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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있으면 친한 동생의 생일, 선물로 어떤 것이 좋을지를 고르다가 고민에 빠졌다. 사실 몇 달 전부터 그애의 선물로 점찍어 둔 것이 있기는 하다. 그애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온 대학원생인데, 한국에서 홀로 지내는 겨울이 춥다며 내복을 사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외출시에도 민망하지 않게 예쁘면서도 포근한 것을 사려면 내복값도 만만치가 않아서 그녀는 쉽사리 사지도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어느 곳이든 자취방은 춥기 마련이고, 물 건너 온 친구가 느끼는 체감 기온은 실제보다도 훨씬 낮는 법. 그래서 나는 고상하면서도 따뜻한 내복을 미리 봐 뒀었다. 그런데 같이 선물을 사러 갔던 다른 친구가 나를 극구말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선물인데 내복은 아무래도 맘에 걸린다는 것이다. 괜히 그 아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자칫 생일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으니 그냥 평범한(??) 것으로 골라 다른 사람들도 흔히 선물로 줄 법한 그런 것으로 사란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유학생활에 꼭 필요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지를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예전에 내가 백조였을 때(나는 임용고시 준비생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표를 달고, 자그마치 3년이나 백조생활을 했다.) 친구들과 했던 생일잔치가 기억이 났다. 오로지 시험 공부만 하는데도 세 번씩이나 시험에서 떨어지면서 내 통장의 잔고도 슬슬 바닥나기 시작하던 때였었다. 원래부터 모아 둔 돈도 없었거니와 부모님들께 받아 쓰던 용돈이 죄송스러워서 늘 주머니가 가벼웠었다. 솔직히 그 때는 생일이고 뭐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기를 더 바랐지만, 친구들은 혼자서 수험생활을 하는 나를 위해서 한데 모여줬다.

나이 만큼의 장미꽃, 큰 귀가 인상적인 곰인형, 상큼한 오렌지향이 기분 좋은 향수, 대충봐도 비싸 보이는 크리스탈 유리컵 그리고 한 번도 사 보지 못했던 빨간 립스틱. 백조로서의 마지막 생일이었던 그 때 친구들에게서 받은 생일 선물이었다. 내가 몇 년 전 선물들을 이토록 자세하게 기억하는 까닭은 친구들의 정성이 고마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 같이 당시의 내 생활에는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내 놓은 고가의 선물들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에 함박 웃음을 웃었지만 내 속으로는 다른 생각들이 꿈틀꿈틀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 저걸 학교 식당의 식권으로 바꾸면 몇 장이 나올까? 교통 카드도 충전해야 되는데. 차라리 쌀이나 자취생의 영원한 친구 참치로 사 줬음 몇 달동안 실컷 먹을 수 있을텐데...... . 나는 당장의 먹을거리 입을거리가 중요했기에 장미꽃이며 곰인형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매일같이 집에서 공부를 하는 나에게 향수가 무슨 소용이 었으며 자취생 크리스탈 컵으로 우유를 마신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빨간 립스틱은???

친구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기억이지만 당시의 내 상황이 그랬다. 그랬기에 어려운 것이 뻔히 보이는 동생의 생일 선물을 함부로 고를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나는 생활 필수품이면서도 선물하기 쉬운 기초화장품 세트를 주기로 결정을 했다. 내가 자신의 경제 상황 때문에 길게 고민했다는 사실은 영영 몰랐으면 좋겠지만, 내 선물을 받고 진심으로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 그 선물의 실용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것의 심미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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