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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처럼 국문과를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습성(?)이 있다. 타전공자들과는 달리 우리의 전공 과정에는 '영어'가 없으며 당연히 원서 또한 우리글이다.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고대 국어나 중세 국어를 해독하느라 진땀을 뺀 적은 있지만, 꼬부랑 글씨를 가지고 씨름할 필요는 없었단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어 전공자가 학부시절에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어학연수를 가는 경우는 나 때만 해도 흔치 않았다.(석박사 과정으로 들어가면 음성학이나 비교 문학 등을 공부하려고 유학하는 분들이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외국어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인지 국문과 전공자들에게는 특이한 습성이 있다.

타전공 친구가 붙여 준 내 별명 '국산(^^;;;)'에서도 볼 수 있듯, 나는 나라밖 일에 무심했고 이런 상태는 대학원까지 국문과로 진학하면서 더욱 심해졌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도 우리말 문법은 자주 틀리면서도 영어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지나치게 눈치를 주고, 텔레비전에서 좋아보이는 광경이나 물건에 외국 같다느니, 외제 같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면 혼자서 흥분했었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국문과 출신들에게서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런 내가 성인이 되면서 나라 밖 세상을 조금씩 구경하게 되니, 신기하고 요상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서두를 장황하게 쓴 까닭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것들이 유독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1. 집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는다
.
외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조차 이 의견에는 상반된 견해를 보일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본 요상한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드라마가 '캐빈은 13살'인지 '천재소년 두기'였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주인공이 비 오는 날 축축하고 더러워진 운동화를 신은 채로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는 그대로 침대 위로 털썩 누워버리는 것이었다. 놀라움을 벗어나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미국에 있는 이모 댁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실제로 집 안에서 신발을 신은 채 생활하는 그네들의 문화에 다시한번 놀랐던 경험이 있다. 내가 의외로 먼지에 민감한 까닭에 밖에서 묻혀 온 먼지들을 털지도 않은 채 소파에 앉고, 집 안을 활보하며, 심지어 주방에서 요리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그것은 차라리 공포였다. 저렇게도 깔끔해 보이는 사람들이 먼지가 그득한 집안에서 생활한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집 안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우리의 문화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방에 얼룩하나 없이 깨끗하게 쓸고 닦아 놓은 모양이 더 불편할 지도 모른다. 걱정과는 달리 이모 댁에서 보낸 한 달 내내 먼지로 인한 질병이 없었던 걸 보면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문화가 생각만큼 지저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맘 편히 누울 수 있는 깨끗한 방 바닥이 더 좋기는 하다.



2. 식당에서는 물과 밑반찬을 공짜로 준다.
부모님과 함께 했던 베트남 여행에서 나는 우리 나라가 얼마나 인심 후한 나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었다. 우리는 작은 식당에 가서 된장찌개 하나를 시켜도 밥도 주고 갖가지 밑반찬도 준다. 더군다나 반찬이 모자랄 때는 스스럼 없이 '아줌마, 반찬 좀 더 주세요, 정말 맛있네요.'하면 인심 좋은 주인 아줌마가 넉넉하게 부족한 반찬을 채워준다. 그런데 이게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음식 문화가 달라서 우리는 밥과 반찬이 한 세트처럼 돼 있지만 외국은 그게 아니기 때문에 음식을 하나씩 따로 주문하고 쌀을 먹는 나라에서는 밥도 따로 주문을 해야 된다.

뿐만 아니라 물에 석회질 함유량이 많아 물이 귀한 나라에서는 식당에서 물을 공짜로 얻어먹을 수도 없다. 메뉴판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물이라는 메뉴는 참 낯설다. 이런 나라에서는 끓인 물도 안심하고 먹을 수 없다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매번 물을 사 먹을 수밖에 없다. 또 우리와 다른 음식 문화때문에 상대적으로 야박하게 느껴지는 마당에 팁까지 줘야한다. 물가가 비싼 나라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더욱 배아프게 느껴지는 팁 문화, 나에게 촌스럽다고 한들 할 말이 없다.



3. 화장실에는 꼭 문이 있어야 한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급부상한 나라 중국.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은 대도시만 여행한 사람들은 중국 고유의 화장실 문화(?)를 체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나는 중국에서 두 달간 연수를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말로만 듣던 기괴한(?) 중국 화장실들을 참 다양하게도 체험해 봤다. 이 때 귀국하여 인천공항에 첫 발을 내딛고 공항내에서 나를 반기는 으리으리한(중국 시골에서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한국의 모든 화장실을 정말 으리으리하다고 느꼈으리라.) 화장실을 만났을 때, 그 앞에서 '나 돌아왔노라'며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중국의 화장실은 변화하고 있는 중인지 그 형태가 참으로 다양했다. 우리 나라 시골 재래식 화장실을 생각하고 그것 쯤이야 하시는 분들은 모를 말씀이다. 나 또한 경북 안동 출신이니 재래식 화장실에 놀랄 리 없다. 수세식 변기인 줄 알았는데, 밑을 보니 참혹한 곳, 앞이 다 뚫려있는 상태에서 칸칸이 칸만 나누어 놓은 곳,  ___ㅣ___ㅣ___ㅣ 대충 이런 모양이다. 그나마 칸도 나뉘어 있지 않고 뻥 뚫힌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얼굴 맞대고 일을 봐야 되는 곳 등등. 아, 그 때를 회상하며 화장실의 모습을 떠올리니 새삼스레 힘들다.

다들 알고 계시듯 중국도 많이 변해서 시골도 의외로 발전한 곳이 많다. 그런데 유독 화장실만은 왜 그리도 변화가 더딘지 모르겠다. 우물 안의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 세상 밖을 보니, 할 말이 정말 많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 지루해 질까봐 오늘은 여기서 줄인다. 못 다한 얘기들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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