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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잔 째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카페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지난 2주 동안의 내 행적이 단지 방황에 불과했다면, 나는 무엇으로부터 일탈했던 것일까?

오랫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어찌어찌 해서 연락 된 친구와 그 친구를 통해 또 연락된 친구.
그렇게 해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들은 내가 그동안 가슴속에서 담고 있던 추억 속의 인물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첫 모임에서의 서먹하고 어색함은 나에게 색다른 '짜릿함'을 주었는데 그것은 그녀들의 삶이 내 삶과 많이 다른 데서 오는 낯설음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내가 즐겨보았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이었다. 미팅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가장 내 호기심을 자극한 요소였지만 그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다른 세상을 자주 보았다. '아.찔.소'에 의하면 서른이 되도록 클럽한 번 안 가본 나는 아주 답답한 여자이며 그것은 결코 진실이 될 수 없기에, 부킹한 번 못해 봤다고 말하면 완전히 내숭녀으로 찍히게 된다. 어떨 땐 내가 이상한 것인지, 프로그램 속 그녀들이 다른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지만 나도 가끔 달라져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그녀들을 만났다.

첫만남의 낯설음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급속도로 다시 친해졌다. 그녀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명품 소품에 기죽었던 나는 두번째 약속부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들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매일 들르는 고급 음식점에 내 지갑이 바닥나고 매번 새로운 문화적 충격에 혼란이 생기기도 했지만 나는 별로 게의치 않았다. 어쩐지 내가 더 당당해진 것 같았으므로, 그녀들과의 만남은 참 즐거웠다.

그러나 2주만에 나는 깨달았다. 그 속에는 내가 없음을...... . 평소보다 진한 화장을 하고 있는 그녀는 내가 아니며 사소한 것에도 크게 웃고 있는 그녀는 나와는 다르다. 화려한 소품을 즐기며 시끌벅쩍한 술자리에서 요란하게 떠드는 '그녀'가 '나'이기엔 너무 낯설다.

나는 단지 일탈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두 잔 째 커피를 마시며 내 속에 있는 '공허'를 발견한다. 카페인으로는 채우지 못할 1g 가벼운 그것. 나는 그것을 나의 미완성 된 '자아상'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내 속의 허전함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나로써 채워야 한다. 나 스스로의 노력과 열정으로 조금 더 깊어지고 조금 더 무거워져야되는 것이다.

나는 아마도 당분간 다시 만나자던 그녀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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