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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9. 15.

다솔이가 노랗다.
황달에 걸려 버린 것이다.
아기를 보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서 내내 같이 있었지만
아직 요령이 없어서 젖을 잘 빨지 못하는 다솔이에게 젖병으로 유축을 해서라도
젖을 줬어야 되는데 초보 엄마 아빠가 잘 몰랐다.
신생아실에서 포도당만 먹으니 힘도 없고 황달기가 점점 더 심해졌다.
제왇절개 수술을 했기 때문에 몸을 잘 움직일 수가 없었고 회복이 더뎌서
편한 자세로 수유를 할 수가 없었는데 그래서 더 배를 곯았을 것이다.
미안해, 다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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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4.

다솔이가 꽤 오래 눈을 뜨고 있다.
태어난 직후부터 눈을 조금 떴었는데,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갓 태어난 아기가 눈을 뜰 수가 있냐시며 영험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좋아하셨는데, 알고 보니 요즘 아기들은 모조리 다 영험한 듯
모든 아기들이 다 태어나자마자 눈을 반짝 떴다.)
내내 자는 모습만 보여주더니 꽤 오래 눈을 떠서 나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10센티미터 정도밖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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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3.

다솔이는 하루 종일 잠만 잔다.
모자동실로 같이 있었는데 깨어 있는 모습을 별로 보지 못했다.
콜콜콜 계속 잠만 잔다.
우리 다솔이는 앞짱구, 뒷짱구라서 똑바로 눕지 못하고
늘 머리를 옆으로 돌려서 누워 있다.
목이 아플까 염려돼 가끔씩 방향을 바꾸어 주는데
쌔근쌔근 잘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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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12.

제왕절개 수술 이틀 째, 낮 12시까지 머리를 들 수도 없고,
저녁 때까지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었는데도
나는 다솔이가 너무 귀여워서 곁에 두고 보고 싶었다.
모자동실을 신청해서 계속 다솔이와 같이 있었는데
초보 엄마 아빠라 기저귀를 갈아 줄 줄도 몰라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야 기저귀를 열어 봤더니,
짜자잔-.
태변을 눈 다솔이.
처음 경험한 배변이 불쾌했던지 잔뜩 찡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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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1일
(12시 52분/ 몸무게 2.84kg/ 키48.64cm)

다솔이를 처음으로 봤다.
입체 초음파를 하지 않은 까닭에 얼굴을 짐작 조차 못했었는데,
병원에서 성별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아들'인 것도 몰랐었는데,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럽게 생겼었구나.
반가워, 다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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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분들 중 참 많은 분들이 '유선염'에 대해 궁금해 하신다.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 중 대부분이 유선염 때문에 힘들어 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반면 유선염이 왜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예방을 할 수 있을지, 예기치 않게 걸리게 됐을 땐 어떤 조치를 취해야 되는지, 유선염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수유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인지라 유선염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으며 한편으론 억울한 생각까지 들어 모유 수유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참 컸다. 그러나 미련 곰탱이 같은 참을성 덕에 울며불며 끝까지 모유 수유를 고집하며 유선염을 이겨냈고 지금은 갖가지 수난들을 견뎌내고 나니 세상에서 모유 수유 만큼 쉬운 것은 없다고 여기며 벌써 올챙이적 고통들을 다 잊어버리고 있다.

유선염은 왜 걸릴까?

나는 유선염만 세 번 걸렸다. 그것도 짧은 기간 동안 세 번이었다. 첫 번째엔 단순히 젖몸살이려니 했다가 입원까지 하고 나서야 유선염이라는 것을 알았다. 피검사 결과에서 염증 수치가 높았다. 그 때가 아기를 낳은 지 35일 즈음 되었을 것이다. 출산 후 처음으로 잠시나마 외출할 일이 생겼는데 출산 후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처음 만나게 되는 자리여서 나도 모르게 욕심이 좀 생겼었다. '예쁘게 보이고 픈 욕심'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기에게 젖 한 번 물린 후 오랜 시간 공들여 화장하고 머리 빗고 옷을 입었다. 미리 유축해 둔 모유를 젖병에 담아서 외출을 했고 밖에서는 준비해간 젖병으로 아기를 먹였다. 다섯 시간 정도 수유를 하지 못했는데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젖이 너무 불어서 옷이 다 젖을 정도로 가슴에 압박감이 심했었다. 단단하게 굳어진 가슴을 마사지를 하면서 유축기로 젖을 유축했는데 얼마나 쌓였든지 한쪽에서 150cc이상이 나왔던 것 같다.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날 밤 갑자기 오한이 나면서 온몸이 떨려 오고 열은 40도로 올랐다. 미련한 탓에 며칠 버텨봤지만 열은 내렸다 올랐다를 반복했고 결국 병원에서 진찰을 받음과 동시에 입원 판정을 받았다. 친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유 간격이 불규칙했을 때 안에 고여 있던 젖에 탈이 생겨서 유선염이 되는데 갑자기 고열이 나고 오한이 생기면 영락없으니 바로 병원을 찾아야 된다.

두 번째로 유선염에 걸렸을 땐 좀 달랐다. 그 당시 나는 수유 자세가 올바르지 않고 아기가 유륜이 아닌 유두를 세게 빠는 바람에 가슴 상태가 엉망징창이었다. 모유 수유를 할 때마다 젖보다 눈물이 더 많이 나왔고 심할 땐 피까지 나는 상황이었다. 아기가 힘이 좋아서 너무 세게 빨았고 잘못된 위치를 빠는 바람에 젖을 잘 먹지 못해서 수유 시간이 길어졌고 그럴수록 유두가 너무 시달려 버텨주질 못했다. 오죽했으면 당연히 동그라미 모양이어야 될 유두가 몇 달째 동그라미가 되지 못했다. 찢어지고 헐어 있던 곳으로 균이 들어가 염증을 발생시켰다.

유선염을 예방하려먼?

유선염을 예방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수유 간격을 일정하게 하는 수밖에는. 3~4시간 간격으로 시계를 보면서 규칙적으로 먹여야 된다. 나 같이 유두가 찢어지고 헤진 사람은 아기에게 직접 물리는 것을 자제하고(아기의 토사물이나 침에 의해 감염될 수 있다.) 유축을 해서 먹여야 되며 상처가 완전히 낫기 전에는 상처를 낫게 하는데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된다.(세 번째 유선염은 이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직접 젖을 물렸다가 바로 또 걸려 버렸었다.) 나는 *시딘을 발랐었다. 물론 아기가 먹으면 안되는 연고였지만 상태가 너무 심했고 효과가 빠르기에. 수유전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젖을 조금 흘려보내어 그 부분을 닦는 방법을 썼다.

책이나 병원에서 준 자료에서는 모유 수유가 저절로 될 것 처럼 얘기하지만 내가 직접 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 수록 아기도 엄마도 요령이 생기고 모유의 양과 아기가 먹는 양이 점점 맞아지니까 탈도 적어진다. 그러므로 100% 모유 수유를 하려는 엄마들은 이골이 생기도록 인내하고 기다리면, 진짜 힘들긴 하지만 되긴 된다.



유선염에 걸렸으면?

앞에서도 얘기했듯 모유를 먹이는 중이라면 유선염에 걸릴 확률이 아주 높고 재발도 너무 쉽다. 나는 세 번이지만 인터넷 카페에서 본 어떤 엄마는 무려 아홉 번이었다. 나는 다행히도 심각한 수준까지 가지 않아서 비교적 쉽게 치료를 할 수가 있었는데 집에서 무턱대고 참기만 한 다른 엄마는 유방을 절개하고 염증을 뽑아 내는 수술, 그 부위를 찢고 심을 박는 수술, 주사기로 염증을 빨아들이는 수술 등 생각만 해도 오싹한 수술들을 받기도 했단다.

일단 유선염이 의심되면 산부인과 보다는 유방전문외과를 찾아야 된다. 나는 친정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한 경험이 있었기에 두 번째, 세 번째엔 나 스스로 유선염인 줄 알았지만 산부인과 의사는 그 사실을 의심했었다. 당시 한창 신종플루 때문에 전국이 들썩거릴 때였으므로, 토요일 오후 유일하게 문을 열어 찾아간 분당 K산부인과 의사는 나에게 신종플루 주사를 권유했었다.

내가 우겨서 유선염일 때 먹는, 복용 후에도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는 항생제를 받아 올 수 있었지만 그 의사는 유선염은 출산 초반에나 걸리는 병이라며 이미 출산 후 3개월이 지난 내가, 가슴이 별로 딱딱하지 않은 내가 유선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당에서 유명한 곳으로 손꼽히는 k산부인과에서 이렇게 말하다니 참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에서 유방에 관한 모든 것들은 '유방외과'에서 해결함이 지혜롭다고 하길래 또 인터넷에 물어물어 집 근처 유방외과를 찾았다. 역시 전문은 다른 것이 초음파를 통해 가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염증의 부위와 젖의 흐름, 유선염을 여러 번 앓음으로써 젖줄이 막힌 곳 등등에 관해 속시원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유방외과에서 상태에 따라 무시무시한 시술을 하기도 하고 나처럼 비교적 가벼운 상황일 땐 마사지와 유축을 권해주기도 한다. 통증을 줄여 주고 치료도 되는 약도 처방해 준다.

가벼운 유선염엔 마사지와 유축이 최고다.

가볍다고는 하지만 염증 때문에 유륜과 유두를 살짝만 건드려도 아얏 소리가 절로 나고 수유시엔 저절로 꽥꽥 비명을 지르고 싶어지는 초기 유선염. 칼로 가슴을 찢는 끔찍한 수술은 하지 않지만 유선염에 걸리면 감정적으로 만신창이가 된다. 아파도 하루에 8~10번 규칙적으로 수유는 해야되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와 유방외과 모두 나에게 젖을 계속 물릴 건지를 물어 왔고, 언제까지 수유할 생각이냐고, 이 상태로 모유를 먹이는 것이 엄마인 나에게는 참 힘든 일일텐데 분유를 먹이면 되지 왜 모유만을 고집하냐고 했었다. 의사가 권유하는 상황이니 핑계도 좋았고 눈 한 번 딱 감으면 앞으로 모유 수유의 고통에서 해방될 거라는 참기 힘든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천성이 미련하고 주위의 눈총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어서 나는 이를 악물고 모유 수유를 택했다. 성공하고나니 밤에 자다가 분유를 타러 가는 일, 물을 끓였다 식혔다, 젖병 소독하는 일 모두가 모유 수유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인 것 같아서 모유 수유가 가장 쉬운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그러나 실제로는 어렵다.)

유선염에 걸렸을 때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으니 가슴 마사지 업체들의 광고글만 수십 개가 주르륵 올라 왔다. 마사지만 받으면 다 낫는다는 둥, 병원 갈 필요도 없다는 둥 너무 자신만만하게 얘기하고 있어서 오히려 더 의심이 가는 글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마사지와 유축이 최고였다. 염증 때문에 유두와 유륜이 엄청나게 붓고 제대로 수유를 하지 못해서 젖이 계속 쌓이기 때문에 가슴은 점점 커져서 수박만 해지고 딱딱해져서 아기가 먹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젖을 빼 내야 되는데 유축기 보다는 당연히 손으로 젖을 짜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살짝 닿아도 너무 아픈 상태일 테니까 스스로는 절대 할 수 없으니 전문 마사지 업체를 찾아야 된다. 통증이 없다고 소문난 곳이면 어디든 괜찮고(진짜 통증이 없었다. 인정은 많았지만 요령은 없었던 유방외과 의사 선생님이 유축 시범을 보일 땐 딱 죽고 싶었는데 말이다.) 쿠폰을 끊을 필요는 전혀 없다. 한 두번만 받으면 되고 심해도 3번만 받으면 된다. 나는 4번을 받았는데 마지막엔 스스로 할 걸 괜히 갔다 싶기도 했었다.



손으로 젖짜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출산 준비물로 유축기를 장만하는 사람들은 참 많고 임신 기간 내내 배 마사지를 하는 사람들도 참 많은데, 가슴 마사지의 방법과 손으로 유축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참 드물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배 마사지 보다 가슴 마사지와 유축 방법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한 번 잘 배워두고 요령을 익히면 유축기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쉽게 젖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유선염에 걸렸어도 모유에 피만 섞이지 않았다면 유축해서 아기에게 먹일 수가 있다. 직접 수유를 하는 경우엔 피가 좀 나와도 괜찮다. 항생제를 먹더라도 모유에까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유선염에 걸린 대부분의 엄마들이 유두와 유륜까지 아픈 상태니 손으로 젖을 짜는 방법을 배워야 된다. 병원에서 주는 자료에도 그림으로써 설명을 잘 해두었던데 블로그에 올리고 싶지만 가슴 그림이라 괜히 선정적이라고 오해할까봐 글로 설명을 해야겠다.

만약 왼쪽 젖을 짜려고 한다면, 왼손으로 가슴 아래를 받히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이용해서 젖을 짜면 된다. 이 때 유륜을 눌러야 되고 12시와 6시 방향에 각각 엄지, 검지를 두며 젖을 짤 때 이 두 손가락이 만나야 된다. 만냐야 된다는 말의 의미는, 손가락을 미끄러뜨려 아래에서 만난다는 말이 아니라 12시와 6시 방향을 완전히 눌러서 피부를 사이에 두고 손가락 지문 부분끼리 맞부딪혀야 된다는 뜻이다.

글로 설명을 해도 혼자서는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드니까 가슴 마사지하는 업체에 가서 배워오는 것이 좋겠다. 어차피 처음엔 너무 아파서 도움을 받아야 되니까 말이다. 이것도 연습이 필요한데 처음엔 숙달이 안되서 한 방울 씩 겨우 나오지만 익숙해지면 샤워기에 물 틀어 놓은 것 처럼 착착착 소리를 내면서 여러 가닥으로 젖이 나오니까 시간도 별로 안 걸리고 손쉽게 할 수 있다.

익숙해지면 모유 수유가 가장 쉽다.

유선염으로 한창 고생할 땐 3월만 기다렸었다. 아기가 6개월이 될 때까지만 모유 수유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딱 6개월만 먹이고 그 이후론 분유만 주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100% 모유 수유에 성공하고 나니 이제는 분유 주는 것이 더 힘들것 같아서 계속 모유 수유를 하고 있다. 아기도 많이 커서 젖을 잘 먹어 주고 이제는 수유 간격이 좀 벌어져서 7시간 이상 먹이지 않아도 탈이 없다.

무엇보다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나는 분유가 번거로워서 아기가 돌이 지나서 생우유를 먹을 수 있을 때까지는 젖을 먹일 생각이다. 내 블로그에 놀러 오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유선염에 관해 궁금해 하시고, 다른 분들이 유선염 때문에 고생을 덜 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긴 글을 썼다. 부디 울지 않고 모유 수유에 성공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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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던 날, 나는 새삼스레 우리 나라 지하철이 참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관절이 아프셔서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드신 어르신들과 휠체어를 타야 되는 사람들도 지하철 역마다 마련돼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정말 좋다. 지상과 지하를, 개표구와 승강장을 연결해 주는 엘리베이터가 곳곳에 마련돼 있어서 힘들게 계단을 오르지 않고도 원하는 곳으로 숑숑숑 갈 수 있다.

임신 기간에도 종종 이용하곤 했던 이 엘리베이터를 유모차와 함께 또 탔던 날, 나는 참 민망한 장면을 목격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 그리고 내가 다솔이를 태운 유모차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다 타고 한참 지난 뒤(지하철과 연결 돼 있는 엘리베이터는 몸이 다소 불편한 분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문이 서서히 닫히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려데 그 순간 손을 내 흔들며 종종 걸음으로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뒤늦게 오셨다.

나는 얼른 열림 버튼을 눌러 할머니가 들어 오시게끔 했는데, 그 순간 짜증 섞인 한숨소리가 났다. 꼬마 아이의 엄마였다. 또 한참을 기다리는데 다른 할머니가 같이 가자며 달려 오셨고 문은 또 다시 열렸다. 마지막에 탄 할머니는 급하게 타시느라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것인지 내려가는 것인지를 잘 모르셨는데 알고보니 잘못 타신 거였다.

Teleportation Prototype
Teleportation Prototype by gilderic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여기에는 내려가는 것 밖에는 없어요. 문 한 번 열리면 또 한참 기다려야 되는데...... .

아이의 엄마는 속이 상한듯 팔짱을 끼며 궁시렁거렸고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느라 어쩔 줄 몰라했다. 엘리베이터를 잘못 탄 할머니가 미안한듯 내리시자 꼬마 아이는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제발, 제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드디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꼬마 아이는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진듯 기쁘게 박수를 치면서 '와, 이제 문이 닫혔다!'하며 좋아한다.

원래 어르신들을 위한 엘리베이터에 얻어 타는 입장인데 뭘 그렇게 빨리 가려고 하는지 나는 참 불편했다. 잘못 된 일로 짜증을 내는 엄마도 문제였지만 그런 엄마의 기분을 맞추느라 안절부절 못하면서 잘못된 일을 배워갈 그 딸아이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내가 어렸을 때, 그 땐 텔레비전 수신료를 방송국 직원이 일일이 받으러 다녔는데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참 충격적인 장면을 봤었다. 친구 엄마가 집 옥상에서 빨래를 너시다가 그 직원이 수신료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곤 다락방으로 숨으신 거였다. 그런 일이 익숙한 듯 친구는 천연덕스럽게 엄마가 집에 안 계시다고 이야기 했고 후에 칭찬을 받았다.

come my tiny metal children
come my tiny metal children by drspam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목욕탕에서 몇 천원 아끼려고 아이의 나이를 속이는 엄마, 아이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하면서 너 혼자 다닐 땐 꼭 신호등 보고 건너라는 엄마, 운전할 때 신호위반을 밥 먹듯 하면서 아이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없이 쌀쌀맞게 대하면서도 자기 아이는 예의바르게 커 주길 기대하는 엄마.

나도 나중에 어떤 엄마가 될 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안타까운 엄마들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했다. 부모, 특히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월등히 더 많은 엄마는 자식이 어떤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는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 자신이 먼저 그런 어른이 되도록 애써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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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구,나!---라고 말했을 것이다. 가은 엄마와 내가 아주 친한 사이였다면...... .

그러나 우리는 아직 서로 존대를 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나는 대신 엄청 힘들었을 것 같다는 걱정과 정말 고생하셨다는 위로의 말만 들었다. 정말 미친 짓이었을까? 진짜 가은 엄마 말처럼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약속이 있었던 압구정에서부터 우리집이 있는 판교까지 오는 것은.

나는 이제 7개월에 접어든 다솔이를 데리고 둘이서만 외출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마트에서 돌도 지나 보이는 아이를 한쪽 옆구리에 끼고(?) 다른 손으론 장바구니를 들고 포부도 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아줌마를 볼 때나,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아줌마들을 볼 때, 나는 속으로 너무 나약한 엄마가 아닌지 반성을 하곤 했다.

어느 날에는 저녁 때까지 집에 있다가 갑자기 동네 한 바퀴라도 돌고 오자는 생각이 들어서 처네(아기띠처럼 아기를 안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포대기처럼 생겨서 뒤로 업을 수도 있다. 아기띠와 포대기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아기용품이다.)로 아기를 안고 나가 보려고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솔이와 내가 둘 다 빵빵하게 옷을 입고서 처네까지 하려니 혼자서 찍찍이로 품을 조절하는 것도, 뒤에 달린 버클을 채우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우 엉성하게나마 혼자서 처네를 매고 끙끙대면서 밖으로 나갔는데, 이런이런! 눈이 오는 것이 아닌가. 3월 중순에 눈이, 그것도 내가 나가기로 맘 먹었던 바로 그 날 내리다니. 도리없이 동네 한 바퀴도 포기하고 신선한 바람만 한 번 쐬고는 도로 들어왔다.


지하철 타는 다솔이


그랬는데 어제 압구정에서 볼 일이 생긴 것이었다. 8.5kg이 넘는 다솔이를 안고서 돌아 다니는 일은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이번엔 처네 대신 유모차를 써 보기로 했다. 남편이 자동차로 출근할 때 달려 나가서 일을 본 후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데 뭐가 힘들까 싶었고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있기 때문에 별 것 아닐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유모차를 탄 다솔이를 데리고 압구정에서 판교까지 오는 길은 2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발이 붓도록 걸어 다녔던 배낭 여행지에서의 길 보다 몇 배는 더 험난하고 길게 느껴졌다.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여정이었는데 세 시간은 족히 더 걸린 것 같다. 다행히 기특한 다솔이가 유모차에서 잘 자 주어서 다솔이를 어르거나 재우는데 드는 힘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집에 오자마자 나는 대자로 뻗어 버렸다.

지하철 개표구는 휠체어가 지나가는 문으로 들어갔고 모든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한 번 환승을 했는데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조금 넓은 곳도 있어서 그 땐 다른 분들의 도움도 얻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 오는 도중에 몇 번이고 택시를 잡아 타고 싶었지만, 아기를 안은 채 유모차를 접는 것도 힘들었고 소심해서 택시 기사님께 접어 달라고 말하기는 껄끄러워서 이를 악물고 걷기만 했다.(이런 미련퉁이)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에서 프랑스 여인들은 유모차를 끌고서 먼 길도 잘만 가길래 내게도 쉬울 줄 알았더니 역시나 저질 체력이 문제였다. 당분간 절대로 유모차 여행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지만 하루가 지나니 적응이 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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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던, 그래서 늘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던 다솔이의 옷장을 드디어 오늘 깔끔하게 정리했다. 벌써 아기 옷장을? 하시는 분들은 아직 자녀가 없으시거나 아님 아빠이거나...... . 다솔이의 이름이 '별이'일 때 이미 장만해 둔 이 옷장의 이름도 '별이'다. 손잡이가 별 모양으로 된 이 옷장은 내가 임신 9개월에 접어 들었을 때 태명과 제품명이 같아서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여 놓았다. 미리 준비 해 둔 출산 용품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두었는데 참 잘 쓰고 있다.

아직은 외출 할 일이 별로 없어서 내의에다가 두툼한 우주복 하나 입혀서 나가지만 다솔이의 옷장 속에는 귀엽고 앙증맞은 옷들이 꽤 있다. 예뻐서 하나 싸서 둘 사 모은, 아직 한 번도 입지 못한 옷들이 따뜻한 봄날이 와 다솔이가 쑥쑥 커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모두 큰 치수로 사 두었다.)

신체치수 80인 다솔이에게 90짜리 옷들이 잘 맞을 리 없어 아직 개시도 못했지만 하나같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그 옷을 걸고 있는 옷걸이가 내내 못마땅했던 것이다. 어른들 옷을 거는 옷걸이로 아기 옷을 거니까 크기가 맞지 않아서 옷들이 모두 양팔을 벌려 허수아비 놀이를 하고 있다. 때문에 옷장 문도 잘 닫히지 않고 더불어 옷장이 어수선하고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다 아기 옷걸이를 사게 돼 다솔이 옷장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소품을 사러 갔다가 발견한 것인데 다섯 개 들이 한 묶음의 가격은 7,500원. 생각보다 사악한(?) 가격 때문에 고민을 좀 했지만 스웨이드로 된 소재도 고급스럽고 한 번 사서 오래 쓸 요랑으로 눈 딱 감고 두 묶음을 사 왔다. 어른용 옷걸이 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튼튼해 보인다.


아기 옷에서부터 아동 옷까지 오랫동안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기용 옷걸이만 사진으로 찍어 놓으니까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워 어른용 옷걸이와 비교해서 사진을 찍어 봤다. 같이 두고 보니 크기 차이가 현격해 어느 정도로 작은 지 알수 있겠다.


어른용 옷걸이에 걸어 두었을 땐 허수아비가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것 처럼 보이던 옷[니트 소재의 아기(혹은 유아)옷을 이렇게 걸어 두다간 옷감이 다 상해 버릴 수도 있겠다.]이 아기용 옷걸이를 만나니 편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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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용 옷걸이로 바꿔 주었을 뿐인데 옷장이 참 가지런해졌다. 깔끔하게 바뀐 다솔이의 옷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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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의와 실내복은 오른쪽 수납장에 넣어 두었는데, 얼른 날씨가 좋아져서 다솔이를 데리고 같이 나들이 가고 싶다. 내의 하나에 점퍼 하나 입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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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책에서 배운대로 행동하는 착한(?) 다솔이 엄마는 모유를 먹이는 아기들은 6개월 때부터 이유식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소리에 주윗 사람들의 걱정어린 말들을 억지로 견디면서 6개월을 꿋꿋하게 버텼다. 누구는 보니까 3개월 되자마자 이유식 시작하던데? 아기 덩치가 그렇게 큰데 어떻게 젖만 먹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어? 이유식 얼른 시작해야 되지 않나? 주윗 사람들이 이유식, 이유식 할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임신 기간 동안 다니던 예비 엄마 교실 선생님도 그러셨고 책도 그랬기에 오직 6개월, 180일이 되기까지만 기다리고 기다렸다.

다솔이는 어느 덧 성장해서 어른들이 식사하는 것을 보면 쩝쩝 입맛도 다시고 내가 무엇을 먹을 때 마다 뚫어지게 혹은 민망하게 쳐다보는 등 음식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한 번은 사과를 먹고 있는데 포크가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돌리면서 침을 질질질 흘리는 것을 보곤 너무나 주고 싶어서 맛만 좀 보라며 혀끝에 사과를 살짝 대 줬는데, 다솔이가 무서운 속도로 사과를 빠는 것이 아닌가.

처음 맛 본 사과의 맛과 달콤한 향에 홀린 듯 '에에' 소리까지 내 가며 사과를 빠는데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먹을 수 있는 월령이기도 해서 그냥 줘 버릴까 잠시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배, 운, 여, 자'가 아닌가? 이유식은 6개월부터(모유 먹는 아기, 알러지 있는 아기), 순서는 쌀(곡식)-채소-과일, 단 맛이 나는 맛있는 것은 나중에, 육류에 신경쓸 것! 이렇게 달달달 외우고 있는데 어찌 알면서 그것을 어기겠나.


이제 다솔이도 이유식을 시작할 때가 돼서 쌀죽부터 끓여서 먹였고 며칠 지난 후 양배추도 같이 갈아 넣어서 먹이고 있다. 일찍 시작하는 아기들은 불린 쌀을 갈아서 10배 죽을 끓이는데 다솔이는 8배로 시작을 했다. 7개월부터는 덩어리가 있는 것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진도를 맞추기 위해서다.

보통 손가락이나 아기 숟가락을 입에 대 봐서 혀로 밀어내지 않으면 이유식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라고 하던데 나는 미리 다솔이와 숟가락으로 먹는 연습을 좀 해 두었다. 6개월을 고집하면서 남들보다 천천히 시작했는데 정작 때가 됐을 때 다솔이가 숟가락으로 음식 먹는 것에 익숙치 않아서 이유식을 못 먹게 되면 낭패가 아닌가. 그래서 5개월 중반이 넘어갔을 때 유축한 젖을 컵에 담아서 작은 숟가락으로 떠서 먹이면서 연습을 시켰다.

역시나 처음에는 주는 족족 흘려버리기 일쑤더니 두 번만 하니까 꼴깍꼴깍 곧잘 받아 먹었다. 경험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이유식을 주는 첫 날부터 냠냠냠 참 달고 맛있게 잘 받아 먹는 다솔이. 보통의 아기들이 처음에 이유식을 먹을 땐 흘리는 것 반, 먹는 것 반이라던데 젖으로 연습을 해 봤기에 다솔이는 흘리는 것이 거의 없다.

이유식을 시작한 첫날엔 한 번만, 그 다음날 부터 하루에 두 번씩 먹이고 있는데 쌀의 양은 어른 밥 숟가락으로 반 숟가락(하루에 먹는 양)부터 시작해서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한 숟가락씩 먹는다. 물론 이유식 후에는 바로 또 젖을 물려야 한다. 아직은 모유가 주식이고 이유식은 간식이기 때문이다.(하루에 분유나 모유를 최소 600cc는 먹어야 된다.) 

간도 하지 않은 쌀과 야채를 갈아서 만든 죽이 뭐가 맛있을까 싶기도 한데, 다솔이는 새로 먹는 음식이 너무나 맛있다는 듯 숟가락만 들면 자동으로 입을 쩍쩍 벌리면서 냠냠 쩝쩝 너무나 맛있게 먹어 준다. 이유식 만드는 것 때문에 하루는 더 바빠졌지만 그만큼 보람은 더 늘어났다.



오늘따라 유독 얼굴에 많이 뭍히고 먹는 다솔이 귀엽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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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띠 친구 구해요.', '삼십 대 초반 친구 찾아요'

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는 낮에 혼자 있기 심심하다며 친구를 찾는 아줌마들이 참 많다. 게시판을 통해 아줌마들은 가끔 만나서 차도 한 잔 마시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허물없는 친구를 원한다고 했다.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가급적이면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아줌마들이?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 .

오해하지 마시라, 아줌마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새로운 친구는 바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동네 아줌마 친구이니까 말이다.
 
아기를 낳은지는 꽤 됐지만 아직 아기가 어려서 집 밖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는 엄마들은 이따금씩 자신들이 창살없는 감옥 살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물론 아기를 돌보는 일이 보람되고 행복한 것이기는 하지만 매일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다보면 문득문득 울컥해질 때가 생기는 것이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 버리고, 어쩌다 보면 황금 같은 주말도 휙 사라져 버리니 맘 먹고 외출하지 않으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집 안에서만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그렇다.

Bathroom reading
Bathroom reading by thejbird 저작자 표시비영리

아기와 하루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다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해서 자신의 아이와 비슷한 또래를 기르고 있는 새 친구를 만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주로 아기의 나이에 맞추어서 새 친구를 찾는데 운이 좋게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 급속도로 친해져서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음식과 차를 나누어 먹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육아에 관한 정보도 나누고 속 이야기도 터 놓으면서 말이다.

...... .
나는 오늘 녹초가 돼 늦게까지 자고 있는 남편에게 차마 외출을 하자는 말을 못해서 호기롭게 혼자서 집 밖을 나서게 됐다. 일주일만에 바깥 공기를 마시는 순간 너무나 기분이 상쾌해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고개를 들어 '나는 자유인이다'를 속으로 외치면서 통통통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오랫만에 화려하게 화장도 하고 곱게 단장도 했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밀쳐내고 거의 1년 만에 구두도 신었다. 

남편과 아기와 함께 나오지 못한 것이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나는 능동적인 사람이기에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고 아직 감기를 다 벗어내지 못한 아기가 찬 바람을 쐬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각또각또각, 몇 발짝 즈음 걸었을까? 대체 어디에 가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 지,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고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었다.

May their JOY Embrace U!(Bali Kuta Beach)
May their JOY Embrace U!(Bali Kuta Beach) by Kenny Teo (start from scratch...)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늘 가던 길과는 다른 길로 한 번 걸어 가 보기로 했는데 이십 여 분이 넘도록 똑같은 이름의 아파트만 나왔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동네였다. 오랫만에 신은 구두 때문에 발뒷꿈치는 점점 불편해져 오고 아무 빵집에라도 들어가 샌드위치와 주스를 먹을까 하다가 괜히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고 갈 곳은 없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참 서글픈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참을 더 걸으니 다행히 번화가가 나왔고 저 멀리 큰 마트가 보였고 나는 안심하듯 그 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오랫만에 혼자서 외출을 했으나 내가 한 것이라곤 반찬거리를 두 손 가득 들고 돌아온 것 뿐...... . 어쩌면 나도 우리 동네에 사는 마음 맞는 친구를 찾기 위해 인터넷 카페 게시판을 기웃거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수록 아줌마들의 건전한 즉석 만남은 참 지혜롭고 좋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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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2주일이 지났을 때 나는 산후 조리원에 달려 있는 뷰티센터에서 체성분 측정을 했다. 몸무게는 53kg, 체지방은 30%였으며 당연히 복부 비만이었다. (임신 중 최고 몸무게가 58kg이었고 원래 내 몸무게는 46kg이었다.)산후 조리원에서 요가를 가르쳐 주던 요가 선생님도 그랬고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그랬다. 출산 후 3개월까지 본래 몸무게로 돌아가지 않으면 영영 살을 빼지 못하니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틈틈히 운동을 하고 스스로 음식도 조절해서 먹어야 된다고 말이다.

어른들이 엄마가 잘 먹어야 모유가 잘 나온다고 터무니 없는 양의 밥과 국과 간식과 영양식을 주실테니 요령껏 거절하고 기를 쓰고 피하면서 음식의 유혹을 잘 넘겨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 왔다.

그러나 아기가 50일이 될 때까지는 산후조리를 하면서 아기를 기르자니 운동은 커녕 일어나서 다니는 것도 힘이 들었고 100일이 되니 집 안에 틀어 박혀서 꼼짝 않고 지내는 것이 오히려 익숙해졌다. 운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모유 수유를 핑계로 밥만 꼬박꼬박 먹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굳게 결심을 하고도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애벌레처럼 꼬물거리며 살기를 반복하면서 어느덧 6개월을 보냈다.

핑계라면 핑계인데 모유 수유를 하니 밥의 양을 조절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절대로 굶어서는 안 되지만 임신 하기 전과 동일한 양을 먹으면 충분한데도 밥 한 그릇을 비우고도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다시 배가 고팠다. 밥 먹다가 아기가 울면 식사를 중단하고 아기를 달랬는데 그러고 나면 1/3밖에 남지 않은 밥그릇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미 2/3는 내 뱃속으로 들어갔을 텐데 그 밥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다시 허기가 지기도 했다. 역시 모유 수유를 한다고 저절로 살이 쏙 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출산 후 6개월 동안 거의 집에서만 지내다시피 했는데도 자연스레 몸무게는 조금씩 조금씩 계속 줄어들었다. 천천히 1kg씩 줄어들더니 47kg에 체지방 24%가 됐다.(이번에는 집에 있는 체지방률도 나오는 체중계로 쟀다.) 천성이 게을러서 매번 계획만 거창했을 뿐 운동은 거의 하지 못했고 집안에 콕 틀어박혀서 지냈는데도 6개월만에 몸무게가 거의 다 돌아온 셈이다. 운동을 꼬박꼬박 했다면 근육도 적절히 생겨서 탄력있는 몸매로 되돌릴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해서 체중은 비슷한데 체형은 전혀 달라져 버렸다.

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신 전에 입던 스키니바지를 입어 봤는데 조금 불편하지만 단추는 채울 수 있었다. 잘 맞는 느낌은 아니었고 뭐랄까 꽉찬 서랍속에 옷들을 마구 쑤셔 넣으면 억지로 서랍을 닫을 수는 있듯, 바지 속으로 뱃살을 마구 구겨 넣는 느낌이었다. 입고 나서 거울에 비춰보니 허벅지와 엉덩이에도 정리되지 않은 살들이 많아서 옷태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아, 이제 봄이고 곧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 올텐데 그 전에 운동을 꼭 시작해야만 한다. 아니 시작은 자주 했으니 제대로 끝을 맺었으면 좋겠다. 몸무게가 돌아 온 것은 내 노력이 아니니 이제부터는 내 노력으로 몸매를 다듬어야 될 시간이 되었다. 1년 365일 머리 속으로는 계속 진행중인 다이어트,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내가 경험을 해 보니 임신 기간 중 적절히 몸무게가 는다면 (임신전 몸무게에 따라 7~13kg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아무런 노력없이도 6개월 정도가 지나면 몸무게는 제자리로 돌아 온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모유 수유를 하면서 집안에서만 생활했음에도 그랬으니 말이다. 대신 살이 흐물흐물 탄력을 잃고 정리가 안 되므로 유산소 운동과 특히 근력 운동을 해 주어야 임신 전 체형으로 돌아갈 수 있다.

덧붙임. 생후 6개월(거의 180일) 아기 성장 보고서
다솔이는 키 48.3cm에 몸무게 2.84kg(병원에서 측정)으로 태어났다.
약 6개월이 지난 현재 키는 약70cm에 몸무게 8.5kg(집에서 측정했기에 오차가 심할 것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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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 나서부터 그르렁 그르렁 콧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역시나 감기에 걸려 버린 다솔이. 3월이 되어 이제 다솔이는 태어난지 6개월에 접어드는데, 그동안에는 엄마에게서 받은 면역 성분 때문에 어떠한 바이러스에도 끄떡없이 이길 수 있었으나 이제는 스스로 면역력을 길러야 될 때가 된 것이다. 엄마에게서 두 번째로 독립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첫 번째는 엄마의 탯줄에서 독립하여 그저 영양분을 받아 먹기만 하다가(생각해보니 그저 받아 먹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자기에게 꼭 필요한 성분으로만 내 몸에서 쏙쏙 빼 갔으니까 말이다. 내가 무엇을 먹든 마시든 상관없이, 태아였던 다솔이는 단백질, 칼슘, 비타민 등등을 필요에 따라 슬쩍슬쩍 가져갔다. 지방을 더 많이 가져갔으면 좋았을 것을...... . ) 자기 스스로 입을 오물거리면서 젖을 빨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면역력 독립이 두 번째이다.

육아 책에서 본 그대로였다. 안 그래도 생후 6개월 이후부터 잔병치레가 많아질 것이라고 하길래 마음을 준비 하고 있었는데 다솔이가 처음으로 감기를 경험하고 아파했다. 콧소리가 심했지만 첫날에는 콧물은 나지 않았고 열과 기침이 조금 있었고 둘째날부터 콧물이 나왔다.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자신의 증상에 대해 요목조목 설명을 할 텐데 다솔이는 그저 칭얼거릴 수밖에는 없었다. 평소보다 더 많이 잠을 재우고 평소보다 덜 먹으려고 하는 다솔이를 더 오래 안아주었다. 아픔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다솔이는 코를 훌쩍거리다가도 내가 재미있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희안한 얼굴 표정을 보여주면 금세 헤헤거리면서 좋아했다. 언제쯤이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지.

손톱으로 자기 얼굴에 자주 생채기를 내는 것을 보면 아직 아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뚜렷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확실하다. 피가 날 정도로 깊은 상처를 내고 그 상처가 다 아물면 또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니까 말이다. 감기 증상을 보인지 삼일이 되니까 기침은 완전히 사라졌고 콧물도 거의 없어졌다. 체온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아직은 조심해야 되기 때문에 되도록 외출은 삼가고 주의해서 다솔이를 관찰하고 있다.

커 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엄마에게서 독립을 하고 있는 다솔이, 다음 번 독립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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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에 있던 남편을 부르던 내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틀림없는 '환호'였다.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는 것 같으면서도 불만이나 불안함 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이 더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여러 번을 반복했던 일이기에 다솔 아빠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대강 눈치를 챈 듯 서둘러 나에게로 달려왔다. 역시나 웃는 얼굴이었다. 이제부터는 분업이다. 아랫도리를 벗겨내고 나서도 심하게 버둥거리는 다리를 잡는 것은 남편의 몫, 나는 기저귀를 벗겨 낸 다솔이의 은밀한 부위를 세심하게 닦아 내는 일을 하면 된다.

욕조에 물을 받아서 엉덩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면 끝.

모유를 먹어서 며칠에 한 번씩 '응가'를 누는 다솔이는(모유는 분유보다 흡수력이 좋기 때문에 그렇단다.) 가끔 큰 일을 보는 대신 그 양이 어마어마한데 나는 그것을 치우는 일이 더럽기는 커녕 무진장 재미있다. 기저귀가 흘러 넘칠 듯이 꾸역꾸역(?) 나오는 그것을 볼 때면 혼자 보기가 너무나 아까워서 꼭 남편을 부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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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기들은 소화기관이 짧기 때문에 변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젖이 짧은 소화 기관을 빨리 통과하게 되면 소화액 때문에 녹변을 보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황금색변을 보여주는 다솔이가 어찌나 기특하고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임신 중이었을 때 시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어머님은 할머님과 함께 아기(현재 나의 남편)를 돌봤는데, 가장 속상했던 것이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이셨단다. 다솔이 아빠는 어머님께도 첫 아이였지만(처음이자 마지막) 할머님께도 첫 손자였기 때문에 무척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래서인지 기저귀를 갈 때가 되면 어머님이 손을 댈 겨를도 없이 할머님께서 쓱싹 해치워버리셨단다.

시어머님은 아들의 기저귀를 당신 손으로 갈아 본 적이 없어서 그게 너무 서운하셨다고. 나는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처럼 종이 기저귀가 흔한 시기도 아니었기에 천 기저귀로 작은 일 큰 일을 다 받아내야 했을텐데 누군가 냄새나고 수고로운 일을 대신 해 주면 고맙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어느 날 어머님은 할머님 몰래 아기 곁에서 기저귀를 지키고 앉아 계시다가 기저귀 갈 때가 되자 얼른 그걸 가지고 화장실로 가셔서 문까지 잠그시곤 감격하며 빨래를 하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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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그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이, 내가 낳은 아이여서 그런지 내 젖을 먹고 눈 '그것'이어서 그런지 기저귀를 갈 때 전혀 냄새가 나지도 않고 더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오죽하면 수시로 다솔이의 아랫도리를 킁킁거릴까. 다솔이는 용변을 보고도 보채지 않고 잘 노는 까닭에 냄새를 맡아 봐야 된다. 요즘엔 뒤집기가 숙달이 돼서 툭하면 엎드려서 노는데 응가를 하고 나서도 엎드리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럴 땐 '오 마이 갓'을 저절로 외치게 되지만 그 모습마저 정말 귀엽다.  

친정 엄마는 맨손으로 응가를 거침없이 만진다며, 나 더러 '엄마'가 다 됐다고 하셨는데 나에게 기저귀 갈기란 엄청나게 즐거운 놀이의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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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인 윷놀이 경기를 열기로 한 설날 저녁이다. 식구가 너무 많은지라 떡국은 가족별로 집에서 먹고 윷놀이 시합은 우리집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져 있는 외갓집에서 하기로 했다. 외갓집에 들어서니 미리 모여있는 며느리들에 사위들까지 이미 북새통이었는데 한쪽 방에서는 꼬마 녀석들이 벌을 서는 중이었다. 야단을 맞은 모양인지 우리 가족들이 들어서는 대도 뾰루퉁해 있었다.

무슨 잘못을 했길래 설날 저녁부터 저러고 있을까 궁금해하다가 이내 답을 찾고는 푸시식 웃음부터 터뜨렸다. 안방의 한 쪽 벽면에 전에 없던 추상화가 한 가득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열심히 낙서를 했는지 빈틈이 별로 없었다. 색색깔로 그려져 있는 사람 얼굴, 동물 얼굴과 한글을 모방해서 만든 듯 한 요상한 글씨들까지...... . 새로 벽지를 바르지 않고선 절대 원상태로 돌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우리의 등장으로 아이들의 벌도 사면을 받았는데 녀석들은 벌써 기력을 되찾았는지 헤헤거리면서 또 이 방 저 방을 우르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마도 벌을 받을 땐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야 빨리 용서 받는 다는 것을 알고 눈치껏 연기를 한 모양이다. 영리한 것들!


어른들의 말씀을 들으니 잠시 과일을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고만고만한 아이들 셋이서(나이는 5살 안밖이다.) 벽지를 도화지 삼아 그림 그리기 삼매경에 빠져 버렸단다. 도배한지 얼마되지 않는 데다가 그림을 그린 도구가 사촌 언니의 샤넬 립스틱을 포함한 값비싼 화장 도구들이라 가중죄가 적용됐다.

자연스레 화제는 '아이들이 자랄 수록 집안이 황폐해진다'는 것으로 옮겨갔고 다솔이(5개월)가 자라 보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금방 깨닫게 될 것이라고 잔뜩 겁을 주었다. 4살, 5살 연년생 형제를 키우는 사촌 언니가 가장 큰 한숨을 쉬었고, 말괄량이 딸아이를 둔 덕에 아들 둔 엄마 못지 않은 수고를 하고 있다는 사촌 오빠도 거들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가전 제품이며 살림 살이가 남아나질 않는데 그런 것들이야 고장나면 다시 살 수 있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아이들의 안전이란다.

그래서 서랍들의 손잡이는 모조리 빼고 가스레인지 손잡이도 빼고 냉장고 문처럼 여닫이는 다 묶어 놓아야 한단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들이 벽에다 낙서를 하는 것 정도는 눈감아 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릴 땐 자꾸만 벽에다 낙서를 하고 싶어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의 창의성이 개발될 것 같기도 해서다.

나는 다솔이의 방을 꾸밀 때 아예 낙서를 할 수 있게끔 만드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다솔이의 방은 이렇다. 신랑의 이야기를 들으니 남자 아이들은 요새 만들기를 좋아하과 구석지고 약간 어두운 곳에서 놀기를 즐긴다니까 침대 아래에서 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천장은 구름이 떠 있는 하늘 모양으로 도배를 해 주고 싶다. 그리고 벽면엔 낙서가 지겨워질 때까지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큰 종이를 붙여주고 싶다. 대신 꼭 크레파스로만 그리기로 약속을 하고 말이다.

지금 내가 가장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 방의 벽지인데 예전 내 방은 그냥 모든 면을 똑같은 벽지로 발랐었다. 그런데 다솔이 방에는 가능하면 구간을 나누어서 다른 벽지를 발라주고 싶다. 예를 들어 어떤 한 면엔 귀여운 인형들이 가득한 벽지를 또 다른 면엔 숲이 울창한 벽지를 또 한 면엔 파도가 넘실거리는 벽지를 말이다. 물론 아랫 쪽에는 낙서를 할 수 있도록 큰 종이를 붙여야되겠지. 아이 방을 생각하다가 내 상상력과 창의성까지 저절로 길러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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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추적에서 산후우울증을 다룬 '아가야 미안해' 편이 방송되자, 고만고만한 아기들을 키우는 내 또래 엄마들 사이에서 새삼스럽게 산후우울증이 화제로 떠올랐다. 방송에서는 겉보기에 특별한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던 한 여성이 3개월 된 아기를 강물에 던지고 뒤이어 자신도 몸을 던진 무서운 사례가 나왔다. 산후우울증을 아주 심각하게 앓는 산모들의 30%가 아기를 해치고 70%가 자신을 해친단다. 심하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것이 산후우울증이니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 무,섭,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의사 선생님의 지긋한 눈매를 몇 초간 바라봤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나 조차도 영문을 모르는 울음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토해내기 시작했다. 다른 산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랄 것도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막 출산한 산모 열 명은 무엇이 그리도 서러웠는지 한나같이 어깨를 들썩이고 입술을 씰룩이면서 한참을 울었다. 마지막 울음까지 실컷 쏟아내고 나자 이번엔 웃음이 났는데 웃음이 번지는 속도는 울음보다 더 빨랐지만 이번에는 모두들 그 이유를 알았다. 영문 모를 눈물에 대한 민망함이 만들어 낸 웃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있던 산후조리원 프로그램 중에는 산후우울증에 관련 된 것이 꽤 있었다. 출산 후 누구나 겪는 산후우울증에 대한 정보를 주고 미술치료를 2번 받게 해 주는데, 마침 조리원에 와 있던 남편에게 손을 흔들며 방을 나설 때만 해도 몰랐다. 그저 이미 지불한 산후조리 비용에 포함돼 있는 것이어서 '본전' 생각에 간 것이었지 손톱만큼도 우울하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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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은 호르몬과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출산직전과 직후 거의 모든 산모들은 우울감을 경험한다. 그저 알아채지 못할 뿐. 첫 아이를 출산하는 엄마일 수록 더 심한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10개월 동안의 임신 기간을 거치고 무시무시한 산통을 이겨내고 출산을 했으니(나처럼 제왕절개를 했을지라도) 얼마나 엄청난 경험을 한 것인가.

출산 후 갑자기 배가 허전해지고 통증은 계속되며 그러나 체중은 별로 빠지지도 않고 오히려 얼굴은 더 부으며 갓난 아기의 울음에 덜컥 겁이 나는데도 젖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아기를 어떻게 안고 달래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병원을 퇴원해야 된다.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시작되는데 어떻게 마음에 평온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우리 다솔이를 작게 낳았다. 2.84kg으로 태어난 다솔이는 왠일인지 먹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 언제나 콜콜 잠만 잤다. 작은 입을 억지로 벌려서 젖을 물려도 골아 떨어지기만 할 뿐 좀처럼 먹지를 않았다. 당연히 적었던 몸무게는 더 빠지고 수분이 빠져나가서 자연스레 몸무게가 더 줄어드니 2.5kg이 간당간당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황달까지 오고 힘이 없는 다솔이는 더욱 젖을 빨지 못했다. 그럴 수록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양이 더 늘었났던 모양이다. 아기의 몸무게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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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치료를 받던 첫 날 '모자상'을 그려 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난 별 생각 없이 쓱쓱 도화지를 채워나갔는데 다 그려 놓고 보니, 상의를 벗은 채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나와 다솔이였다. 그 무렵 나는 유두가 찢어지고 헐어서 옷을 입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그럼에도 아기의 몸무게를 생각하느라 내 상처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림을 그릴 때만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설명을 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아무말 없이 후두둑 눈물만 흘리게 된 것이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산후우울감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증상이다. 출산 후 2주 동안에 나타나는데 예민해지고 눈물이 많아지며 불안, 초조, 수면 및 식욕 장애를 겪는다. 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하지만 특별히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다. 아기를 돌보는 데에 익숙해지고 푹 쉬고 잘먹으면 점차로 우울한 마음이 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 25% 정도는 우울한 정도가 극심해질 수도 있어서 문제다.

가족들은 산모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야 된다. 육아를 산후조리도 끝나지 않은 엄마 혼자에게만 맡기지 말고 되도록 산모를 푹 쉬게 해 주어야 되는데 산모 자신도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출산 후 몇 주가 지났는데도 우울감이 지속되거나 더 심해지는 경우 혼자서 끙끙 맘 졸이지 말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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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kg으로 태어난 다솔이의 몸무게가 어느새 8.2kg이 됐다. 엄마를 알아보고 빙긋 웃어주며 반갑다고 손과 발을 버둥거리는 다솔이를 보며 우울감을 떨쳐버린지도 오래 됐다. 그래도 나는 낯선 의사 선생님 앞에서 주룩주룩 눈물을 쏟아내던 지난 날의 내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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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은 원래 다 이런건지, 이제 겨우 4개월 된 다솔이에 대한 상상이 끝이 없다. 드라마 '공부의 신'을 보면서 수험생이 된 다솔이를 생각하고, 휴가 나온 군인을 생각하며 군입대 하는 다솔이를 생각하고, 텔레비전에 나온 아역 배우들을 보면서 그 맘 때의 다솔이를 또 한번 생각하게 된다.

출산 전만해도 나는 내가 절대 유난스러운 엄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나 스스로 다짐까지 했다. 아무리 내 자식이 귀해도 너무 호들갑 떨며 기르지 않겠노라고. 금방금방 커 버리는 아이에게 절대로 비싼 옷을 사 주지 않을 것이며, 사 달라고 떼를 써도 필요한 것이 아니면 장난감도 함부로 사주지 않겠노라고 말이다.

그런데 다솔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구입해 둔 다솔이 옷 장에는 내년 봄에나 입을까 말까 한 옷들이 대여섯 벌 쯤 걸려 있고, 찬거리를 사러 간 마트에서 정작 내가 넋 놓고 보는 것은 로보트와 기차놀이 장난감이다. 막상 다솔이를 기르다보니 이것 저것 자꾸만 해 주고 싶어진다. 그래도 선언한 것이 있어서, 어른 옷 보다 더 비싼 아기옷 브랜드 매장에는 가지 않지만 대박 세일을 하는 인터넷 매장에서는 클릭질을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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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내가 와이프로그 3기로 활동하고 있는 한샘의 홈페이지를 둘러 보다가 알록달록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 가구를 보게 됐다. 우리집에는 여윳방도 없고 다솔이에게 아이만의 방을 만들어 주기엔 아직 이르지만 가구들이 어찌나 앙증맞고 예쁜지 하나하나 다 둘러봤다. 자녀의 나이에 따라 깜찍한 것에서부터 고상한 것까지 다양하게 구비돼 있었는데 역시 나는 갓난쟁이 엄마답게 귀여운 것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부터 내 방을 가졌는데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아이들 방이라고 그렇게 예쁘게 꾸며놓고 살지는 않았었다.(우리집만 그랬나?) 그러나 요즘은 어떤 시대인가 밥 한 끼를 먹어도 모양, 맛, 영양 등을 꼼꼼하게 따지는 엄마들이 참 많다. 그렇듯 아이가 자고, 놀며 생활하는 공간인 아이방을 꾸며 줄 때도 그냥 아무것이나 사지는 않는다. 특히나 가구는 한 번 구입하면 오랜 시간동안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따져 볼 것이 참 많다.

그런면에서 한샘 가구는 무척 잘 나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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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예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색깔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아이들 물건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왜 딸아이의 물건들이 더 예쁜지, 다솔이 동생으로는 꼭 딸을 낳아야겠다는 사명감을 심어주었다!(헉! 벌써 둘째 생각을?) 가구도 딸아이 것으로 나온것이 분명한 파스텔 분홍색이 더 마음에 들었다. 보기만 해도 열고 싶어지는 하트 모양 손잡이는 아이의 감성을 자극해서 놀이와 학습의 재미를 더해 줄 것만 같고, 모서리를 둥근 곡선으로 처리 해 주어서 한샘 가구는 아이의 안전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모서리 부분을 다른 색으로 처리해서 더 감각적으로 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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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음에 드는 것은 넉넉한 수납장인데, 큰 장난감도 너끈히 들어갈 수 있도록 크기가 커서 참 실용적일 것 같다. 크면서도 쉽게 열고 닫을 수 있어서 아이들 스스로 가지고 놀더 장남감이나 옷 등을 정리할 수 있다. 또한 토끼 모양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의자는 아랫 부분에 수납 공간이 있어서 자질구레한 아이 물건들을 깔끔하게 넣어둘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 가구의 이름은 애니 ANY인데 가볍고 질 좋은 플라스틱 소재에 어린이가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는 규격으로 만들어져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동시키며 놀 수 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은 작은 공간에도 여유를 더해줌으로써 실용적으로 배치하기에 참 좋다. 녹색, 분홍색, 파란색으로 구성돼 있으니까 엄마와 아이의 개성에 따라 마음대로 구입해서 알록달록 예쁘게 꾸미면 좋을 듯 싶다.

이런 추세면 얼마 뒤엔 짜잔, 우리 다솔이에게도 예쁜 방이 생길 것 같다. 아직은 안방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다솔이. 우리 침대에서 엄마와 꼭 붙어서 자는 다솔이가 혼자 잘 수 있을 때가 되면, 혼자서도 무서워하지 않고 쌔근쌔근 단 잠을 잘 수있도록 한샘 가구로 예쁜 다솔이 방을 꾸며주고 싶다.

아, 한샘 홈페이지에서는 'tntn 자녀방 이벤트'를 여는데 매장 방문만 해도 공짜로 선물을 주는 이벤트도 열고 있기 때문에 엄마라면 꼭 한 번 참여해 보시길 권해드린다. 한샘 자녀방 가구는 유아에서부터 수험생 자녀에 이르기까지 나이에 맞춤맞은 가구들을 구비해 놓고 있으므로 천천히 둘러 보시고 다가오는 봄, 자녀에게 꿈을 키울 수 있는 자신만의 방을 꾸며주시길 또한 권해드린다.

이미지를 클릭하거나 여기를 클릭하면 tntn 자녀방 이벤트로 바로 갑니다. ^^~ 슝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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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산후조리원은 워낙에 비싸기 때문에 아무리 잘 활용을 하더라도 절대로 본전을 뽑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 더 지혜롭게 활용하면 산후조리원 이용비가 너무 아까워 배가 아플 일은 없기 때문에 비싼 돈 내고 제대로 조리하지 못하는 산모들을 위해 이 글을 쓰려고 한다.

산후조리원 본전 뽑는 법 1. 아기는 되도록 신생아실에 맡기기

산후조리원은 말 그대로 출산을 한 산모가 자기의 몸을 추스르기 위해 몸조리를 하러 들어가는 곳이다. 엄마라면 누구나 갓 태어난 아기와의 만남이 무척 반가워서 아기와 하루종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우선 자신의 지친 몸부터 달래는 것이 급선무다. 자신과 남편을 쏙 빼닮은 아기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계속 안아 주고 싶겠지만 아기는 되도록 신생아실에 맡기고 엄마들은 그 시간에 1분이라도 더 잘 것을 권한다.

아기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잠에 빠져서 하루 20시간은 거뜬히 잘 수 있지만(먹을 때도 자면서 먹는다.) 엄마들은 출산과 동시에 수유와의 전쟁이 선포되기 때문에 제대로 누워있을 시간조차 없다. 신생아들은 젖을 빨 힘이 부족해서 2시간마다 배고프다고 울어대고 이제 막 출산한 산모의 젖이 풍부할 리 없으니 엄마들은 유축하랴, 물리랴 정신이 없다. 좀 쉴만 하면 수유하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수유실로 뛰어가야 되고 제대로 앉아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다. 밤에도 쉬지 않고 2시간 마다 수유를 해야 되기 때문에 엄마들은 산후조리를 하러 조리원에 간 건지 젖을 주러 수유원에 간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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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처음에는 무조건 '완모(100% 모유만 주는 것)'를 고집했기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분유를 주면 큰 일 날 것처럼 묘사를 해 두었고, 한 번 젖병을 빨아 본 아기들은 젖병보다 60배나 더 힘든 엄마젖을 빨려고 할 리 없다며 잔뜩 겁을 줬기 때문에 힘이 들어 쓰러질 직전까지 젖을 주러 다녔다.

모르는 분들은 그깟(????) 모유 수유가 뭐라고 이렇게 엄살이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태어난지 얼마 안 돼 힘이 없는 아기들은 젖을 빨다가 잠들어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초보 엄마들은 젖 주다 말고 아기 깨우는 것이 일이고 몇 번 빨다가 잠들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수유 시간이 한 시간 정도 걸리게 된다.

트림까지 시키고 나면 녹초가 돼(다시 한번 알려드리자면 그냥 엄마가 아니라 산후조리 중인, 하루 종일 자도 부족할 회복 전의 엄마들에 관한 이야기다.) 진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 된다. 겨우 아기를 눕혀 놓고 조금 쉬려고 하면 금세 또 수유 시간이 돼 버려서(초반 아기들의 수유 간격은 2~3시간마다 한 번인데, 한 번 먹이는 데 1시간이 걸리니까) 정작 엄마들은 밥도 못 먹고 또 젖을 물리러 가야 된다. 나도 신생아실에서 언제 전화가 올 지 모르기 때문에 서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산후조리원에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간 이상, 충분한 조리를 하다 돌아와야 되지 않겠는가. 모든 산후조리원에는 하루에 일정시간을 모자동실 시간으로 정해 두고 그 시간 동안 신생아실을 소독한다. 대개 2~3시간 정도인데, 내가 경험해 보니 산후조리원에서 조리하는 2주 동안에는 모자동실 시간에 충분히 아기를 안아 주고 나머지 시간에는 신생아실에 맡겨 두는 것이 더 낫다. 어차피 수유할 때 또 아기와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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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반에는 거의 모자동실로 지내다가 아기를 에만 신생아실에 맡겨서 내가 쉴 틈이 없었다. 거의 종일 데리고 있으면서 아기가 젖을 찾으면 바로 물렸고 12시 쯤 유축해 놓은 모유와 함께 신생아실에 데려다 주었다. 새벽에 한 번 깨서 유축을 하고 조금 더 자다보면 신생아실에서 아기가 배고파하는 것 같다며 전화가 왔다.

아기가 젖을 찾으면 바로 전화를 달라고 부탁했기에 신생아실에서 무시로 내게 전화를 한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기를 키워보니 젖병을 물었다고 해서 엄마 젖을 거부하지도 않으며 금방 태어나 힘이 없을 땐 하루에 몇 번은 젖병을 빨아서 쉽게 배를 채워 주는 것도 필요하다. 나도 산후조리원에서 젖병으로도 줘 봤고 너무 힘들 땐 분유도 먹여 봤다. 그래도 지금 다솔이가 태어난지 130일 정도 되었는데 모유로만 아기를 키우고 있다.

우리 다솔이는 산후조리원에서 엄마 젖, 젖병, 모유, 분유를 다 경험해 봐서 그런지 어떤 방법으로 먹여도 별로 거부감 없이 잘 먹는다. 산후조리원에서 본전 뽑는 법 중 첫번 째는 아기를 가급적 신생아실에 맡겨 두고 엄마는 무조건 열심히 쉬는 것이다. 내가 바보같이 그랬던 것처럼 수유하느라 진 빼지 말고 하루 중 몇 번은 직접 수유, 나머지는 젖병으로 주기를 권한다.(나중에 직접 수유로 전환할 수 있다.) 텔레비전도 보고 여유롭게 쉬면서 유축기로 젖을 유축해서 신생아 간호사에게 맡기자, 간호사가 잘 먹여 준다. 산후조리원 비용에 이미 젖 먹여 주는 비용도 다 포함이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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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축기로 규칙적으로 젖을 짜 주면 젖량이 더 늘어나는데, 출산 초반에 젖이 부족해서 잘 나오지 않으면 분유도 좀 먹이자. 비싼 분유값도 이미 조리원 비용에 대 포함이 돼 있는 것이다. 먹여 주는 비용, 분유값이 다 포함 돼 있어서 산후조리원이 그토록 비싼 것인데, 왜 그것을 셀프(?)로 할까.

아, 그런데 아기를 신생아실에 안심하고 맡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산후조리원을 선택할 때 신생아실에 있는 선생님들이 소아과 간호사 출신들로 구생돼 있는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믿고 맡길 수 있다. 보통 병원에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들은 믿을 수 있는데, 간호사 출신이 아닌 용역이나 심지어 임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된다. 아기는 간호사에게 엄마는 무조건 쉬고 또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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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임신과 출산의 문화가 참 많이 바뀌긴 했다. 예전에도 아기를 낳는 일은 축복으로 여겼지만 임신부에 대한 인식은 요즘과 많이 달랐다. 임신과 동시에 여자들은 꾸미기를 포기하고 거무튀튀하고 못생긴 임부복을 입고서 외출도 잘 하지 않았다. 임신한 여자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불룩 나온 배를 내 놓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엔 사람들이 아기를 낳는 것도 엄청난 축복으로 생각하지만, 10개월의 임신 기간도 귀하게 생각해서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기쁘게 보낼 지도 궁리하게 된다.

요즘 임신부들은 임신 전보다 더 예쁘게 자신을 가꾸고 '출산 준비 교실' 등에 다니면서 미리 엄마가 되는 연습을 한다. 또한 시기 별로 달라지는 자신의 몸을 신비롭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배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D라인을 기념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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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의 방법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저 고전 음악을 들려 주거나 배를 쓰다듬으면서 아기에게 말을 거는 것이 태교의 전부였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별별 태교법이 다 있다. 연구 결과 뱃속에서의 10개월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아기의 두뇌와 성격이 달라진다고 하기 때문에 엄마들은 태교에 더욱 더 신경을 쓰게 됐다.

다양한 방법으로 적극적인 태교를 하는 것은 아기에게 좋을 뿐만이 아니라 태교를 통해 아기와 교감하는 것이 예비 엄마의 정신 건강에도 좋기 때문에 태교는 일찍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나는 다솔이를 임신 했을 때 주로 음악 태교를 해서 모차르트 음악과 같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처음엔 별로 감흥이 없었지만 듣다보니 역시 모차르트구나 싶을 만큼 그의 음악에 심취하게 됐다. 또 임신 중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 아기의 두뇌를 자극한다는 속설이 있어서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는 조작 태교(만들기)도 시간이 날 때마다 해 주었다. 조작 태교가 정말로 아기의 머리를 좋게 해 주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재미도 있고 산모의 정신 건강에도 좋으며 나중에 아기에게 선물할 수도 있으니까 여러면에서 긍정적인 것 같다.

나는 임신 기간 동안 다솔이가 태어난 곳인 분당 차여성병원을 놀이터처럼 드나들었다. 차여성병원에서 열 달 동안 각종 검사들을 하면서 다솔이가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 보느라 그랬기도 했지만, 이 곳에는 예비 엄마를 위한 여러 가지 교실들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기 때문에 진료가 없는 날에도 놀이터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놀러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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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여성병원에서 조작 태교로 딸랑이 만들기를 했는데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도안을 가위로 오려서 양면 테이프나 글루건으로 붙이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나는 원래부터 손재주가 없기 때문에  남들보다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결과물도 참 볼품이 없다. 며칠 전에 꺼내 보니까 제대로 붙이지 않았는지 솜뭉치가 삐죽 삐져나와 있어서 당장 내다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다솔이가 조금 더 자란 후 엄마가 직접 만든 딸랑이라며 자랑스레 선물할 생각을 하며 버리고픈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는 중이다.
 
위에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 뿐만이 아니라 박음질을 해서 만든 딸랑이와 손싸개, 그리고 CD케이스 처럼 생긴 탯줄 보관함도 만들었었는데 솜씨가 좋진 않았어도 아기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만든 것이 정말 좋은 추억이 됐다. 다솔이와 놀다가 임신 중 태교를 하면서 만들어 놓은 것들을 하나 둘 꺼내 보여주면서, 그 당시 내가 했던 생각들을 다솔이에게 이야기 해 준 적이 있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를 테지만 다솔이가 눈을 말똥거리면서 내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것을 보면 조작 태교는 정말 아기와 엄마가 함께 하는 행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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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꺼내보니 내가 직접 만든 선물들이 꽤 많다. 차여성병원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는 다솔이에게 줄 모빌도 만들었는데 내가 만들었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낚싯줄로 연결이 돼 있어서 옷걸이에 걸어서 보여 주면 발을 버둥거리면서도 모빌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니 아기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아기와 단둘이 교감할 수 있는 열 달 동안의 임신 기간, 이 긴 시간동안 엄마는 피곤하기도 힘들기도 하겠지만 엄마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기회를 가져보기를 권한다. 예쁜 딸랑이며 모빌이 만들어지는 동안 괜한 우울감도 사라질 것이고 엄마의 마음이 밝아지면 아기도 덩달아 기뻐질 것이다. 가장 좋은 태교는 엄마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니까 손 끝으로 아기에게 사랑을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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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지 잠시 궁금했으나 호기심 보다는 피곤함이 더 컸기에 그냥 잠자코 누워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니 다솔이 특유의 '에...... .' 소리가 들린다. 옹알이를 시작한 다솔이가 자기만의 언어로 말을 하면서 끙끙대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직감으로 번역하자면 '엄마, 좀 도와주세요' 정도였을까?

다솔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황급히 몸을 일으켜 아기 쪽을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창 뒤집기에 맛이 들린 다솔이가 자다 말고 일어나 벽에 '쿵' 머리까지 박으면서 몸을 뒤집은 후, 다시 돌아 눕지 못해서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낑낑대면서 나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니 씩 웃는 다솔이가 어찌나 귀엽던지 자다말고 한바탕 놀아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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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전후로 아기들은 뒤집기를 시도한다. 정확히 말하면 옆치기인데, 누워 있다가 차츰 몸을 옆으로 세우는 연습을 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다리와 팔의 힘으로 배를 바닥에 붙일 수 있게 된다. 나는 다솔이가 백일이 넘도록 뒤집을 시도를 하지 않아서 슬슬 심심해지려던 참이었는데, 몸이 배배 꼬이면서 옆으로 누워 노는 다솔이를 손으로 몇 번 엎치게 만들었더니 어느새 스스로 엎드릴 수 있게 됐다.

한 번이 어렵지 스스로 엎드리기에 성공하게 되면 이때부터 아기들은 신들린 뒤집기 실력을 자랑하게 된다. 육아 전문 인터넷 카페에서도 아기가 하루종일 낑낑대면서 뒤집기를 하는 통에 안쓰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는(아기에게서 시선을 떼기가 힘들기에) 어떤 엄마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 다솔이도 몸을 뒤집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온종일 왼쪽, 오른쪽으로 몸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엎드려서 팔로 온몸을 지탱하고 머리를 드는 것이 아직은 힘든 탓인지, 다솔이는 침을 질질 흘리고 어떨 땐 괴성을 지르고 정말 힘들 땐 토하기도 한다. 너무 힘들어 보여서 좀 쉬라고 편안하게 뉘여 놓으면 힘들어도 뒤집기 만큼 재밌는 놀이가 없다는 듯 금세 또 엎드려 버려서 요즘엔 다솔이의 근처를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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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솔이는 스스로 엎드릴 수는 있지만 다시 돌아 누울 수는 없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면 돌려줘야 되는데 돌려 놓기가 무섭게 다시 엎드려 버리는 다솔이, 이 신들린 뒤집기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뒤집기 다음엔 배밀이, 그 다음엔 혼자 서기, 그 다음엔 걷기를 하게 된다는데 우리 다솔이가 너무 빨리 자라버릴까봐 괜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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