠나? 새삼스레 창문을 여시고 바깥 날씨를 가늠하는 엄마께 그저 헤헤헤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이동하고 마트 안은 따뜻할 것이기 분명하므로 얇은 니트 가디건 하나 걸치신 엄마와는 달리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완전무장이었다.
귀까지 덮는 군고구마 장수 모자에 목 위까지 깃을 올린 패팅 점퍼에 어그부츠까지. 몸 안으로 바람 한 점 안 들여 보내겠다고 작정을 한 것 같이 보였을 것이다. 그 위에다 목도리를 두를까 마스크를 쓸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역시 마스크가 더 안전할 것 같아서 눈만 빼꼼 내 놓고 마트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 마트 안은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바글거렸고 나는 내 똑똑한 판단력을 기특해하며 안심하고 장을 봤다. 난방을 얼마나 했는지 삐질삐질 땀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나는 털모자를 벗지도 마스크를 내리지도 않았다. 좀 갑갑하고 불편한 것이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내 친정은 경북 안동이다.
서울 사람들은 절대로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지역의 번화가 풍경인데,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에게?' 정도 될까? 무슨 뜻이냐 하면 친구와 함께 시내 중심에서 약속을 하고 음, 구체적으로 안동에서 가장 큰 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그 친구와 만나 서로 간단히 안부를 물은 후 커피를 마시든 밥을 먹든 분위기 좋은 곳을 골라 들어가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십여 분 쯤 거리를 배회했다고 치자.
오랫만에 만난 친구라 할 말도 많고 마땅히 들어갈 장소도 없었다면? 아마 이들은 십여 분 동안 시내를 세 바퀴쯤 뱅뱅 돌며 모든 밥집, 찻집 간판을 다 훑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일 것이다. 한참 얘기를 하다가 마주 오는 행인이 낯이 익어서 어디서 본 사람이었더라, 기억을 더듬으면 아까 두 바퀴째 돌 때 나를 앞질러 가던 사람이고 그 사람과 또 마주칠 확률은 70% 이상. 지역의 번화가는 주말에도 비교적 한산하기 때문에 좀 길게 놀 경우 같은 사람과 다섯 번 이상 마주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까닭에 나는 친정에 내려갈 때면 집 앞에 있는 수퍼마켓에 갈 때에도 추레한 몰골로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손바닥 보듯 빤한 동네에서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다녔다간 금세 누군가에 눈에 띌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었다는 소리, 늙었다는 소리, 살 쪘다는 소리는 진짜 듣기 싫은데 동창이라도 만나게 되면? 생각만해도 자존심이 상한다. 몰골이 말이 아닐 땐 아예 집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가야 될 땐 비비크림에 립글로스는 필수, 머리가 부스스하다면 모자는 선택이다. 귀찮음이 극에 달해서 씻기는 싫고 장은 봐야 되면 완전무장으로 신분을 숨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기 낳더니 아줌마 다 됐네, 역시 나이와 주름살은 속일 수가 없어, 어머! 쟤 살 찐 것 좀 봐. 평생 이런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이 모든 여자들의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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