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가족애가 진한 사람들은 오랫만에 고향을 방문해서 가족 친지들을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아쉽게도 설 연휴가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많아서 한숨짓던 며느리와 안주인들은 상 차리고 설거지하기를 무한 반복한 끝에 드디어 지긋지긋한 설 연휴를 마무리 했을 것이다. 한편 백수이거나 무심하거나 아니면 쉬지를 못했거나 해서 연휴라고 해도 별다른 감흥없이 일상생활과 같이 지낸 사람들은 어쩌다보니 설 연휴를 그냥 보내 버렸을 것이다.
비록 나는 (4)번의 경우로 명절을 보냈지만 가족 친지들이 다 모이니 그 속에는 (1)~(4)의 경우가 모두 있었는데, 즐겨야 할 명절을 그야말로 '견디는'듯 보였던 며느리들을 보니 마음이 참 짠했다. 오늘은 바로 (2)번군에 관한 짧은 생각을 써 볼까 한다.
우리 큰집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어서 미리 출발하지 않고 설날 아침에 큰아버지 댁으로 세배를 드리러 갔다. 그 댁에는 우리 가족말고도 결혼한 사촌 오빠 내외와 조카들, 역시 결혼한 사촌 언니 내외와 조카들, 그리고 작은아버지의 가족들, 고모네 등이 와 있어서 명절답게 북적댔다. 아이들은 신이나서 저희들끼리 술래잡기를 하는지 히히덕 거리며 쉴새없이 뛰어다니고 정신 없는 와 중에도 어른들은 옛 이야기를 나누시느라 바쁘셨다. 명절에는 왜 그리도 자주 입이 심심해지는지 밥 먹고 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떡이며 과일 상을 또 기다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세대별로 나뉘어서 조금 놀다보면 어느새 또 식사시간이라서 여자들은 별로 쉬지도 못하고 또 부엌으로 직행한다. 그런데 역시나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시집 온 사촌 오빠의 아내인 새언니다. 조카를 둘이나 낳고 길렀으니 시집 온 지 꽤 됐지만 그래도 시댁은 어려운 법. 게다가 친척들까지 잔뜩 와 있으니 어디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있었을까? 쉬면서 우리와 조금 놀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편하게 느껴질 리 만무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슬쩍 친정에는 언제 가느냐고 물어봤는데, 그만 큰어머니께서 듣고야 말았다.
가뜩이나 짧은 연휴인데 새언니의 친정은 경기도이고 큰어머니댁인 시댁은 경상북도이다. 내 생각으로는 아무리 늦어도 설날 점심 먹고 나서는 슬슬 올라갔어야 친정에서도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저녁 먹을 때가 돼 버렸다. 그런데도 큰어머니는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느냐고 그 말을 한 나를 나무라셨다. 물론 새언니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사촌 오빠를 힐끔 쳐다보니 이쪽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텔레비전에 폭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이럴 때 남편이 짜잔하고 나타나서 한마디 해 주면 딱 좋으련만 어찌나 무신경한 지 모르겠다.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새언니를 보니 내가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에는 새언니도 있었지만 시집간 사촌 언니도 분명히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어머니는 당신 딸은 어느새 친정에 와서 편안한 명절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시는 것일까? 자기의 딸은 일찍 친정에 오는 것이 당연하고 며느리는 조금이라도 늦게 보내고 싶어하는 것이 시어머니의 심보란 말인가. 한 번 눈에 띄니 내가 그 쪽으로 치우치게 돼 버려서인지는 몰라도, 계속 큰어머니의 이중적인 생각들이 내 신경망에 걸려들었다. 누워서 침뱉기를 하기 싫어서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지는 않겠으나 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차이는 어머어마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영어로 시어머니는 mother-in-law인데, 이것을 monster(괴물)-in-law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니, 이런 일이 비단 우리나라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날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바삐 움직였던 새언니의 뒷모습이 남일 같지가 않아서 정말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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