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 날 케이블 방송을 보고 또 보다가 동이 틀 무렵에야 잠자리에 들어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이럴 때면 꼭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생각난다. 게으른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명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획보다 훨씬 더 일찍 침대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나의 철천지 원수 '햇볕'이 창문으로 나를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 저리 몸을 비틀고 커튼을 끌어다 가려봐도 얼굴 전체가 따끔거릴 정도로 세기가 강했다. 한겨울에도 해가 이렇게 뜨거울 수 있는지 전에는 몰랐었다.

비의 근육과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춤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태양을 피하는 법'의 노래 가사가 완벽하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나도 아무리 태양을 피해서 단잠을 계속 자려고 해도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 쓰지 않는 한 절대 가려지지 않을 것 같았다. 햇볕은 비타민D를 합성시켜주고 우리의 기분도 맑아지게 하지만 우리를 점점 더 주름지게 만든다. 그러나 자외선이 피부 노화의 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내가 햇빛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자는 잠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방 안에 있으면서 뭘 그리 걱정하느냐고 말씀하시는 분은 고 녀석의 무시무시함을 아직 모르시는 것이다.


우리 눈으로 보이는 곳에는 모두 가시광선이 존재하는데 이 가시광선과 함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자외선(UV)이다.

자외선은 크게 세 가지 광선으로 나뉘는데
(1) UV-A : 피부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여 탱탱한 피부의 필수 조건인 콜라겐을 파괴하고 수분까지 빼앗아 가서 자글자글한 주름을 만들어 낸다. 또한 피부를 빨갛게 달아 오르게 만드는 것도 요 녀석이다. (UV-A차단 지수는 PA+, PA++, PA+++ 등으로 나타낸다.)

(2)UV-B : 피부를 태워 심하면 화상까지 입게 만들고 각질층의 수분을 앗아가서 피부 표면을 거칠게 만든다. (UV-B차단 지수는 SPF로 나타낸다)

(3)UV-C : 오존층이 파괴 됨으로써 복병으로 등장한 가장 무서운 광선이다. 이 광선은 세균을 죽이고 생물의 성장에 영향을 주며 우리가 직접 쬘 경우 피부암에 까지 걸릴 위험이 있다.


자외선이란 녀석은 유리는 물론 물도 투과하며 구름 낀 흐린 날에도 고스란히 우리 피부에 전달된다. 스키장에 다녀 온 후 피부가 달아오르는 경험을 해 본 분들도 많을 것이다. 이것은 겨울에도 자외선이 아주 활발하게 우리를 괴롭히고 있으며 눈에 반사 돼 더 무시무시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뜻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양이 아주 강렬한 여름 한 철에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있으나 탱탱한 피부를 위해서는 여름은 당연하고 사계절 내내 선크림을 애용해야만 한다.

나는 그나마 집에 있을 때는 햇볕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에서 지내는 것으로 자외선 차단제를 대신하지만, 예민한 분들은 집에서 조차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에는 제품들의 형태도 아주 다양하게 나와서, 피부에 다가 손쉽게 뿌리는 스프레이 형식에서부터 끈적이지 않고 가볍게 바를 수 있는 로션 형식, 그리고 립밤처럼 고체 형식으로 된 것까지 있다. 그러니 피부의 유형이나 자외선 차단이 필요한 상황등을 고려하여 취향 껏 고르면 되겠다. 나는 메이크업 베이스를 겸하고 있는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는데, 화장의 단계는 줄여주면서 태양까지 피할 수 있어서 참 좋다.


가끔 보면 자외선 차단 지수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으신 것 같다. 나는 그냥 SPF35정도를 쓰는데 여기서 숫자 1이 15분 동안 자외선을 차단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산수 계산을 해 보면 나는 대충 8시간 정도 안심할 수 있다는 소리다. 어떤 분들은 SPF50이 넘는 제품을 쓰시기도 하던데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차단 지수가 너무 높으면 피부에도 무리가 갈 것 같아서 30~35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적어도 외출하기 30분 전에는 발라주는게 좋으니 빼먹지 말고 꼭 챙겨바르자.

아, 그리고 요즘에는 자외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서인지 낮에 바르는 화장품 중에는 자외선 차단 성분을 조금씩 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로션이나 파운데이션 등에도 미세하게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가 있는데, 이 들을 같이 바른다고 해서 차단 지수가 더해지는 것은 아니니 유의하기 바란다.

단언하건대 탱탱녀들의 화장대에는 사계절 내내 자외선 차단제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귀찮다는 핑계로 제품은 바르지 않으면서, 동안  피부는 유지하고 싶다는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반응형
반응형
2월 초에 해외 여행을 준비 중인 나는, 정보를 얻으려고 여기 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1년 6개월 전에 이용했던  한 여행사 홈페이지에다가 문의 글을 남겼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 처럼  내가 가고 싶은 나라와 떠날 날짜를 적고 가격을 물어보는 상투적이면서도 짧은 글이었다. 꼭 그 여행사를 통해서만 가려던 것은 아니라서 다른 여행사에도 비슷한 글을 몇 개 더 남겨 두었다. 가격과 사은품 등을 저울질 해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리라는 심산이었다.

이튿날 오전에 메일을 확인하니, 1년 6개월 전에 이용했던 그 여행사에서 벌써 답글이 와 있었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열었는데 그 내용이 예상밖이었다. 나는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여행사 측의 답장도 건조하면서도 상투적인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랫만이에요'로 시작하는 글은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 연락을 못했다가 만난 친구의 인사처럼 반갑고 다정했다. 글도 어찌나 율동감있게 썼는지 글만 읽었는데도 상대의 인상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딱 한 번 이용한 손님을 기억하고 그토록 다감한 어투로 메일을 보낼 수 있다니, 업체가 이메일을 통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당연히 이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을 가려고 마음 먹고 답장을 쓰면서 이번에는 바뀐 전화번호까지 적어 두었다. 다음번에는 전화로 연락을 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속전속결로 오후에 통통 튀는 목소리의 여자분이 전화를 주셨다. 이게 텔레마케터들의 교육에서 그렇게 강조한다던 '솔'음 높이의 목소리인가?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 너무 궁금해질 정도로 발랄한 목소리였다.

나는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표정의 목소리로 전화를 걸까? 문득 심드렁하기 짝이 없을 것이 분명한 내 낮은 목소리가 미안해졌다. '솔'음으로 교육을 받았을 텔레마케터 언니(?)들의 전화를 그리도 많이 받아봤지만 막무가내라는 생각과 짜증만 들었었는데, 그 여행사 직원분과는 한 시간이라도 통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다며 3% 할인까지 해 준단다. 흐뭇한 기분으로 예약을 마치니 다음달에 여행 갈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며칠 후 여행 계약서를 메일로 보냈다며 그 여행사 직원분이 다시 전화를 하셨다. 여전히 발랄하면서도 친근한 목소리로 말이다. 들을 수록 기분 좋아지는 그 목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여행비를 오늘 당장 입금시켜 줄게요'라는 말이 나와 버렸다. 쾌활하게 웃는 수화기 너머의 그 여성분은 나에게 발코니를 좋아하느냐고 운을 떼더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요즘 처럼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는 조금이라도 싸게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자신이 더 알아보니 발코니가 없는 방(내가 가려는 곳은 리조트이다.)은 1인당 가격이 7만원 더 싸다며, 괜찮다면 그 방으로 바꾸어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리조트에서 여기 저기 휘젓고 다니기를 좋아해서 나에게는 사실 방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해 주신 3%할인에 7만원까지 더 절약하니 여행이 훨씬 더 가뿐해졌다. 어쩌면 여행사 측에서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런 수고 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것들이 고객을 감동시키고 고객감동은 곧 불황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업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나는 벌써 이 내용으로 글까지 쓰고 있으니 말이다.) 서비스 사업은 친절이 최고인 것 같다.
반응형
반응형
어느새인가 무한도전을 제치고 내가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돼 버린 '패밀리가 떴다'. 유재석에게 SBS 연예 대상의 영광을 가져다 주었을 정도로 일요일 저녁 예능 프로그램의 강자로 올라섰다. 인기의 여파로 뜨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뻔 한 '대본'까지 떠 버려서, 출연진들의 즉흥 행동과 대사인줄로만 알았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작가들의 수고와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이 들통났지만 이 정도로 패떴의 인기가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패밀리의 인기가 무르익을 무렵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인 장혁재 피디는 '인기의 40%는 자막의 힘'이란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인기의 비결이 자막의 힘이라니,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예능 프로그램에는 자막이 등장했고 이것은 점점 더 세력을 키워나갔다. 처음에는 출연진들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만 쓰였던 것 같은데, 그들의 생각까지 자막으로 표현하더니(물론 자막은 모두 피디가 쓰는 것이므로 정말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요즘에는 아예 프로그램에 등장하지 않는 피디의 생각마저 자막으로 나오고 있다. 마치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노래를 부르며 판소리의 내용을 전달하다가 난데없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처음으로 청중들의 '가짜 웃음 소리'를 프로그램에 사용했다. 웃음이 날락말락하는 애매한 상황에서 시트콤 속에 미리 깔려 있는 가짜 웃음 소리를 듣게 되면 시청자들은 스스로 판단을 하지 않고, 그 웃음 소리를 따라서 웃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연출진은 좀 더 쉽게 재미를 배가 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가짜 웃음'을 애용하게 됐다. 시청자들은 '남이 웃으니까 나도 웃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추김을 받고 '남이 웃는 것을 보면 재미있나 보다'라고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속된 말로 '낚인 것' 아닌가?

초창기엔 그리도 어색하던 '가짜 웃음'이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지더니 다음 순서로 자막이 등장하게 됐다. 아까 언급했던 장 피디처럼 다른 프로그램의 연출진들도 자막을 넣으면 시청률이 높아진다고 믿는 모양인지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는 자막이 넘쳐난다. 낄 데 안 낄 데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자막을 멍하게 보노라면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가짜 웃음'때문에 별로 재미있지 않은 부분에서 헛웃음을 웃거나, 유치한 말장난 같은 자막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며 한 글자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받아 읽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맞춤법부터도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연출진의 생각을 강요하는 듯한 자막의 내용이나, 내가 보기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은 출연자의 마음 속 표현, 그리고 글로 써 놓지 않아도 뻔히 다 아는 내용을 굳이 밤샘 작업을 해 가며 자막으로 써 놓은 것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프로그램을 완성도 있게 만들어 놓고 그것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두면 더 좋을텐데, 왜 만화책처럼 모든 것을 다 보여 주려 하는가. 우리 시청자들의 수준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프로그램의 수준을 자막으로 올리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한도전 유앤미 콘서트 편이 사정상 자막 없이 방송됐다. 사실 그 날 나는 자막이 없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방송을 봤는데,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네티즌들은 자막 없는 무한도전을 한탄하며 엄청난 수의 덧글로 인터넷 공간에 항의를 했으며 몇몇은 직접 만든 자막을 올리기도 했다. 사실 김태호 피디의 자막이 가장 재미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타인의 해설(자막)없이는 예능 프로그램 하나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방송의 흐름을 이해하고 등장 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하여 그 날의 방송 내용을 정리할 능력이 우리에게도 분명히 있는데...... . 자막이 없이도 예능을 즐길수 있을텐데 말이다.  

반응형
반응형

피그말리온 효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타인의 기대나 관심 등이 본인에게 영향을 미쳐 능률이 오르거나 성과를 발휘하게 되는 효과를 뜻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로젠탈 효과, 자성적 예언, 자기충족적 예언, 교사 기대 효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천국이다. 늘 자신을 웃는 얼굴로 바라봐 주면서 작은 일에도 관심을 보여주는 선생님이 있고, 자기를 영웅으로 추대하며 따라하고자 애쓰는 또래 아이들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반면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학교는 생지옥이기 쉽다. 수업에 집중해도 영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 때문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고, 그런 아이에게 선생님들이 특별한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그나마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지만, 혹독한 시험 기간과 냉정한 평가 결과들 사이에서 느는 것은 함숨이요, 드는 것은 자괴감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학생이었다. 늘 앞에 앉아서 열심히 진도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수많은 공식들과 역사적인 사실들은 좀 처럼 머릿속에서 머물러 주지 않았다. 비밀을 터 놓으며 단짝이 되는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자존심때문에 내 성적을 공개할 수 없었고 수능시험이 다가올 수록 점점 더 외로워졌던 것 같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무렵,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추운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약속이 있었다. 조금 더 많은 학생을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곳에 진학시키려고 담임 선생님은 많이 애를 쓰셨을 것이다. 계속되는 상담에 많이 지치기도 하셨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때 선생님은 나 같은 열등생에게도 우등생과 똑같은 관심을 보여주셨어야 했다. 우리도 당신의 제자임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나와 약속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온 우등생에게 순서를 가로채이면서 나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그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홀로 추위에 떨며 내 시간을 기다렸던 나는 비참했다. 그 다음날로 상담이 연기됐고 내 차례는 십분도 안 돼 끝이 났다.

시간이 지나 열등생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어떤 맘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다소 역차별적인 수업을 한다. 물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도 내 제자들이니 그들에게도 동일한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혼자서도 잘 해내는 우등생들에게는 덜 마음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내 학생들은 대개 성인이므로(나는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수업 외 시간을 활용한 친교 활동을 함으로써 그들과의 신뢰감을 형성하는데에도 노력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내 제자이자 곧 친구이다.

그런데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피그말리온'의 무서운 효능이다. 내 눈맞춤, 미소, 다정한 손길 등을 거치면서 열등생이 우등생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나는 참 많이도 봐 왔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로 학생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생기고 나면 수업에 임하는 학생의 눈빛부터가 달라지고 그들이 해 오는 숙제의 질이 변화한다. 일단 신뢰가 생기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크게 마음을 써 주지 않아도 학생은 스스로 우등생이 되어간다. 매학기 이런 일을 경험하고 나니, 교육의 본질은 진정 사랑이었구나 싶다.


성인 학습자가 이러한데 하물며 청소년들은 어떠하겠는가. 실제로 어느 남자 중학교에 교생실습을 갔을 때, 유독 말썽을 부려서 나를 참 난감하게 만들었던 아이들이 한 반에 한 둘 씩은 꼭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괴로워서 저절로 그 아이들의 이름이 먼저 외워졌는데, 나중에는 가장 친한 관계가 돼 버렸다. 복도에서 만날 때 마다 반갑게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물어봐주고 했더니 한 달 후 수업태도와 성적이 놀랄 만큼 좋아졌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내가 직접 체험한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었다. 교사의 기대 효과가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학습자가 어릴 수록 그 효과가 더 크니 특히나 초등학교 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다 친구가 뜬금없이 한마디 던진다. '그래서 초등학생 엄마들이 싫든 좋든 담임 선생님에게 촌지를 주는 거잖아~ 나도 나중에 빳빳한 걸로 꼭 줘야지'. 친구의 말에 심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긍정적인 효능을 이야기하다 결론처럼 나온 말이 꼭 촌지를 줄 거라는 다짐이라니, 우리나라의 공교육의 현실이 깜깜하기만 하다.  

반응형
반응형
또각또각또각, 경쾌하면서도 가벼운 하이힐이 나를 향해 걸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굳이 얼굴을 쳐다보지 않아도 약속시간에 30분이나 늦은 내 친구 M모양이다. 그녀가 늦은 것에 대해 화가 낫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나는 일부러 친구 쪽은 쳐다 보지도 않고 심드렁하게 식당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 딴에도 미안한 듯 때아닌 웃음을 날리면서 과하게 반가워하는 친구의 얼굴에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와 버린다.

아니 나도 이렇게 까지 늦을 줄은 몰랐는데, 괜히 버스를 타 가지고 말이야. 겉옷을 벗고 자리로 앉는 친구의 배에서 무언가 반짝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친구는 오랜 기간의 처절한 다이어트 끝에 몰라보게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으면서도, 24인치 청바지를 입고 말리라며 아직도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대단한 아이(?)이다. 그냥 봐도 몸매의 선이 확실히 달라져서 나는 이 친구를 만날 때마다 다이어트 의지를 새롭게 다지게 된다.

몸매에 자신이 생긴 친구는 이 추운 겨울에 배꼽티를 입고 나왔다. 물론 실외에서야 두툼한 겉옷을 입으니까 건강상 큰 문제가 없다고 해도 겨울에 배꼽티라니, 정말 예상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더 놀랐던 것은 배꼽티 때문이 아니었으니...... . 친구는 날씬해 진 자기의 배를 축하하기 위해 '배걸이(마땅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를 선물했단다. 배걸이라는 낯선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목에 걸면 목걸이 배에 걸면 배걸이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빠르실 것 같다.


내 설명을 듣고 설마?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상상하시는 그 기상천외한 것(적어도 두툼한 배를 가진 나에겐)이 맞으니 자신의 상상력을 폄하하지 마시도록. 내 관심에 신이 난 친구는 거기가 밥을 먹는 식당이라는 것도 잊고 친히 일어나서 뱅그르르 돌아 나에게 배걸이를 보여주었다. 뒤에는 한 줄, 앞에는 두 줄로 되어 있는 배걸이는 청바지 위와 배꼽치 아래에서 아주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너무 비싸서 차마 24k 순금으로는 주문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꽤 값을 치르고 산 것이란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보기 좋게 납작한 배 위를 반짝이는 배걸이가 내가 보기에도 참 예뻤다. 특히나 청바지 위로 잘록하게 뻗은 허리에 굵은 금줄이 반짝이니까 한층 더 섹시해 보이기도 했다. 친구의 말을 들으니 배걸이의 또다른 좋은 점은 그걸 하고 있으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는 것이란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방심하고 음식을 아구아구 먹으면 금줄이 툭 끊어져 버릴 수도 있으니(그렇다, 금은 탄력이 없다.) 알아저 적당한 양의 음식만을 먹게 되고 자리에 앉을 대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을 수밖에 없어서 자세교정에도 아주 좋단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예쁘게 한 배걸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툭 끊어져 버린다면 그것 참 난감한 일일테니 배걸이를 한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레 음식의 양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배걸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길이가 짧은 상의와 골반 바지를 입을테고 항상 허리가 드러나니까 늘 배가 긴장된 상태일 것이다. 어느 책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같은 이유로 다이어트 효과가 더 좋다던데, 배걸이도 다이어트 용품으로 딱일 것 같다.

이쯤되면, 보기에도 좋고 체형관리에도 좋은 배걸이가 2009년의 인기 상품 목록에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의사들은 배 부분을 따뜻하게 해야 건강에 좋다고 하던데, 그래도 내 생각에는 가끔씩이라면 자신의 아름다운 허리선을 드러내도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다. 물론 배둘레햄이 두둑한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말이다.

반응형
반응형

며칠 있으면 친한 동생의 생일, 선물로 어떤 것이 좋을지를 고르다가 고민에 빠졌다. 사실 몇 달 전부터 그애의 선물로 점찍어 둔 것이 있기는 하다. 그애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온 대학원생인데, 한국에서 홀로 지내는 겨울이 춥다며 내복을 사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외출시에도 민망하지 않게 예쁘면서도 포근한 것을 사려면 내복값도 만만치가 않아서 그녀는 쉽사리 사지도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어느 곳이든 자취방은 춥기 마련이고, 물 건너 온 친구가 느끼는 체감 기온은 실제보다도 훨씬 낮는 법. 그래서 나는 고상하면서도 따뜻한 내복을 미리 봐 뒀었다. 그런데 같이 선물을 사러 갔던 다른 친구가 나를 극구말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선물인데 내복은 아무래도 맘에 걸린다는 것이다. 괜히 그 아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자칫 생일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으니 그냥 평범한(??) 것으로 골라 다른 사람들도 흔히 선물로 줄 법한 그런 것으로 사란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유학생활에 꼭 필요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지를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예전에 내가 백조였을 때(나는 임용고시 준비생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표를 달고, 자그마치 3년이나 백조생활을 했다.) 친구들과 했던 생일잔치가 기억이 났다. 오로지 시험 공부만 하는데도 세 번씩이나 시험에서 떨어지면서 내 통장의 잔고도 슬슬 바닥나기 시작하던 때였었다. 원래부터 모아 둔 돈도 없었거니와 부모님들께 받아 쓰던 용돈이 죄송스러워서 늘 주머니가 가벼웠었다. 솔직히 그 때는 생일이고 뭐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기를 더 바랐지만, 친구들은 혼자서 수험생활을 하는 나를 위해서 한데 모여줬다.

나이 만큼의 장미꽃, 큰 귀가 인상적인 곰인형, 상큼한 오렌지향이 기분 좋은 향수, 대충봐도 비싸 보이는 크리스탈 유리컵 그리고 한 번도 사 보지 못했던 빨간 립스틱. 백조로서의 마지막 생일이었던 그 때 친구들에게서 받은 생일 선물이었다. 내가 몇 년 전 선물들을 이토록 자세하게 기억하는 까닭은 친구들의 정성이 고마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 같이 당시의 내 생활에는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내 놓은 고가의 선물들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에 함박 웃음을 웃었지만 내 속으로는 다른 생각들이 꿈틀꿈틀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 저걸 학교 식당의 식권으로 바꾸면 몇 장이 나올까? 교통 카드도 충전해야 되는데. 차라리 쌀이나 자취생의 영원한 친구 참치로 사 줬음 몇 달동안 실컷 먹을 수 있을텐데...... . 나는 당장의 먹을거리 입을거리가 중요했기에 장미꽃이며 곰인형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매일같이 집에서 공부를 하는 나에게 향수가 무슨 소용이 었으며 자취생 크리스탈 컵으로 우유를 마신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빨간 립스틱은???

친구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기억이지만 당시의 내 상황이 그랬다. 그랬기에 어려운 것이 뻔히 보이는 동생의 생일 선물을 함부로 고를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나는 생활 필수품이면서도 선물하기 쉬운 기초화장품 세트를 주기로 결정을 했다. 내가 자신의 경제 상황 때문에 길게 고민했다는 사실은 영영 몰랐으면 좋겠지만, 내 선물을 받고 진심으로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 그 선물의 실용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것의 심미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반응형
반응형

오후 5시 30분, 멋쟁이들이 그득하다는 홍대의 한 커피숍. 친구들과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시켜 놓고 수다를 떠는 동안 내 눈은 쉴새가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다들 멋있었는가. 젊음과 패션의 거리답게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현직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늘씬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나와 같은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미인들이 꽤 많다. 서른 하나가 주는 압박감이 예상보다 심한 모양인지, 친구들의 화제는 어느새 아이크림에서 피부과의 시술로 넘어가 있는 중이고, 한 시간이 넘게 계속되는 탄력+노화방지+동안 이야기에 시들해진 나는 슬쩍 건너편의 여대생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삼십대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은 연예인은 최강희란다. 강아지형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표정, 묘하게 순수한 정신세계까지, 그녀가 가진 모든 것들은 그녀의 나이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서른 두 살이라는 나이를 하고도 교복이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최강희를 닮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늙기 싫어'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때마침 카페를 흐르는 노래 '노바디'에 맞추어 친구들의 이야기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원더걸스에게로 넘어갔다. 그 귀여운 얼굴들을 하고 그토록 섹시한 춤을 출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느냐고 다른 친구가 덧붙인다. 맞다. 원더걸스의 다섯 아이(?)들은 정말 감탄할 정도로 다양한 표정들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 참 좋아한다.

깜찍한 어깨춤이 일품이었던 '텔미'에서부터 요염이 가득한 '노바디'까지 전국을 춤바람에 몰아넣은 그녀들 덕에 춤 학원들도 돈 좀 벌었을 것이다. 원더걸스 예쁘긴 정말 이쁘지, 그런데 걔네들 아직도 고등학생이라며? 그 나이 땐 원래 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야, 그 때 나는 세수만 해도 얼굴이 빛났었어. 하긴 우린 그 때 화장은 생각도 안 했었잖아. 그건 그렇지...... . 한 친구의 문제제기에 우리는 금세 너도나도 왕년(?) 생각이 났다.

하긴 나도 왕년(??)에는 정말 예뻤었던 것 같다. 긴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청초한 원피스를 입으면 화장을 하지 않아도 참 멋졌다. 특별한 날에는 조금만 신경을 써서 꾸며도 홍대 멋쟁이들은 명함을 못 내밀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지금 내 시선을 온통 빼앗고 있는 건너편 탁자의 저 여대생, 그녀보다도 훨씬 더 멋졌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나는 컴퓨터를 켜고 미니홈피에 접속했다. 대학시절 아리따웠던 나를 확인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예뻤던 나를 발견하면 의기양양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드디어 사진첩을 거꾸로 돌려서 대학 시절의 어린 나를 찾았다. 천천히 한 장씩 감상을 하며 나는 왕년의 인기녀 미녀 '일레드'를 구경했다. 그런데 사진을 넘길수록 무언가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진 속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그 얼굴은 분명 앳된 모습의 내가 맞는데, 상상했던 것만큼의 '초절정 꽃미녀'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 가까워질수록 내 모습은 더 예뻐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촌스럽고 어색한 화장에서 벗어나 점점 더 세련돼 졌으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사진도 찍을 줄 알게 됐다. 살이 좀 붙긴 했지만 생각만큼 얼굴도 크게 노쇠(??)하지는 않았다. 결국 사진첩을 통해 내가 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워진 내 모습이었다. 그렇다. 바로 '지금'이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멋진 순간이다. 그러니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옛날에 미련을 둘 필요는 전혀 없다. 현재의 나를 사랑하고 내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은 칭찬할 만 하지만, 왕년의 나에 얽매어 즐겨야 할 현재를 후회와 한탄으로 보내는 것은 어리석다는 말이다. 젊고 어린 여성들을 보며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질투하지 말고, 내가 가진 성숙함과 연륜있는 아름다움을 뽐내자. 누가 아는가? 그녀들도 몰래 우리를 훔쳐보며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부러워하고 있는지.

반응형
반응형

내년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내년엔 멋진 남자친구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 내년엔 꼭 승진을 하고 싶은 마음, 내년엔 기필코 결혼을 하고 말리라는 마음, 내년엔 어여쁜 아기를 낳고 싶은 마음, 내년엔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픈 마음...... .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2009년을 설레며 기다리는 지금, 그래서인지 유독 새해 일기장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나도 작년 일기장의 여백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은근슬쩍 2009년형 일기장에 손길이 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으라는데, 캐캐묵은(?? 사실은 겨우 1년된) 일기장에 내 새로운 계획들을 넣을 수는 없지. 예쁜  새 일기장을 또 사고 싶어서 속이 빤히 보이는 자기위안으로 나를 속이면서 말이다.
 
나에게는 예전에 비해 일기장을 가득가득 채우지 않게 된 계기가 있다.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좋아하고 시시콜콜 기록하기를 좋아했던 나였었기에 매해 큼지막한 일기장을 준비하고 그 해가 다 가기전에 빼곡하게 모든 여백을 채웠었다. 친구와 싸웠던 일부터 외식했던 기록과 영수증, 좋아하던 선배에 관한 마음까지 그 해에 나에게 일어났던 거의 모든 사실을 일기장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일기장은 내 삶 그 자체였고 나는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일기장을 채우는 일이 눈에 띄게 게을러졌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매 해 새롭게 일기장이 등장할 때면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쪽으로 저절로 눈이 가게 된다.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에서 소설을 보다가 훔치고 싶은 글귀가 있어서 일기장을 펴 그 내용을 옮겨썼다. 나를 매료시켰던 한 단락의 내용을 모두 옮겨적고 나서도 내내 그 소설에 취해있었는데, 정신줄을 잠시 놓쳤는지 그만 일기장을 도서관에 두고 와 버린 것이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고 다음날 도서관에 가 봤지만 일기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의 기분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들었다. 내 삶의 기록들이 빠짐없이 적혀있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읽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것 같았다. 그 후 몇 주가 지나도록 일기장은 소식이 없었고 나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다시 일기장을 장만해야 할 지 이제 일기 쓰기를 그만 두어야 할 지를 결정하려는 즈음에 전화 한 통이 왔다.

모 동아리방이었다. 한 여학생이 책상 속에서 발견하고는 연락처를 찾아 내게 전화한 것이었다.  내 일기장이 왜 그 동아리방의 책상 속에 들어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그것을 수습하러 갔다. 왠지 그 동아리의 모든 사람이 내 삶을 낱낱이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정말 부끄러웠다. 타인의 손을 탄 내 일기장은 나에게로 돌아온 지 몇 주가 지나도록 외면을 받았다. 어떤 얘기를 써 놓았을 지 너무나도 걱정이 됐기에 그것을 펼쳐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한 달이 지난 이후에야 다시 일기장을 열어 볼 수가 있었지만 그 전처럼 속속들이 내 삶을 적어 둘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이후부터는 일기장 쓰는 방법부터가 달라졌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메모하는 것과 잊어버리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을 기록해 두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내 시시콜콜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방심한 사이 타인에 의해 내 감정이 들추어지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니 그 때의 당혹감이 정확히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금 일기장에 내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기발하고 갖고 싶은 일기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2009년형 일기장의 유혹에 못 이겨 결국 올해도 새로운 일기장을 사 버린 나는 이 일기장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일기장에 진실을 담을 수 없게 된 내 잃어버린 순수가 슬프다.

반응형
반응형

아, 이럴 땐 정말 난감하다. 날씨가 너무 추운 탓이라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말해보지만 결국 내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이다. 오늘 오후에는 친구들끼리의 연말 모임이 있었다. 오늘 만나는 친구들은 모두 한국어 강사들이라 각 대학에서 각자 생활하느라 학기 중에는 만나기가 힘들었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인지라 나는 유독 신경을 더 많이 썼다. 나는 심지어 친구의 결혼식에서 조차 내가 가장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이니 정말 못 말리는 욕심꾸러기이다.

무슨 시상식에라도 가려는 듯 입고 갈 옷도 미리 골라두고, 일찍부터 정성껏 준비했다. 올 해는 특히 스모키가 유행을 했는데, 평소에는 하기 힘든 화장이라 오늘을 위한 것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바탕 화장부터 꼼꼼히 한 후에 드디어 눈매를 강조하는 스모키 화장에 들어갔다. 우선 연한 밑색을 바른 다음 주된 색인 금색에 가까운 갈색 아이섀도우를 켜켜이 펴 바른다. 그리고 위아래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도 완벽하게 발라줬다. 펄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화려함을 더하니, 짜잔 완성이다. 연예인이라도 되는 듯 잠시 자아도취에 빠졌다. 완벽해.

약속시간에 맞추어 유유히 집에서 나왔는데, 쌀쌀한 바람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들더니 역시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든 탓(?!?)에 바람이 부는 대로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요즘 눈화장품의 성능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쉴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눈가가 꺼멓게 번질까봐 두려워 계속 손끝으로 눈물을 훔쳐내면서도 마음이 영 찜찜했다. 추운 날씨와 한참을 싸운 끝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친구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약속이 점심 때 있었기 때문에 저녁 전에 모임이 파했고 나는 그대로 들어가기가 아쉬운 나머지 서점에 들러서 책을 읽기로 했다. 나는 모든 내공이 책에서 비롯된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서점을 참 좋아한다. 서점에서 맘에 드는 책을 발견하고 읽는 재미에 자투리 시간은 서점에서 보낼 때가 많다. 오늘도 신간을 구경하려고 근처 대형서점에 갔다. 거기서 책을 읽다가 느즈막히 집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와, 아무리 연말이지만 어찌나 사람들이 많던지 책을 읽을 만한 빈 의자를 맡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서가에 서서 책을 읽으며 주위를 힐끔 둘러봤는데 연말을 맞이한 사람들은 저마다 예쁘고 멋졌다.

열심히 꾸미고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들 틈에서도 전혀 주눅들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얼마쯤인가 당당하게 그들 속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손이 씻고 싶어져서 화장실에 갔는데 그 곳에서 낭패감을 맛보았다. 거울 속의 그녀가 내가 맞는가, 완벽했던 내 스모키는 어디로 가고 낯선 여자(?)가 거울 속에 서 있었다. 실내외 온도 차가 너무 커서인지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있고 파운데이션은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놈의 스모키는 그저 눈 주위를 얼굴덜룩하게만 만들고 있을 뿐 전혀 스모키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이라인은 눈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흐려져 있어 도무지 봐줄 수가 없었다.


이런 몰골로 이렇듯 당당하게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다니 정말 낭패스러웠다. 내공이고 뭐고 당장 집으로 공간이동해서 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화장을 적당히 하고 갔으면 이런 수모는 없었을텐데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과욕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여자들은 종종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다가 기쁨을 느끼기도,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학교 다닐 때 내가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여학생 화장실의 거울 덕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초췌하기 그지 없었을 내 얼굴을 은은한 조명과 함께 청초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늘 서점에서 본 거울 속에서는 두꺼운 화장이 민망한 한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 즉 나는 그런 몰골이 부끄러워서 일찍 집으로 오고 싶어졌다. 잘 차려입은 옷차림과 세심하게 치장한 얼굴이 어느 순간 난감하게 바뀌어 버릴 때가 있는 데 이럴 땐 어찌해야할 지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반응형
반응형

잔치가 끝나 버린다는 서른 살. '2'와 '3'이 주는 느낌이 너무나도 달라서 두려운 마음으로 서른을 맞이했던 작년 이 맘 때가 생각난다. 그러나 살아보니 스물이나 서른이나 철이 없기는 매한가지. 서른을 기점으로 확 달라질 것만 같던 내 삶도 지내보니 비슷했다. 여전히 떡볶이를 좋아하고 여전히 긴머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여전히 연예인에 열광하는 나. 스물이나 서른이나 나는 여전히 나인 것이다. 휴...... . 이렇게 시시한 줄 알았으니 '3'이 아닌 '4'가 와도 나는 끄떡 없을 것 같다. '4'가 좀 천천히 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그래도 여전히 잔치는 계속되고, 여전히 나로서 살고 있을 것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2008년을 살아 온 스스로에게 선물 두 가지를 주기로 했다. 그동안 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벌렁거리는 심장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 중 세 가지를 선택하기로 한다. 먹고 사는 일에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그래서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에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것 말이다. 목록을 적어 내려가는 내 손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호기심에 기웃거리다가도 비용을 보고 놀라서 지레 포기했던 것이 어디 한 두가지였겠는가.

그 중에서 나는 적당한 것을 두 가지 골라 하나씩 하나씩 나에게 선물했고, 야금 야금 천천히 행복을 즐겼다. 내가 정한 선물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목욕탕에서 목욕관리사에게 때 밀기.
     둘째, 손톱 매니큐어 관리 받기.              


목욕탕에 갈 때마다 혼자서 쓱싹쓱싹 때를 밀었던 나는 누가 저렇게 큰 돈(?)을 내고 남에게 때를 밀릴까 늘 궁금했었다. 우리 동네 목욕탕의 때 미는 가격은 15,000인데(오일마사지, 전신마사지는 각각 35,000/50,000원이었다.) 입장료 5,000원까지 더하면 목욕하는데 최소 20,000원이 드는 셈이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2만원은 너무 아깝게 느껴졌고,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2만원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떠올랐었다. 그걸 이번에 해 본 것이다.

아무래도 연말에는 목욕탕에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평일 저녁 시간을 이용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목욕탕이 붐볐다. 나이가 들수록 온탕이 좋아져서 물 속에서 충분히 놀다가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밀려고 했는데, 아뿔싸!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아닌가? 세 명의 목욕관리사가 세 개의 침대에서 때를 미는데도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평소에 그 쪽으로 쳐다보는 일이 적었기에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미는 줄 몰랐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왕 맘 먹고 간 거 기다리기로 했다. 두 시간 동안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며 놀다가 밖에 나가서 책도 좀 보고 다시 탕으로 들어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 두 시간이 쉽게 기다려지기는 했다.

쪼글쪼글 해 진 할머니 손으로 때미는 침대에 누워 막상 때를 밀리려고 하니 민망한 생각도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구석구석 내 몸을 맡긴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때가 나올까 봐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능숙한 솜씨의 목욕관리사의 때밀기는 내 몸을 정말 호사스럽게 만들어줬다. 피부결을 따라서 시원하게 때를 밀어주는데 내 솜씨하고는 비교도 안 됐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이 이렇게 큰 돈을 지불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문화의 수준은 높일 수는 있어도 낮출 수는 없다던데, 목욕 문화도 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목욕탕 가는 횟수를 줄이더라도 목욕관리사 아줌마를 애용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대학교 근처에 있는 손톱관리 가게에 갔다. 나는 화장하는 것에는 꽤 관심이 많아서 이런 저런 시도도 해 보고 여러 가지 화장품도 사 본다. 그런데 손이 작고 못 생겨서인지 기술이 없어서인지 가끔씩 기분을 낼 때 빼고는 손톱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손톱관리 가게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 때문에 문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선물 목록에 손톱관리도 넣어 봤다. 학교 근처라서 그런지 예쁘장한 여대생들로 가게 안이 북적댔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는 나와는 달리, 여대생들은 익숙한 듯 보였다. 어렵사리 색을 고르고 매니큐어를 바르려는데 손톱 관리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매니큐어만 바르면 될 줄 알았는데 색감을 좋게 해 주는 것, 색을 오래 지속해 주는 것 등 바르는 것도 다양했고 시간도 꽤 걸렸다.

투박하기만 했던 내 손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매니큐어를 발라놓으니 한결 예뻐보였다. 그런데 나와는 달리 매장을 방문한 대부분의 손님들은 10회/20회 쿠폰을 끊어서 온 사람들이었다. 한 눈에 봐도 여대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비싼 손톱관리를 쿠폰을 끊어서 정기적으로 받는다니 대단한 열성이었다. 불황에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화려해진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런가?

불황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자기 관리에 애쓰는 여성들은 더 늘어나는 것 같다. 내 주변만 봐도 차라리 먹는 음식값은 줄일지언정 피부관리나 의류 구입에는 여전히 돈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자신을 계발하는 데 더 힘쓰는 여성들도 많다. 그래서 지금 당장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어를 배우거나 악기, 춤 등을 연마해서 삶의 질을 더욱 풍요롭게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이번에 나에게 주는 선물을 통해서 내가 오로지 나를 위해 들이는 비용이 너무 적었음을 인식하고 앞으로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 지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주부터는 나도 중국어회화 수업을 들을 작정이다. 당장에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영영 써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타인의 강요없이 관심을 가지게 된 외국어이니만큼 한 번 배워보고 싶다. 여성들의 불황을 모르는 자기 관리, 그 대열에 나도 합류하고 싶다.




반응형
반응형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지치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예상치 못한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나는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내 학생들은 아직 초급반이라서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눌한 말과 글이 어떤 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는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학생들에게서 받는 국경을 초월한 사랑은 나에게 아주 큰 힘이 된다. 이렇게 쌓인 고마움 덕에 나는 이 일을 결코 그만 둘 수 없을 것 같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말끔하게(?) 수업이 끝났다. 국가에 따라서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에게 특별히 한국의 크리스마스 풍습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무엇보다 마음을 나눌 것을 강조하면서 수업을 끝내는데 무언가 오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기특한 학생들이 선생님인 나에게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각자 정성을 담아 여러 선물들을 준비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중국인 학생들의 선물이 인상에 남았다.


중국인 학생들이 수줍게 내미는 선물은 사과였다. 동글동글 탐스럽게 포장된 사과가 정말 예뻤지만 크리스마스와 어떤 관계인지 언뜻 떠오르지 않아서 잠시 갸우뚱했더니, 학생 중 한 명이 그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크리스마스엔 온통 캐롤과 트리로 가득한 우리 나라와는 달리 중국에는 거리마다 사과가 넘쳐난다고 한다. 사과는 중국어로 '苹果(pingguo핑궈)'인데 평안'平安(pingan핑안)'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란다.

즉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사과를 주고 받는 것이었다.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양손 가득 사과를 사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고 한다. 중국은 크리스마스에 쉬지 않으며 캐롤도 흔하지 않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사과를 주고 받으면서 마음을 전하는 신풍습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타지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중국의 풍습대로 나에게 평안을 의미하는 사과를 준 학생들.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이 오늘따라 더욱 예뻐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응형
반응형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진희의 일명 '지하철 실수담'을 들었다. 박진희라 하면 청순과 도발을 겸비해 누구나 매력녀로 인정할 만한 여배우이다.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여자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해 하다가 들은 사연은 다음과 같다. 데뷔 전 박진희는 승객으로 가득찬 지하철을 탔다고 한다. 당연히 좌석도 없었고 앉아 있는 사람과 바짝 붙어서 서 있던 박진희는 떠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밀리고 밀려, 자신도 모르게 앞에 앉아 있던 남자의 무릎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단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라 크게 당황한 나머지 미안하다는 말만 연발했고 갑자기 당한 사람도 경황 없기는 마찬가지라 민망한 정적만 흘렀다고 한다. 만원 지하철엔 사람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렇게 낯선 남자의 무릎에 앉은 채로 박진희는 네 정거장을 더 갔고, 다행이 그녀가 내리려던 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려서 어색한 상황을 끝낼 수 있었다고 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얘기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들어닥칠 때면 의도하지 않게 깊숙히 밀려가 버릴 때도 있고 그러다 중간에 끼기라도 하면, 키가 작은 나는 숨 쉬기 조차 힘들다.



'으흐흐' 박진희의 실수담을 듣고 있노라니, 내가 저질렀던 음흉한 일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괴기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어여쁜 박진희는 실수였지만, 음흉한 나는 고의적이었고 청순한 박진희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했지만, 약아 빠진 나는 교묘히 미안한 척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찌 그리 뻔뻔할 수 있었는지 나조차 어이가 없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소싯적 순정만화와 허튼 연애 소설을 너무 많이 봤던 까닭이 틀림없다.

20대 중반이었을 때, 나는 괴이하고도 무모한 짓을 참 많이도 저질렀다. 더 어렸을 때 못 해 본 것이 너무 많아서인지 그 때부터는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해 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 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지만 오늘 내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나는 정말 우습게도 이따금씩 스스로를 예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화장도 곱게 잘 됐고 옷차림도 너무나 맘에 들어서 그런 날 아무 일 없이 하루를 지나 보내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럴 땐 나 스스로 무언가 낭만적인 일을 꾸미고야 말았고 철저한 철면피로 둔갑했다.


그 때도 그랬었다. 대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을 것이다. 대학원 수업은 보통 늦게 끝나기 때문에 약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반대편 차창으로 비친 내 모습을 보았고 나는 그만 나르시시즘에 빠지고야 말았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미모로써 특별한 일 없이 집에 들어가야만 한다니! 너무 너무 아까워...... . 그러다 내 머릿속을 음흉하게 채우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은 옆 자리에 앉아 있는 낯선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서 집까지 가는 것. 어떻게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놀라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지만 그땐 아직 어렸고(20대중반인데???) 앞에서도 얘기했듯 나는 순정만화와 하이틴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

물론 만화에서 조차 주인공이 상황을 고의적으로 꾸미지는 않지만, 책에서는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는 경우가 참 자연스럽고도 예쁘게 묘사돼 있지 않은가? 나는 반대편 유리창으로 적당한 상대가 나타날때까지 설레는 맘을 안고 기다린 다음, 착해보이는(이게 중요하다) 순진한 희생양의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댔다. 졸리는 척 하면서 말이다. 시간도 얼추 늦었고 일부러 그런다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남자들은(도대체 몇 명??) 그냥 어깨를 빌려준다. 내가 생각해도 예쁘다고 느낄 때만 하기 때문에 당당하고도 뻔뻔하게 낯선 이의 어깨를 빌린다. 그러다 내가 내릴 지하철 역이 되면 그제서야 잠에서 깼다는 듯 스르륵 일어나서는 깜짝 놀라는 척을 좀 하고, 상대방에게 '미안합니다' 인사 후 나는 유유히 퇴장.

당시 같이 대학원 다니던 오빠들에게 실수인 척 슬쩍 물어보니 자신들도 당한(?)적이 있는데 기분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피곤한 퇴근길에 삶의 활력소(--라고 할 것까지야)가 되어주는 '무단 어깨 빌리기'를 한 번 시도 해 보심이 어떨지? 단, 뻔뻔한 여성들에 한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응형
반응형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욕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날 모인 친구들 모두 '백분토론 400회'를 보았기 때문인지 우리는 너도나도 손석희 아저씨가 되어서 저마다의 2008년을 진단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들만의 백분토론이 진행되었다. 가장 불행했던 기억과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다가 행복은 결국 욕심을 버리는 데에서 비롯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행복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욕심을 버릴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술도 마셨겠다, 연말이라 기분도 아리송하겠다, 우리는 우리가 버려야 할 욕심에 대해 웃기면서도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욕심은, 마지막 한 모금 남긴 커피잔 위로 생기는 말풍선과 같은 것이다. 커다란 머그컵에서 적당한 카페인과 적당한 달콤함으로써 나를 즐겁게 해 주던 커피. 뜨거운 커피가 주는 정신적 만족감에 빠져 한 모금씩 마시다 보면 어느새 커피잔은 바닥을 드러내고, 그러면 자연스레 만화처럼 '한 잔 더?'라고 씌어진 말풍선이 나를 유혹한다. 나는 그것을 욕심이라고 부른다. 이미 충분히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하는 마음말이다. 지나친 욕심은 쓰린 속과 불면을 낳을 뿐이다.



다이어트 삼매경에 빠진 내 친구는 24인치 청바지를 욕심이라고 정의했다. 그 친구는 2% 부족한 둥글녀에서 완벽한 매력녀로 거듭나기 위해 매일 자신과 싸우고 있다. 꽤 오랫동안 다이어트를 계속해서 이제는 더 뺄 살도 없어 보이는데 그녀는 아직도 전쟁중이다. 그동안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면서 열심히 운동한 덕에 슬쩍보기에도 참 많이 예뻐졌다. 그러나 친구는 24인치 청바지를 입기 전까지는 다이어트를 그만 둘 수 없다고 했다. 친구야, 그건 초등학생이 입는 사이즈 아니니? 너는 키가 커서 24는 좀 무리일텐데. 자신조차 24인치 청바지를 욕심이라고 말하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친구. 2% 부족했던 둥글녀에서 이제는 매력적인 까칠녀가 되어 버린 그녀는 점점 더 날씬해지려고 욕심을 부린다.

또 다른 친구의 욕심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남자를 따라가는 자신의 시선이었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뭐 한 번 쯤은 다른 사람을 쳐다볼 수도 있겠지. 너도 사람인데' 했지만 오랜 연인을 둔 그녀는 그것마저 미안했나보다. 거리에서 멋있는 사람과 지나칠 때면 눈이 먼저 그 사람의 얼굴과 그 사람의 근육과 그 사람의 스타일에 이끌려 그 사람에게 고정되고, 어떨 땐 묘한 설렘을 느끼기도 한단다. 짧은 순간의 눈맞춤이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기에 시선의 이끌림도 넓은 의미의 바람이라고 말하는 그녀. 이미 자신의 마음에 사랑하는 사람을 담았기에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것은 욕심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어찌나 자랑스러운지.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 때문에 우리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또 다른 친구. 우리는 이 친구가 고백한 욕심을 만장일치로 진정한 욕심으로 인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직업을 가진 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그렇게까지 윽박질렀나 싶어 미안하기도 하다. 친구는 달력에 빨간 날이 더 많기를 바라는 마음을 욕심으로 고백했는데, 그러면서도 칼퇴근에 주 5일 근무인 자기가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고보니 2009년에는 공휴일이 많이 줄었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시작했던 욕심에 관한 이야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가 처한 상황과 서로의 고민에 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이미 가진 것을 더 가지려는 마음, 끝 없이 계속 커지는 마음,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 나 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 이 날 우리가 고백한 마음들이 비단 우리들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마음속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욕심을 털어버린다면 2009년에는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반응형
반응형
오랫만에 고향집에서 만난 남동생. 그 날 따라 어깨가 유난히 축 늘어져 보이길래 무슨 일 있느냐고 슬쩍 물어보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별일 아니라며 자리를 떴을 텐데, 그 날은 무척 속상했던지 '누나, 사실은...... .'하며 어렵사리 말문을 연다. 대학생인 동생은 우연히 학교에서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발견했고 몇 달 동안 그녀에게 공을 들인 모양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서 첫눈에 반할 정도이니 그 여학생의 미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고 연락처까지 주고 받는 사이로 발전하고 나니, 그녀가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누구나 호감을 가질 만큼 예쁜 외모를 가졌으면서 친절하고 착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가끔씩 통화하고 만나서 같이 밥도 먹는 사이로 발전하면서 어느새 내동생은 그녀를 많이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매력적인 여학생을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 동생 뿐이었겠는가? 알고 봤더니 그녀는 이미 학교에서는 유명한 퀸카였고 여러 사람들의 그녀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 중이었단다. 더 특별한 사이로 발전하고 싶었던 마음에 동생은 그녀에게 고백을 했고 그녀는 거절도 허락도 아닌 애매한 행동과 말로써 동생을 실망시키고 말았단다.

'누나, 나 그동안 어장관리 당했었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한참을 들어봤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인 것 같은데 도통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뜻을 알고 나니 마음이 더 헛헛해지는 '어장관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소위 퀸카(킹카)들은 자신의 어항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그 속에 여러 마리의 물고기를 키우고 그 수를 늘리는 재미에 살아간단다. 새로운 물고기가 들어올 때마다 갖은 애정을 쏟으며 물고기가 자신의 어항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데, 이 때 다른 물고기가 자신의 어항을 떠나지 않도록 가끔씩 예뻐해주고 적절히 먹이도 주면서 지혜롭게 어장을 관리하는 것은 퀸카(킹카)의 중요한 소임이란다.



그 중 누군가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으면서도 가끔씩 통화하고 같이 식사하면서 자신을 계속 좋아하게끔 만드는 것을 어장관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그냥 깨끗하게 자신을 거절했으면 이 정도로 속이 상하진 않았을텐데,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꺼리면서도 자신을 떠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그 모습 때문에 동생은 너무 큰 실망을 했단다.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하자고 끝까지 아름다운 미소로 동생을 '관리'했다는 그녀, 어떻게 보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희망고문'(상대에게 잘 될 것이라는 희망적 암시를 계속 주어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과도 비슷한 '어장관리'는 남녀 사이에서는 죄악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본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어장을 가지고 있다. 혈연이든 학연이든 지연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가장 못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주변 사람들 챙기기'인데 그래서 그런지 어장관리가 나에게는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그들이 나에게 서운해 하지 않도록 적절한 애정을 쏟아부어 주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죽마고우라서 괜찮아, 우리는 어찌나 친한지 1년에 한 두번만 만나도  바로 어제본 것 처럼 마음이 잘 통해. 그러나 그렇게 친한 사이라면 하다 못해 문자나 이메일로라도 내 소식을 자주 전해야 한다. 그 분은 학교 다닐 때 내가 가장 존경했었던 선생님이신데, 내가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 것도 다 그 분 덕이야. 나중에 꼭 한 번 찾아 뵈어야지. 언제? 나는 졸업 후에그 선생님을 한 번도 찾아뵌 적이 없다. 아, 당연히 연말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지 우리 부모님 선물은 뭘로 사 드리지?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일주일째 집에 전화도 하지 않고 있다. 친밀함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게 저렇게 나와 관계를 맺고 나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나는 그동안 내 어장(?)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내 어장을 살뜰히 보살피는 자상한 어항 주인이 될 수 있을까? '보살핌'의 덕목이 아예 없는 나이기에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데에도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계획표를 잘 짜서 2008년이 다 가기 전에 많은 사람들과 훈훈한 정을 나누어야겠다. 아, 나도 내가 속해 있는 어장의 주인에게 어장관리 받고 싶다.


반응형
반응형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한 남자 연예인이 겪은 이별에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오랜 기간 진지하게 만나오던 여자 친구가 있었으나,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부른 오해와 그에 따른 불만이 쌓여서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가 미처 아물지 못한 상처 때문에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 가는 중에, 나를 미세하게 자극하는 표현이 있었다. 남의 아픈 사연을 들으며 그러만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어느새 헤어진 여자의 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가 고백한 이별의 정황중에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말은 여자 친구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 다시는 욱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에 묘한 반감이 드는 것은 나 역시 욱하는 여자이기 때문인 것일까?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잡지 등의 설문 자료에서는 남성들이 좋아하는 여성상 1위가 아직도 긴 생머리에 옅게 화장한 얼굴, 그리고 청바지와 흰 티셔츠가 어울리는 여자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백퍼센트 맞는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무엇이에요? 라고 묻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대답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실제로는 김치를 자주 먹지도 않으며 심지어 된장 찌개는 어떻게 끓이는 것인지도 모르면서도 그 음식들을 가장 이상적인 한국음식이라고 그냥 믿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긴 생머리의 수수한 모습의 여자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은 이전부터 학습된 내용이기 때문에 누가 물으면 반사적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발랄한 웨이브 머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유쾌한 웃음을 가진 여성을 좋아하기도 하고, 미니스커트에 깜찍한 부츠가 잘 어울리는 모습이 이쁘기도 하고,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지적인 스타일에 빠지기도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청순하지만 답답하기 짝이 없는 여자들은 대거 퇴출되고 사고는 좀 치지만 속 시원히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욱녀들이 대거 등장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아직도 청순해 주기를 바라는 지도 모르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청순녀와 만나는 일은 참 지루할 것 같다. 예전에 성시경은 토크쇼에 나와서 청순한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무언가를 결정할 때라고 말했다. 밥 한 번 먹기도 얼마나 힘든지 뭐 먹을지를 물어보면 한 시간 쯤 고민한 후에 맵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나 어쩐다나. 요즘에는 청순녀가 많이 사라졌기에 생각이 잘 안나지만 기억을 더듬어보자. 청순녀의 대표적인 특징은 말수가 적고 말이 느린 것이다. 뭐 하나를 결정하는데 한참이 걸리고 청순한 이미지에 걸맞게 할 수 없는 것도 너무 적다.


그렇다면 우리의 욱녀들은 어떤가? 지금 당장 생각나는 인물은 세 명이다. 종영되긴 했지만 내 맘에 쏙 들었던 '그들이 사는 세상'의 송혜교(주준영), '떼루아'의 한혜진(이우주), 종합병원2의 김정은(정하윤)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인물들이다. 열정이 넘쳐서인지 자신감이 강해서인지 하나같이 사고뭉치들이지만, 나는 시원 털털한 그들의 모습이 참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이것 저것 재지 않고 솔직하게 덤비는 주준영이 좋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팔 걷어 붙이고 일 할 줄 아는 이우주가 좋으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뒤에서 욕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직접 말해주는 용기 있는 정하윤이 좋다.

다만 욱하는 여성도 자신을 예쁘게 꾸밀 줄 아는데, 방송에서 욱하는 여자를 그릴 때면, 머리 모양이나 옷 입는 스타일 등에서 너무 여성스러움을 배제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요즘이 참 좋다. 지금까지 쓴 글을 돌아볼 때, 욱하는 여자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남자 친구와의 만남에서 애가 타고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꾹꾹 참지 않고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 할 줄 아는 여자들이고, 자신의 목표를 뚜렷이 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을 향해 큰 소리 칠 줄 아는 여자들이며, 타인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 잡으려 애 쓸 줄 아는 여자들인 것이다.



남성들이여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자신의 허물을 그저 덮어주고, 자신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며 늘 옅은 미소로 자신을 쳐다봐 주는 그런 여자가 좋은가. 아니면 당신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고 때로는 당신의 잘못을 지적해줄 줄도 아는 여자가 좋은가?

---덧붙임, 이 글은 욱녀의 한 사람으로서 쓴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어서 청순녀의 입장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점을 사과드립니다^^;;;---

반응형
반응형

나는 드라마 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사랑하는 마음을 숨긴 채 끙끙 앓는 장면을 볼 때면 너무 답답해서 화가 날 지경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분명한 데도 무엇이 문제인지 그저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만 볼 뿐 결국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멀어져 가는 그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이별 후 쓸쓸히 돌아서며 이미 다 안다고, 말 안 해도 괜찮다고, 애써 자신들을 위로할 지는 모르나 그것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분노로 가득찰 뿐이다. '사랑해' 말 한 마디면 무언가 달라질 것 같은 분위기인데, 결국 입을 떼지 못해서 헤어지고야 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은 진정 '마음'이 아닌 '말'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제 3자가 돼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땐 잘도 지적하는 우리들, 그런데 실제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신들의 마음을 속 시원히 표현하는 차세대 드라마 속 주인공과 같은가? 아니면 우유부단 흐지부지, 속 답답한 옛날 드라마와 같은가?


나는 아주 오래전에 어느 월간잡지에서 공감할 만한 좋은 글을 몇 개 읽었다. 하나는 신혼부부의 이야기이다.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신혼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신혼인데도 일이 너무 바빠서 집에 일찍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출장도 잦았다. 그런 남편 때문에 혼자서 집에 있어야 할 때가 많았던 전업 주부 새댁은, 남편이 보고 싶기도 하고 밤에는 무섭기도 해서 늘상 현관에 남편의 구두 한 켤레를 꺼내 놓았다.

어느 날 오랫만에 일찍 집에 들어온 남편의 얼굴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웠던 새댁은 애교반 어리광반으로 남편을 반기며 슬쩍 얘기를 꺼냈다. 새댁은 남편에게 그동안 현관에 그의 신발이 늘상 있었던 것을 보았느냐고, 왜 그런지도 아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남편이 볼멘 소리로 하는 말이, '내가 계속 늦게 들어오니까 보기도 싫고 귀찮아서 신발 정리를 안 한 거잖아' 남편은 아내가 자기 대신으로 신발을 상징처럼 현관에다 놓아두었던 것을 전혀 알지 못 했던 것이다.

또 다른 얘기는 이러하다. 어느 가난했던 부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의 식성에 맞추어 삼겹살을 먹기로 했고,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터라 2인분을 시켜서 아내는 그저 굽기만 했단다. 남편이 복스럽게 먹는 모습만 봐도 흐뭇했던 아내는 남편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밑반찬과 야채만을 먹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은 그 식당에서 외식을 했고 아내의 그러한 행동도 계속 되었다. 이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남편은 4명이 간 자리에 3인분만을 주문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의아한 나머지 이유를 물으니, 남편은 이 식당은 양을 많이 주기 때문에 넷이서 3인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단다. 그동안 둘이서 2인분을 시켰을 때 어찌나 양이 많던지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고 했단다. 이 사람 또한 그동안 아내의 배려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소개한 이야기는 모두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몰라주었던 내용이지만, 그 반대의 상황도 많을 것이다. 남편의 상징이었던 신발과 아내의 배려 덕에 푸짐했던 음식. 상대방은 전혀 이런 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이 꼭 그 사람들의 둔함때문인가? 나는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들처럼 속깊은 사이에서 굳이 말로써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냐고, 자신들에게는 말 하지 않아도 애틋한 무언가가 있다고 하는 사람을 우매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향한 내 오묘한 마음은 말로써 표현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또한 끈끈한 사이일수록 사랑한다는 말은 더 자주 하는 것이 좋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착각하지 말자, 아무리 깊은 사이라도 상대방은 내가 아니니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봐 줄 수는 없다. 설령 그 마음을 훤히 꿰 뚫고 있을지라도 사랑한다는 말로써 그 마음을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다. 사랑은 소모품이 아니기에 많이 사랑한다고 쉽게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사랑한다는 말은 아낄 필요가 없다. 사랑이라는 말의 고귀함 때문에 아껴두고 싶다는 사람은 정말 상대를 사랑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한다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왜 그 말을 아끼는가? 가끔은 진심어린 말 한마디로 모든 복잡했던 상황이 순식간에 말끔히 정리되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표현을 해 보자. 다시 말 하지만, 사랑은 '마음'이 아닌 '말'로 하는 것이다.

반응형
반응형

참 이상하다. '예의'를 으뜸으로 꼽는 우리 나라에, '이 말'이 없다니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예의 없고 경우 없는 사람'을 가장 꼴불견으로 손꼽는 나 조차 '이 말'없이 그토록 잘 살아왔다. 그러니 나는 몰랐었지만 그동안 나는 내가 가장 경멸했던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나는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말은 뻔하다. 생활에서 가장 많이 필요하고 가장 많이 쓰게 되는 말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도 이 말부터 배우게 된다. 외국 생활에 빨리 적응하려면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마운 마음을 많이 표현하고, 실수를 했을 때 미안한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로 따지자면 'Thank you'와 'I am sorry'만 잘 해도 살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Thank you'나 'I am sorry'라고 말 한다면?

(졸업한지 오래되어 기억은 안 나지만)아마도 중1 영어 교과서 1단원에 답이 나와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말로는 어떻게 대답할까? 상대방이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할 때는 '괜찮습니다'라고 응대하면 되겠다. 그런데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은 나에게 'You are welcome'에 해당되는 말이 무엇인지 꼭 물어본다. 우리가 이 말을 잘 쓰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가르치는 교재에는 한참을 배워도 이 표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새 슬그머니 나와 있는 표현인 '천만에요'를 나는 정말이지 가르치기 싫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천만에요'라는 말을 써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 말을 외국인 학생들에게 정답처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정말 부끄럽게 느껴졌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실제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말을 중심으로 가르쳐야한다. 특히나 내가 담당하고 있는 초급 학생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예의를 중시하는 나는 '아주 높임(하십시오체)'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조금 높임(해요체)'과 분명하게 구별해서 가르치는 편인데, '천만에요'는 어떻게 고쳐야 되는가 말이다.

요즘에는 어떤 사람이 고맙다고 말할 때 손사레를 치면서 '아유, 고맙긴요. 아니에요.'라고 응대하라고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윗사람이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다소 버릇없게 느낄 것 같다. 나는 버르장머리가 하늘을 찔러서 누가 나에게 고맙다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네'하고 만다. 그나마 얼굴 표정이라도 상냥하게 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철저하게 '예의없는 것'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즐겨보는 방송 중 하나인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 출연진이 이것을 정확하게 꼬집었다. 책에서 읽기로는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던 중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해도 그 인사를 받기만 할 뿐 대꾸가 시원찮다는 지적이었다. '아,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으로 자세까지 고쳐 앉아 방송을 봤지만 아쉽게도 정답은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민족, 고맙다는 말 하기가 영 쑥스러워서 그 말을 꼭 해야할 때는 영어로 툭 '뱉고(?)'마는 이상한 사람들. 외국 사람들을 대표해서 '미수다'가 지적한 거만한 대한 민국이 아닌가?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 할 수록 더 정이 쌓이는 것을 왜 몰랐던가. 마음 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마구마구 표현하자! 아, 그런데 상대의 고맙다는 말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옳은가.

반응형
반응형
'리얼, 더 리얼하게' 2008년 방송가에서 가장 많이 쓰인 말이 바로 이 '리얼'이라는 외국어가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분야의 오락 프로그램도 생기고, 제작진들은 어떻게 하면 더 사실같고 어떻게 해야 더 자연스러울 지를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웃음'이 주된 목적인 개그계가 이러한 상황이니 '사실감'이 그 기본인 드라마는 얼마나 더 심할까?

예전에는 하는 척만 하면 대충 눈감아 주던 것들도 이제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영악해진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헛점을 용케도 찾아내고, 제작진이 그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려면 부단히도 노력해야 한다.

응큼한 내가 생각하기에 '사실감'을 위해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애정신'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드라마에서 키스신을 보는 것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뽀뽀신도 그리 많지 않았었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넣는 것이 뽀뽀신이었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볼 때, 너무 과해 낯이 뜨거울 정도로 자세한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불륜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는 아침, 저녁 가릴 것 없이 민망한 장면이 많아서 우리나라 방송 규정의 변화를 새삼스레 깨닫게 해 준다. 내 기억으로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서양식(??)' 키스신이 방송된 것은(그 당시 매체에서 그렇게 표현했었다.) 종합병원1이었다. 신은경과 구본승의 키스신이었는데 당시에는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꽤 오랜 시간 화제가 됐었다. 내가 지금까지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파격은 파격이었나보다.


나는 응큼한 사람이기에 애정신의 사실감이야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그런데 한 가지 참을 수 없는 사실적 묘사가 있으니, 바로 '구토신'이다. 모든 파격은 영화에서 케이블로 케이블 방송에서 공중파 드라마로 옮겨오는 모양인지,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처음 봤던 잊을 수 없는 구토신은 이제 안방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상큼 발랄의 대명사 전지현과 귀여운 순애보 차태현이 나온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내가 정말 재밌게 본 영화이다.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준 영화이기에 다시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다시 볼 수 없는 이유가 너무도 극명하다. 유쾌한 기분으로 그 영화를 떠올리면 기억의 끝에는 항상 전지현의 '구토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전지현을 필두로, 나는 숱한 스타들의 구토 장면을 봐 왔다. 완벽한 꽃미남에서부터 깍쟁이 역이 딱인 신세대 여배우까지. 그들은 자신이 멋드러진 외모 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갖추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나같이 훌륭하게 토해댔고 그 때마다 나는 끔찍함에 몸부림쳤다. 영화를 보며 설마 저 배우가 정말로 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겠지, 제발 거기까지만, 이제 그만을 외쳐보았지만 '웩!!' 한 마디의 단말마를 남기며 꾸역꾸역 잘도 토한다. 애정신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의 영악한 눈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토신도 늘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괴롭다.


이제는 공중파에까지 자리 잡은 사실적인 구토신 때문에, 나는 드라마를 보다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면 얼른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고 괴롭고 그것을 보는 나도 괴로운 구토신. '리얼'이 대세인 요즘 같은 시대에 '했다치고'를 주장한다면 시대를 거스르는 역적이 되겠지만, 제발 토하지만 말아다오! 나 지금 밥 먹는 중이잖니!
반응형
반응형

<불만제로>에서 다이어트 약의 성분과 부작용에 대해 낱낱히 설명해 준 이래로 긴가민가 했던 그 약의 위험성이 보다 더 분명해졌다. 실제로 내 주위에도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고 우울증과 불면증 등 여러 부작용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다이어트 약이 심하면 자살 충동까지 부를 수 있다는 방송 내용이 남일 같지 않았다. 그러나 뉴스에서도 떠들썩했던 다이어트 약의 성분과 부작용을 알면서도 그 약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까지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줄곧 46kg을 유지해왔다. 46kg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날씬하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나, 나는 키가 160센티에도 한참 못 미치기 때문에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그냥 보통 몸매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요 몇 달 추위를 핑계로 꼼짝달싹 하지 않는 생활을 2개월 넘게 지속하다 보니 어느새 몸무게가 부쩍 늘었다. 내가 하는 일은 내내 서 있어야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움직임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근무시간도 짧다. 추운 것을 끔찍히도 싫어해서 퇴근 후에는 곧장 집에 들어와서 별로 움직이지도 않기 때문에 평소보다 운동량이 확 줄었다. 그래서인지 1kg씩 늘던 몸무게가 50kg에 육박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으면서도  천성이 게으르고 뒷심이 부족한 나는, 보다 더 쉬운 방법이 없는지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체형관리실 광고를 보게 됐다. 사실 체형관리에는 운동과 식사조절이 최고이다. 다 알면서도 자꾸만 체형관리실 쪽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요즘 다이어트에 관한 광고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한달에 10kg씩 빼 주겠다느니, 연예인 다이어트라느니, 자고 나면 빠져 있다느니 온갖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하니 태생이 게으른 내가 안 보고 배기겠냐는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 중에서 좀 이름 있는 체형관리실을 슬쩍 클릭했다.


구미를 당기는 문구가 내 눈을 확 사로잡았다. 방문만 해도 무료로 상담을 해 주고 살 빠지는 로션까지 덤으로 준단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나는 당장에 집하고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체형관리실이었는데, 내가 들어가니 상담원이 상냥하게 나를 맞아준다. 상담실로 안내를 받으며 슬쩍 관리실을 보니, 휴일이라 그런지 꽤 많은 여성들이 살 빼기에 여념이 없는 듯 했다.

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체형검사를 했다. 정확한 검사를 위해 옷도 갈아 입고 사진도 찍어야 한다면서 상냥하기 그지 없는 직원이 민소매 브라탑과 반바지를 가져다 줬다. 그런데 그 옷을 입으려고 보니 어찌나 작은지 다섯살짜리 아이가 입으면 딱 맞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니 내가 입으면 그 꼴이 어떻겠는가? 바지는 배를 꾹 눌러서 안 그래도 불룩 나온 내 배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고 브라탑은 진동이 작아서 겨드랑이가 끼고 살이 올록볼록 장난이 아니었다. 민망한 상태로 사진을 찍고 체질량검사도 하니 정말로 공짜로 상담을 해 준다.

상담원은 언제 인화했는지 흉직한 꼴로 사진에 찍힌 내 울룩불록 보기 흉한 몸매를 차트에 끼워서 같이 가지고 왔다. 그리곤 49kg인 내 몸무게를 보고 무게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누차 강조했다. 나도 알고 있듯 나는 키가 작으니 말이다. 라인이 살아야 되는데 고객님은 지방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상태고, 몸의 순환도 잘 되지 않아서 이 상태로 두면 점점 더 셀룰라이가 많아지기 때문에 지금 그것을 방지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단다. 물론 고객님은 나를 지칭하는 것이다. 내 발로 살을 빼겠다고 찾아가긴 했지만 나를 보고 뚱뚱하다고,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게 뻔하다고 하는 얘길 들으니 기가 막혔다.


나는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그야말로 보통 몸매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착각이었나 싶었다. 나이도 서른이기 때문에 한 번 찐 살이 잘 빠지지도 않을 시기로 접어들었다며 왜 이제서야 왔냐고 윽박지르기 시작하는 상담원이었다. 기가 죽어서 비용은 한 달에 얼마나 드냐고 모기소리로 물어보니, 심상한 목소리로 행사가격 240만원이란다. 24만원도 비싼판에 240이라니 살 빼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 줄은 몰랐다. 놀란 기색이 역력하자 상담원은 얼마까지 가능하냐고 카드 할부로 계산하면 되지 않냐고 집요하게 물어봤다. 겨우겨우 도망치듯 빈 손으로 관리실을 빠져나왔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과 공짜 사은품을 받을 요랑으로 찾아갔던 체형관리실. 과체중도 아닌 나를 뚱뚱보로 몰아세우며 윽박지르는 상담원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로 뚱보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상황이 이러니 비만인 사람들이 다이어트 약의 달콤한 유혹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겠냐는 말이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편하게 뺀 살은 금세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움직임이 적어서 살이 올랐으니 내일부터는 PT체조라도 해서 둔해진 몸을 가볍게 만들어야겠다. 다이어트의 공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몸에 필요한 최저 열량은 섭취하되 그 보다 더 많이 열량을 소모하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 공식을 두고 귀찮음 때문에 수모를 당해가며 그  많은 돈을 쓸 필요는 없다.

반응형
반응형

올 연말은 유독 조용한 것 같다. 때가 때이니 만큼 왁자지껄 보냈던 연말 연시도 이번 만큼은 가족들이나 소중한 사람과 함께 조용하면서도 의미있게 보내려고 계획하는 것 같다. 어쩌면 더 뜻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흥청망청 그저 소모적인 모임을 하는 것 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의 조촐한 시간이 더 좋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도 포스팅한 적이 있지만, 그런 분들에게 '경기도 여행'을 추천해본다. 경기도에 생각보다 멋진 곳이 많다는 것을 경기도 관광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됐다. 게다가 12월 31일까지 이 사이트에 있는 숙박 시설을 예약하고 경기도를 여행하는 가족들에겐 5만원의 주유비와 숙박료까지 지원해 준다고 한다. 그러니 이 사이트를 찬찬히 둘러보고 가족 구성원에 맞고 목적에 맞는 여행지를 선택해서 좀 더 가볍고 편하게 연말 가족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