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통화하고 만나서 같이 밥도 먹는 사이로 발전하면서 어느새 내동생은 그녀를 많이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매력적인 여학생을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 동생 뿐이었겠는가? 알고 봤더니 그녀는 이미 학교에서는 유명한 퀸카였고 여러 사람들의 그녀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 중이었단다. 더 특별한 사이로 발전하고 싶었던 마음에 동생은 그녀에게 고백을 했고 그녀는 거절도 허락도 아닌 애매한 행동과 말로써 동생을 실망시키고 말았단다.
'누나, 나 그동안 어장관리 당했었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한참을 들어봤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인 것 같은데 도통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뜻을 알고 나니 마음이 더 헛헛해지는 '어장관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소위 퀸카(킹카)들은 자신의 어항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그 속에 여러 마리의 물고기를 키우고 그 수를 늘리는 재미에 살아간단다. 새로운 물고기가 들어올 때마다 갖은 애정을 쏟으며 물고기가 자신의 어항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데, 이 때 다른 물고기가 자신의 어항을 떠나지 않도록 가끔씩 예뻐해주고 적절히 먹이도 주면서 지혜롭게 어장을 관리하는 것은 퀸카(킹카)의 중요한 소임이란다.
그 중 누군가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으면서도 가끔씩 통화하고 같이 식사하면서 자신을 계속 좋아하게끔 만드는 것을 어장관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그냥 깨끗하게 자신을 거절했으면 이 정도로 속이 상하진 않았을텐데,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꺼리면서도 자신을 떠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그 모습 때문에 동생은 너무 큰 실망을 했단다.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하자고 끝까지 아름다운 미소로 동생을 '관리'했다는 그녀, 어떻게 보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희망고문'(상대에게 잘 될 것이라는 희망적 암시를 계속 주어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과도 비슷한 '어장관리'는 남녀 사이에서는 죄악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본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어장을 가지고 있다. 혈연이든 학연이든 지연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가장 못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주변 사람들 챙기기'인데 그래서 그런지 어장관리가 나에게는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그들이 나에게 서운해 하지 않도록 적절한 애정을 쏟아부어 주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죽마고우라서 괜찮아, 우리는 어찌나 친한지 1년에 한 두번만 만나도 바로 어제본 것 처럼 마음이 잘 통해. 그러나 그렇게 친한 사이라면 하다 못해 문자나 이메일로라도 내 소식을 자주 전해야 한다. 그 분은 학교 다닐 때 내가 가장 존경했었던 선생님이신데, 내가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 것도 다 그 분 덕이야. 나중에 꼭 한 번 찾아 뵈어야지. 언제? 나는 졸업 후에그 선생님을 한 번도 찾아뵌 적이 없다. 아, 당연히 연말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지 우리 부모님 선물은 뭘로 사 드리지?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일주일째 집에 전화도 하지 않고 있다. 친밀함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게 저렇게 나와 관계를 맺고 나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나는 그동안 내 어장(?)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내 어장을 살뜰히 보살피는 자상한 어항 주인이 될 수 있을까? '보살핌'의 덕목이 아예 없는 나이기에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데에도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계획표를 잘 짜서 2008년이 다 가기 전에 많은 사람들과 훈훈한 정을 나누어야겠다. 아, 나도 내가 속해 있는 어장의 주인에게 어장관리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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