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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몸무게와의 전쟁입니다.
아시죠?
임신했다고 2인분의 음식을 마음껏 배불리 먹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예전에는 임신부들은 무조건 많이 잘 먹는 것이 태아와 산모들에게 좋은 줄 알았었잖아요?
그러나 임신 기간 중 조심해야 될 것 중 하나가 과도한 체중 증가랍니다.
체중이 급격히 늘게 되면 임신 중독증이 올 수도 있고
아이의 건강에도 좋지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에요.


첫 아이 다솔이를 임신 했을 때 이 사실을 알고
열 달 동안 매주 체중을 재 가면서 조심 또 조심을 했었어요.
임신부가 음식을 제한하면서 체중조절을 해서는 안 되지요.
신선한 채소와 질 좋은 육류를 먹으면서 꾸준히 운동을(걷기가 최고예요.) 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데요,
(임신 초기에는 조심해야 할 시기이므로 걷기 운동은 임신 후 3개월 이후부터 하는 것이 좋아요.)
조심한다고 애는 썼지만 산달이 다가올 수록 주체할 수 없는 식욕 때문에
목표치 보다 약간 더 증가한 +11kg으로 첫 번째 임신을 마감했었어요.
그래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나나, 고구마, 각종 채소들을 맘껏 먹고 운동까지 하면서
건강하게 임신 기간을 지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항상 관심을 가지고 돌봐줘야 되는 첫째 아이가 있어서인지 둘째 임신 땐 제 맘대로 안 되네요.


저는 둘째 '달'이 임신 후 유산기가 조금 있었기 때문에
먹고 자고 먹고 앉아 있고, 먹고 다솔이랑 조금 놀고를 반복하다 보니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4kg이나 증가해 버렸답니다.
다솔이를 낳고 나서 모유 수유를 오래 해서인지 저에게도 날씬하던 때가 있었는데 말예요.
올 1월에 했던 체성분 분석인데 정말 맘에 드는 결과치를 얻었어요.





그런데 달이 임신 후 한 달만에 45~46kg을 왔다갔다 하던 제 몸무게가
무려 50kg에 육박하게 돼 버렸답니다.


임신 기간 동안 7~10kg 정도 체중 증가가 되는 것이 건강하다고 하는데 말예요.
앞으로 어떻게 식단을 짜고(절대로 굶으면 안 돼요) 운동을 해야 될지 참 고민이에요.
아이 둘, 셋 낳으면 점점 더 펑퍼짐해진다던데 아우, 생각만해도!
날씨가 좋아졌으니까 자주자주 다솔이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죠.
헛둘헛둘! 암만 생각해도 운동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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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하게도 블로그를 보시고 방송 출연을 제의해 오는 작가 분들이 몇몇 있었으나 나는 그 때마다 생각만으로도 다리가 후덜덜 몸이 부르르 떨려서 정중히 거절을 하곤 했다. 의외로(?) 소심한 성격에 기억력도 좋은 편이라 자칫 방송을 망치게 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고 꽤 긴 시간 밤잠도 설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뭣도 모르고 방송블로거를 따라서 영화배우 유해진과 진구를 인터뷰하러 간 적이 있는데 나는 그저 가볍게 연예인을 구경을 하러 가는 상황이었기에 아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룰루랄라 그저 놀러를 갔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독 인터뷰에서 메인이었던 (나를 데려갔던) 그 방송연예블로거조차 아무런 사전 조사없이 왔던 것! 코 앞에서 유해진과 진구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딱히 할 말은 없고, 그 자리에서 '저는 그냥 구경꾼이에요'라고 외칠 수도 없고, 나는 진땀을 흘리면서 횡설수설, 우왕좌왕 못 보일 꼴을 보이고 말았다.

그 날 이후 텔레비전에서 유해진과 진구를 볼 때마다 괜히 얼굴을 붉히게 됐고 당연히 꽤 오랫동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을 치는 일이 많았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뭐' 쏘 쿨한 방송연예블로거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그 일을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방송 출연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수밖에.

그런데 그런 내가 자발적으로 지원을 해서 서류를 통과하고 방송국으로 카메라 테스트까지 받으러 갔던 일이 있었다. 내가 욕심을 냈던 방송은 KBS 생로병사 팀에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3D 입체 방송인데, 임신과 출산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이다. 임신부 세 명 정도를 섭외해서 배가 점점 불러 가는 과정과 출산에 이르는 것까지를 생생하게 담아내어, 방송 생로병사에서 크게 다룰 수 없었던 '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제작에 참여를 하게 되면 10개월의 임신 기간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니 나와 아기에게 더 없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서 진심으로 출연이 하고 싶었다. 게다가 3D 입체 영상으로 제작이 되어서 완성 후에는 극장에까지 상영이 된다니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는가! 이미 임신 중기의 산모들은 촬영에 들어갔고 임신 10주 이내의 초기 임신부를 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대학 입학 서류를 작성하는 마음가짐으로 1차 서류에 쓰일 사진을 정성껏 골라 가장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나온 것으로 제출했더니 사진발 덕에 무난하게 1차는 통과.




문제는 카메라 테스트였다. 아직은 바람이 세차게 불던 3월의 어느 날, 나는 남편에 아이까지 대동하고 여의도 KBS 방송국에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 각자 정해진 시간에 한 명씩 따로따로 카메라 테스트와 간단한 인터뷰를 갖게 되는 자리였는데, PD 님은 카메라를 통해 내 모습을 찬찬히 보시더니 참 복스럽게 생겼단다.

어렸을 때부터 크고 넓적한 얼굴 덕(?)에 부잣집 맏며느리 같다느니, 달덩이처럼 얼굴이 훤하다느니 하는 절대로 칭찬일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자랐기에, 나는 직감적으로 망했구나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그 PD 님에게만은 '복스럽다'라는 의미가 '긍정'이기를 바라고, 원하고, 소원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탈락이었다. 통이든 불통이든 기별이라도 좀 해 주면 참 좋았겠는데, 사진보다 더 예쁘고 생각보다 더 날씬하다며 나를 한껏 띄워주었던 작가에게마저 한 통의 문자도 없었다.

에잇! 복스럽게 생긴 얼굴보다 복 없이 생긴 얼굴이 더 추앙받는 더러운 세상! 두고 봐라, 이제 13주 된 우리 달이만 태어나고 나면, 달덩이같은 내 얼굴을 초승달로 만들고 말테닷! ...... 정,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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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이가 태어난 지도 어느덧 19개월
(9월 생이라 약간은 억울한) 다솔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벌써 세 살이에요.
저는 아이를 혼자서 자라게 할 생각은 없었기에
다솔이 동생을 늘 마음 속에 염두해 두고 있었지만 그 때를 두고는 고민이 많았었어요.


아이를 생각하면 두 살 터울이 좋다고들 하던데, 그러면 2011년이 가기 전에 낳아야 되고,
저를 생각하면 이제 좀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또 한 번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겪어야 되니...... .
쉽게 결정을 내릴, 만만한 일은 아니었지요.


임신 기간 열 달, 출산 후 회복기간 세 달, 그리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육아, 육아, 육아 + 집안 일.
지금도 그리 녹록치 않은 데 두 아이의 수발(?)을 들어야 된다면 정말 힘들 것 같았어요.
게다가 저는 제왕절개 수술로 다솔이를 낳았기에 아직도 덜 아문 것 같은 상처부위를 또 한 번 찢어야 한다니
참 마음이 찢어질 일이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속이 메슥메슥 울렁울렁 입덧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둘째다 보니 어느 정도 낌새가 있어서 아무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임신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친정에 있던 때라서 조금 피곤하면 자거나 쉬고
엄마께서 해 주시는 음식을 따박따박 잘도 받아먹으며 집에서 뒹굴거릴 때였어요.
엄마께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몇 차례 이야기 했더니 엄마는 대뜸, 임신했나고 물어 보십니다.
다솔이 때도 그저 비빔국수 좀 먹자고 했을 뿐인데 귀신같이 알아차리시더니,
역시 엄마는 정말 위대한 존재인 것 같았어요.
아직 확인된 바가 없으니 아니라고 대충 둘러대고는
몰래 임신테스트기를 샀습니다.







지난 3월 2일에 해 본 첫 번째 임신테스트예요.
희미한 두 줄이 나왔었는데 사진을 오늘 찍었더니 희미한 선이 잘 안 보이네요.
전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 보다는 선 모양이 나왔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바래졌다봅니다.
암튼 희미한 두 줄이었어요.
임신 출산 카페에 참 많이도 올라오는 질문이지요?
흐린 두 줄도 임신일까요?
네네, 흐린 두 줄도 임신이 맞답니다.


우리나라 임신테스터기는 워낙 성능이 좋아서
99%의 정확성을 자랑한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께 두 줄이어도 임신이 아닐 수 있냐고 물었더니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이면 무조건 임신이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확실히 하고 싶어서 생리 예정일 일주일 후에 또 한번 임신테스트를 했습니다.
이번엔 선명한 두 줄, 역시나 임신이었어요.
원래 둘째땐 이런가요?


무뚝뚝한 제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감흥이 없을 수 있다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인지 특별한 어떤 기분이 들지도 않고, 그저 아, 임신인가 보구나 했답니다.
아기에게 미안해서 의식적으로 조금 기쁜 생각을 떠올려 주다가,
그것에 둘째의 숙명인것 같다며 토닥토닥 위로를......
남편에게 임신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남편도 저와 비슷한 것 같았어요.
아이가 태어나면 또 달라지져서 둘째에게도 사랑을 쏟는 부모가 되겠지만,
둘째들이 애교가 많은 이유, 둘째들이 유순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은 이 기분!
(참고로 저는 첫째, 남편은 외동이에요)
본능적으로 제 살 길을 찾는 것이지요.


달이야, 잘 왔다!
(태명, 다솔이의 태명이 별이였다고 둘째의 태명은 그냥 달이가 돼 버렸네요.)
엄마가 열 달 동안 잘 보살펴 줄게.
우리 열 달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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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드나드는 인터넷 카페가 있어요. 그 카페는 임신&육아 전문 카페라서 여성들만 가입을 할 수가 있는데요, 임신을 준비하거나 임신 중인 예비엄마들에서부터 출산 후 아이를 잘 기르고 있는 선배 엄마들까지 회원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에요.

제가 느끼기엔 육아 서적을 기본으로 읽고 카페 게시물들을 참고서로 활용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첫 임신을 했을 때 생기는 막연한 걱정거리에서부터 아이들 이유식 식단까지 해결할 수가 있어서 저에게는 책 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곳인데요, 얼마 전 그 카페에서 재미있는 글을 하나 발견했어요.




어떤 임신부가 육아교실에 갔는데 강사분이 말씀하셨대요. '시댁에 사는 임신부가 입덧을 덜 한다'고요. 무슨 말인지 갸우뚱 하고 있는데 그 강사가 웃으며 덧붙인 말이 좀 씁쓸했다는 이야기예요. '입덧할 시간이 없겠죠' 카페의 특성(??)상 '시댁'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폭발적인 조회수와 쓰나미 격의 덧글이 달리는데요, 과연 이 글도 회원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어요.

시어머니가 서운하게 했던 일에서부터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의 차이점, 불똥이 다른 데로 튀어서 미운 시누이와 한심한 남편 등등...... 연일 새로운 덧글이 달리면서 게시판의 최고 인기글로 자리매김 하는 듯 했어요. 임신부들은 호르몬의 영향 때문에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감정의 기복도 심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고요, 또 이런 공간이 있어야 숨통이 좀 트이지 않겠어요?

덧글을 읽다가 어찌나 우스운 것들이 많은지 한참을 깔깔댔는데, 다시금 그 강사의 말을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뭐, 상관없는 말일 수도 있는데요, 학과 교수님과 함께한 술자리(술자리를 한 기억이 너무 오래 되었기에)에서 주량 보다 더 많은 술을 받아 마셔도 정신을 말짱하게 차릴 수 있는 것 처럼 입덧도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제가 다솔이를 임신했을 때, 친정엄마의 우려와는 달리 전혀 입덧을 하지 않았던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에요. 입덧도 엄마와 닮는다고 하잖아요? 저희 엄마께서는 임신 5개월이 다 되도록 다른 음식은 쳐다도 못 보시고 오직 빵과 과일만 조금씩 드실 수 있었대요. 그 정도로 입덧이 심하셔서 저 또한 그런 고통을 겪게 될까봐 걱정을 하셨었어요.

그런데 웬걸? 저는 임신 기간 내내 입덧의 'ㅇ'도 모른 채 가리지 않고 잘만 먹어서 스스로도 임신 체질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더러운 화장실 환경' 때문이었답니다. 다솔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 10주부터 28주까지는 중국에서 살았었거든요. 중국에 있는 웨이팡교육대학 한국어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어요.


her hug
her hug by Flying House Studio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재미있었고 그곳에서의 삶도 만족스러웠는데, 단 하나!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화장실 때문에 사는 내내 고생을 좀 했어요. 저희 부부가 살던 곳은 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아파트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더러움이 가득한 곳이었답니다.

너무 더러웠기 때문에 되도록 화장실에서는 빨리 나오는 것이 좋았으니, 차마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토할 수는 없는 곳이었지요. 그 생각이 강렬했기에 저는 입덧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입덧이 너무 심해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드실 수 없어 괴로워하시는 분들은 어쩌면 행복한 임신 기간을 누리고 계시는지도 모르겠네요. 입덧으로 육체는 힘드실지라도 정신적으로는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는, 너무나도 편안한 삶을 누리고 계시니 어쩌면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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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9. 생후 7개월

유모차가 아닌 아기띠(처네)를 메고 처음으로 먼 길 나선 엄마와 다솔이.
아기띠를 잘 해 보지 않아서 다솔이도 조금 불편해하고
엄마도 익숙치 않아서 약간 힘들어 했지만,
목적지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가며 타아 했기에
(버스에는 유모차가 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쉽게 접어서 어깨에 척 하고 멜 수 있다는 휴대용 유모차를 하나 사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 중인 엄마다.



2010. 4. 10. 생후 7개월

배밀이와 낮은 포복 자세에 완벽하게 적응한 다솔이가
이제 한 단계 발전한 손바닥으로 기기에 도전을 하려는 중이다.
손바닥을 바닥에 붙인 채,
엉덩이를 들고 붕붕붕 시동을 걸다가 어느 순간 빠른 속도를 내며 기기 시작한 다솔이.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목을 가누고, 뒤집고, 되집고, 배밀이를 하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기기 시작한 기특한 다솔이다.



2010. 4. 11. 생후 7개월

이런이런...... .
보행기에 태우니 앞으로 앞으로 신나게 가더니
결국 종착점은 텔레비전 앞이다.
다솔이를 임신했을 때 절대로 만 2살이 되기 전까지는 텔레비전을 보여 주지 않으리라
결심을 했건만, 그러기엔 엄마인 나도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야 되니까, 쩝...... .
텔레비전 앞에 떡 하니 자리까지 잡고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모양이 하도 걱정스러워
다솔아! 다솔아! 불러렀더니
왜요? 시큰둥하게 쳐다보는 다솔이다.
그....냥....좀...뒤로 와서 보라고...... .



2010. 4. 14. 생후 7개월

왼쪽 박시은 2009년 10월생 공주님,
오른쪽 박예원 2009년 11월생 공주님,
가운데 이다솔 2009년 9월생 왕자님.
꼬맹이들 셋을 나란히 엎드려 놓으니 어찌나 귀여운지.
엎드린 자세를 약간 힘들어하는 시은이,
이가 나기 시작해서 얼굴 표정이 늘 어색한 다솔이,
메롱 놀이에 한창 빠져서 혀를 쏙 내밀고 있는 예원이 덕에 엄마들은 많이 많이 웃었다.


다솔이가 다음 뷰에 소개되었어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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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콤보백신이 뭔지 아직도 모르는 나와 비슷한 엄마들을 위해 주사 한 방으로 DTaP(백일해, 파상풍, 디프테리아)와 IPV(소아마비)를 해결하는 놀라운 테트락심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다음 번 예방 접종에도 한꺼번에 무시무시한 주사 바늘 두 개를 다솔이의 다리에 꽂는 가슴아픈 장면을 또 봐야 했겠지. 친구를 초대한 일이 진짜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날의 경위>
이쯤하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쪽에선 몸에 좋은 버섯이며 양파, 양배추, 당근이 잔뜩 들어간 오징어 볶음이 지글거리고, 또 한 쪽에선 순두부가 먹음직스럽게 들어간 뚝배기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혼자 놔 둔 것이 못내 걱정스러워 힐끔거리면서 다솔이가 있는 쪽을 계속 의식하다가 다솔이가 아슬아슬한 모양새를 보이는 즉시 번개처럼 달려가서 다솔이를 안아 올린다. 그 와중에 친구들에게 문자까지 보내기.

30분 후면 오랜만에 친구들이 놀러를 올 예정이어서, 다솔이에게 이유식을 먼저 먹이고 세수와 기저귀 갈기까지 마치고 나니 '딩동' 정확한 시각에 초인종이 울렸다.

다들 하나씩 매고 왔던 아기띠를 풀고 각자의 얼굴과 꼭 닮은 아기들을 일렬로 앉혀 놓으니,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흐뭇해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는 먼저 주린 배부터 채우기로 하고 내가 미리 준비해 놓은 음식들을 양껏 맛있게 먹었다.



아기 엄마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그래야 된다는 듯 아기들의 발달 상황이 화제가 되는데, 이 날도 다솔이가 스스로 서게 된 것에 대한 감탄과, A가 밤중 수유를 끊은 것에 대한 안도, 그리고 B의 얼굴에 난 조그마한 상처 등등이 순서대로 화제에 올랐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나는 아기 기르기에 대한 정보가 참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임신 때에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엄마들이 가입해 있다는 '임신, 육아' 관련 네이버 카페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서, 임신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는데 지금은 처음 듣는 얘기가 너무 많았다. 다솔이가 백일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난 이후부터는 거의 카페에 들어가보지 않았으니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아기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유기농 제품은 어디에서 사는 게 좋은지, 오히려 여름에 더 추운 지하철과 공공기관에 갈 때 따뜻함과 멋스러움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담요는 어디 것이 예쁜지, 슬슬 밤에 안고 잘 수 있도록 유행하는 토끼 인형을 사 주고 싶은데 공동구매는 어디서 하면 되는지...... 끝도 없는 정보들을 술술술 이야기 했고 나는 하나씩 외우려고 하다가 너무나 방대해서 결국 도중에 포기해 버렸다.

친구들이 돌아간 후 나는 후다닥 네이버 카페에 접속을 해 봤다. 역시나 알토란 같은 정보들이 넘쳐 나서 나는 메모까지 하면서 하나씩 달게 글들을 읽었다. 그러던 중 '콤보백신'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Inoculation
Inoculation by David Robert Wrigh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아기들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맞는 BCG를 시작으로 해서 돌까지 여러 종류의 예방 주사를 맞게 된다. 그 조그마한 다리에 뾰족한 주사 바늘이 쿡 들어가는 순간, 너무나 아플 것 같아서 아기보다 엄마의 얼굴이 더 일그러지게 마련이다. 다솔이는 꽤 용감한 편이라 주사를 맞고도 길게 운 적이 한 번도 없긴 한데, 매 2, 4, 6개월에 맞았던 DTaP와 소아마비(IPV)를 맞던 날엔 다른 날보다 많이 아파했었다.

주사를 놔 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소아마비를 맞을 때 그 주사가 특별이 더 아프다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지만, DTap와 소아마비는 같은 날 두 대의 주사로 맞아야 되기 때문에 아기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공포가 더 크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주사 한 대를 맞고 이제 끝났겠지 하는 순간 또 다시 주사를 맞게 되니까 말이다.

콤보백신은 각각의 백신을 혼합하여 여러 질환을 예방하는 백신을 말한다.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콤보백신이 보편화 되어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야 테트락심이라는 백신이 출시되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는 못한다고 했다.

콤보백신도 그랬지만, 테트락심이란 말도 나는 처음 들었기에 진짜 주사를 한 대만 맞고도 두 대를 다 맞은 효과가 있는지 더 찾아 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신문 기사로도 나왔고 소아과 의사들이 쓴 칼럼에서도 콤보백신과 테트락심을 소개 해 놓은 글들이 있었다.

*테트락심의 DTaP는 10년 이상 백일해 예방에 효과가 입증된 제품이고
*테트락심의 IPV는 20년 이상, 2억 3천만 도스 이상이 공급되었고, 세계 80개국 이상에 등록된 제품이다.
*테트락심은 한 번의 접종으로 두 가지 이상의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이다.

아! 진작에 알았으면 다솔이가 2, 4, 6개월에 걸쳐 무려 세 번을 아프고 공포스러운 주사를 두 대씩 맞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엄마의 정보 부족이 너무나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2, 4, 6개월에 맞는 기초 접종은 물론 추가 접종(15~18개월, 4~6세)시에도 콤보백신을 맞을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유럽이나 미주 등에서는 10년 이상 콤보백신을 사용하고 있다니 안전성에 대해서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주사 한 대로 두 대를 동시에 맞은 효과를 낸다면, 진짜 안전하다면, 가격도 비슷하다면 1타 2피의 놀라운 위력을 가진 콤보백신으로 예방 접종을 하는 것이 엄마와 아기에게는 훨씬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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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전, 저의 경우는 병원에 갈 수 없었던 특수한 상황이었음을 미리 밝힙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지나고보니 아, 참 다행이었구나, 축복받았구나 싶다. 나는 임신 기간 동안 딱 5번 산부인과에 갔다. 보통 산모들이 임신 기간동안 12~14회 정도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도 보고(평범한 초음파, 입체 초음파, 정밀 초음파 등), 각종 검사(다운증후군 검사, 기형아 검사, 임신성 당뇨 검사 등)도 하니까 다른 산모들보다 참 적게 병원을 간 셈이다.

나는 중국에서 약 일 년 반동안 생활하면서 중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내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겨울 방학이 되어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던 2009년 2월이었다. 당시 임신 9주였는데 병원에서 축하한다고 아기집이 잘 보인다고 하는 말만 들은 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것이 첫번 째 병원 진료였다. 병원에서는 내가 한 달 뒤에 다시 진료를 받으러 올 줄 알았겠지만 그 다음으로 병원을 찾은 것은 무려 18주가 지난 임신 27주 째인 2009년 6월이었다.

그러면 다운증후군 검사는? 기형아 검사는? 당뇨 검사는? 아니, 검사는 둘째치고 정밀 초음파는?


다른 엄마들이 물어 볼 때마다 하나도 안 했다라고 대답하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듣는 사람들이 기겁을 했다. 나는 중국에서도 시골(산동성 청주시)에 있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살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아니,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 곳에도 규모가 꽤 큰 병원이 있었지만 정말이지 병원에 가고 싶지가 않았다.

당연히 중국에도 임신부가 있고 그들도 건강하게 아기를 잘 낳지만 의료 시설이 낙후했을 것만 같고 위생 상태를 믿을 수가 없어서 차라리 가지 않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같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중국인 선생님 중에도 임신한 분이 있어서 물어 봤었다. 병원에 가면 어떤 진료를 받는지 말이다. 중국 사람들은 자주 병원에 가지도 않지만 가도 특별한 검사가 없었다. 몸무게를 재고, 배 둘레를 줄자로 재고(!!), 초음파를 원하면 찍고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정확하게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그러했다. 병원에 갔어도 한국처럼 별별 검사를 하지는 않는 듯 했다. 그래서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이 덜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학기를 마치고 귀국을 하면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산부인과를 다녀 보려고 했건만, 이미 모든 검사를 할 시기가 지났기 때문에 27주, 32주, 34주, 36주 이렇게 병원에 가서 초음파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다솔이가 자리를 거꾸로 잡았기 때문에 나는 38주에 제왕절개 수술로 다솔이를 낳았다.)

참 다행스럽게 아무런 검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다솔이는 건강하게 태어나 지금껏 병원한번 안 가고(병원에 안 가는 것이 습관이 됐는지 태어난지 8개월 째 된 다솔이도 소아과에 간 적이 없다. 예방접종은 모두 보건소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건강 관련 텔레비전 방송을 보다가 내가 임신 기간 내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까닭을 알게 됐다.

앞서 얘기했든 나는 중국에서 일년 반 동안 생활했다. 그것도 시골에서. 시골에 있었기에 아주아주 싼 값에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가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5층, 학교 5층, 학교 식당 5층을 계단으로 걸어다니면서 체력 또한 기를 수 있었다. 임신 7개월까지 학교에서 강의를 했던 것도 정신과 육체 건강에 무척 도움이 됐다.

우리 부부는 주중 점심만 학교 식당에서 사 먹었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식으로 밥을 해서 먹었다. 중국에서 주로 먹었던 것은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고추장 돼지고기 볶음, 간장 닭볶음, 토마토 달걀 볶음 등이었다. 그런데 지역적 특성상 한국에서 먹는 음식들과는 좀 달랐다.

모든 음식에는 동일하게 버섯, 청경채, 양배추, 파프리카, 피망, 감자, 부추, 숙주, 시금치, 파, 마늘이 꼭 들어갔다. 그것도 아주아주 많이. 채소 값이 상상을 초월하게 쌌고 된장과 고추장, 김치를 아껴야 했기에 싱겁게 끓인 국에 샤브샤브를 하듯 늘 채소를 냄비가 넘치게 넣고 맛을 내기 위해 마늘도 한 번에 꼭 한 통씩을 넣었다.

그리고 바쁜 아침에는 늘 대왕바나나를 남편은 한 개, 나는 세 개(그래야 양이 찼다)씩 먹고 간식으로는 꿀이 넘치는 고구마를 먹었다.


내가 본 방송의 내용은 이러하다.
임신 중 엽산이 필요하니 양배추, 녹색 채소, 토마토를 먹어야 한다.(나는 임신 전부터 매일 먹었다.) 그리고 임신 중 색깔이 다양한 채소를 많이 먹으면 기형아를 예방할 수 있다.(이것도 매일 샤브샤브를 해서 엄청나게 먹었다.) 또 임신 중 고구마를 먹으면 우울감과 빈혈을 예방할 수 있다.(고구마 파는 아줌마와는 친구가 되었었다.) 마지막으로 임신 중 바나나를 먹으면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대왕바나나를 아침마다 세 개씩 먹었다.)

내가 산부인과를 딱 다섯 번 가고도 한 번도 아프지 않고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었던 까닭은 임신 기간 동안 된장에 익힌 각종 야채, 고추장에 익힌 각종 야채, 간장에 익힌 각종 야채, 달걀에 볶은 각종 야채와 바나나, 사과, 복숭아, 배 등의 야채를 원없이 먹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요즘에도 중국에 있었던 시절이 생각 나 마트에서 야채며 과일, 특히 바나나를 장바구니에 넣으려 하다가, 숨이 턱 막히는 가격 때문에 차마 살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중국에서는 진짜 싼 값에 다 살 수 있었던 것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리 채소와 과일 값이 비싼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가끔 아니, 자주 나는 중국의 풍부한 먹거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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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추적에서 산후우울증을 다룬 '아가야 미안해' 편이 방송되자, 고만고만한 아기들을 키우는 내 또래 엄마들 사이에서 새삼스럽게 산후우울증이 화제로 떠올랐다. 방송에서는 겉보기에 특별한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던 한 여성이 3개월 된 아기를 강물에 던지고 뒤이어 자신도 몸을 던진 무서운 사례가 나왔다. 산후우울증을 아주 심각하게 앓는 산모들의 30%가 아기를 해치고 70%가 자신을 해친단다. 심하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것이 산후우울증이니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 무,섭,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의사 선생님의 지긋한 눈매를 몇 초간 바라봤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나 조차도 영문을 모르는 울음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토해내기 시작했다. 다른 산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랄 것도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막 출산한 산모 열 명은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는지 한나같이 어깨를 들썩이고 입술을 씰룩이면서 한참을 울었다. 마지막 울음까지 실컷 쏟아내고 나자 이번엔 웃음이 났는데 웃음이 번지는 속도는 울음보다 더 빨랐지만 이번에는 모두들 그 이유를 알았다. 영문 모를 눈물에 대한 민망함이 만들어 낸 웃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있던 산후조리원 프로그램 중에는 산후우울증에 관련 된 것이 꽤 있었다. 출산 후 누구나 겪는 산후우울증에 대한 정보를 주고 미술치료를 2번 받게 해 주는데, 마침 조리원에 와 있던 남편에게 손을 흔들며 방을 나설 때만 해도 몰랐다. 그저 이미 지불한 산후조리 비용에 포함돼 있는 것이어서 '본전' 생각에 간 것이었지 손톱만큼도 우울하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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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은 호르몬과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출산직전과 직후 거의 모든 산모들은 우울감을 경험한다. 그저 알아채지 못할 뿐. 첫 아이를 출산하는 엄마일 수록 더 심한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10개월 동안의 임신 기간을 거치고 무시무시한 산통을 이겨내고 출산을 했으니(나처럼 제왕절개를 했을지라도) 얼마나 엄청난 경험을 한 것인가.

출산 후 갑자기 배가 허전해지고 통증은 계속되며 그러나 체중은 별로 빠지지도 않고 오히려 얼굴은 더 부으며 갓난 아기의 울음에 덜컥 겁이 나는데도 젖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아기를 어떻게 안고 달래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병원을 퇴원해야 된다.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시작되는데 어떻게 마음에 평온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우리 다솔이를 작게 낳았다. 2.84kg으로 태어난 다솔이는 왠일인지 먹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 언제나 콜콜 잠만 잤다. 작은 입을 억지로 벌려서 젖을 물려도 골아 떨어지기만 할 뿐 좀처럼 먹지를 않았다. 당연히 적었던 몸무게는 더 빠지고 수분이 빠져나가서 자연스레 몸무게가 더 줄어드니 2.5kg이 간당간당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황달까지 오고 힘이 없는 다솔이는 더욱 젖을 빨지 못했다. 그럴 수록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양이 더 늘었났던 모양이다. 아기의 몸무게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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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치료를 받던 첫 날 '모자상'을 그려 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난 별 생각 없이 쓱쓱 도화지를 채워나갔는데 다 그려 놓고 보니, 상의를 벗은 채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나와 다솔이였다. 그 무렵 나는 유두가 찢어지고 헐어서 옷을 입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그럼에도 아기의 몸무게를 생각하느라 내 상처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림을 그릴 때만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설명을 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아무말 없이 후두둑 눈물만 흘리게 된 것이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산후우울감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증상이다. 출산 후 2주 동안에 나타나는데 예민해지고 눈물이 많아지며 불안, 초조, 수면 및 식욕 장애를 겪는다. 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하지만 특별히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다. 아기를 돌보는 데에 익숙해지고 푹 쉬고 잘먹으면 점차로 우울한 마음이 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 25% 정도는 우울한 정도가 극심해질 수도 있어서 문제다.

가족들은 산모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야 된다. 육아를 산후조리도 끝나지 않은 엄마 혼자에게만 맡기지 말고 되도록 산모를 푹 쉬게 해 주어야 되는데 산모 자신도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출산 후 몇 주가 지났는데도 우울감이 지속되거나 더 심해지는 경우 혼자서 끙끙 맘 졸이지 말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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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kg으로 태어난 다솔이의 몸무게가 어느새 8.2kg이 됐다. 엄마를 알아보고 빙긋 웃어주며 반갑다고 손과 발을 버둥거리는 다솔이를 보며 우울감을 떨쳐버린지도 오래 됐다. 그래도 나는 낯선 의사 선생님 앞에서 주룩주룩 눈물을 쏟아내던 지난 날의 내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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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산후조리원은 워낙에 비싸기 때문에 아무리 잘 활용을 하더라도 절대로 본전을 뽑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 더 지혜롭게 활용하면 산후조리원 이용비가 너무 아까워 배가 아플 일은 없기 때문에 비싼 돈 내고 제대로 조리하지 못하는 산모들을 위해 이 글을 쓰려고 한다.

산후조리원 본전 뽑는 법 1. 아기는 되도록 신생아실에 맡기기

산후조리원은 말 그대로 출산을 한 산모가 자기의 몸을 추스르기 위해 몸조리를 하러 들어가는 곳이다. 엄마라면 누구나 갓 태어난 아기와의 만남이 무척 반가워서 아기와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우선 자신의 지친 몸부터 달래는 것이 급선무다. 자신과 남편을 쏙 빼닮은 아기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계속 안아 주고 싶겠지만 아기는 되도록 신생아실에 맡기고 엄마들은 그 시간에 1분이라도 더 잘 것을 권한다.

아기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잠에 빠져서 하루 20시간은 거뜬히 잘 수 있지만(먹을 때도 자면서 먹는다.) 엄마들은 출산과 동시에 수유와의 전쟁이 선포되기 때문에 제대로 누워있을 시간조차 없다. 신생아들은 젖을 빨 힘이 부족해서 2시간마다 배고프다고 울어대고 이제 막 출산한 산모의 젖이 풍부할 리 없으니 엄마들은 유축하랴, 물리랴 정신이 없다. 좀 쉴만 하면 수유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수유실로 뛰어가야 되고 제대로 앉아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다. 밤에도 쉬지 않고 2시간 마다 수유를 해야 되기 때문에 엄마들은 산후조리를 하러 조리원에 간 건지 젖을 주러 수유원에 간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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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처음에는 무조건 '완모(100% 모유만 주는 것)'를 고집했기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분유를 주면 큰 일 날 것처럼 묘사를 해 두었고, 한 번 젖병을 빨아 본 아기들은 젖병보다 60배나 더 힘든 엄마젖을 빨려고 할 리 없다며 잔뜩 겁을 줬기 때문에 힘이 들어 쓰러질 직전까지 젖을 주러 다녔다.

모르는 분들은 그깟(????) 모유 수유가 뭐라고 이렇게 엄살이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태어난지 얼마 안 돼 힘이 없는 아기들은 젖을 빨다가 잠들어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초보 엄마들은 젖 주다 말고 아기 깨우는 것이 일이고 몇 번 빨다가 잠들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수유 시간이 한 시간 정도 걸리게 된다.

트림까지 시키고 나면 녹초가 돼(다시 한번 알려드리자면 그냥 엄마가 아니라 산후조리 중인, 하루 종일 자도 부족할 회복 전의 엄마들에 관한 이야기다.) 진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 된다. 겨우 아기를 눕혀 놓고 조금 쉬려고 하면 금세 또 수유 시간이 돼 버려서(초반 아기들의 수유 간격은 2~3시간마다 한 번인데, 한 번 먹이는 데 1시간이 걸리니까) 정작 엄마들은 밥도 못 먹고 또 젖을 물리러 가야 된다. 나도 신생아실에서 언제 전화가 올 지 모르기 때문에 서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산후조리원에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간 이상, 충분한 조리를 하다 돌아와야 되지 않겠는가. 모든 산후조리원에는 하루에 일정시간을 모자동실 시간으로 정해 두고 그 시간 동안 신생아실을 소독한다. 대개 2~3시간 정도인데, 내가 경험해 보니 산후조리원에서 조리하는 2주 동안에는 모자동실 시간에 충분히 아기를 안아 주고 나머지 시간에는 신생아실에 맡겨 두는 것이 더 낫다. 어차피 수유할 때 또 아기와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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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반에는 거의 모자동실로 지내다가 아기를 에만 신생아실에 맡겨서 내가 쉴 틈이 없었다. 거의 종일 데리고 있으면서 아기가 젖을 찾으면 바로 물렸고 12시 쯤 유축해 놓은 모유와 함께 신생아실에 데려다 주었다. 새벽에 한 번 깨서 유축을 하고 조금 더 자다보면 신생아실에서 아기가 배고파하는 것 같다며 전화가 왔다.

아기가 젖을 찾으면 바로 전화를 달라고 부탁했기에 신생아실에서 무시로 내게 전화를 한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기를 키워보니 젖병을 물었다고 해서 엄마 젖을 거부하지도 않으며 금방 태어나 힘이 없을 땐 하루에 몇 번은 젖병을 빨아서 쉽게 배를 채워 주는 것도 필요하다. 나도 산후조리원에서 젖병으로도 줘 봤고 너무 힘들 땐 분유도 먹여 봤다. 그래도 지금 다솔이가 태어난지 130일 정도 되었는데 모유로만 아기를 키우고 있다.

우리 다솔이는 산후조리원에서 엄마 젖, 젖병, 모유, 분유를 다 경험해 봐서 그런지 어떤 방법으로 먹여도 별로 거부감 없이 잘 먹는다. 산후조리원에서 본전 뽑는 법 중 첫번 째는 아기를 가급적 신생아실에 맡겨 두고 엄마는 무조건 열심히 쉬는 것이다. 내가 바보같이 그랬던 것처럼 수유하느라 진 빼지 말고 하루 중 몇 번은 직접 수유, 나머지는 젖병으로 주기를 권한다.(나중에 직접 수유로 전환할 수 있다.) 텔레비전도 보고 여유롭게 쉬면서 유축기로 젖을 유축해서 신생아 간호사에게 맡기자, 간호사가 잘 먹여 준다. 산후조리원 비용에 이미 젖 먹여 주는 비용도 다 포함이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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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축기로 규칙적으로 젖을 짜 주면 젖량이 더 늘어나는데, 출산 초반에 젖이 부족해서 잘 나오지 않으면 분유도 좀 먹이자. 비싼 분유값도 이미 조리원 비용에 대 포함이 돼 있는 것이다. 먹여 주는 비용, 분유값이 다 포함 돼 있어서 산후조리원이 그토록 비싼 것인데, 왜 그것을 셀프(?)로 할까.

아, 그런데 아기를 신생아실에 안심하고 맡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산후조리원을 선택할 때 신생아실에 있는 선생님들이 소아과 간호사 출신들로 구생돼 있는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믿고 맡길 수 있다. 보통 병원에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들은 믿을 수 있는데, 간호사 출신이 아닌 용역이나 심지어 임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된다. 아기는 간호사에게 엄마는 무조건 쉬고 또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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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전역한 군인이 군대 시절의 얘기를 하지 못해서 안달인 것 처럼, 갓 출산한 나에게는 출산과 양육에 관한 이야깃거리가 한 보따리다. 군대 시절의 무용담이 하면 할 수록 더 신나듯 나도 몇 년이고 이 얘기를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기를 기르면서 새로운 소재들이 매일 더 생겨나니 아마 평생을 들여서도 다 끝내지 못 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나는 아기가 자리를 거꾸로 잡는 바람에 38주 4일 째 되는 날 제왕절개 수술로 우리 별이(태명)를 만났다. 내가 다니던 병원은 분당차여성병원이다. 산부인과 진료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병원이 '차병원'인 만큼 무엇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병원이라는 것이 처음에 이 병원을 택한 까닭이다. 집에서 가까운 것도(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위치) 참 마음에 들었다.

유명세에 걸맞게 병원 외관도 멋스러웠고 내부는 더욱 깔끔했다. 워낙에 유명해서 그런지 환자들이 너무 많아서 분빈다는 점이 단점이긴 하지만 의료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됐다. 처음에 이 병원을 선택할 땐 믿을 수 있는 의료진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임신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고 수술까지 하고 보니, 그저 실력있는 병원일 뿐만 아니라 사랑과 감동까지 있는 병원인 것 같아서 다른 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은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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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왕절개 수술을 할 때는 수술 전 날 입원해서 마음에 안정을 취한 다음 수술을 하는 것이 의례적인데, 우리 별이를 만나기로 한 날 즈음이 길일이라서 너무 많은 환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병실을 미리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수술 당일 아침에 응급실로 입원을 해서 수술 차례를 기다렸다. 나중에 들어보니 별이는 9월 11일에 태어났는데, 2009년 9월 9일(090909)에 아기를 만나고 싶어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 전후로 수술 날을 많이 잡았기 때문이란다. 거기다가 갑자기 진통이 와서 입원한 산모들까지 있어서 정말 대단했다. 북적북적 정신이 없었을테지만 그래도 큰 병원답게 모든 산모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순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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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수술 차례를 기다리는데 정말 떨렸다. 우선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링거도 꽂은 다음 수술 부위를 제모 하는 등 모든 준비를 응급실에서 했는데 그래도 실감이 안 났다. 정말 앞으로 몇 시간 후면 기다리던 별이와 만나게 된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응급 환자가 있어서 원래 수술 시간보다 조금 더 기다려야 했지만 그동안 심호흡을 하면서 병원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몸무게가 130Kg이나 나가는 산모가 응급 수술을 해야 했는데 무척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아이와 산모 모두 건강하게 잘 끝났다고 했다. 복덩이 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두 목숨이나 구했다면서 의사 선생님들이 칭찬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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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차례가 되고 휠체어를 탄 채 지하에 있는 수술실로 향했는데 담담해졌던 가슴이 또다시 방망이질을 하면서 사지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긴장이 됐다. 수술실 앞까지만 보호자가 같이 있을 수 있다. 자연분만이라면 힘을 줄 때 손도 잡아 주고 같이 힘도 줄 수 있겠지만 수술은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의료진들만 함께 있을 수 있다. 나와 비슷한 강도로 떨고 있는 남편의 얼굴에 긴장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보였다. 애써 힘내라고 응원해주고 있는 남편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나니 이제는 정말 혼자였다.

그 때 조금 풍만한 체구를 지니신 선생님 두 분이 내 쪽으로 걸어 오셨다. 나에게 친근한 동네 아주머니처럼, 이깟 제왕절개 수술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내 기분이며 신상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보셨다. 알고보니 마취과 선생님이셨는데 긴장을 덜어 주시려고 계속 말을 걸어 주셨던 것이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시며 긴장을 덜어 주시려 노력해 주시니 어찌나 푸근하게 느껴지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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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디어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고 남편은 대기실에서 전광판을 보며 내 수술 진행 상황을 보면서 기다렸다. 수술실은 생각보다 컸고 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수술을 돕고 있었다. 긴장을 해서 자세히 볼 겨를이 없긴 했지만 수술실도 한결같이 깨끗했다. 바깥에서 만났던 푸근하신 마취과 선생님이 다시 내 곁에서 다정한 목소리로 수술 준비를 하셨다.

나는 척추마취를 했는데 이 마취가 전신마취보다 회복도 빠르고 아기를 안아 볼 수도 있어서 더 좋다. 다만 좀 무섭다는 단점이 있는데 수술 내내 담당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수술의 진행 상황을 알 수 있고, 내가 괜찮은지 간호사가 계속 와서 상태를 확인해 주니까 생각했던 것 보다는 덜 무섭게 수술을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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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알콜솜을 배에 문질러 봐도 그 감촉을 느낄 수 없게 되자 담당 선생님의 집도 하에 수술이 진행됐는데, 칼이 배에 스치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전혀 아프지는 않았다. 우리 별이는 예상대로 거꾸로 위치해 있었는데 선생님이 배 위쪽을 누르니 엉덩이부터 세상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내 머리 위치에 있던 간호사가 모든 과정을 이야기 해 주어서 나는, 수술의 진행 과정과 아기의 탄생 과정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아드님 낳으셨네요'라는 알림과 함께 우리 별이의 '응애응애' 소리가 들렸다. 내 뱃속에서 아기가 나왔다는 것이 완전히 실감이 나지는 않았지만 갓 태어난 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막 세상에 나와서 힘들어 하는 별이의 얼굴이었지만 어찌나 귀엽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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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탈 없이 건강한 아기를 낳고 나니 긴장감이 사라져서 더이상 수술이 무섭지 않았다. 그래서 따로 수면 마취를 하지 않고 그대로 수술후 처리까지 끝냈다. 아기는 처치 후 신생아실로 보내졌고 나는 모든 과정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조금 경과를 지켜 본 후 병실로 올라가게 됐다.

척추마취로 수술을 했기에 24시간 동안 머리를 들지도 못하고 물 한모금 마실 수 없었지만, 얼마 후 아기와 만나고 나니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듯 했다. 나보다 더 힘들게 세상밖으로 나왔을 별이에게 다시한번 고마움을 느끼면서 깔끔하고 완벽하게 수술을 끝마쳐 주신 담당선생님 박지현 선생님게도 정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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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술 하셨어요?'라고 누가 물으면, 나는 늘 약간 고개를 숙이면서 무언가 잘못이라도 한 듯 수줍게 대답하곤 했다. '아...... .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요' 역아인 경우에는 자연분만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

임신 27주부터 한결같이 내 가슴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는 아기 때문에 나는 무척 애를 태웠었다. 주위에서 나중에 자리를 잘 잡는 경우도 있다고 많이 들었기에 처음에는 별로 걱정도 하지 않고 '그까짓 것' 했지만 32주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수시로 고양이자세 체조를 하면서 아기 머리가 아래를 향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35주가 넘고도 아기가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이자 나는 너무나도 불안해서 수시로 인터넷 카페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역아'에 관한 글을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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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배를 하고서 고양이 체조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가만히 서 있어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데 무릎을 꿇고 배를 아래로 내렸다 올렸다 하면 허리에 얼마나 무리가 가겠는가. 그런데도 자연분만을 하고자 나는 수시로 고양이 체조를 했고 나중에는 물구나무서기까지 시도했었다. 물구나무서기는 잘못 하다가 큰일 날 것 같아서 결국 하지 않았지만 수술을 계획한 38주 4일 되던 날까지도 자연분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끝내 아기는 자리를 바꾸지 않았고 나는 제왕절개를 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까지 힘을 줘야 하며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진통을 열 시간 넘게 참아 내야만 하는 것이 자연분만이다. 힘을 주다가 얼굴에 있는 실핏줄이 다 터지는 사람들도 숱하고 하도 이를 악물어서 치아가 상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물론 마취를 하기에 고통스러운 아픔은 없지만 척추 마취를 하고 정신이 말짱한 상태로 분만 수술의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들어야만 한다. 무서워서 벌벌 떨리고 심장이 밖으로 나오려는 상황을 인내하면서, 내 배를 가르고 잡아 당기고 아기를 꺼내고 피와 불순물을 다 제거하기 위해 위에서 배를 내리 누르는 모든 상황들을 그야말로 이겨내야만 한다.


자연분만은 아기를 낳음과 동시에 모든 고통도 사라진다고 들었다.(아, 회음부의 상처가 심한 분들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많이 불편하단다.) 반면 제왕절개 수술의 경우는 낳고 나서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마약 성분이 들어 있다는 무통 진통제가 있는데 뭐가 그리 아플까 하시는 분들께 무통 주사가 정말 無痛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고 연거푸 설명해도 듣는 사람은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오죽하면 친정 엄마까지도 '별이(태명)가 엄마 힘들까봐 거꾸로 있는 것이라며 제왕절개를 앞두고 심란해 하는 당신 딸을 위로 하셨을까.' 내가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제왕절개의 아픔을 아무리 설명해도 엄마는 그래도 자연분만에 비하면 세발의 피밖엔 되지 않는다며 제왕절개는 '거저 낳는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나중에 제대로 회복이 안 돼 앉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당신 딸을 보시곤 너무나도 마음 아파 하셨지만 그래도 자연분만의 위대함에 대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실 것이다. 나도 자연분만을 한 산모들이 그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아기를 낳았다는 것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제왕절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들엔 억울한 생각이 든다.



bisous
bisous by Alain Bachelli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제왕절개를 하면 쉽게 아기를 낳는 것이고 너무 쉽게 낳다 보니 자연분만한 엄마에 비해 모성애도 적으며 모유수유 또한 어렵다는 잘못된 생각들이 내가 가장 속상한 부분이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제왕절개도 정말 아프며 특히 물 한모금 먹지 못하고 꼼짝달싹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던, 밤에는 통증이 더욱 심해져서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던 수술 후 첫 이틀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그리고 모유에 관한 부분은 자연분만을 한 다른 산모들과 마찬가지로 출산 후 삼일이 지난 날부터 초유가 돌기 시작하더니 한 달이 조금 넘은 지금은 모유로만 아기를 기르고 있다.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도 자연분만한 산모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때면 괜시리 위축되어 방청객처럼 감탄사만 연발하며 듣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후회스럽다. 같이 맞장구 치면서 제왕절개를 한 내 이야기도 함께 했어야 되는데 말이다. 임신/출산 관련 카페에 가 보면 많은 임신부들이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는데, 물론 자연스러운 것이 좋기는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무리하게 자연분만만을 고집하지 말고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 똑같이 열 달 동안의 임신 기간을 거쳤고 힘든 분만 과정을 이겨낸 제왕절개한 엄마들 더이상 기죽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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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kg. 10개월의 임신 기간동안 내 몸무게는 정확히 11kg이 늘어났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임신 전 몸무게를 비밀로 하기 위해서 15kg이라고 몸무게를 약간 더 보태서 얘기 하기도 했지만, 11kg의 증가분에도 배에는 튼살이 생겼고 발목 관절에 무리가 갔다.

김희선, 손태영 등 연예인들의 아름다운 D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만삭 사진들을 구경하면서, 나는 임신을 하기 전부터 나 또한 어여쁜 임신부가 되리라 다짐을 했었다. 요즘에는 연예계에만 날씬한 임신부들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뒷모습을 보면 전혀 임신한 티가 나지 않는 일반인들을 보고 그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임신복도 무척이나 예쁘게 나와서 임신부 열의 아홉은 임신 전과 마찬가지로 멋스럽게 자신을 드러내고 다 임신 기간동안 몸무게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데에만 이롭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굳게 결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건강한 삶에 관심이 많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KBS 방송 '생로병사의 비밀'에 근거한 내용이다.) 임신부의 적절한 몸무게 증가는 7~13kg이며 특히 임신 후반인 8~10개월 째의 몸무게의 변화가 아주 중요하단다. 그 시기에 몸무게가 확 늘어나 버리면 태아가 성장하면서 비만이 될 경우가 많고 아이의 식습관이 나빠질 수도 있단다. 더 나아가 임신부의 당뇨 수치가 높으면 아기가 성장하면서 당뇨병에 걸릴 확률도 같이 높다고 하니 몸무게를 사수해야 하는 까닭이 단순히 아름다움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임신 초기에는 식사량도 늘릴 필요가 없으며 전혀 몸무게가 늘지 않아도 된단다. 그러다 임신 5개월 무렵부터 식빵 한 조각 분 정도의 열량 정도부터 조금씩 식사량을 늘려야 되는데, 우리네 습관이 어디 그런가? 어른들은 임신 이후엔 무조건 2인분의 식사를 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고열량인 과일은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살기를 바라신다. 나는 입덧도 없었고 식탐도 좀 있는 편이기 때문에 자칫 방심하면 살이 확 찔 수도 있었다. 이론이야 머릿속에 한 가득이지만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입덧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임신 기간동안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 또한 없었는데, 그래서 늦은 시각 자는 남편을 깨워서 구하기 힘든 과일이며 특정 식당의 음식 등을 부탁하는 일도 해 보지 못했다. 그런 경험들은 두고두고 재미삼아 얘기할 수 있는 것일텐데 말이다. 그래도 임신 6개월이 지나면서 밥 한 공기를 뚝딱 해 치우고도 무언가 달콤하고 고소한 것을 더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포만감을 높이기 위해 식사시간 이외에는 무조건 물을 많이 마셨고 식사할 때 열량이 낮은 야채부터 먹었다. 양배추, 배추, 버섯, 양파를 듬뿍 넣고 된장국을 심심하게 끓여서 건더기만 건져 먹었고, 집에 군것질거리를 아예 들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임신 7개월까지는 근무를 했으며 출산하기 직전까지 2시간 거리로 동네 한바퀴를 산책하는 것 또한 빼먹지 않았가. 그랬지만 역시 막달에는 몸무게가 부쩍 늘어서 11kg 중 대부분이 7개월 이후에 찐 살이다. 임신 전부터 통통한 편이어서 애당초 목표는 8kg 이상 찌우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런대로 성공한 편이다. 엄마의 몸무게 변화와는 무관하게 아기는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다.


출산 후 3개월을 황금의 시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 동안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가야 한단다. 호르몬의 영향 때문에 이 시기에 몸무게를 회복하지 못하면 10년이 지난 후 갱년기를 맡게 될 때 10kg 이상 몸무게가 증가하게 된단다. 나는 출산한지 이제 한달이 조금 넘었는데, 임산부의 최고 운동으로 손꼽히는 모유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임신 중 증가한 11kg의 몸무게 중 8kg이 자연적으로 빠졌다. 산후조리를 잘 해서 몸이 회복되고나면 간단한 체조부터 시작해서 남은 3kg도 빼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 무척 예쁜 엄마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임신 전보다 더 예뻐지면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즐겁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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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산의 여왕' 김지선의 넷째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아이가 셋인데 또 자녀를 가진 것을 보면 참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일도 가정도 열심인 그녀가 다시 한번 대단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기분 좋기만한 그녀의 임신 소식에도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시물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악플을 습관적으로 다는 사람들의 무례함이 그대로 느껴져서 내가 다 미안해지려고 했는데, 그 개념없는 악플에도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임신 소식=돈 자랑'이며 돈이 있으니 자녀도 많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똥이 전혀 다른 쪽으로 튄 것이긴 하지만 (김지선의 임신 소식에 그런 식의 덧글을 다는 것은 우습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혜택을 주겠다는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이,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깊게 생각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기에, 선뜻 자녀 계획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교육에 별 관심이 없고 아직 모성애가 빈곤한 나는, 아이를 너무 귀하게 키우지 않는다면 생각만큼 많은 돈이 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부모들이 욕심을 줄여 학원에 덜 보내고 값비싼 장난감이며 옷을 저렴한 것으로 바꾼다면 그다지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억' 소리는 '육아'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앞에서 밝혔듯 나는 닥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은 모성이 빈곤한 상태라 육아에는 큰 욕심이 없다. 그런데 '억' 소리 나는 전쟁이 출산 전부터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산모'(즉 미래의 나)와 관련된 것이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과장해서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그 과정을 어떻게 지혜롭고 철저하게 지내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평생 삶이 좌우된다. 임신과 출산 이후의 관리 상태에 따라 완전히 퍼진 아줌마와 여전히 예쁜 아줌마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요즘에는 임신부 특유의 체형과 모습을 띈 사람들 보다는 오히려 아가씨 보다 더 예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뒷모습만 보면 전혀 임신부인 줄 모르다가 불룩 나온 배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배만 나왔지 다른 곳에는 별로 살이 찌지도 않았고 화장과 머리 손질도 세련돼서 앞모습을 보지 않고선 절대 알아차릴 수 없다. 임신복들도 어찌나 예쁘게 잘 나오는지 출산 이후에도 헐렁하게 입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그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해진 임신부들이 많아 진 까닭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예인들을 보면 만삭 화보를 찍을 만큼 임신 후 여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일반인이라고 다를 건 없다.(최근에는 일반인들도 임신 후 더욱 여성스러워진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만삭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이 유행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공짜일 수는 없다. 물론 스스로 악착같이 자신을 관리하는 똑소리나는 산모들도 있겠지만, 평생에 몇 번 없을 임신 기간인데 이 정도도 못할까 싶어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임신이 안정기에 접어드는 4개월째부터는 체중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태아 건강과 순산을 돕기 위해 임신 요가, 발레, 수영 등의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더불어 임신 후 호르몬의 불균형때문에 칙칙해지고 푸석해진 피부 관리에 들어간다. 또한 잘못 방치하면 배, 가슴, 엉덩이, 허벅지 등의 살이 터서 평생 보기 싫을 수 있기 때문에 임산부 몸 마사지도 병행하게 된다.

몸 가꾸기의 절정은 출산 이후에 시작된다. 40주 동안의 임신 기간을 끝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관리에 돌입해야 되는데 출산시 자궁이 많이 뒤틀리고 뼈도 약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산후조리를 잘못하면 평생 고생이다. 그래서 적어도 보름 동안은 따뜻한 실내에서 많이 움직이지 말고 되도록 누워만 지내야 된다. 이 때 많은 수의 산모들이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면서 몸을 추스르는데 이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보통이 300~500(2주일)만원 정도라니 큰 맘을 먹지 않으면 갈 수도 없겠다. 그래도 전적으로 쉴 수 있고 전문가들이 아기도 돌봐주며 육아 교육도 시켜주니 이 돈이 아깝지 않다는 의견이 더 많다. 거기다가 산후조리원에서는 산후체조, 벨리댄스, 산모마사지, 신생아마사지, 부모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어 날이 갈 수록 인기다.


산후조리원을 졸업하고 나면 몸의 붓기를 빼주는 한약과 기력을 보충해 주는 한약을 먹고 출산후 3개월이 되면 체형을 임신 이전으로 돌리기 위한 운동과 마사지가 다시 시작된다. 출산후 6개월 이내에 체중을 되돌리지 못하면 영영 푹 퍼진 아줌마로 지내야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래서 출산 이후가 출산 이전보다 더욱 중요하다. 대충 썼는데도 이 정도니 잘 몰랐던 분들은 많이 놀라셨을 것 같다. 물론 모든 임신부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많은 자녀=부유함'이라는 말이 나올만도 하지 않는가. 이제 막 결혼을 하여 아직 자녀 계획이 없는 부부라도 아내의 변치않는 미모를 위해 임신 통장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도 좋겠다. 부디 '억' 소리나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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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 지경이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정녕 우리 여자들은 한시도 다이어트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단 말인가? 드디어 임신을 하여 3개월 째에 접어든 사촌언니와 오늘 점심을 같이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입덧이 심하지 않아서 언니는 모든 음식을 달게 먹을 수가 있다기에 우리는 몸에 좋고 맛있는 된장 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먹었다. 각종 나물과 함께 곁들여 먹으니 꿀맛 같아서 나는 밥 한 그릇을 뚝딱 해 치우고 또다시 밥솥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머쓱해지고 말았다. 조금 민망했던 나는 실실 웃으면서 임신부는 아기 몫까지 먹어야 하니 언니도 한 그릇 더 먹으라고 부추겼는데, 돌아온 언니의 대답이 너무 놀라웠다.

임신을 하면 무조건 잘 먹고 투실투실 살을 찌우는게 당연시 여겨졌던 옛날과 달리 21세기 임신부들의 최대 고민은 다이어트라는 것이 아닌가? 특히나 언니의 경우는 입덧이 없어서 더욱 조심해야 된단다. 아기의 건강을 우선시 여기는 엄마들이 미용을 위해 체중 관리를 할 리는 없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런데 임신을 한 40주를 세 등분하여 임신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었을 때 초기에는 예전에 먹던 식사량 그대로 먹으면 되고 중기에는 150~200g을 후기에는 350~400g을 더 먹어 주면 된단다. 중간중간에 과일과 고구마 등을 간식으로 먹어주면 더 이상의 열량 섭취는 불필요하다는 말이다.식빵 한 쪽이 150g이라고 하니 임신을 했다고 하여 2인분의 밥을 먹는 것은 안 될 말이라고 한다.


이렇게 임신 기간동안 체중 관리를 하는 이유는 임신후 체중 증가가 너무 심하면 임신 중독증을 비롯하여 여러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고, 산모도 원래의 체중을 되찾기가 어렵지만 아이도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임신 전 체형에 따라 7~15kg 정도만 체중이 증가하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된단다. 임신을 하면 20~25kg 정도 살이 찌는 것을 예사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또한 3개월째인 언니도 그렇지만 5개월까진 배가 나오지도 않는단다. 5개월 이전에 배가 불룩한 산모가 있다면 필시 체중조절에 실패한 까닭일 것이다. 배가 나온 이유가 아이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의 사진을 보면 임신 후에도 너무나 날씬해서 역시 연예인들은 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무지한 것이었다. 그녀들도 의사의 조언에 따라 철저하게 영양 조절을 했을 것이다. 임신부는 양보다는 질을 생각해서 음식을 먹어야 되고 임신부들이 많이 먹는 과일도 의외로 칼로리가 높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단다. 또한 아이를 갖게 되면 활동량을 줄이고 누워 있는 시간이 긴데 이것도 좋지 않은 것이란다. 임신 초기에는 유산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가벼운 산책만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 유산의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 때부터는 걷기, 수영, 임신부 체조 등 운동을 병행해야 산모와 아이 모두가 건강해질 수 있다.


그동안에는 누가 임신했다고 하면 임신과 동시에 배가 나오고 임신 기간 동안에는 무조건 잘 먹고 조심해야만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드라마를 보면 한밤중에도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면 남편을 가게에 보내어 아이스크림이나 딸기, 떡볶이 등을 밤참으로 먹는 장면이 나온다. 시도 때도 없이 아내가 원하면 언제나 어디에나 쌩하니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구해오는 것이 남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의 얘기를 듣고 나니 밤중에 배가 고파서 힘들어 하는 아내를 잘 다독이는 것이 더 중요한 남편의 몫인 것 같다.

언니를 따라 산부인과 병원에 같이 갔는데 입구에 들어서자 표어가 눈에 띄었다. '작게 낳아서 크게 기르자' 영양이 과잉 되면 아이도 커 지고 아이의 무게가 4kg이 넘으면 자연 분만이 힘들어 진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가장 주의를 주는 것이 체중 조절이고(요즘 산모들은 지혜로워서 다른 것은 일러주지 않아도 잘 아니까) 언니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본 임신 관련 책자에서도 비만에 관한 내용이 너무나도 많았다. 원래부터 통통했던 언니도 막달까지 8kg 정도 몸무게가 늘 것을 계획으로 영양 조절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임신부가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산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좋다고 하니 우리 여성들에게 다이어트란 평생 같이 지내야 하 친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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