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제로>에서 다이어트 약의 성분과 부작용에 대해 낱낱히 설명해 준 이래로 긴가민가 했던 그 약의 위험성이 보다 더 분명해졌다. 실제로 내 주위에도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고 우울증과 불면증 등 여러 부작용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다이어트 약이 심하면 자살 충동까지 부를 수 있다는 방송 내용이 남일 같지 않았다. 그러나 뉴스에서도 떠들썩했던 다이어트 약의 성분과 부작용을 알면서도 그 약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까지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줄곧 46kg을 유지해왔다. 46kg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날씬하다고 생각하실 지 모르나, 나는 키가 160센티에도 한참 못 미치기 때문에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그냥 보통 몸매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요 몇 달 추위를 핑계로 꼼짝달싹 하지 않는 생활을 2개월 넘게 지속하다 보니 어느새 몸무게가 부쩍 늘었다. 내가 하는 일은 내내 서 있어야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움직임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근무시간도 짧다. 추운 것을 끔찍히도 싫어해서 퇴근 후에는 곧장 집에 들어와서 별로 움직이지도 않기 때문에 평소보다 운동량이 확 줄었다. 그래서인지 1kg씩 늘던 몸무게가 50kg에 육박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으면서도 천성이 게으르고 뒷심이 부족한 나는, 보다 더 쉬운 방법이 없는지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체형관리실 광고를 보게 됐다. 사실 체형관리에는 운동과 식사조절이 최고이다. 다 알면서도 자꾸만 체형관리실 쪽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요즘 다이어트에 관한 광고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한달에 10kg씩 빼 주겠다느니, 연예인 다이어트라느니, 자고 나면 빠져 있다느니 온갖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하니 태생이 게으른 내가 안 보고 배기겠냐는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 중에서 좀 이름 있는 체형관리실을 슬쩍 클릭했다.
구미를 당기는 문구가 내 눈을 확 사로잡았다. 방문만 해도 무료로 상담을 해 주고 살 빠지는 로션까지 덤으로 준단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나는 당장에 집하고 가장 가까운 지점으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체형관리실이었는데, 내가 들어가니 상담원이 상냥하게 나를 맞아준다. 상담실로 안내를 받으며 슬쩍 관리실을 보니, 휴일이라 그런지 꽤 많은 여성들이 살 빼기에 여념이 없는 듯 했다.
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체형검사를 했다. 정확한 검사를 위해 옷도 갈아 입고 사진도 찍어야 한다면서 상냥하기 그지 없는 직원이 민소매 브라탑과 반바지를 가져다 줬다. 그런데 그 옷을 입으려고 보니 어찌나 작은지 다섯살짜리 아이가 입으면 딱 맞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니 내가 입으면 그 꼴이 어떻겠는가? 바지는 배를 꾹 눌러서 안 그래도 불룩 나온 내 배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고 브라탑은 진동이 작아서 겨드랑이가 끼고 살이 올록볼록 장난이 아니었다. 민망한 상태로 사진을 찍고 체질량검사도 하니 정말로 공짜로 상담을 해 준다.
상담원은 언제 인화했는지 흉직한 꼴로 사진에 찍힌 내 울룩불록 보기 흉한 몸매를 차트에 끼워서 같이 가지고 왔다. 그리곤 49kg인 내 몸무게를 보고 무게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누차 강조했다. 나도 알고 있듯 나는 키가 작으니 말이다. 라인이 살아야 되는데 고객님은 지방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상태고, 몸의 순환도 잘 되지 않아서 이 상태로 두면 점점 더 셀룰라이가 많아지기 때문에 지금 그것을 방지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단다. 물론 고객님은 나를 지칭하는 것이다. 내 발로 살을 빼겠다고 찾아가긴 했지만 나를 보고 뚱뚱하다고,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게 뻔하다고 하는 얘길 들으니 기가 막혔다.
나는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그야말로 보통 몸매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착각이었나 싶었다. 나이도 서른이기 때문에 한 번 찐 살이 잘 빠지지도 않을 시기로 접어들었다며 왜 이제서야 왔냐고 윽박지르기 시작하는 상담원이었다. 기가 죽어서 비용은 한 달에 얼마나 드냐고 모기소리로 물어보니, 심상한 목소리로 행사가격 240만원이란다. 24만원도 비싼판에 240이라니 살 빼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 줄은 몰랐다. 놀란 기색이 역력하자 상담원은 얼마까지 가능하냐고 카드 할부로 계산하면 되지 않냐고 집요하게 물어봤다. 겨우겨우 도망치듯 빈 손으로 관리실을 빠져나왔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과 공짜 사은품을 받을 요랑으로 찾아갔던 체형관리실. 과체중도 아닌 나를 뚱뚱보로 몰아세우며 윽박지르는 상담원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로 뚱보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상황이 이러니 비만인 사람들이 다이어트 약의 달콤한 유혹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겠냐는 말이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편하게 뺀 살은 금세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움직임이 적어서 살이 올랐으니 내일부터는 PT체조라도 해서 둔해진 몸을 가볍게 만들어야겠다. 다이어트의 공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몸에 필요한 최저 열량은 섭취하되 그 보다 더 많이 열량을 소모하면 된다. 이렇게 간단한 공식을 두고 귀찮음 때문에 수모를 당해가며 그 많은 돈을 쓸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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