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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효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타인의 기대나 관심 등이 본인에게 영향을 미쳐 능률이 오르거나 성과를 발휘하게 되는 효과를 뜻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로젠탈 효과, 자성적 예언, 자기충족적 예언, 교사 기대 효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천국이다. 늘 자신을 웃는 얼굴로 바라봐 주면서 작은 일에도 관심을 보여주는 선생님이 있고, 자기를 영웅으로 추대하며 따라하고자 애쓰는 또래 아이들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반면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학교는 생지옥이기 쉽다. 수업에 집중해도 영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 때문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고, 그런 아이에게 선생님들이 특별한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그나마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지만, 혹독한 시험 기간과 냉정한 평가 결과들 사이에서 느는 것은 함숨이요, 드는 것은 자괴감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학생이었다. 늘 앞에 앉아서 열심히 진도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수많은 공식들과 역사적인 사실들은 좀 처럼 머릿속에서 머물러 주지 않았다. 비밀을 터 놓으며 단짝이 되는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자존심때문에 내 성적을 공개할 수 없었고 수능시험이 다가올 수록 점점 더 외로워졌던 것 같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무렵,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추운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약속이 있었다. 조금 더 많은 학생을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곳에 진학시키려고 담임 선생님은 많이 애를 쓰셨을 것이다. 계속되는 상담에 많이 지치기도 하셨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때 선생님은 나 같은 열등생에게도 우등생과 똑같은 관심을 보여주셨어야 했다. 우리도 당신의 제자임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나와 약속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온 우등생에게 순서를 가로채이면서 나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그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홀로 추위에 떨며 내 시간을 기다렸던 나는 비참했다. 그 다음날로 상담이 연기됐고 내 차례는 십분도 안 돼 끝이 났다.

시간이 지나 열등생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어떤 맘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다소 역차별적인 수업을 한다. 물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도 내 제자들이니 그들에게도 동일한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혼자서도 잘 해내는 우등생들에게는 덜 마음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내 학생들은 대개 성인이므로(나는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수업 외 시간을 활용한 친교 활동을 함으로써 그들과의 신뢰감을 형성하는데에도 노력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내 제자이자 곧 친구이다.

그런데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피그말리온'의 무서운 효능이다. 내 눈맞춤, 미소, 다정한 손길 등을 거치면서 열등생이 우등생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나는 참 많이도 봐 왔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로 학생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생기고 나면 수업에 임하는 학생의 눈빛부터가 달라지고 그들이 해 오는 숙제의 질이 변화한다. 일단 신뢰가 생기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크게 마음을 써 주지 않아도 학생은 스스로 우등생이 되어간다. 매학기 이런 일을 경험하고 나니, 교육의 본질은 진정 사랑이었구나 싶다.


성인 학습자가 이러한데 하물며 청소년들은 어떠하겠는가. 실제로 어느 남자 중학교에 교생실습을 갔을 때, 유독 말썽을 부려서 나를 참 난감하게 만들었던 아이들이 한 반에 한 둘 씩은 꼭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괴로워서 저절로 그 아이들의 이름이 먼저 외워졌는데, 나중에는 가장 친한 관계가 돼 버렸다. 복도에서 만날 때 마다 반갑게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물어봐주고 했더니 한 달 후 수업태도와 성적이 놀랄 만큼 좋아졌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내가 직접 체험한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었다. 교사의 기대 효과가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학습자가 어릴 수록 그 효과가 더 크니 특히나 초등학교 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다 친구가 뜬금없이 한마디 던진다. '그래서 초등학생 엄마들이 싫든 좋든 담임 선생님에게 촌지를 주는 거잖아~ 나도 나중에 빳빳한 걸로 꼭 줘야지'. 친구의 말에 심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긍정적인 효능을 이야기하다 결론처럼 나온 말이 꼭 촌지를 줄 거라는 다짐이라니, 우리나라의 공교육의 현실이 깜깜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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