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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더 리얼하게' 2008년 방송가에서 가장 많이 쓰인 말이 바로 이 '리얼'이라는 외국어가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분야의 오락 프로그램도 생기고, 제작진들은 어떻게 하면 더 사실같고 어떻게 해야 더 자연스러울 지를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웃음'이 주된 목적인 개그계가 이러한 상황이니 '사실감'이 그 기본인 드라마는 얼마나 더 심할까?

예전에는 하는 척만 하면 대충 눈감아 주던 것들도 이제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영악해진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헛점을 용케도 찾아내고, 제작진이 그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려면 부단히도 노력해야 한다.

응큼한 내가 생각하기에 '사실감'을 위해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애정신'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드라마에서 키스신을 보는 것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뽀뽀신도 그리 많지 않았었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넣는 것이 뽀뽀신이었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볼 때, 너무 과해 낯이 뜨거울 정도로 자세한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불륜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는 아침, 저녁 가릴 것 없이 민망한 장면이 많아서 우리나라 방송 규정의 변화를 새삼스레 깨닫게 해 준다. 내 기억으로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서양식(??)' 키스신이 방송된 것은(그 당시 매체에서 그렇게 표현했었다.) 종합병원1이었다. 신은경과 구본승의 키스신이었는데 당시에는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꽤 오랜 시간 화제가 됐었다. 내가 지금까지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파격은 파격이었나보다.


나는 응큼한 사람이기에 애정신의 사실감이야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그런데 한 가지 참을 수 없는 사실적 묘사가 있으니, 바로 '구토신'이다. 모든 파격은 영화에서 케이블로 케이블 방송에서 공중파 드라마로 옮겨오는 모양인지,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처음 봤던 잊을 수 없는 구토신은 이제 안방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상큼 발랄의 대명사 전지현과 귀여운 순애보 차태현이 나온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내가 정말 재밌게 본 영화이다.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준 영화이기에 다시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다시 볼 수 없는 이유가 너무도 극명하다. 유쾌한 기분으로 그 영화를 떠올리면 기억의 끝에는 항상 전지현의 '구토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전지현을 필두로, 나는 숱한 스타들의 구토 장면을 봐 왔다. 완벽한 꽃미남에서부터 깍쟁이 역이 딱인 신세대 여배우까지. 그들은 자신이 멋드러진 외모 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갖추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나같이 훌륭하게 토해댔고 그 때마다 나는 끔찍함에 몸부림쳤다. 영화를 보며 설마 저 배우가 정말로 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겠지, 제발 거기까지만, 이제 그만을 외쳐보았지만 '웩!!' 한 마디의 단말마를 남기며 꾸역꾸역 잘도 토한다. 애정신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의 영악한 눈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토신도 늘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괴롭다.


이제는 공중파에까지 자리 잡은 사실적인 구토신 때문에, 나는 드라마를 보다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면 얼른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고 괴롭고 그것을 보는 나도 괴로운 구토신. '리얼'이 대세인 요즘 같은 시대에 '했다치고'를 주장한다면 시대를 거스르는 역적이 되겠지만, 제발 토하지만 말아다오! 나 지금 밥 먹는 중이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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