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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요즘같이 '영어를 권하는 사회'에서 살기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우리는 1년에 딱 한 번, 한글날이 되면 '한글은 정말 우수합니다. 우리말 우리글을 바로 씁시다'라고 목청 높여 외치지만, 당연하다는 듯 10월 10일이 되면 또다시 무심해진다.

어느날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한 학생이 질문이 있다며 손을 들었다. 장난이 가득한 표정과 말투로 봐서 나를 놀릴 심산이 분명했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런데도 그 학생의 질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사람들도 다들 '와인'이라고 말하는데 '포도주'라는 말은 뭐하러 배우냐는 것이었다. 포도주는 한국어로 와인은 영어로 발음하는 캐나다인 유학생의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정말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사실이다. 포도주의 영어식 표현이 와인인데, 와인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이 훨씬 더 좋은 품질의 술로 변하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와인이라고 말한다.


그 뿐인가? 나는 홈쇼핑 방송을 볼 때마다 참담함을 느낀다. 쇼호스트(이것도 영어식 표현이다.)들은 하나같이 영어를 섞어서 자신들의 제품을 설명한다. 이런 현상은 고가의 제품일 수록 더하다. 색을 설명할 땐, '블랙, 화이트, 골드, 실버, 엘로우'가 기본이고 슈즈, 수트, 이어링, 믹스 앤 메치, 소프트한 감촉, '영'해보이는 피부 표현 등등 조사와 서술어를 빼곤 죄다 영어식 표현이다. 우수운 것은 제대로 된 영어도 아닐 뿐더러 거의 모든 단어에 혀를 굴리며 R발음을 섞는다는 것이다.

다른 방송들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에서도 부유할 수록 영어를 자주 섞고, 심지어 아나운서들까지 영어식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기호품이 돼 버린 커피만 해도 그렇다. 커피는 한국어지만 커퓌(coffee)는 영어이다. 우리 발음엔 [F]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있어 보이고자(?) 까풰에 가서 커퓌를 마시니, 아! 정말 슬픈 현실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도 별 볼일 없어 보이던 사람이 알고 봤더니 영어 능통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이 내가 보는 앞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발휘하고 나면 왠지 더 멋져보일 때가 있다. 영어 하나 때문에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몇 번 그런 일을 경험하고 나서 심각하게 자아반성(??)을 했지만, 아직도 유창한 영어 실력에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갈 때가 있 것을 보면 나도 속물인가 보다. 영어 발음은 그토록 중요시 여기면서 국어 발음엔 소홀했던 탓에 성인이 돼서도 제대로 글을 못 읽는 사람들이 꽤 많다.(맞춤법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드라마를 보다가, 노래를 듣다가 귀에 거슬리는 틀린 발음과 만날 때면 방송국으로 찾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꽃이[꼬치], 밭을[바틀], 젖이[저지], 닭이[달기], 흙을[흘글], 맑다[막따], 넓다[널따]
이 정도는 기본이지 않는가?

부디 우리말 우리글이 해외에서만 인정받게 두지말자. 세종대왕의 탄성이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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