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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쉽게도, (2)드디어, (3)어쩌다보니, (4)그러고보니, 설 연휴가 끝났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내가 던진 문장의 답이 다를 것이다. 나는 방학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어서 방학 중에 낀 휴일이라고 해서 더 반가울 것도 없으며,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해야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맛있는 것 먹고 텔레비전 특집 방송을 보며 뒹굴거리다 문득 달력을 보니 설 연휴가 끝나 있었다. (4)번의 경우인 것이다.

그러나 가족애가 진한 사람들은 오랫만에 고향을 방문해서 가족 친지들을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아쉽게도 설 연휴가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많아서 한숨짓던 며느리와 안주인들은 상 차리고 설거지하기를 무한 반복한 끝에 드디어 지긋지긋한 설 연휴를 마무리 했을 것이다. 한편 백수이거나 무심하거나 아니면 쉬지를 못했거나 해서 연휴라고 해도 별다른 감흥없이 일상생활과 같이 지낸 사람들은 어쩌다보니 설 연휴를 그냥 보내 버렸을 것이다.

비록 나는 (4)번의 경우로 명절을 보냈지만 가족 친지들이 다 모이니 그 속에는 (1)~(4)의 경우가 모두 있었는데, 즐겨야 할 명절을 그야말로 '견디는'듯 보였던 며느리들을 보니 마음이 참 짠했다. 오늘은 바로 (2)번군에 관한 짧은 생각을 써 볼까 한다.


우리 큰집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어서 미리 출발하지 않고 설날 아침에 큰아버지 댁으로 세배를 드리러 갔다. 그 댁에는 우리 가족말고도 결혼한 사촌 오빠 내외와 조카들, 역시 결혼한 사촌 언니 내외와 조카들, 그리고 작은아버지의 가족들, 고모네 등이 와 있어서 명절답게 북적댔다. 아이들은 신이나서 저희들끼리 술래잡기를 하는지 히히덕 거리며 쉴새없이 뛰어다니고 정신 없는 와 중에도 어른들은 옛 이야기를 나누시느라 바쁘셨다. 명절에는 왜 그리도 자주 입이 심심해지는지 밥 먹고 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떡이며 과일 상을 또 기다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세대별로 나뉘어서 조금 놀다보면 어느새 또 식사시간이라서 여자들은 별로 쉬지도 못하고 또 부엌으로 직행한다. 그런데 역시나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시집 온 사촌 오빠의 아내인 새언니다. 조카를 둘이나 낳고 길렀으니 시집 온 지 꽤 됐지만 그래도 시댁은 어려운 법. 게다가 친척들까지 잔뜩 와 있으니 어디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있었을까? 쉬면서 우리와 조금 놀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편하게 느껴질 리 만무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슬쩍 친정에는 언제 가느냐고 물어봤는데, 그만 큰어머니께서 듣고야 말았다.


가뜩이나 짧은 연휴인데 새언니의 친정은 경기도이고 큰어머니댁인 시댁은 경상북도이다. 내 생각으로는 아무리 늦어도 설날 점심 먹고 나서는 슬슬 올라갔어야 친정에서도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저녁 먹을 때가 돼 버렸다. 그런데도 큰어머니는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느냐고 그 말을 한 나를 나무라셨다. 물론 새언니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사촌 오빠를 힐끔 쳐다보니 이쪽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텔레비전에 폭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이럴 때 남편이 짜잔하고 나타나서 한마디 해 주면 딱 좋으련만 어찌나 무신경한 지 모르겠다.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새언니를 보니 내가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에는 새언니도 있었지만 시집간 사촌 언니도 분명히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어머니는 당신 딸은 어느새 친정에 와서 편안한 명절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시는 것일까? 자기의 딸은 일찍 친정에 오는 것이 당연하고 며느리는 조금이라도 늦게 보내고 싶어하는 것이 시어머니의 심보란 말인가. 한 번 눈에 띄니 내가 그 쪽으로 치우치게 돼 버려서인지는 몰라도, 계속 큰어머니의 이중적인 생각들이 내 신경망에 걸려들었다. 누워서 침뱉기를 하기 싫어서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지는 않겠으나 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차이는 어머어마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영어로 시어머니는 mother-in-law인데, 이것을 monster(괴물)-in-law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니, 이런 일이 비단 우리나라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날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바삐 움직였던 새언니의 뒷모습이 남일 같지가 않아서 정말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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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이 친구를 데리고 나의 자취방에 놀러왔을 때의 이야기이다.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집안 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게에 가서 과일이며 과자며 반찬 거리들을 잔뜩 사서 돌아왔다. 그리고 혼자서는 잘 해 먹지 않던 갖가지 밑반찬과 음식들을 가득 만들어 두었다. 마치 평소에도 이렇게 살아왔던 것 처럼 말이다. 동생 혼자만 왔어도 그랬을 판에 친구까지 온다니 타지에서도 어엿한 모습으로 잘(?) 살고 있는 이상적인 누나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동생과 친구가 도착했고 그들이 집에 있는 동안, 크림스파게티에서부터 갈비찜까지 없는 실력을 발휘해가며 각종 음식들을 만들어주며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능력있는 누나의 모습을 연출(?)했다. 나는 동생들이 늦게 들어와서 내가 미리 밥을 먹고 난 다음에 따로 밥상을 차려줄 때도 그들의 주위를 떠나지 않고 이것 저것 물으면서 자상한 누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러다 문득 자기 가까이에 있는 반찬만 먹는 동생의 친구를 봤다. 아뿔싸.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친한 척 했던 이런 내 행동이 동생의 친구에게는 얼마나 불편하게 느껴졌을까.


얼른 그들에게서 벗어나 방으로 들어오니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였던 것 같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시면서 동생과 나를 외갓집에 맡겨두셨는데, 나는 다른 집에서 생활했던 3박 4일이 엄청나게 길고 힘들게 느껴졌었다. 부모님이 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어린 동생과 괜한 설움을 이기지 못해 밤에는 몰래 울기도 했었다. 외갓댁 어른들이 잘 대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신세를 지고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었다.

한창 많이 클 때라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식사시간이었다. 그 때 뒤늦은 사춘기를 앓았었는지 어쨌는지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외갓집 식구들인데 왜 그런 압박을 받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불편함 때문에 내 주위에 놓여진 반찬만 먹긴 했지만 분명히 집에서와 같은 양의 밥을 먹었고 반찬도 많았는데도 스스로 눈칫밥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먹고 돌아서면 허기가 졌다. 속으로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먹고 싶은 음식의 목록을 생각해 놓을 정도였다. 한 날은 동생이랑 몰래 근처 가게에 가서 숨겨놓았던 비상금으로 과자를 사 먹었는데, 어찌나 달고 맛있었는지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썼던 것 같다.

옛 기억을 떠올리니 동생의 친구에게 무척 미안해졌다. 내 진심과는 다르게 그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서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동생의 친구도 우리 집에 있는 내내 왠지 모를 배고픔과 허전함 때문에 힘들었을까? 그나마 그들은 종일 집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아니니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왜 눈칫밥은 같은 양을 먹어도 허기가 지는 것일까. 분명히 배는 부른데 먹어도 먹어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눈칫밥의 특징인 것 같다. 어쩌면 눈치 없고 낯두꺼운 사람이 세상 살기는 편하겠다는 눈칫밥 보다 더 영양가 없는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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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트 안이나 거리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저렴한 화장품 가게들을 참 좋아한다. 나는 외출 전에 완벽한(?) 화장을 끝낸 후에는 수정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화장품을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입술이 너무 밋밋해지거나 건조해서 얼굴이 당길 때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서 촉촉하게 립글로스를 바르거나 얼굴에 스프레이형 화장수를 칙칙 뿌리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쓰던 화장품이라도 화장솜이나 면봉으로 입구를 깨끗하게 닦아낸 후에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특별히 거리낄 건 없다.

이번에는 설날 맞이 아이섀도우를 사러 미샤에 들렀는데 저렴한 가격에 발림성 좋은 제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마음에 드는 것이 꽤 있어서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도 함께 사서 계산대에 서니 이색적인 행사 중이었다. 네모난 종이 상자의 위가 뚫어져 있길래, 처음에는 모금함인 줄 알았는데 만원이상 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 상자라고 했다. 상자 안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휘휘 저어 한 주먹 꺼내면 딸려나온 모든 견본을 주는 것이었다. 이럴 땐 손이 작은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시리 떨려서 심호흡을 하고 상자 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견본들을 가득 집어서 꺼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구멍이 작아서 손이 잘 빠지지 않는다. 역시 만만하지 않은 미샤. 몇 개를 떨어뜨리고 나서야 겨우 손이 빠졌는데, 그래도 마음에 드는 수확량이었다. 클렌징 젤, 클렌징 폼(각각 20ml짜리 튜브형), 스킨로션 작은 것 4개, 에센스2개.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흐뭇해 하면서 집으로 오는데, 이번 행사가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모두 기분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샤측에서도 어차피 고객들에게 사은품은 줘야 되는 것인데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준다는 설명이 얼마나 솔깃한가 말이다. 고객들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재량껏 가져올 수 있으니 왠지모를 뿌듯함이 들기 때문에 만족스럽지만, 사실은 입구가 작아서 생각대로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득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이 떠올랐다. 아기 원숭이가 사탕 단지 속에서 손을 꺼내지 못해서 울고 있을 때, 엄마 원숭이가 말한다. '얘야, 손에 쥔 사탕을 조금만 놓아보렴'. 울음을 그친 원숭이가 자기가 움켜 쥔 사탕의 절반을 떨어뜨리자 거짓말 처럼 손이 쑥 빠졌다는 이야기 말이다. 공짜로 얻는 사은품이야 많으면 많을 수록 좋겠지만 그것을 더 가져가겠다고 낑낑대던 내 모습이 아기 원숭이와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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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잡지를 읽다 보면 너무 많은 성형외과 광고에 놀라게 된다. 나도 모르게 찬찬히 하나씩 읽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형을 하고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지는데, 요즘에는 얼굴은 기본(?)이라서 그런지 몸 성형쪽으로 유행이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내가 읽었던 주부 대상 잡지는 두꺼운 두께에 비례하여 광고도 참 많았는데 특히나 가슴 확대 성형에 관한 것이 내 눈길을 사로 잡았다. 이제는 크기보다 클리비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던 한 성형 외과의 광고에서는 (그런 영어 단어를 알 턱이 없는 나는 나중에야 그 말이 가슴골을 뜻한다는 거을 알게 됐다.) 감마기호와 비슷한   모양을 예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특히 강조했다.

나는 가슴이 드러나는 옷은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나 입는 것인 줄 알았었는데, 의외로 일반인 여성들도 가슴골을 훤히 드러내는 옷을 즐겨입는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같은 겨울에도 텔레비전만 틀면 가요 프로그램과 쇼오락 프로그램 등에서 가슴골 정도(?)야 쉽게 볼 수 있으니,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이라면 가슴선을 깊게 파는게 특이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연예인들의 가슴은 다들 어찌 그리 풍만하고 예쁜 것일까? 수술해서 그렇지, 라는 대답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거울을 보고 이리저리 시도(??)해 보니(-.-;;), 퍼진 감마 모양으로 예쁘게 가슴골을 드러내는 비법은 가슴을 모으는 방법에 있었다. 모으기 기술에 따라 B컵도 D컵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가슴의 옆선을 모아주는 것이 중요한데, 브래지어는 쉘브라가 좋겠고 둥글게 캡이 들아간 것이 가슴을 봉긋하게 모아줘서 풍만하게 보이게 할 수 있다. 가슴의 3/4만 감싸주는 것이 더 예뻐보이도록 도와줄 것 같다. 그러면 가슴이 작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 이제 남자들에게는 절대로 말하면 안 될 비밀 얘기를 좀 해 볼까한다.

1. 살색 테이프 붙이기.
B컵이라면 상체를 앞으로 숙여서 갈비뼈를 중심으로 살을 가슴쪽으로 쓸어모아준다. 좀 우습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등살과 겨드랑이 살을 가슴쪽으로 마구마구 쓸어보자. 분명히 가슴의 크기가 더 커졌을 것이다. 살을 충분히 모아줬으면 한쪽 손으로 모아 쥔 상태에서 '살색 테이프'를 밑가슴 1/3 지점에 가로로 붙인다. 양쪽 가슴을 테이프로 붙이는 것이다.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으면서 가슴을 훨씬 더 풍만하게 만들 수 있다. A컵이라면 가슴 옆과 밑에 솜을 두툼하게 댄 다음 같은 방법으로 테이프를 붙이면 한결 더 봉긋한 가슴을 만들 수 있다.

2. 가슴선에 음영 넣기.
헐리우드의 한 여배우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슴골을 손가락으로 그어주는 습관으로 예쁜 모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매번할 자신이 없으면 그 부분에 화장을 해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약간의 펄감이 있는 베이지색 섀도우를 화장용 붓에 충분히 뭍힌 다음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감마 모양으로 쓸어주면 가슴에 음영을 만들 수 있다. 은은하게 반짝이면서 매력적인 가슴선이 생길 것이다. 


3. 속옷의 도움 받기.
이미 많은 분들이 쓰고 있는 방법일 것이다. 브래지어 안쪽에 주머니가 있는 브라를 구입해서 취향껏 패드를 선택해 넣는다. 예전보다 기술이 좋아져서 원하는 크기만큼 공기를 넣을 수 있는 패드도 있고 부드러운 실리콘 재질로 자연스러우면서도 감쪽같은 패드도 있다. 또한 패드에 미세한 알갱이들을 채워 넣어서 가슴이 움직일 때마다 자연스러운 모양을 만들어주는 것도 있다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고를 수 있겠다. 또한 브라 끈이 없어서 여름철에 특히 유행하는 누브라는 피부에 붙이는 속옷이다. 타원형의 패드를 후크로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입는 것인데, 사용하는 사람의 방식에 따라 풍만함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좋다. 누브라 역시 작은 가슴도 골을 만들 수 있다.

솔직히 지나친 노출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내 여자는 청순하기를 바라는 남자들의 이중적인 잣대를 생각하더라도 그렇지만,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너무 드러낸 것은 결코 예뻐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슴골까지 보여 준 이 시점에서 다음에는 또 어디를 또 보여주게 될런지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유행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이왕 유행을 즐기기로 했으면 조금 더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써 보았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곳을 자신만만하게 드러내고 싶어하는 여성들이라면 살짝살짝 매력을 발산하여 타인의 시선을 충분히 즐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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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떤 모임에든 꼭 지각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솔직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가끔씩은 늦을 때가 있어서 그리 떳떳하지는 못한 처지지만, 이 친구는 해도해도 너무하다. 10분은 기본이고 30분 지각은 애교인 이 친구가 헐레벌떡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나와 다른 친구들은 도끼눈을 뜨고 한마디씩 하는데, 그녀는 그럴 때면 다시는 늦지 않을 것 처럼 각오를 다지고 필살기인 눈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곤 한다.

배시시 웃으면서 꽈배기 처럼 몸을 꼬는 폼새가 얄밉긴 해도 우리는 못 이기는 척 용서를 해 주고 말지만 사실은 모두들 그녀의 정시 도착을 포기한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그녀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모임 장소를 정했지만 40분이 넘도록 콧배기도 보이지 않는 그 친구 때문에 다들 흥분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다음부터는 약속 시간을 삼십 분 일찍 얘기해주자느니, 계속 이런 식이면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떠들다가 제 버릇 개 못 준다던데 이제 그만 포기하자는 심드렁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다. 그랬다가도 언제나처럼 세상에서 가장 미안한 얼굴을 하고 몸일 배배 꼬아대며 애교를 부리는 지각대장이 도착하고나면 별일 아니었다는 듯 눈 한 번 흘길 뿐이었다.


며칠 전 영화 시사회 응모에 당첨이 돼서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영화 시사회는 보통 두 명이 함께 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기 때문에 나는 지각 대장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마침 그 날은 친구의 집과 별로 멀지 않는 곳에서 볼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일을 끝낸 후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좀 쉬었다가 친구와 함께 극장으로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일이 늦게 끝나서 그녀의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영화 시작은 오후 8시, 친구 집에서 극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30분 쯤 걸린다. 7시쯤 출발하면 여유있게 영화표를 받고 음료수도 좀 마시면서 느긋하게 영화를 기다릴 수 있다. 나는 그 날 종일 집에 있었던 친구가 미리 외출 준비를 다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지각이 반복되는 대는 이유가 있었다.

완벽한 야생의 모습(?)으로 나를 반기는 그 친구를 보며 나는 묘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그녀와 학창시절 때부터 친구였지만 그녀의 외출 준비 과정을 지켜 볼 기회는 없었기에 좀 미안하지만 오늘은 '지각의 이유'를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친구가 나를 의식하지 않고 평소대로 외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아무런 재촉도 하지 않고 그녀가 어떻게 하는지를 엿보기로 했다.

현재 시각 5시 40분, 나 같으면 먼저 씻고 나서 저녁을 먹을텐데 그 친구는 아직 여유가 많다며 김치볶음밥을 해 먹자고 한다.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며 김치와 참치를 프라이팬에 볶는 친구,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니 오랫만에 온 손님을 부려먹을 수 없다며 기어이 손수 차려 주겠단다. 김치 볶음밥을 먹다 남은 콩나물국과 함께 맛있게 먹고 치우니 6시 20분이 조금 넘었다. 이제는 슬슬 준비를 하려나 했는데 배가 부르다며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않는다. 준비해야하지 않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다 말았다. 6시 30분이 다 돼서야 욕실로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쏴 하는 물소리가 끊이질 않더니 친구는 20분이나 지난 후에 짠 모습을 드러낸다. 발그레한 볼을 하고서 날씨가 추울 땐 따뜻한 물만큼 행복하게 만드는 게 없다며 착하게 웃는 그녀를 어떻게 미워할까. 현재 시각 6시 50분, 스킨과 로션을 바른 친구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케이블의 재방송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하하하 웃는다. 그래도 서두르면 예상 출발 시간인 7시에 맞출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친구는 이미 본 방송임이 분명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힐끔힐끔 곁눈질로 방송의 흐름을 살피며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늦은 시각에 하는 외출임에도 어찌나 정성껏 바르던지 대충 비비크림만 바를 것이라는 내 예상을 깨고 곱게도 치장하는 그녀, 그녀가 점점 더 고와질 수록 나는 점점 더 부아가 치밀었다. 아예 친구쪽을 보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과월호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깔깔대는 친구. 놀라서 쳐다보니 볼터치를 하다말고 다시 예능 프로그램에 빠졌다. 이미 시간은 7시를 훌쩍 넘었다. 시사회라서 영화표를 받으려면 늦으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아무말 하지 않으리라던 결심을 깨고 친구에게 최대한 심상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여기서 ㅅㅇ극장까지 얼마나 걸리지?

아무튼 아주 가깝다는 친구의 짧은 대답, 눈은 아직도 텔레비전에 고정되어 있다. 얄, 미, 운, 뒤통수. 드디어 화장을 마치고 입고 갈 옷을 고르는 그녀. 선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너무 고민하는 거 아니니. 미리 생각을 좀 해 두지 많지도 않은 옷을 들었다놨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미 시계는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고 나는 여유고 뭐고 8시까지 가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불안해서 손에 땀이 다 날 지경이었는데도 친구는 천하태평이다. 맘 급한 내가 현관에 서서 기다리니 조금 늦으면 될 걸 뭐가 그리 조급하냐며 오히려 나를 달래돈 친구는, 신발을 신다말고 아! 하며 휴대전화를 찾으러 다시 들어간다. 뒤이어 아! 아!를 두 번 연발하더니 교통카드와 열쇠를 못 찾겠단다. 현재 시각 7시 40분.

새삼스레 다시 둘러 본 친구의 집은 자세히 보니 정리 정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듯 했다. 친구는 자신의 물건이지만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듯 했고 그래서 나도 같이 전날 입은 옷의 주머니와 침대 뒷편까지 샅샅이 다 찾아봐야만 했다. 결국 열쇠가 발견된 건 냉장고 위였고 교통카드는 책상 서랍에서 나왔다. 우리 극장으로 가다가 다리를 삐어서 늦었다고 할까? 아님 시간을 잘못 알았다고 할까? 출발과 동시에 변명거리부터 생각하는 그녀. 지각이 몸에 배 버린 그녀 때문에 나는 정말 곤란했다. 아, 나는 정말이지 그 다음부터의 일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혹시 내 친구와 같이 지각을 반복하시는 되는 분이 있으시다면, 2009년에는 다음의 습관들을 꼭 버리셔야만 한다.

1. 준비를 하면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틀어놓는다.
2. 물건을 제 자리에 두지 않는다.
3.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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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무언가를 갈구하는 뱃속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엄마와 함께 과자를 사러 가기로 했다. 훌쩍 커 버린 딸과 부쩍 작아져 버린 엄마가 함께 과자를 사러 간 풍경을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참 색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엄마와 오직 과자를 사러 마트에 간 것은 어린 시절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과자 하나 추억하나 과자 둘 추억 둘, 엄마와 나란히 서서 과자를 구경하면서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즐겨 드셨다는 과자(*동산)와 예전에는 거의 매일 먹었던 (ㅅㅇ깡) 과자를 발견하니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간 곳은 동네 이마트였는데 대형마트다 보니 과자의 종류와 수량이 어찌나 많은지 한참을 골랐다. 짭잘한 맛이 일품인 ㅇㅍ링과 다른 것과는 달리 특별한 촉촉함을 자랑하는 촉촉한 ㅊㅋ칩, 먹고나면 입가가 과자 부스러기로 가득해져 버리는 딸기맛 ㅇㅎ스, 그리고 새로나온 과자인 듯 보이는 행사용 묶음 박스형 과자까지. 욕심을 최대한으로 누르고 최선의 것만을 골랐는데도 한아름이다. 고를 땐 정신이 없었는데 이걸 안고 집까지 가려니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나 같은 짠순이는 아무리 20원이라도 집에 수북한 비닐봉투를 두고 새로 돈 주고 살 리가 없다. 이 많은 과자들을 어떻게 집까지 안전하게 가져갈 지 생각하고 있는 찰나에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더니! 나는 의기양양해져서 계산대로 걸어갔다.

지난번에 어떤 블로그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이었는데 오늘 드디어 써 먹어보게 됐다.  내 옆에서 긴가민가 하고 계시던 엄마도 모든 상황이 끝난 후, 그제서야 요즘 애들(?)은 정말 똑소리난다며 만족하셨다. 내가 본 블로그 글은 이마트에서 무료 종이 봉투를 구비하고 있는데, 그것이 손님들의 편의를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산대가 아닌 고객만족센터를 통해서 배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은 내용이었다.

그 글에서는 마트 측에서 손님들에게 무료 종이 봉투의 존재를 알리지도 않았고 일부러 사용하는 빈도수를 낮추려는 듯 계산대와 먼 고객만족센터에 배치하고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 봉투가 고객만족센터에 있겠거니 했는데, 역시 인터넷의 힘은 컸다. 계산이 끝나고 종이 봉투가 있냐는 나의 말에 계산원은 계산대 아래에서 당연한 듯 종이 봉투를 꺼내 주었다. 아마도 그 블로거의 문제제기로 인해 이마트 측의 운영 방법이 달라진 것 같았다.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튼튼한 종이 가방을 얻어서 수북하게 산 과자를 넣어서 나오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나는 엄마께 내가 알고 있는 이마트 종이 가방에 대해 말씀드리고는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되어서 어떻게 보면 무섭기도 하다고 했더니, 엄마는 그것을 잘 다룰 줄 아는 네티즌이 무섭다고 하신다. 이번 일은 잘못된 것을 콕콕 집어서 널리널리 알린 결과 편리한 방향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부디 이렇게 좋은 도구를 가지고는 긍정적인 결과만을 얻었으면 좋겠다.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다른 대형마트에서도 종이 봉투가 무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비닐 봉투는 50원(작은 것 20원) 종이 봉투는 0원이니 잘 활용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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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내 친구 S는 기어이 다시 말 해보라며 추궁하기 시작한다. 아니, 내가 왜 아줌마야? 누나지. 자, 따라해봐 누나...... . 마트에서 믹스커피를 고르다가 내가 사은품에 눈이 멀어 이것 저것 들었다 놨다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왜 저런 상황이 연출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은품으로 밀폐 용기를 주는 커피를 살 것인지, 머그컵을 주는 커피를 살 것인지 도무지 결정이 되지 않아서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보려고 고개를 돌렸더니 생뚱맞은 누나 타령이다. 제 눈에도 삼십 대 누나는 너무했는지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서 있는 아이는 이리 저리 눈을 굴리며 엄마를 찾는 폼이 여차하면 울 태세다. S도 한껏 뿔이 나 있는 상태라 내가 말리지 않으면 더 민망한 상황으로 번질 것 같아서 나는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친구는 동갑인 나에게 자신이 몇 살로 보이냐며 씩씩거린다. 5년 이상을 봐 온 사이이기에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는 여전히 스물 여섯으로 보인다. 그러나 타인의 눈, 특히나 거짓말을 못하는 아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겠는가. 사실 나는 아줌마라는 호칭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대학교 3학년이던 스물 두 살 때 이미 꼬마아이들에게서 아줌마 소리를 숱하게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 당시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가게는 만화책이며 복권에 자판기까지 잡다한 것들도 갖추고 있었다. 5시간씩 삼교대로 돌아갔는데 나는 오후 3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 했다.


시간대 별로 손님 층이 달랐는데, 내 고객(?)은 주로 초등학생들이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놀러 나온 아이들은 만화책이나 만화 영화를 빌리고자 가게로 몰려왔고 그들에게 나는 당연히 아줌마로 불렸다. 열 살 짜리 아이에게 누나는 열 둘이나 열 넷 정도이지 스물 두 살 늙은이(?)가 아닌 것이었다. 개중에는 '누나, 언니'하며 나를 따르는 영특(?)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냥 아줌마였고 나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에게 아줌마는 별로 기분 나쁜 호칭이 아니지만 친구는 몹시 화가 났나 보다.

하긴 호칭이라는 것이 사람의 기분을 좌우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70대 쯤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그 분들의 나이정도 되면 나 정도는 어려보이므로) 길을 물어보실 요랑으로 나를 불러세울 때, 다른 호칭이 아닌 학생으로 불러주셨을 때 반색하며 급친절 상태로 돌입했던 경험이 있다. 행여나 시력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 학생이라고 불러주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호칭 중 가장 듣기 좋은 것이 학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영낙없이 아줌마로 불릴 수밖에 없는 나잇대로 접어들었고 아줌마는 괜찮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라는 호칭은 손자, 손녀에게서가 아니면 정말 듣고 싶지가 않다. 더이상 나아갈 단계가 없어서 그런가, 호칭을 듣는 순간 더 늙어질 것 같아서 그런가, 아직 할머니라는 말은 들어보지 않아서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호칭에 심술이 난다. 요즘에는 60대 어르신들도 아주 젊어 보이셔서 그냥 아줌마, 아저씨로 부르면 될 것 같은데 굳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들으면 괜한 심통이 난다. 친구가 아줌마라는 단어에 나타내는 반응을 나는 할머니에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자취방 주인집 아줌마와 마주쳤을 때, 아줌마라고 불렀더니 기뻐하시는 얼굴을 많이 보았다. 나를 만나면 굉장히 반가워 해 주시는 까닭도 나에게 특별히 김장김치까지 주신 까닭도 이유는 호칭에 있지 않을까?

학생-아가씨-아줌마-할머니 중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학생이요, 가장 듣기 싫은 말은 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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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남녀, 설렜던 데이트를 아쉽게 끝내고 남자가 애인을 택시에 태워서 집으로 보낸다. 좀 위험한 듯 싶어서 생각 같아서는 그녀와 동승하여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러지는 못한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맘으로 그녀를 태우고 떠나는 택시의 꽁무니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수첩을 꺼내 택시의 번호판을 적어두는 세심한 남자. 택시의 번호판을 적어두는 것은 드라마에서 낭만적인 상황을 연출할 때 흔히 써 먹는 방법이고 실제로 여자친구의 안전한 귀가를 걱정하는 자상한 남자친구들이 많이 실천하고 있는 것 중 하나이다.

그런데 나는 내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택시 운전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살짝 상한다. 그들은 무엇을 그리도 걱정하는 것인가. 사십대 초반인 나의 막내 외삼촌은 택시 기사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택시 근무복을 입고 운전하는 외삼촌이 아주 멋있어 보였다. 그러다 자라면서 택시 기사에 대한 주윗(특히 여학생들의)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들을 알게 됐고, 내가 좋아하는 외삼촌이 오해받는 것이 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중과 여고에 재학중일 때는 워낙에 그런 쪽의 얘기를 많이 들어서 우리 외삼촌도 사실은 그럴지도 모른다며 우울해하기도 했었다.


몇 년 전이었을 것이다. 집에 놀러온 외삼촌과 같이 드라마를 보다가 남자 주인공이 택시 기사를 마치 잠재된 치한이라도 되는 듯 대하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여자 친구를 뒷자석에 앉히고 집으로 보내면서 안절부절 못하더니 척 하고 꺼낸 수첩에 다가 당연한 순서로 택시 번호판을 적어 둔다. 그리고 나서는 문자 메시지로 번호판을 적어 두었으니 안심하라는 글과 함께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자기에게 연락하라는 내용을 보냈다. 택시 기사인 외삼촌과 함께 보기엔 내용이 조금 민망해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방금 그 장면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외삼촌은 잠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금새 그럴수도 있지 한다.

요즘처럼 믿을 것 없는 세상에서 연약한 여자가 낯선 남자와 단 둘이 차를 타고 간다는 것이, 당연히 무서울 수 있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택시 기사들도 낯선 동승자가 두려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젊은 택시 운전 기사들 중에는 숱한 성추행과 성희롱을 생계를 위해 이를 악물고 견뎌내야 하는 경우가 많단다. 손님을 가려받을 수 없으니 취객부터 건달까지 얼마나 다양한 사람과 좁은 차 안에서 같이 있어야겠는가.


택시를 타는 여자들은 혼자 탈 경우와 둘 이상이 탈 경우가 확연히 다르단다. 혼자 타는 경우에는 택시 기사가 자신에게 해를 입힐 까봐 덜덜 떠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기사들은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한단다. 그런데 둘 이상이 탈 경우에는 무서워 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 특히나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시시콜콜한 질문에서부터 노골적인 농담과 심한 경우에는 더듬기까지 한다고 했다. 어떤 땐 여러 명이 정신을 쏙 빼 놓는 바람에 목적지까지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도 몰랐던 경우도 있었고, 또 다른 경우에는 목적지가 어느 식당이었는데 같이 식사하고 가라며 반강제로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진 경우도 있단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외삼촌이 나에게 자신이 겪은 모든 이야기를 다 해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콜택시를 하고 있어서 휴대폰 번호까지 노출돼 있기에 별별 요상한 전화에서부터 장난 문자까지 외삼촌을 힘들게 만든다고 한다. 나도 여자이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성추행&성희롱과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성추행&성희롱은 같은 무게로 비난과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 모든 여성들이 택시 기사를 괴롭히지 않듯, 모든 택시 기사가 괴한은 아니다. 택시 기사에 대한 선입견, 그들에게는 말 못 할 상처가 되니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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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날 케이블 방송을 보고 또 보다가 동이 틀 무렵에야 잠자리에 들어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이럴 때면 꼭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생각난다. 게으른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명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획보다 훨씬 더 일찍 침대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나의 철천지 원수 '햇볕'이 창문으로 나를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 저리 몸을 비틀고 커튼을 끌어다 가려봐도 얼굴 전체가 따끔거릴 정도로 세기가 강했다. 한겨울에도 해가 이렇게 뜨거울 수 있는지 전에는 몰랐었다.

비의 근육과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춤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태양을 피하는 법'의 노래 가사가 완벽하게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나도 아무리 태양을 피해서 단잠을 계속 자려고 해도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 쓰지 않는 한 절대 가려지지 않을 것 같았다. 햇볕은 비타민D를 합성시켜주고 우리의 기분도 맑아지게 하지만 우리를 점점 더 주름지게 만든다. 그러나 자외선이 피부 노화의 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내가 햇빛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자는 잠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방 안에 있으면서 뭘 그리 걱정하느냐고 말씀하시는 분은 고 녀석의 무시무시함을 아직 모르시는 것이다.


우리 눈으로 보이는 곳에는 모두 가시광선이 존재하는데 이 가시광선과 함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자외선(UV)이다.

자외선은 크게 세 가지 광선으로 나뉘는데
(1) UV-A : 피부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여 탱탱한 피부의 필수 조건인 콜라겐을 파괴하고 수분까지 빼앗아 가서 자글자글한 주름을 만들어 낸다. 또한 피부를 빨갛게 달아 오르게 만드는 것도 요 녀석이다. (UV-A차단 지수는 PA+, PA++, PA+++ 등으로 나타낸다.)

(2)UV-B : 피부를 태워 심하면 화상까지 입게 만들고 각질층의 수분을 앗아가서 피부 표면을 거칠게 만든다. (UV-B차단 지수는 SPF로 나타낸다)

(3)UV-C : 오존층이 파괴 됨으로써 복병으로 등장한 가장 무서운 광선이다. 이 광선은 세균을 죽이고 생물의 성장에 영향을 주며 우리가 직접 쬘 경우 피부암에 까지 걸릴 위험이 있다.


자외선이란 녀석은 유리는 물론 물도 투과하며 구름 낀 흐린 날에도 고스란히 우리 피부에 전달된다. 스키장에 다녀 온 후 피부가 달아오르는 경험을 해 본 분들도 많을 것이다. 이것은 겨울에도 자외선이 아주 활발하게 우리를 괴롭히고 있으며 눈에 반사 돼 더 무시무시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뜻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양이 아주 강렬한 여름 한 철에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있으나 탱탱한 피부를 위해서는 여름은 당연하고 사계절 내내 선크림을 애용해야만 한다.

나는 그나마 집에 있을 때는 햇볕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에서 지내는 것으로 자외선 차단제를 대신하지만, 예민한 분들은 집에서 조차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에는 제품들의 형태도 아주 다양하게 나와서, 피부에 다가 손쉽게 뿌리는 스프레이 형식에서부터 끈적이지 않고 가볍게 바를 수 있는 로션 형식, 그리고 립밤처럼 고체 형식으로 된 것까지 있다. 그러니 피부의 유형이나 자외선 차단이 필요한 상황등을 고려하여 취향 껏 고르면 되겠다. 나는 메이크업 베이스를 겸하고 있는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는데, 화장의 단계는 줄여주면서 태양까지 피할 수 있어서 참 좋다.


가끔 보면 자외선 차단 지수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으신 것 같다. 나는 그냥 SPF35정도를 쓰는데 여기서 숫자 1이 15분 동안 자외선을 차단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산수 계산을 해 보면 나는 대충 8시간 정도 안심할 수 있다는 소리다. 어떤 분들은 SPF50이 넘는 제품을 쓰시기도 하던데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차단 지수가 너무 높으면 피부에도 무리가 갈 것 같아서 30~35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적어도 외출하기 30분 전에는 발라주는게 좋으니 빼먹지 말고 꼭 챙겨바르자.

아, 그리고 요즘에는 자외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서인지 낮에 바르는 화장품 중에는 자외선 차단 성분을 조금씩 넣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로션이나 파운데이션 등에도 미세하게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가 있는데, 이 들을 같이 바른다고 해서 차단 지수가 더해지는 것은 아니니 유의하기 바란다.

단언하건대 탱탱녀들의 화장대에는 사계절 내내 자외선 차단제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귀찮다는 핑계로 제품은 바르지 않으면서, 동안  피부는 유지하고 싶다는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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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에 해외 여행을 준비 중인 나는, 정보를 얻으려고 여기 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1년 6개월 전에 이용했던  한 여행사 홈페이지에다가 문의 글을 남겼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 처럼  내가 가고 싶은 나라와 떠날 날짜를 적고 가격을 물어보는 상투적이면서도 짧은 글이었다. 꼭 그 여행사를 통해서만 가려던 것은 아니라서 다른 여행사에도 비슷한 글을 몇 개 더 남겨 두었다. 가격과 사은품 등을 저울질 해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리라는 심산이었다.

이튿날 오전에 메일을 확인하니, 1년 6개월 전에 이용했던 그 여행사에서 벌써 답글이 와 있었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열었는데 그 내용이 예상밖이었다. 나는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여행사 측의 답장도 건조하면서도 상투적인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랫만이에요'로 시작하는 글은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 연락을 못했다가 만난 친구의 인사처럼 반갑고 다정했다. 글도 어찌나 율동감있게 썼는지 글만 읽었는데도 상대의 인상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딱 한 번 이용한 손님을 기억하고 그토록 다감한 어투로 메일을 보낼 수 있다니, 업체가 이메일을 통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당연히 이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을 가려고 마음 먹고 답장을 쓰면서 이번에는 바뀐 전화번호까지 적어 두었다. 다음번에는 전화로 연락을 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속전속결로 오후에 통통 튀는 목소리의 여자분이 전화를 주셨다. 이게 텔레마케터들의 교육에서 그렇게 강조한다던 '솔'음 높이의 목소리인가?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 너무 궁금해질 정도로 발랄한 목소리였다.

나는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표정의 목소리로 전화를 걸까? 문득 심드렁하기 짝이 없을 것이 분명한 내 낮은 목소리가 미안해졌다. '솔'음으로 교육을 받았을 텔레마케터 언니(?)들의 전화를 그리도 많이 받아봤지만 막무가내라는 생각과 짜증만 들었었는데, 그 여행사 직원분과는 한 시간이라도 통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다며 3% 할인까지 해 준단다. 흐뭇한 기분으로 예약을 마치니 다음달에 여행 갈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며칠 후 여행 계약서를 메일로 보냈다며 그 여행사 직원분이 다시 전화를 하셨다. 여전히 발랄하면서도 친근한 목소리로 말이다. 들을 수록 기분 좋아지는 그 목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여행비를 오늘 당장 입금시켜 줄게요'라는 말이 나와 버렸다. 쾌활하게 웃는 수화기 너머의 그 여성분은 나에게 발코니를 좋아하느냐고 운을 떼더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요즘 처럼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는 조금이라도 싸게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자신이 더 알아보니 발코니가 없는 방(내가 가려는 곳은 리조트이다.)은 1인당 가격이 7만원 더 싸다며, 괜찮다면 그 방으로 바꾸어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리조트에서 여기 저기 휘젓고 다니기를 좋아해서 나에게는 사실 방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해 주신 3%할인에 7만원까지 더 절약하니 여행이 훨씬 더 가뿐해졌다. 어쩌면 여행사 측에서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런 수고 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것들이 고객을 감동시키고 고객감동은 곧 불황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업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나는 벌써 이 내용으로 글까지 쓰고 있으니 말이다.) 서비스 사업은 친절이 최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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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효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타인의 기대나 관심 등이 본인에게 영향을 미쳐 능률이 오르거나 성과를 발휘하게 되는 효과를 뜻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로젠탈 효과, 자성적 예언, 자기충족적 예언, 교사 기대 효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천국이다. 늘 자신을 웃는 얼굴로 바라봐 주면서 작은 일에도 관심을 보여주는 선생님이 있고, 자기를 영웅으로 추대하며 따라하고자 애쓰는 또래 아이들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반면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학교는 생지옥이기 쉽다. 수업에 집중해도 영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 때문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고, 그런 아이에게 선생님들이 특별한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그나마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지만, 혹독한 시험 기간과 냉정한 평가 결과들 사이에서 느는 것은 함숨이요, 드는 것은 자괴감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학생이었다. 늘 앞에 앉아서 열심히 진도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수많은 공식들과 역사적인 사실들은 좀 처럼 머릿속에서 머물러 주지 않았다. 비밀을 터 놓으며 단짝이 되는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자존심때문에 내 성적을 공개할 수 없었고 수능시험이 다가올 수록 점점 더 외로워졌던 것 같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무렵,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추운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약속이 있었다. 조금 더 많은 학생을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곳에 진학시키려고 담임 선생님은 많이 애를 쓰셨을 것이다. 계속되는 상담에 많이 지치기도 하셨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때 선생님은 나 같은 열등생에게도 우등생과 똑같은 관심을 보여주셨어야 했다. 우리도 당신의 제자임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나와 약속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온 우등생에게 순서를 가로채이면서 나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그들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홀로 추위에 떨며 내 시간을 기다렸던 나는 비참했다. 그 다음날로 상담이 연기됐고 내 차례는 십분도 안 돼 끝이 났다.

시간이 지나 열등생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어떤 맘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다소 역차별적인 수업을 한다. 물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도 내 제자들이니 그들에게도 동일한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혼자서도 잘 해내는 우등생들에게는 덜 마음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내 학생들은 대개 성인이므로(나는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수업 외 시간을 활용한 친교 활동을 함으로써 그들과의 신뢰감을 형성하는데에도 노력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내 제자이자 곧 친구이다.

그런데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피그말리온'의 무서운 효능이다. 내 눈맞춤, 미소, 다정한 손길 등을 거치면서 열등생이 우등생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나는 참 많이도 봐 왔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로 학생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생기고 나면 수업에 임하는 학생의 눈빛부터가 달라지고 그들이 해 오는 숙제의 질이 변화한다. 일단 신뢰가 생기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크게 마음을 써 주지 않아도 학생은 스스로 우등생이 되어간다. 매학기 이런 일을 경험하고 나니, 교육의 본질은 진정 사랑이었구나 싶다.


성인 학습자가 이러한데 하물며 청소년들은 어떠하겠는가. 실제로 어느 남자 중학교에 교생실습을 갔을 때, 유독 말썽을 부려서 나를 참 난감하게 만들었던 아이들이 한 반에 한 둘 씩은 꼭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괴로워서 저절로 그 아이들의 이름이 먼저 외워졌는데, 나중에는 가장 친한 관계가 돼 버렸다. 복도에서 만날 때 마다 반갑게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물어봐주고 했더니 한 달 후 수업태도와 성적이 놀랄 만큼 좋아졌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내가 직접 체험한 '피그말리온 효과'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었다. 교사의 기대 효과가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학습자가 어릴 수록 그 효과가 더 크니 특히나 초등학교 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다 친구가 뜬금없이 한마디 던진다. '그래서 초등학생 엄마들이 싫든 좋든 담임 선생님에게 촌지를 주는 거잖아~ 나도 나중에 빳빳한 걸로 꼭 줘야지'. 친구의 말에 심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긍정적인 효능을 이야기하다 결론처럼 나온 말이 꼭 촌지를 줄 거라는 다짐이라니, 우리나라의 공교육의 현실이 깜깜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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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또각또각, 경쾌하면서도 가벼운 하이힐이 나를 향해 걸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굳이 얼굴을 쳐다보지 않아도 약속시간에 30분이나 늦은 내 친구 M모양이다. 그녀가 늦은 것에 대해 화가 낫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나는 일부러 친구 쪽은 쳐다 보지도 않고 심드렁하게 식당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 딴에도 미안한 듯 때아닌 웃음을 날리면서 과하게 반가워하는 친구의 얼굴에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와 버린다.

아니 나도 이렇게 까지 늦을 줄은 몰랐는데, 괜히 버스를 타 가지고 말이야. 겉옷을 벗고 자리로 앉는 친구의 배에서 무언가 반짝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친구는 오랜 기간의 처절한 다이어트 끝에 몰라보게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으면서도, 24인치 청바지를 입고 말리라며 아직도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대단한 아이(?)이다. 그냥 봐도 몸매의 선이 확실히 달라져서 나는 이 친구를 만날 때마다 다이어트 의지를 새롭게 다지게 된다.

몸매에 자신이 생긴 친구는 이 추운 겨울에 배꼽티를 입고 나왔다. 물론 실외에서야 두툼한 겉옷을 입으니까 건강상 큰 문제가 없다고 해도 겨울에 배꼽티라니, 정말 예상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더 놀랐던 것은 배꼽티 때문이 아니었으니...... . 친구는 날씬해 진 자기의 배를 축하하기 위해 '배걸이(마땅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를 선물했단다. 배걸이라는 낯선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목에 걸면 목걸이 배에 걸면 배걸이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빠르실 것 같다.


내 설명을 듣고 설마?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상상하시는 그 기상천외한 것(적어도 두툼한 배를 가진 나에겐)이 맞으니 자신의 상상력을 폄하하지 마시도록. 내 관심에 신이 난 친구는 거기가 밥을 먹는 식당이라는 것도 잊고 친히 일어나서 뱅그르르 돌아 나에게 배걸이를 보여주었다. 뒤에는 한 줄, 앞에는 두 줄로 되어 있는 배걸이는 청바지 위와 배꼽치 아래에서 아주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너무 비싸서 차마 24k 순금으로는 주문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꽤 값을 치르고 산 것이란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보기 좋게 납작한 배 위를 반짝이는 배걸이가 내가 보기에도 참 예뻤다. 특히나 청바지 위로 잘록하게 뻗은 허리에 굵은 금줄이 반짝이니까 한층 더 섹시해 보이기도 했다. 친구의 말을 들으니 배걸이의 또다른 좋은 점은 그걸 하고 있으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는 것이란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방심하고 음식을 아구아구 먹으면 금줄이 툭 끊어져 버릴 수도 있으니(그렇다, 금은 탄력이 없다.) 알아저 적당한 양의 음식만을 먹게 되고 자리에 앉을 대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을 수밖에 없어서 자세교정에도 아주 좋단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예쁘게 한 배걸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툭 끊어져 버린다면 그것 참 난감한 일일테니 배걸이를 한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레 음식의 양을 조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배걸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길이가 짧은 상의와 골반 바지를 입을테고 항상 허리가 드러나니까 늘 배가 긴장된 상태일 것이다. 어느 책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같은 이유로 다이어트 효과가 더 좋다던데, 배걸이도 다이어트 용품으로 딱일 것 같다.

이쯤되면, 보기에도 좋고 체형관리에도 좋은 배걸이가 2009년의 인기 상품 목록에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의사들은 배 부분을 따뜻하게 해야 건강에 좋다고 하던데, 그래도 내 생각에는 가끔씩이라면 자신의 아름다운 허리선을 드러내도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다. 물론 배둘레햄이 두둑한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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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있으면 친한 동생의 생일, 선물로 어떤 것이 좋을지를 고르다가 고민에 빠졌다. 사실 몇 달 전부터 그애의 선물로 점찍어 둔 것이 있기는 하다. 그애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을 온 대학원생인데, 한국에서 홀로 지내는 겨울이 춥다며 내복을 사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학생이 외출시에도 민망하지 않게 예쁘면서도 포근한 것을 사려면 내복값도 만만치가 않아서 그녀는 쉽사리 사지도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어느 곳이든 자취방은 춥기 마련이고, 물 건너 온 친구가 느끼는 체감 기온은 실제보다도 훨씬 낮는 법. 그래서 나는 고상하면서도 따뜻한 내복을 미리 봐 뒀었다. 그런데 같이 선물을 사러 갔던 다른 친구가 나를 극구말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선물인데 내복은 아무래도 맘에 걸린다는 것이다. 괜히 그 아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자칫 생일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으니 그냥 평범한(??) 것으로 골라 다른 사람들도 흔히 선물로 줄 법한 그런 것으로 사란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유학생활에 꼭 필요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지를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예전에 내가 백조였을 때(나는 임용고시 준비생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표를 달고, 자그마치 3년이나 백조생활을 했다.) 친구들과 했던 생일잔치가 기억이 났다. 오로지 시험 공부만 하는데도 세 번씩이나 시험에서 떨어지면서 내 통장의 잔고도 슬슬 바닥나기 시작하던 때였었다. 원래부터 모아 둔 돈도 없었거니와 부모님들께 받아 쓰던 용돈이 죄송스러워서 늘 주머니가 가벼웠었다. 솔직히 그 때는 생일이고 뭐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기를 더 바랐지만, 친구들은 혼자서 수험생활을 하는 나를 위해서 한데 모여줬다.

나이 만큼의 장미꽃, 큰 귀가 인상적인 곰인형, 상큼한 오렌지향이 기분 좋은 향수, 대충봐도 비싸 보이는 크리스탈 유리컵 그리고 한 번도 사 보지 못했던 빨간 립스틱. 백조로서의 마지막 생일이었던 그 때 친구들에게서 받은 생일 선물이었다. 내가 몇 년 전 선물들을 이토록 자세하게 기억하는 까닭은 친구들의 정성이 고마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 같이 당시의 내 생활에는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내 놓은 고가의 선물들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에 함박 웃음을 웃었지만 내 속으로는 다른 생각들이 꿈틀꿈틀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 저걸 학교 식당의 식권으로 바꾸면 몇 장이 나올까? 교통 카드도 충전해야 되는데. 차라리 쌀이나 자취생의 영원한 친구 참치로 사 줬음 몇 달동안 실컷 먹을 수 있을텐데...... . 나는 당장의 먹을거리 입을거리가 중요했기에 장미꽃이며 곰인형이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매일같이 집에서 공부를 하는 나에게 향수가 무슨 소용이 었으며 자취생 크리스탈 컵으로 우유를 마신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빨간 립스틱은???

친구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기억이지만 당시의 내 상황이 그랬다. 그랬기에 어려운 것이 뻔히 보이는 동생의 생일 선물을 함부로 고를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나는 생활 필수품이면서도 선물하기 쉬운 기초화장품 세트를 주기로 결정을 했다. 내가 자신의 경제 상황 때문에 길게 고민했다는 사실은 영영 몰랐으면 좋겠지만, 내 선물을 받고 진심으로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 그 선물의 실용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것의 심미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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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30분, 멋쟁이들이 그득하다는 홍대의 한 커피숍. 친구들과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시켜 놓고 수다를 떠는 동안 내 눈은 쉴새가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다들 멋있었는가. 젊음과 패션의 거리답게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현직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늘씬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나와 같은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미인들이 꽤 많다. 서른 하나가 주는 압박감이 예상보다 심한 모양인지, 친구들의 화제는 어느새 아이크림에서 피부과의 시술로 넘어가 있는 중이고, 한 시간이 넘게 계속되는 탄력+노화방지+동안 이야기에 시들해진 나는 슬쩍 건너편의 여대생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삼십대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은 연예인은 최강희란다. 강아지형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표정, 묘하게 순수한 정신세계까지, 그녀가 가진 모든 것들은 그녀의 나이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서른 두 살이라는 나이를 하고도 교복이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최강희를 닮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늙기 싫어'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때마침 카페를 흐르는 노래 '노바디'에 맞추어 친구들의 이야기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원더걸스에게로 넘어갔다. 그 귀여운 얼굴들을 하고 그토록 섹시한 춤을 출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느냐고 다른 친구가 덧붙인다. 맞다. 원더걸스의 다섯 아이(?)들은 정말 감탄할 정도로 다양한 표정들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 참 좋아한다.

깜찍한 어깨춤이 일품이었던 '텔미'에서부터 요염이 가득한 '노바디'까지 전국을 춤바람에 몰아넣은 그녀들 덕에 춤 학원들도 돈 좀 벌었을 것이다. 원더걸스 예쁘긴 정말 이쁘지, 그런데 걔네들 아직도 고등학생이라며? 그 나이 땐 원래 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야, 그 때 나는 세수만 해도 얼굴이 빛났었어. 하긴 우린 그 때 화장은 생각도 안 했었잖아. 그건 그렇지...... . 한 친구의 문제제기에 우리는 금세 너도나도 왕년(?) 생각이 났다.

하긴 나도 왕년(??)에는 정말 예뻤었던 것 같다. 긴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청초한 원피스를 입으면 화장을 하지 않아도 참 멋졌다. 특별한 날에는 조금만 신경을 써서 꾸며도 홍대 멋쟁이들은 명함을 못 내밀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지금 내 시선을 온통 빼앗고 있는 건너편 탁자의 저 여대생, 그녀보다도 훨씬 더 멋졌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나는 컴퓨터를 켜고 미니홈피에 접속했다. 대학시절 아리따웠던 나를 확인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예뻤던 나를 발견하면 의기양양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드디어 사진첩을 거꾸로 돌려서 대학 시절의 어린 나를 찾았다. 천천히 한 장씩 감상을 하며 나는 왕년의 인기녀 미녀 '일레드'를 구경했다. 그런데 사진을 넘길수록 무언가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진 속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그 얼굴은 분명 앳된 모습의 내가 맞는데, 상상했던 것만큼의 '초절정 꽃미녀'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 가까워질수록 내 모습은 더 예뻐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촌스럽고 어색한 화장에서 벗어나 점점 더 세련돼 졌으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사진도 찍을 줄 알게 됐다. 살이 좀 붙긴 했지만 생각만큼 얼굴도 크게 노쇠(??)하지는 않았다. 결국 사진첩을 통해 내가 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워진 내 모습이었다. 그렇다. 바로 '지금'이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멋진 순간이다. 그러니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옛날에 미련을 둘 필요는 전혀 없다. 현재의 나를 사랑하고 내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은 칭찬할 만 하지만, 왕년의 나에 얽매어 즐겨야 할 현재를 후회와 한탄으로 보내는 것은 어리석다는 말이다. 젊고 어린 여성들을 보며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질투하지 말고, 내가 가진 성숙함과 연륜있는 아름다움을 뽐내자. 누가 아는가? 그녀들도 몰래 우리를 훔쳐보며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부러워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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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내년엔 멋진 남자친구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 내년엔 꼭 승진을 하고 싶은 마음, 내년엔 기필코 결혼을 하고 말리라는 마음, 내년엔 어여쁜 아기를 낳고 싶은 마음, 내년엔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픈 마음...... .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2009년을 설레며 기다리는 지금, 그래서인지 유독 새해 일기장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나도 작년 일기장의 여백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은근슬쩍 2009년형 일기장에 손길이 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으라는데, 캐캐묵은(?? 사실은 겨우 1년된) 일기장에 내 새로운 계획들을 넣을 수는 없지. 예쁜  새 일기장을 또 사고 싶어서 속이 빤히 보이는 자기위안으로 나를 속이면서 말이다.
 
나에게는 예전에 비해 일기장을 가득가득 채우지 않게 된 계기가 있다.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좋아하고 시시콜콜 기록하기를 좋아했던 나였었기에 매해 큼지막한 일기장을 준비하고 그 해가 다 가기전에 빼곡하게 모든 여백을 채웠었다. 친구와 싸웠던 일부터 외식했던 기록과 영수증, 좋아하던 선배에 관한 마음까지 그 해에 나에게 일어났던 거의 모든 사실을 일기장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일기장은 내 삶 그 자체였고 나는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일기장을 채우는 일이 눈에 띄게 게을러졌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매 해 새롭게 일기장이 등장할 때면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쪽으로 저절로 눈이 가게 된다.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에서 소설을 보다가 훔치고 싶은 글귀가 있어서 일기장을 펴 그 내용을 옮겨썼다. 나를 매료시켰던 한 단락의 내용을 모두 옮겨적고 나서도 내내 그 소설에 취해있었는데, 정신줄을 잠시 놓쳤는지 그만 일기장을 도서관에 두고 와 버린 것이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고 다음날 도서관에 가 봤지만 일기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의 기분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들었다. 내 삶의 기록들이 빠짐없이 적혀있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읽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것 같았다. 그 후 몇 주가 지나도록 일기장은 소식이 없었고 나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다시 일기장을 장만해야 할 지 이제 일기 쓰기를 그만 두어야 할 지를 결정하려는 즈음에 전화 한 통이 왔다.

모 동아리방이었다. 한 여학생이 책상 속에서 발견하고는 연락처를 찾아 내게 전화한 것이었다.  내 일기장이 왜 그 동아리방의 책상 속에 들어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그것을 수습하러 갔다. 왠지 그 동아리의 모든 사람이 내 삶을 낱낱이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정말 부끄러웠다. 타인의 손을 탄 내 일기장은 나에게로 돌아온 지 몇 주가 지나도록 외면을 받았다. 어떤 얘기를 써 놓았을 지 너무나도 걱정이 됐기에 그것을 펼쳐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한 달이 지난 이후에야 다시 일기장을 열어 볼 수가 있었지만 그 전처럼 속속들이 내 삶을 적어 둘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이후부터는 일기장 쓰는 방법부터가 달라졌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메모하는 것과 잊어버리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을 기록해 두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내 시시콜콜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방심한 사이 타인에 의해 내 감정이 들추어지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니 그 때의 당혹감이 정확히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금 일기장에 내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기발하고 갖고 싶은 일기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2009년형 일기장의 유혹에 못 이겨 결국 올해도 새로운 일기장을 사 버린 나는 이 일기장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일기장에 진실을 담을 수 없게 된 내 잃어버린 순수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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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럴 땐 정말 난감하다. 날씨가 너무 추운 탓이라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말해보지만 결국 내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이다. 오늘 오후에는 친구들끼리의 연말 모임이 있었다. 오늘 만나는 친구들은 모두 한국어 강사들이라 각 대학에서 각자 생활하느라 학기 중에는 만나기가 힘들었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인지라 나는 유독 신경을 더 많이 썼다. 나는 심지어 친구의 결혼식에서 조차 내가 가장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이니 정말 못 말리는 욕심꾸러기이다.

무슨 시상식에라도 가려는 듯 입고 갈 옷도 미리 골라두고, 일찍부터 정성껏 준비했다. 올 해는 특히 스모키가 유행을 했는데, 평소에는 하기 힘든 화장이라 오늘을 위한 것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바탕 화장부터 꼼꼼히 한 후에 드디어 눈매를 강조하는 스모키 화장에 들어갔다. 우선 연한 밑색을 바른 다음 주된 색인 금색에 가까운 갈색 아이섀도우를 켜켜이 펴 바른다. 그리고 위아래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도 완벽하게 발라줬다. 펄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화려함을 더하니, 짜잔 완성이다. 연예인이라도 되는 듯 잠시 자아도취에 빠졌다. 완벽해.

약속시간에 맞추어 유유히 집에서 나왔는데, 쌀쌀한 바람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들더니 역시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든 탓(?!?)에 바람이 부는 대로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요즘 눈화장품의 성능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쉴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눈가가 꺼멓게 번질까봐 두려워 계속 손끝으로 눈물을 훔쳐내면서도 마음이 영 찜찜했다. 추운 날씨와 한참을 싸운 끝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친구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약속이 점심 때 있었기 때문에 저녁 전에 모임이 파했고 나는 그대로 들어가기가 아쉬운 나머지 서점에 들러서 책을 읽기로 했다. 나는 모든 내공이 책에서 비롯된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서점을 참 좋아한다. 서점에서 맘에 드는 책을 발견하고 읽는 재미에 자투리 시간은 서점에서 보낼 때가 많다. 오늘도 신간을 구경하려고 근처 대형서점에 갔다. 거기서 책을 읽다가 느즈막히 집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와, 아무리 연말이지만 어찌나 사람들이 많던지 책을 읽을 만한 빈 의자를 맡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서가에 서서 책을 읽으며 주위를 힐끔 둘러봤는데 연말을 맞이한 사람들은 저마다 예쁘고 멋졌다.

열심히 꾸미고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들 틈에서도 전혀 주눅들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얼마쯤인가 당당하게 그들 속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손이 씻고 싶어져서 화장실에 갔는데 그 곳에서 낭패감을 맛보았다. 거울 속의 그녀가 내가 맞는가, 완벽했던 내 스모키는 어디로 가고 낯선 여자(?)가 거울 속에 서 있었다. 실내외 온도 차가 너무 커서인지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있고 파운데이션은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놈의 스모키는 그저 눈 주위를 얼굴덜룩하게만 만들고 있을 뿐 전혀 스모키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이라인은 눈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흐려져 있어 도무지 봐줄 수가 없었다.


이런 몰골로 이렇듯 당당하게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다니 정말 낭패스러웠다. 내공이고 뭐고 당장 집으로 공간이동해서 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화장을 적당히 하고 갔으면 이런 수모는 없었을텐데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과욕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여자들은 종종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다가 기쁨을 느끼기도,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학교 다닐 때 내가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여학생 화장실의 거울 덕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초췌하기 그지 없었을 내 얼굴을 은은한 조명과 함께 청초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늘 서점에서 본 거울 속에서는 두꺼운 화장이 민망한 한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 즉 나는 그런 몰골이 부끄러워서 일찍 집으로 오고 싶어졌다. 잘 차려입은 옷차림과 세심하게 치장한 얼굴이 어느 순간 난감하게 바뀌어 버릴 때가 있는 데 이럴 땐 어찌해야할 지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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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끝나 버린다는 서른 살. '2'와 '3'이 주는 느낌이 너무나도 달라서 두려운 마음으로 서른을 맞이했던 작년 이 맘 때가 생각난다. 그러나 살아보니 스물이나 서른이나 철이 없기는 매한가지. 서른을 기점으로 확 달라질 것만 같던 내 삶도 지내보니 비슷했다. 여전히 떡볶이를 좋아하고 여전히 긴머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여전히 연예인에 열광하는 나. 스물이나 서른이나 나는 여전히 나인 것이다. 휴...... . 이렇게 시시한 줄 알았으니 '3'이 아닌 '4'가 와도 나는 끄떡 없을 것 같다. '4'가 좀 천천히 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그래도 여전히 잔치는 계속되고, 여전히 나로서 살고 있을 것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2008년을 살아 온 스스로에게 선물 두 가지를 주기로 했다. 그동안 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벌렁거리는 심장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 중 세 가지를 선택하기로 한다. 먹고 사는 일에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그래서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에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것 말이다. 목록을 적어 내려가는 내 손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호기심에 기웃거리다가도 비용을 보고 놀라서 지레 포기했던 것이 어디 한 두가지였겠는가.

그 중에서 나는 적당한 것을 두 가지 골라 하나씩 하나씩 나에게 선물했고, 야금 야금 천천히 행복을 즐겼다. 내가 정한 선물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목욕탕에서 목욕관리사에게 때 밀기.
     둘째, 손톱 매니큐어 관리 받기.              


목욕탕에 갈 때마다 혼자서 쓱싹쓱싹 때를 밀었던 나는 누가 저렇게 큰 돈(?)을 내고 남에게 때를 밀릴까 늘 궁금했었다. 우리 동네 목욕탕의 때 미는 가격은 15,000인데(오일마사지, 전신마사지는 각각 35,000/50,000원이었다.) 입장료 5,000원까지 더하면 목욕하는데 최소 20,000원이 드는 셈이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2만원은 너무 아깝게 느껴졌고,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2만원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떠올랐었다. 그걸 이번에 해 본 것이다.

아무래도 연말에는 목욕탕에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평일 저녁 시간을 이용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목욕탕이 붐볐다. 나이가 들수록 온탕이 좋아져서 물 속에서 충분히 놀다가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밀려고 했는데, 아뿔싸!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아닌가? 세 명의 목욕관리사가 세 개의 침대에서 때를 미는데도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평소에 그 쪽으로 쳐다보는 일이 적었기에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미는 줄 몰랐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왕 맘 먹고 간 거 기다리기로 했다. 두 시간 동안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며 놀다가 밖에 나가서 책도 좀 보고 다시 탕으로 들어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 두 시간이 쉽게 기다려지기는 했다.

쪼글쪼글 해 진 할머니 손으로 때미는 침대에 누워 막상 때를 밀리려고 하니 민망한 생각도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구석구석 내 몸을 맡긴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때가 나올까 봐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능숙한 솜씨의 목욕관리사의 때밀기는 내 몸을 정말 호사스럽게 만들어줬다. 피부결을 따라서 시원하게 때를 밀어주는데 내 솜씨하고는 비교도 안 됐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이 이렇게 큰 돈을 지불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문화의 수준은 높일 수는 있어도 낮출 수는 없다던데, 목욕 문화도 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목욕탕 가는 횟수를 줄이더라도 목욕관리사 아줌마를 애용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대학교 근처에 있는 손톱관리 가게에 갔다. 나는 화장하는 것에는 꽤 관심이 많아서 이런 저런 시도도 해 보고 여러 가지 화장품도 사 본다. 그런데 손이 작고 못 생겨서인지 기술이 없어서인지 가끔씩 기분을 낼 때 빼고는 손톱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손톱관리 가게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 때문에 문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선물 목록에 손톱관리도 넣어 봤다. 학교 근처라서 그런지 예쁘장한 여대생들로 가게 안이 북적댔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는 나와는 달리, 여대생들은 익숙한 듯 보였다. 어렵사리 색을 고르고 매니큐어를 바르려는데 손톱 관리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매니큐어만 바르면 될 줄 알았는데 색감을 좋게 해 주는 것, 색을 오래 지속해 주는 것 등 바르는 것도 다양했고 시간도 꽤 걸렸다.

투박하기만 했던 내 손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매니큐어를 발라놓으니 한결 예뻐보였다. 그런데 나와는 달리 매장을 방문한 대부분의 손님들은 10회/20회 쿠폰을 끊어서 온 사람들이었다. 한 눈에 봐도 여대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비싼 손톱관리를 쿠폰을 끊어서 정기적으로 받는다니 대단한 열성이었다. 불황에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화려해진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런가?

불황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자기 관리에 애쓰는 여성들은 더 늘어나는 것 같다. 내 주변만 봐도 차라리 먹는 음식값은 줄일지언정 피부관리나 의류 구입에는 여전히 돈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자신을 계발하는 데 더 힘쓰는 여성들도 많다. 그래서 지금 당장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어를 배우거나 악기, 춤 등을 연마해서 삶의 질을 더욱 풍요롭게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이번에 나에게 주는 선물을 통해서 내가 오로지 나를 위해 들이는 비용이 너무 적었음을 인식하고 앞으로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 지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주부터는 나도 중국어회화 수업을 들을 작정이다. 당장에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영영 써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타인의 강요없이 관심을 가지게 된 외국어이니만큼 한 번 배워보고 싶다. 여성들의 불황을 모르는 자기 관리, 그 대열에 나도 합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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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지치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예상치 못한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나는 대학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내 학생들은 아직 초급반이라서 의사소통을 자유롭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눌한 말과 글이 어떤 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는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학생들에게서 받는 국경을 초월한 사랑은 나에게 아주 큰 힘이 된다. 이렇게 쌓인 고마움 덕에 나는 이 일을 결코 그만 둘 수 없을 것 같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말끔하게(?) 수업이 끝났다. 국가에 따라서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에게 특별히 한국의 크리스마스 풍습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는 무엇보다 마음을 나눌 것을 강조하면서 수업을 끝내는데 무언가 오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기특한 학생들이 선생님인 나에게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각자 정성을 담아 여러 선물들을 준비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중국인 학생들의 선물이 인상에 남았다.


중국인 학생들이 수줍게 내미는 선물은 사과였다. 동글동글 탐스럽게 포장된 사과가 정말 예뻤지만 크리스마스와 어떤 관계인지 언뜻 떠오르지 않아서 잠시 갸우뚱했더니, 학생 중 한 명이 그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크리스마스엔 온통 캐롤과 트리로 가득한 우리 나라와는 달리 중국에는 거리마다 사과가 넘쳐난다고 한다. 사과는 중국어로 '苹果(pingguo핑궈)'인데 평안'平安(pingan핑안)'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란다.

즉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사과를 주고 받는 것이었다.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양손 가득 사과를 사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고 한다. 중국은 크리스마스에 쉬지 않으며 캐롤도 흔하지 않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사과를 주고 받으면서 마음을 전하는 신풍습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타지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중국의 풍습대로 나에게 평안을 의미하는 사과를 준 학생들. 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이 오늘따라 더욱 예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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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에서 박진희의 일명 '지하철 실수담'을 들었다. 박진희라 하면 청순과 도발을 겸비해 누구나 매력녀로 인정할 만한 여배우이다.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여자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해 하다가 들은 사연은 다음과 같다. 데뷔 전 박진희는 승객으로 가득찬 지하철을 탔다고 한다. 당연히 좌석도 없었고 앉아 있는 사람과 바짝 붙어서 서 있던 박진희는 떠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밀리고 밀려, 자신도 모르게 앞에 앉아 있던 남자의 무릎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단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라 크게 당황한 나머지 미안하다는 말만 연발했고 갑자기 당한 사람도 경황 없기는 마찬가지라 민망한 정적만 흘렀다고 한다. 만원 지하철엔 사람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렇게 낯선 남자의 무릎에 앉은 채로 박진희는 네 정거장을 더 갔고, 다행이 그녀가 내리려던 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려서 어색한 상황을 끝낼 수 있었다고 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얘기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들어닥칠 때면 의도하지 않게 깊숙히 밀려가 버릴 때도 있고 그러다 중간에 끼기라도 하면, 키가 작은 나는 숨 쉬기 조차 힘들다.



'으흐흐' 박진희의 실수담을 듣고 있노라니, 내가 저질렀던 음흉한 일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괴기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어여쁜 박진희는 실수였지만, 음흉한 나는 고의적이었고 청순한 박진희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했지만, 약아 빠진 나는 교묘히 미안한 척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찌 그리 뻔뻔할 수 있었는지 나조차 어이가 없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소싯적 순정만화와 허튼 연애 소설을 너무 많이 봤던 까닭이 틀림없다.

20대 중반이었을 때, 나는 괴이하고도 무모한 짓을 참 많이도 저질렀다. 더 어렸을 때 못 해 본 것이 너무 많아서인지 그 때부터는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해 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 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지만 오늘 내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나는 정말 우습게도 이따금씩 스스로를 예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화장도 곱게 잘 됐고 옷차림도 너무나 맘에 들어서 그런 날 아무 일 없이 하루를 지나 보내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럴 땐 나 스스로 무언가 낭만적인 일을 꾸미고야 말았고 철저한 철면피로 둔갑했다.


그 때도 그랬었다. 대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을 것이다. 대학원 수업은 보통 늦게 끝나기 때문에 약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반대편 차창으로 비친 내 모습을 보았고 나는 그만 나르시시즘에 빠지고야 말았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미모로써 특별한 일 없이 집에 들어가야만 한다니! 너무 너무 아까워...... . 그러다 내 머릿속을 음흉하게 채우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은 옆 자리에 앉아 있는 낯선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서 집까지 가는 것. 어떻게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놀라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지만 그땐 아직 어렸고(20대중반인데???) 앞에서도 얘기했듯 나는 순정만화와 하이틴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

물론 만화에서 조차 주인공이 상황을 고의적으로 꾸미지는 않지만, 책에서는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는 경우가 참 자연스럽고도 예쁘게 묘사돼 있지 않은가? 나는 반대편 유리창으로 적당한 상대가 나타날때까지 설레는 맘을 안고 기다린 다음, 착해보이는(이게 중요하다) 순진한 희생양의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댔다. 졸리는 척 하면서 말이다. 시간도 얼추 늦었고 일부러 그런다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남자들은(도대체 몇 명??) 그냥 어깨를 빌려준다. 내가 생각해도 예쁘다고 느낄 때만 하기 때문에 당당하고도 뻔뻔하게 낯선 이의 어깨를 빌린다. 그러다 내가 내릴 지하철 역이 되면 그제서야 잠에서 깼다는 듯 스르륵 일어나서는 깜짝 놀라는 척을 좀 하고, 상대방에게 '미안합니다' 인사 후 나는 유유히 퇴장.

당시 같이 대학원 다니던 오빠들에게 실수인 척 슬쩍 물어보니 자신들도 당한(?)적이 있는데 기분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피곤한 퇴근길에 삶의 활력소(--라고 할 것까지야)가 되어주는 '무단 어깨 빌리기'를 한 번 시도 해 보심이 어떨지? 단, 뻔뻔한 여성들에 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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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욕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날 모인 친구들 모두 '백분토론 400회'를 보았기 때문인지 우리는 너도나도 손석희 아저씨가 되어서 저마다의 2008년을 진단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들만의 백분토론이 진행되었다. 가장 불행했던 기억과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다가 행복은 결국 욕심을 버리는 데에서 비롯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행복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욕심을 버릴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술도 마셨겠다, 연말이라 기분도 아리송하겠다, 우리는 우리가 버려야 할 욕심에 대해 웃기면서도 진지한 얘기를 나눴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욕심은, 마지막 한 모금 남긴 커피잔 위로 생기는 말풍선과 같은 것이다. 커다란 머그컵에서 적당한 카페인과 적당한 달콤함으로써 나를 즐겁게 해 주던 커피. 뜨거운 커피가 주는 정신적 만족감에 빠져 한 모금씩 마시다 보면 어느새 커피잔은 바닥을 드러내고, 그러면 자연스레 만화처럼 '한 잔 더?'라고 씌어진 말풍선이 나를 유혹한다. 나는 그것을 욕심이라고 부른다. 이미 충분히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원하는 마음말이다. 지나친 욕심은 쓰린 속과 불면을 낳을 뿐이다.



다이어트 삼매경에 빠진 내 친구는 24인치 청바지를 욕심이라고 정의했다. 그 친구는 2% 부족한 둥글녀에서 완벽한 매력녀로 거듭나기 위해 매일 자신과 싸우고 있다. 꽤 오랫동안 다이어트를 계속해서 이제는 더 뺄 살도 없어 보이는데 그녀는 아직도 전쟁중이다. 그동안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면서 열심히 운동한 덕에 슬쩍보기에도 참 많이 예뻐졌다. 그러나 친구는 24인치 청바지를 입기 전까지는 다이어트를 그만 둘 수 없다고 했다. 친구야, 그건 초등학생이 입는 사이즈 아니니? 너는 키가 커서 24는 좀 무리일텐데. 자신조차 24인치 청바지를 욕심이라고 말하면서도 멈출 수 없다는 친구. 2% 부족했던 둥글녀에서 이제는 매력적인 까칠녀가 되어 버린 그녀는 점점 더 날씬해지려고 욕심을 부린다.

또 다른 친구의 욕심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남자를 따라가는 자신의 시선이었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뭐 한 번 쯤은 다른 사람을 쳐다볼 수도 있겠지. 너도 사람인데' 했지만 오랜 연인을 둔 그녀는 그것마저 미안했나보다. 거리에서 멋있는 사람과 지나칠 때면 눈이 먼저 그 사람의 얼굴과 그 사람의 근육과 그 사람의 스타일에 이끌려 그 사람에게 고정되고, 어떨 땐 묘한 설렘을 느끼기도 한단다. 짧은 순간의 눈맞춤이 엄청난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기에 시선의 이끌림도 넓은 의미의 바람이라고 말하는 그녀. 이미 자신의 마음에 사랑하는 사람을 담았기에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것은 욕심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어찌나 자랑스러운지.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업 때문에 우리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또 다른 친구. 우리는 이 친구가 고백한 욕심을 만장일치로 진정한 욕심으로 인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직업을 가진 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그렇게까지 윽박질렀나 싶어 미안하기도 하다. 친구는 달력에 빨간 날이 더 많기를 바라는 마음을 욕심으로 고백했는데, 그러면서도 칼퇴근에 주 5일 근무인 자기가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고보니 2009년에는 공휴일이 많이 줄었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시작했던 욕심에 관한 이야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가 처한 상황과 서로의 고민에 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이미 가진 것을 더 가지려는 마음, 끝 없이 계속 커지는 마음,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 나 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 이 날 우리가 고백한 마음들이 비단 우리들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마음속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욕심을 털어버린다면 2009년에는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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