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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다. '예의'를 으뜸으로 꼽는 우리 나라에, '이 말'이 없다니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예의 없고 경우 없는 사람'을 가장 꼴불견으로 손꼽는 나 조차 '이 말'없이 그토록 잘 살아왔다. 그러니 나는 몰랐었지만 그동안 나는 내가 가장 경멸했던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나는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말은 뻔하다. 생활에서 가장 많이 필요하고 가장 많이 쓰게 되는 말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도 이 말부터 배우게 된다. 외국 생활에 빨리 적응하려면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마운 마음을 많이 표현하고, 실수를 했을 때 미안한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로 따지자면 'Thank you'와 'I am sorry'만 잘 해도 살기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Thank you'나 'I am sorry'라고 말 한다면?

(졸업한지 오래되어 기억은 안 나지만)아마도 중1 영어 교과서 1단원에 답이 나와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말로는 어떻게 대답할까? 상대방이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할 때는 '괜찮습니다'라고 응대하면 되겠다. 그런데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은 나에게 'You are welcome'에 해당되는 말이 무엇인지 꼭 물어본다. 우리가 이 말을 잘 쓰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가르치는 교재에는 한참을 배워도 이 표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새 슬그머니 나와 있는 표현인 '천만에요'를 나는 정말이지 가르치기 싫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천만에요'라는 말을 써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 말을 외국인 학생들에게 정답처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정말 부끄럽게 느껴졌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실제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말을 중심으로 가르쳐야한다. 특히나 내가 담당하고 있는 초급 학생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예의를 중시하는 나는 '아주 높임(하십시오체)'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조금 높임(해요체)'과 분명하게 구별해서 가르치는 편인데, '천만에요'는 어떻게 고쳐야 되는가 말이다.

요즘에는 어떤 사람이 고맙다고 말할 때 손사레를 치면서 '아유, 고맙긴요. 아니에요.'라고 응대하라고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윗사람이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다소 버릇없게 느낄 것 같다. 나는 버르장머리가 하늘을 찔러서 누가 나에게 고맙다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네'하고 만다. 그나마 얼굴 표정이라도 상냥하게 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철저하게 '예의없는 것'이 되는 순간이다.


내가 즐겨보는 방송 중 하나인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 출연진이 이것을 정확하게 꼬집었다. 책에서 읽기로는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던 중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해도 그 인사를 받기만 할 뿐 대꾸가 시원찮다는 지적이었다. '아,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으로 자세까지 고쳐 앉아 방송을 봤지만 아쉽게도 정답은 없었다.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민족, 고맙다는 말 하기가 영 쑥스러워서 그 말을 꼭 해야할 때는 영어로 툭 '뱉고(?)'마는 이상한 사람들. 외국 사람들을 대표해서 '미수다'가 지적한 거만한 대한 민국이 아닌가?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 할 수록 더 정이 쌓이는 것을 왜 몰랐던가. 마음 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마구마구 표현하자! 아, 그런데 상대의 고맙다는 말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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