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뚫고 하이킥'이 끝나 버렸다. 시트콤 뒤늦게 보기 시작하셔서 느즈막히 지붕킥에 반해 버리신 아버지는 본방송과 케이블에서 하는 재방송, 또 한참 전에 했던 방송을 해 주는 재방송을 한꺼번에 보시느라 내용 이해가 뒤죽박죽 엉망징창이셨다. 그래서 누가 누구와 사귀는 사이인지, 황정음의 학교가 왜 서운한지, 세경이는 왜 그 집에서 일만 하는지, 자옥 아줌마네 집에는 왜 그리 학생들이 많은 지를 잘 알지 못하셨지만 곧 종영한다는 소식에 이렇게 재미있는 방송을 계속하지 왜 끝내냐시며 아쉬워 하셨었다.
최고의 유행어 빵꾸똥꾸를 외치고 다니는 초등학생부터 우리 아버지 세대까지 모두들 재미있게 봤던 시트콤이기에 '지붕킥'이 끝나 버렸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데, 이런 기분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세경과 지훈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서 그 둘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서 올려 놓은 글, 세경이가 사실은 귀신이었다는 글, 왜 그런 결말을 택해야 했는지에 대한 항의 글 등등 계속 되는 여운들 때문에 가슴 앓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끝나 버린 것도 허무한데 뭇 남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청순 글래머 세경과 뭇 여성들이 흠모했던 훈남 지훈이 말도 안 되게 죽어 버리다니,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세경과 지훈의 죽음보다 나를 더 충격에 몰아 넣은 것은 신세경의 실체였다! 나는 본방송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주말 동안 다시 보기 서비스를 통해서 몇 편의 방송을 연달아 봤는데 알고 보니 순진무구 청순가련 세경이 사실은 꼬리 아홉 달린 여우였지 않나? 준혁이를 철저하게 이용(?)하면서 자신의 사랑도 집요하게 이루려고 했던...... 왕 내숭이 무섭기까지 했다.
세경이는 준혁이 자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랬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해맑게 '용꼬리 용용'을 외치면서 준혁 학생과 공부를 하고 준혁이가 자기 앞에만 서면 바보처럼 구는 것을 즐기고(?) 준혁이와 가끔씩 데이트를 해 주면서 희망 고문을 하며 준혁 학생이 자기를 계속 좋아하도록 만들었다.
회상 장면을 보면 준혁이에게 묘하게 웃어 주는 장면, 준혁의 어깨에 기대는 장면, 같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알고 나서 보니 쉽게 말해 어장관리를 하고 있었던 거여서 무척 괘씸했다. 자기를 좋아하는 줄 뻔히 알면서 그리고 그 마음을 받아 줄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어떻게 그런 식으로 행동을 했는지 선수도 보통 선수가 아니었다.
끝까지 준혁을 거절하면서도 선물로 '뽀뽀'를 주고 마지막까지 착한척을 잃지 않는다.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로 하는 대학에 가기로 약속해요...... 하면서 말이다.
세경이는 지훈에게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사랑을 고백했다.
또 지훈과의 마지막 한 때는 어떠한가.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떠나기로 했던 세경은 끝끝내 밍기적 대면서 지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슬아슬하게 어긋나는가 싶더니 용케 같은 차를 타고 속앳말을 할 기회도 얻는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왕내숭 세경이 놓칠 리 없지. 세경은 지훈 때문에 한국을 떠나기 싫었노라고, 떠나기로 결정을 하고서 많이 아팠었노라고,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그래도 또 못 볼 것을 생각하니 힘들 것 같노라고 속사포 처럼 쉴 틈없이 마구 말을 쏟아냈다.
세경의 기습 고백에 당황한 지훈이 정신을 차릴 겨를도 주지 않은 채 세경은 결정타를 날리는데,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 이대로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해 지훈을 기겁하게 만든다. 이미 정음의 남자 친구인 것을 알고 있다고 얘기했고 둘이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고 격려까지 했으면서, 그러나 나는 당신을 좋아하니 이대로 시간이 멈추길 바란다니!
예의 순진한 얼굴로 차분하게 자기 맘을 고백하는 세경을 지훈은 정신없이 바라보고, 그 둘은 결국...... . 세경의 바람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렸다.
세경이는 진정한 선수였다.
3년이 흐른 후, 세경을 생각한 것만으로도 준혁 학생은 눈시울을 붉혔다. 여전히 준혁은 세경을 잊지 못하는 눈치였는데 최적의 어장 관리를 통해 자기를 좋아했던 준혁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최선의 시간대를 공략해 자기가 좋아했던 지훈을 얻은 세경 양, 절대 얼굴에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감정이 실리지 않는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세경이는 알고보니 무시무시한 왕내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