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길~게 공부만 하느라 연애한번 제대로 못한 쑥맥들이 많다. 문제는, 소심하고 상처받기 쉬운 그녀들이 자신을 노리는(?) 나쁜 남자를 선별하는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한 데 있다.
오늘 오후 문득 생각난 선배 언니에게 전화를 걸다가 언니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지 5개월이 넘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래도 여느 때처럼 반갑게 맞아주겠지. 우리는 각자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해주는 진정한 벗이므로^^ 공부를 취미로 하고 있다는 핑계를 대다가 결국 두손 들고 물러나 버린 나는, 이제 곧 시험을 보게 될 언니를 위로하고 시험을 핑계로 언니를 배려한답시고 자주 연락하지 못했던 것을 사과하리라 맘 먹었었다.
그런데, 단 5개월 사이에 언니는 예전에 내가 알던 언니가 아니었다. 이해심 많고 따뜻했던 그녀는 비아냥 대마왕에 냉소와 악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나의 끈질긴 기다림과 추궁에 의해 '거짓 악녀'의 모습을 겨우 벗은 그녀는 한참을 운 끝에 자신의 상처를 토,해,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속이 상했는지...... .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 있다. 그 나이 들도록 바보처럼 순진했던 언니에게 언니보다 5살이나 어리고 나보다는 3살 어린 그 놈이 한 행동은 가혹했다.
사랑을 주던 이가 모욕감을 갖게 하고 이상형이었던 이를 쓰레기로 취급하며 필요에 따라 쉽게 용서를 비는 나쁜 남자.
그러나 어쩌면 그도 처음부터 그럴 마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지나가는 이의 작은 관심에도 크게 감동을 하게 되고 너무도 쉽게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채 주게 되며 이후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큰 상처를 받게 되니까.
나는 길~게 공부만 해 온 수많은 순진남, 순진녀들이 진심으로 걱정스럽다. 그들은 시험이라는 틀 속에 갇힌 채 세상과 너무 단절돼 살아왔고 그들의 로맨스는 아직도 여리고 착하기만 하므로. 오늘 언니가 쏟아낸 눈물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언니를 바라 보는 내 마음은 약간 더 가벼워졌다.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기만 했던 언니가 이제는 땅을 딛고 올라올 차례이니까. 적어도 어제보다는 더 강해졌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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