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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좀 민망한 공감을 했던 적이 있다. C는 모 프로그램에 나와서 6개월 동안 머리를 한 번도 감지 않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발언에 경악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김C는 그 특유의 능청스럽고 순한 웃음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6개월 동안의 고행(?)과 인내를 끝으로 머리카락을 잘라냈을 때(당시 그는 레게머리를 했었단다.)의 기분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고. 극심한 간지러움과 찝찝함을 한껏 참았다가 6개월 치의 더러움을 한 번에 씻어냈을 때의 그 쾌감. 민망한 일이지만 나도 그 기분을 안다. ?!? 그럼 나도 6개월 동안?
 

예전에 교원임용고사 경쟁률 높이기에 여념이 없었을 땐, 나도 김C 못지 않았었다. 수험 생활이 길어질수록 학원보다는 온라인 강의를 선호하게 됐기에, 내 생활은 거의 집에서 이루어졌었다.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교원임용고사의 체감 난이도는 사법고시를 능가하는 것이었기에 주중에는 방에 콕 처박혀서 공부만 했었다. 고시생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그럴 수밖에 없다.) 나도 그 땐 온 종일 운동복 차림에 상투 머리를 하고서 책상 머리에 앉아 있었다. 밖에는 나갈 이유도 없거니와 나갈 필요도 없었다. 정 답답할 땐 모자 하나 눌러쓰고 동네 한 바퀴면 충분할 때였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김C처럼 6개월 동안 한 번도 머리를 감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1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더러움을 유지(?) 했었던 것 같다. 참 역설적이게도 그 당시 교회에서의 내 별명은 패션 리더였다. 심할 땐 1주일에 두 번 꼴로 머리를 감는 주제에 패션 리더가 왠 말이냐 마는, 1주일에 한 번 하는 그 외출이 내겐 정말 소중한 것이었기에 교회를 갈 때 정말 공을 들였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도 없는 양말 하나도 정성껏 골랐고, 신발을 신어버리면 보이지도 않을 패티큐어까지 했으니 다른 곳은 말해 무엇하랴.



 
사람들은 내 부지런함과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에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난 속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그들은 절대 짐작하지 못했겠지만 1주일에 한 번, 나는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C의 말처럼 켜켜이 쌓여 있던 더러움을 한꺼번에 덜어내는 기쁨(??)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나 개운한지 날아갈 것은 기분마저 든다.

 

사실, 내가 나의 민망한 얘기를 장황하게 쏟아낸 까닭은 다른 얘기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즘 연말이다 보니 각종 시상식 등에서 여자 연예인들의 아찔한 노출 수위가 연일 관심 거리인데, (나도 여자이지만)여자들은 노출에 관해 다소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 노출은 즐기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나? 각종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에 관해 얘기할 기회에 있으면, 뭇 여성들은 한결같이 노출의 이유는 자기 만족때문이라고 말한다. , , , 정말? 정말 그런가?

 

같은 여자끼리의 비밀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패션 리더라고 불리는 것을 은근히 즐기면서 온갖 치장을 다 하고 다니는 나이지만 집에서의 내 모습은 참혹하다. 만약 자기 만족을 위해서라면 나는 아무런 약속이 없고 집에만 쭉 있을 계획이라도 외출할 때와 동일한 화장과 옷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날 보지 않을 땐 늘 헐렁한 티셔츠에 상투머리이다. 그리고 집 근처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신할 땐 그런 험한 몰골을 하고 잠깐씩 나갔다가 들어오기도 한다.


어쩌면 이 글을 보신 분들 중에 그건 게으른 네 성정 탓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나만 그런가? 휴일 오후 자신의 모습을 곰곰이 생각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이유가 꼭 다른 이의 시선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추레한 모습으로 밖에 나갔을 때 온종일 기운이 없고 자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도, 내 맘에 쏙 드는 차림으로 외출했을 때 저절로 발걸음이 가벼워 지는 이유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쁘고 멋진 자신의 모습 덕에 사람들은 더 당당해 질 수 있다.

우리는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을 관리하는 것은 어떤 땐 정말 힘이 드는 것이기에, 그 과정을 이겨내고 당당하고 멋지게 자신을 표현한 사람들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고 존경스럽다. 다만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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