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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잠은 안 자고 침을 꼴깍거리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 자그마치 24인분에 사은품까지 주는데 3만 8천 900원이란다. 이 정도 가격이면 거저 주는 거나 다름 없단다. 많이 매운 모양인지 모델들은 콧잔등에 땀을 송글송글 흘려가면서도 밥도 없이 매운 낙지볶음을 연신 먹어대고 있다. 딱히 살 것도 아니면서 왜 나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낙지볶음 홈쇼핑 방송을 보고 있는 것일까? 맛있다를 연발하는 그들을 보면서 침을 흘리고 있자니 왠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서 슬그머니 채널을 돌린다. 그러다 멈춘 곳에서는 좌우 같은 사람인게 분명하지만 확실한 화장술의 승리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여인이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구성을 챙겨주는데 겨우(?) 9만 9천원이란다.


오늘도 지름신은 내게 강림하신 것일까?

홈쇼핑이 맨 처음 선을 보였을 때 나는 정말로 사도 되는 것인지 의심부터 하고 봤다. 쇼호스트들의 말도 모두 감언이설로 들렸고 품질도 의심스러웠으며 시중보다 싸게 파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이름있는 회사의 물건을 하나 둘 사게 되면서 어느새 홈쇼핑을 즐기게 됐다. 홈쇼핑이 신뢰를 얻고 성장하게 되자 제품들도 훨씬 더 다양해졌고 무엇보다 방송이 재미있어졌다. 늘씬늘씬한 모델들이 선 보이는 옷들은 하나같이 예뻐보였고 음식 광고를 할 때는 꼬르륵 소리가 절로 날 만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정말 돈이 되기는 되는 모양인지 얼마전부터 연예인들도 자기 이름을 건 제품들을 홈쇼핑을 통해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특히나 속옷, 옷, 화장품 등은 그야말로 대박난 제품들도 많다. 내 옷장이며 화장대에 홈쇼핑 물건들이 가득하니 나도 그들의 성공에 일조를 한 셈이다. 홈쇼핑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 상품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꼭 사야만 하는 것처럼 들린다.


마침 기초 화장품 세트가 떨어졌다는 좋은 핑계로 홈쇼핑에서 사은품까지 두둑하게 챙겨주는 화장품을 사고 난 이후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기초 화장품 방송을 또 보게 되니 정말 중증인게 틀림없다. 지름신이 너무도 자주 강림하는 것 같아서 애써 채널을 돌려보지만 어느새 또 파마한 것 보다 더 예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준다는 세팅기를 넋놓고 보고 있다.

홈쇼핑을 연출하는 사람들은 천재적이라서 화면 아래에 시계를 만들어 두어 나를 긴장시키더니 이제는 째깍째각 소리까지 더 해서 나를 더욱 가슴 졸이게 만든다. 종료 10분 전, 다시는 없을 좋은 기회라는데, 이번 방송이 끝나면 다시는 이런 구성은 없다는데, 살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방송을 보고 있노라니 애간장이 다 녹을지경이다. 아예 방송을 보지 않는 것이 낫지 한번 수렁(?)에 빠지고 나면 그 제품이 나에게 필요한 이유를 기필코 만들어내기 때문에 지름신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지름신과 사이좋게 지내다가 너덜너덜해진 내 통장 잔고를 보며 훌쩍여봤자 이미 늦었다. 결국 나는 리모컨에서 홈쇼핑 채널을 모두 지우는 것으로 지름신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이미 모든 홈쇼핑 방송의 채널을 다 외우고 있기에 그 전쟁에서 내가 이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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