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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저찌해서 모 명품 브랜드 보석 전시회에 초대를 받게 됐다. 평소 명품의 'ㅁ'도 모르고 지냈고 그 흔한(?) '구'삐리리 짝퉁 가방 하나 없는 내가 뜬금없이 명품 브랜드에 초대를 받게 되다니, 참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나는 칠렐레팔렐레 들뜬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드레스 코드가 검정과 하양이라길래 오늘 입으려고 별렀던 비둘기색 상의를 포기하고 결혼식 때 장만한 검은 예복 상의를 꺼내 입었다.

그래도 명색이 보석 전시회인데 꾸질꾸질한 맵시로 갈 수는 없지. 공들여 치장을 하고 거울을 보니, 와우 새삼 아름다운걸? 

전시회가 열린 모 호텔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보석 전시회에 가면서 실반지 하나 안끼고 나온 것이 맘에 걸려서, 결혼 예물이라도 좀 걸치고 나올 걸 후회를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카메라가 있으니까. 남편의 카메라다. 내 위상에 날개를 달아 줄거라고 남편이 가져가길 권유하길래 못 이기는 척 매고 나온 값비싸고 무거운 카메라, 이게 있어서 조금 든든하긴 했다.



날씨도 참 좋았고 경치도 좋아서 룰루랄라 신이 나서 전시회장에 도착했다. 블로거의 본분을 지키고자 여기저기 사진부터 찍고 내 동선을 하나도 남김없이 기록으로 남긴 후 입구로 향했다. 생각보다 큰 행사였던 듯 호텔 밖에서부터 오늘 행사를 알리는 사진, 알림판 등을 마련해 두었고 행사장 입구에는 초대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꼼꼼히 확인하는 안내원들이 여럿 있었다. 보석 관련 행사였던 만큼 만일에 사태를 대비하는 경호원들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이름을 확인하고 안내를 받아 들어 간 곳에는 연회 음식이 마련돼 있었다. 음식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있어도 샌드위치나 머핀 등에 커피 정도를 줄 줄 알았는데, 이건? 대체로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호텔 뷔페 못지 않았다. 하긴 그곳이 호텔이었으니까.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은근한 조명이 켜져 있는 그 곳에는 일찍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냠냠 음식을 먹으려는데, 순간 나의 여섯 번째 감각이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예리하게.

거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내가 그동안 봐 왔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천천히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니 그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이고 들렸다. 일단 그녀들이 입은 옷들이 내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비록 몇 년 된 것이긴 하지만 나도 내 생애 가장 비싼 옷(결혼 예복)을 입고 갔는데도 말이다. 나도 보는 눈은 있어서 비싼 것을 구별할 줄은 아는데 여기저기 비싼 것 투성이였다. 요즘 유행한다는 봉긋한 어깨가 멋스러운 고급 옷들, 화려한 레이스, 형형색색 찬란한 실크 블라우스, 잡지를 넘기다 헉소리가 절로 나와서 대체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 세고 또 세 봤던 그런 류였다.

신발은??? 가방은??? 그제서야 나는 내가 간 곳이 '꽃 보다 남자'의 구준표나 갈 법 한 VVIP들만의 비공개 파티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 난 일행도 없이 겁도 없이 혼자 간 것이다. 무심코 아래를 봤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동네 아줌마들에게서 참 편할 것 같다는 이유로 별점 5개를 받은 인터넷에서 삼만 오천원 주고 산 고무재질의 내 신발이, 그녀들의 아찔하고 미끈한 킬힐과 뒤섞여 있으니 참 우스웠기 때문이다.



뭐 어때? 나도 내 나름대로 VVIP인걸, 그들과 그럭저럭 섞여서 음식을 먹고 여종업원에게 음료도 받아 마시고 최대한 두리번 거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나름대로 그곳에 적응을 하고 있는데, 카메라가 자꾸만 걸리적 거렸다. 블로거들의 모임에서야 크고 값비싼 카메라가 좋아보이겠지만 이런 모임에서는 홀대받기 딱 좋은 소품이었다. 기자인지 손님인지 구별도 잘 안 가고 카메라가 걸리적 거려서 음식을 담을 때도 신경쓰이고.

금잔디가 왜 구준표의 파티에서 음식을 엎지르고 커피를 쏟는지 경험해 보니 알겠다. 어색한 그 자리에서 나도 소스통 한 번 엎지르고, 숟가락 하나 떨어 뜨렸으니까. 혼자서 아구아구 먹으려니 흥도 안 나고 재미도 없어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옆 방에 마련 돼 있던 보석 전시실로 갔다. 

예쁘긴 예뻤던 24억 짜리 목걸이와 참 싸게 느껴졌던 10억 짜리 반지,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팔기도 한다고 좋아하며 반지, 귀걸이를 보여 달라던 어떤 사람, 그 사람이 착용 해 볼 보석들을 흰 장갑을 끼고 고이고이 벨벳 소재의 상자에 담아 가는 경호원, 가장 있어 보이는 어느 부부에게 찰싹 붙어서 정성껏 보석들을 설명해 주며 이번 기회에 하나 들여가시라고 권유하는 여직원, 그 틈에서 나 홀로 붕 떠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하게 전시실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24억짜리 목걸이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는 그 목걸이를 할 때는 어떤 옷을 입어야 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삼만 오천원 짜리 내 신발은 같이 신기 민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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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남편이 꼬맹이였던 때의 일이다. 당시 태권도 도장에 다니고 있던 초등학생 꼬맹이 남편은 어느 날 부터인가 하루에 두 번씩 태권도 도장에 나가기 시작했단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아침에 나갈 수 있었던 걸 보면 아마도 방학 때였나 보다.

어머님께서는 다른 아이들은 태권도 도장에 한 번만 가는데, 꼬맹이 남편만 하루에 두 번씩 가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지만 그저 운동하는 것이 재미있고 좋아서겠거니 하셨단다. 그러던 어느날 그 날도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태권도를 하고 와서는 신이 난 꼬맹이 남편이 어머님께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단다.

'엄마, 나는 태권도 도장에 공짜로 다니고 있어!'
'???'

무슨 말인가 했더니 도장비를 내고 한 번만 가면 돈을 내고 다니는 것이지만 두 번 가니까 공짜인 셈이라는 거였다. 게다가 사범님께서 여러 번 와도 괜찮다고 하셨기에 마음껏 공짜로 다닐 수 있게 됐다며 해맑게 웃더라는 것이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허허 웃고 마셨다는데,

어느 날 공짜로 다니는 것에 재미가 들린 꼬맹이 신랑이 돈을 벌어야겠다며 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공짜로 도장에 다니는 것에 성이 안 찬 나머지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이렇게 세 번 도장에 나가서 돈을 벌어 와야겠다는 것이었다.

태권도를 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온종일 태권도를 하러 가서 매번 땀을 흘리며 운동을 했으니 어린 것(??)이 얼마나 피곤했을까? 역시나 일주일 하더니 몸살이 나서 역시 제 나이에 돈을 번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그 이후부턴 공짜로 도장에 다니는 것에 만족을 했단다.

UAE Emarati emarat امارات اماراتي
UAE Emarati emarat امارات اماراتي by Bu_Saif 저작자 표시


그랬던 꼬맹이 신랑이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퇴근 후 집에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데 남편이 예의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좋아한다.

'여보, 나 오늘 6천원 벌었어!'
'???'

무슨 말인가 했더니 회사에 00도너츠에서 쓰는 것과 똑같은 커피 기계와 커피가 선물로 들어왔단다. 아침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일하다가 졸러서 한 잔 마셨으니 도합 6천원을 번 셈이란다. 오늘은 회사가 너무 바빠서 누구도 우유를 못 사왔는데, 우유만 더 넣어서 먹으면 커피값이 올라가니 다음부턴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말하는 것도 참 귀여운 우리 다솔이 아빠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하루에 백 잔 마시면??? 커피를 하루에 백 잔 마시면 대체 얼마를 아낀 셈이야? 고액 연봉자 부럽지 않겠다고 하는 다솔이 아빠.

당연히 우스개소리지만 고액 연봉자 되기 참 쉽다.

Happy President's Day
Happy President's Day by Cayusa 저작자 표시비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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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듣기엔 거짓말 같은, 주민등록번호가 두 개인 사람이 실제로 있다. 그것도 꽤 많이...... . 이미 짐작 하셨겠지만 그 운 없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나다. 이번 일을 처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 후 혼인신고를 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써 왔던 주민등록번호가 실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틀렸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결혼을 한 후 혼인 신고를 할 때 여자들은 '호적'을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옮기게 되는데, 나는 그 과정에서 호적상에 기재 돼 있는 주민등록번호가 주민등록등본이나 주민등록증에 기재 된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사무소에서는 먼 옛날(?) 내가 출생신고를 할 당시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이런 일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됐는지 지금은 당연히 알 수가 없기에 나는 이 억울한 상황을 하소연 할 대상이 없었다.

호적에 써 있는 낯선 주민등록번호와 지금까지 써 온 익숙한 주민등록번호. 사람은 한 명인데 번호는 둘이었다. 아귀가 맞지 않는 이 상황에선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는 말만 멍하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행정 기관에서 잘못한 일인 것 같은데, 그 때 그 기관도 아니고, 그 때 그 사람도 아니니, 웃는 낯으로 지금은 혼인 신고를 할 수 없다고 친절히 설명을 해 주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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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6883 pairs of scissors on the wall, 5376883 pairs of scissors, take one down, pass it around, 5376882 pairs of scissors on the wall by Bright Tal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설명을 들어 보니 주민등록번호를 택일 해야 된단다. 그런데 호적상에 있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 낯선 번호를 사용한다고 정하면 그 즉시 번호가 바뀌게 되고, 지금까지 써 왔던 틀렸지만 익숙한 옛 번호를 쓰려면 재판을 해서 바로 잡아야 된다고 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재판'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아마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게 될텐데, 나는 왠지모를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낯선 번호를 택했다. 나이 서른에 주민등록번호를 다시 외워야 할 상황에 이르렀지만 번거롭지 않는 편을 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주민등록번호를 바꾸자마자 내가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많아진 것이다. 기분 좋은 일은 주민등록증에 새로 찍은 잘 나온 사진을 넣을 수(공짜로) 있다는 것밖에는 없었다. 내가 거래하고 있는 모든 은행의 고객 정보를 바꾸어야 했고, 여권을 다시 만들어야 했으며, 주로 이용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도 연락을 해야 됐고, 얼마 동안은 새로 가입하려고 했던 인터넷 사이트에서 바뀐 주민번호와 실명을 연관짓지 못해서 애 먹었고, 주민번호가 헷갈려 이상한 사람 취급도 받았다.

그 이전까지의 내 모든 기록이 깡그리 사라지게 됐다.

Colorful Chaos
Colorful Chaos by Darwin Bell 저작자 표시비영리

그 무엇보다 가장 속이 쓰렸던 것은 새로 받은 주민등록번호의 생일이 예전 것 보다 빨라서 내가 가입해서 이미 십 년 넘게 부었던 여러 개의 보험료가 갑자기 인상돼 버린 것이다. 앞으로의 보험료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나간 것들까지 일시불로 정리해서 오십 여 만원을 더 내야만 했다. 모든 기록을 다시 쓰고 돈까지 더 내야될 줄 알았더라면 재판을 해서라도 예전 주민번호를 지키는 건데, 후회스러웠지만 도리가 없었다.

내가 추측하건대 앞으로도 나와 같이 주민번호를 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사람들이 꽤 있을 것 같다. 나처럼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함부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말고, 상세히 따져서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내 잘못도 아닌 상황에서 내가 본 피해가 크다면 큰데, 이걸 보상받을 길은 진짜로 없다는 말인가? 만약 있으면 그 방법을 아시는 분은 꼭 좀 가르쳐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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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정지영의 거부할 수 없는 달콤 목소리에 취에 잠도 떨쳐버린 채 라디오를 듣다가 재미있는 사연 하나를 듣게 됐다. 어떤 여자분이 문자메시지로 보낸 글이었는데 낮에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낯선 남자분에게 도움을 얻었고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연락처를 물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가슴이 쿵쾅거려서 잠을 못 이루고 있다는 그 청취자는 어떤 방법으로 그 남자에게 연락을 해야 자연스러울지 너무도 고민이 된다며 조언을 구해왔다.

우연히 서점에서 만나게 된 낯선 남자에게서 뜻밖에 호감을 얻게 되고(자세한 내용이 소개됐었는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난다. 이 죽일 놈의 기억력...... .) 어색하게 주춤거리면서 연락처를 물었고, 이제 남은 순서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것인데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단다.

사연을 보낸 여성분은 도움을 받은 남자분이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웠노라고 그래서 눈 딱 감고 연락처를 물었는데 남자분이 의외로 순순히(?) 전화번호를 가르쳐 줬다며 수줍게 고백을 했다.

Radio Daze
Radio Daze by Ian Hayhurs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이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경험했던 황당했던 일화가 하나 떠올랐다.

때는 바야흐로 모든 수험생들이 꿈 속에서까지 모의고사를 풀고 낮에 잠깐 조는 잠에서조차 시험에서 낙방하는 악몽에 시달리던, 중등 교원임용고사를 두 달 남짓 남겨 둔 어느 겨울이었다. 하늘이 늘 꾸물꾸물하고 9월말부터 겨울이 시작된다는 노량진에서 한창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 당시 나는 아예 짐을 싸 들고 학원 근처 창문도 없는 1.5평(!!!!)짜리 고시원 방에서 먹고 자며 공부 기술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학원에서 수업을 듣을 때빼곤 답답한 고시원 방에 콕 틀어박혀서 책만 보는 지리멸렬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 때 내가 본 것이 책이었는지 글자였는지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종이 쪼가리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암튼 늘 방에서만 공부를 하다가 너무 졸려서 어느 날엔 고시원에 딸려 있는 작은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독서실 안에는 예비 교사, 예비 경찰, 예비 행정 공무원, 예비 공인중계사의 책들이 가득했는데 정작 사람은 예비 대학생 한 명과 예비 국어 교사인 나, 딱 둘 밖엔 없었다.

Belinha has more than good looks
Belinha has more than good looks by betta design 저작자 표시비영리


졸려서 독서실에 갔는데 너무 세게 틀어져 있던 온풍기 때문에 더욱 졸음이 쏟아져서 나는 예비 대학생-재수생으로 보이는-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온풍기를 끄기로 맘을 먹었다. 온풍기가 천장에 달려 있었고 나는 키가 작으니 의자를 놓고 올라서서 온풍기를 꺼야만 했다.

윙--- 기계음이 나던 독서실이 일순간 조용해지더니 꺅 소리와 함께 뒤이어 나온 쿵 소리!

난방기를 끔과 동시에 내가 올라 서 있던 바퀴달린 의자가 움직이면서 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쳐 진 것이었다. 그 방엔 나보다 한참 어린 재수생밖엔 없었지만 그래도 남자였던지라, 나는 부끄러움이 밀려와 바로 일어나지를 못했다. 한참을 고꾸라져 있으니 걱정이 됐는지 그 예비 대학생이 나를 일으키러 왔다. 더욱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모든 일들이 잘 수습됐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채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책상 오른 쪽으로 슬쩍 초코 우유 하나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올려다보니 아까 그 예비 대학생이었다. 우유와 함께 그는 나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까 내가 소개했던 라디오의 사연에서는 서점에서 자기에게 도움을 준 어떤 멋진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 여성이 그 사람의 연락처를 물었다. 그런데 내 경험에서는 시험 공부에 지쳐 부스스한 어떤 여자(그것도 한참 연상)가 난방기를 끄다가 꺅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그것을 도와주었을 뿐인데 어떤 이유로 남자는 연락처를 물어 온 것일까? 그것도 초코 우유와 함께 말이다.

왠지 민망하라 것 같아서 그 날 이후로 다시 방에서만 공부를 했는데 내게 전화번호를 물었던 그 남자의 심리가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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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나중에' 나이가 더 드시면 꼭 전원주택에서 사시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집 주변에는 과일 나무도 심고 갖가지 채소들도 심어서 철마다 맛있는 과일과 신선한 채소를 직접 길러서 드실 거라고도 하셨다. 동물을 좋아하시니까 당연히 강아지도 기르실 계획인데 이왕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진돗개가 좋겠다시며 늘 그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과연 그 날이 오긴 할 지 의심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나중'이 되었다. 드디어 주변에 논과 밭이 널리고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에 우리집이 짠 생겼다. 오랜 시간 아버지의 머리 속에 그려져 있던 집이 실제 세상에 척 하고 나오자 시큰둥했었던 나도 신이 나서 이곳저곳을 둘러 봤는데, 아버지의 꿈의 실체가 이랬었구나 싶었다.



직접 설계에 참여하시고 작은 소품까지 하나하나 관여 하셔서 꾸며진 집에는 온갖 것들이 다 있었다. 천장을 유리로 만들어서 하늘이 보이는 작은 정원, 냉온욕을 할 수 있도록 욕조가 두 개 놓인 욕실(그 중 하나는 월풀), 잡동사니를 모조리 다 넣고도 공간이 넉넉해 숨바꼭질 할 때 숨고 싶은 다락방. 그 중에서도 황토로 만들어 숨을 쉰다는 찜질방이 이 집의 압권이다!

블로그를 통해서 하나하나 다 소개해 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게 지어진 우리-친정(이 집에 내 방은 없다.)집. 오늘은 집 밖에 아담하게 만들어 져 있는 연못을 좀 보여드리려고 한다. 겨울에 갔을 땐 연못이 꽝꽝 얼어서 거기 살고 있는 잉어들의 생사가 궁금했었는데 봄이 오고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물고기들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것 같은 돌들도 사실은 아버지께서 공을 들여 모양을 잡으셨고 곳곳에 심겨져 있는 식물들도 그렇다.

연못을 지나 저 멀리 보이는 빨간 우체통 역시 아버지께서 뚝딱뚝딱 만드신건데 반듯한 것이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아래엔 버려진 항아리를 화분 삼아 식물을 심어 꾸며 놓으신 게 보인다. 하나에서부터 아버지의 손길이 지나지 않은 곳이 없다. 호, 혹시 아버지는 타고난 집 꾸미기의 달인?!?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다솔이와 함께 하염없이 서서 연못 안을 들여다보며 알록달록 잉어들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해 보고도 싶다. 연못이 있는 빨간 우체통집에 또 놀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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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에서부터 이어진 계단의 맨 아래 칸에 서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 지 십여 분 남짓, 기다리는 사람도 특별한 까닭도 없으면서 나는 장승처럼 그 곳에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그렇게 해가 쨍쨍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비가 올 것을 알아 차렸을까?

빗방울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방 속에 다소곳이 보관해 두었던 우산을 하나씩 꺼내 들고 무심히 나를 스쳐 목적지를 향해 갔고, 정확히 2분 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나를 지나쳤지만 나는 그곳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보다 빗방울은 더욱 거세져 이제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나처럼 우산이 없어서 발이 묶였던 사람들 중에 더러는 오히려 젖는 것을 즐기는 듯 신나게 비를 향해 몸을 던졌고 더러는 포기한 듯 가방이며 신문을 머리에 쓰고 뛰기 시작했다.

슬슬 한기가 돌아서 나도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될 것이 분명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내리는 모양새를 보니 지나가는 비는 아니니 쉽게 그칠 리도 없었다. 이럴 땐 늘 첫 걸음이 어려운 것이다. 막상 빗 속으로 들어가 보면 예상외로 시원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심호흡을 하고 드디어 비를 맞으려는데 어디선가 우산 하나가 쓱 올라왔다. 우산 위로 파란 하늘과 구름이 보였다. 펼쳐진 우산 위에 하늘 그림이 그려져 있는 1단짜리 긴 우산이었다. 누굴까, 내게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은...... . 사거리 약국까지 씌워 드릴게요. 고개를 돌려 보니 앳된 여대생이었다. 긴장했던 마음이 푹 놓이며 고마움이 마구 샘솟았다. 정말 고마워요.

When it rains...
When it rains... by EJP Photo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5년도 넘은 어느 날의 일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세차게 비가 내리는데 우산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 특히 여학생이나 아주머니를 보면 꼭 그들과 함께 우산을 쓰고 간다. 방향이 달라 얼마 못 가서 헤어진 경우도 있고 우리집 근처까지 행선지가 같아서 꽤 오래 같이 걸은 적도 있다.

동성이긴 하지만 낯선 사람과 한 우산을 쓰고 가는 것이 어색한게 당연하니까 어떨 땐 너무 서먹해서 괜히 잰걸음으로 걷기도하고, 우산이 작아서 어깨가 젖기도 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해져 오는 뜨뜻하고 흐뭇한 그 무언가가 있어서 나는 5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산 나눠쓰기를 하고 있다.

물론 내가 우산을 얻어 쓴 적도 참 많다.

동성에게서 받은 호의이기에 그 속에 혹 '흑심'이 있지나 않을까 의심하지 않아도 되니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서도 쉽게 친절한 마음을 베풀 수도, 기꺼이 받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내일도 비가 내린다던데 깜박하고 우산을 잊고 나온 사람이 눈에 띈다면, 함께 우산을 쓰고 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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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면서도 몸에 좋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뭘까? 조금만 신경을 쓰면 적은 돈으로도 근사한 영양 다이어트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마흔이 넘는 나이에도 어린 피부를 자랑하던 어떤 아줌마(텔레비전에서 본 동안 선발대회 출신)의 비법은 결혼하면서부터 매일 먹었다는 올리브 기름과 익힌 토마토. 요즘처럼 토마토가 귀한 시기엔 장바구니에 토마토를 담으려먼 손이 벌벌 떨리지만 피부과나 비싼 화장품에 비하면 세발의 피니까 눈 딱 감고 먹어 주기로 한다. 

지갑에 돈이 가득(?)하지만 집에만 있기 때문에 전혀 쓸 일이 없었던 나, 나를 위한 투자로 먹는 데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기로 결심했다. 토마토, 연어, 파프리카, 브로콜리, 닭 가슴살. 이 다섯 가지가 내가 선택한 건강한 먹거리인데 솔직히 그 동안엔 매일 구입하기엔 좀 망설여지는 때가 많았다. 채소값이 너무 올라서 볼품없는 브로콜리 한 송이에 2천원이 넘어가고 파프리카의 가격엔 입이 딱 벌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올해부턴 내가 선택한 이 다섯 가지 건강 먹거리 만큼은 풍성하게 맘껏 먹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실천하는 중이다.
 
오늘 아침엔 중국에서 배워 온 달걀 토마토 볶음과 연어 샐러드를 먹었다. 중국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달걀 토마토 볶음을(거기에 물을 붓고 향채를 넣으면 달걀 토마토 국이다.) 먹는데 올리브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달걀을 풀어서 볶다가 잘게 썬 토마토를 함께 넣어 볶으면 끝(기호에 따라 소금도 적절히)!

마침 마트에서 방울 토마토를 할인 행사 하고 있기에 얼른 한 상자 집어 왔다. 전단지 할인 행사라 가격도 착했다. 거기다 하나 가격에 2개 묶음으로 팔고 있는 훈제 연어를 양상추에 곁들이고 소스대신 기름 뺀 참치와 파프리카를 약간의 마요네즈와 버무려서 얹어 먹었더니 참 맛있는 연어 샐러드가 됐다.

바쁜 아침 식사로 먹기에 딱 좋은데 배도 부르고 차리기도 쉬우니 영양가 있는 다이어트 음식을 찾고 계신 분들은 따라 해 봄직하다. 게다가 연어는 다크 서클을 없애주고 피부에 윤기도 준다니 피부가 까칠해지기 쉬운 지금 같은 때에 딱 알맞은 음식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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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부싸움은 며칠 지나면 왜 다투었는지, 정말 다투긴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소소한 이유 때문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화성에서 왔느니 금성에서 왔느니 식상하게 다시 이야기하지 않아도 원래부터 다르게 살아 온 두 사람이기에 늘 쿵짝이 잘 맞을 수는 없고 가끔씩 욱하거나 꽁해질 때가 있다. 오히려 욱할 땐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하니까 일이 쉽게 풀리지만 꽁할 때가 문제다.

작은 삐걱거림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이야기 하는 것이 치사하게 느껴져서 속으로 삭이는 순간, 곧 우리 부부의 전쟁은 시작된다. 내가 갑자기 입을 꼭 다물고 꽁해지는 것은 곧 선전포고이며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싸움이라고 해 봤자 별 것 없다.

나는 나 대로 남편은 남편 대로, 각자 자신의 컴퓨터만 노려 보면서 몇 시간이고 버티는 것, 침묵하는 것,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나도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 텔레비전에서 우스운 장면이 나와도 혀를 깨물며 웃음을 참는 것, 배가 고파 꼬르륵 소리가 나도 '밥'이란 단어를 먼저 꺼내지 않는 것, 그러다 자신의 휴대 전화가 울리면 아무렇지도 않는 심상한 아니 쾌활한 목소리로 신나게 통화를 하는 것. 그래서 손하나 까딱 않고 상대의 마음을 할퀴는 것...... .

우리의 싸움은 오래 버티기 내기와도 비슷해서 더 많이 화가 날 수록 더 오래 꽁해져 있는데, 이럴 때 남편이 먼저 미안하다고 그만 화 풀라고 너스레를 떨어 주면 참 좋으련만 '당신의 행복은 나의 행복, 당신의 불행은 나의 불행'을 무슨 공식 처럼 외우고 있는 내 남편 님은 '당신의 꽁은 나의 꽁'으로 응수해 버리니 참 심란하다.

늘 그래왔기에 나는 내가 화를 푸는 순간 마법이 풀리듯 남편의 화도 풀리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일정시간을 버티면서 스스로 속상했던 감정을 달랜 후에는 남편과 현명하게 화해하기에 돌입한다. 컴퓨터를 하다가 잠깐씩 남편을 쳐다보는 것, 책이나 달력을 보며 뜻도 없이 괜히 혼잣말을 하는 것, 간간히 웃는 것 그러다 다시 한번 남편을 바라 보는 것 등이 전쟁의 끝을 알리는 신호이며 이제 그만 휴전하고 싶다는 전갈이다.


그러다 문득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깍둑깍둑 재료를 손질하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면서 남편에게 간을 봐 달라고 한다. 나는 이미 남편의 식성을 잘 알고 있는 일등 아내이므로 평소에는 간을 봐 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지만 이럴 땐 찌개를 호호 불어 남편의 입가로 가져 가는 것이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밝은 음색으로 남편을 부른다. '당신의 행복은 나의 행복, 당신의 불행은 나의 불행'이 공식이니 당신의 화풀림을 대입하면 당연히 나의 화풀림이라는 답이 나온다.

또 어떨 땐 뜬금없이 책을 읽겠다는 표현을 하면서 하필이면 꼭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한 책을 남편에게 좀 내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려진 책이 '명심보감'일 때도 있지만 당연히 상관없다. 나도 남편도 그 책의 제목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말이다.

한편 가장 쉬운 화해 방법은 역시나 아이를 이용(?)하는 것인데 둘이서 아기 목욕을 시키거나, 옷을 갈아 입히거나 발달 상황을 점검해 보거나 혹은 꺄르르 웃는 아기의 얼굴을 바라 보게만 해도 남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을 스르르 풀어 버리게 된다.

여자의 마음은 복잡한 실타래 같아서 그것이 꼬여 버리면 하나 하나 풀어내기가 어간 어렵지 않으나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엉킨 부분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 버리면 손쉽게 원상복구 시킬 수 있는 것 같다. 남자 친구나 남편들과 작은 다툼이 있었을 땐 어떤 방법을 쓰든 상관없이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웃고, 무언가를 같이하면 남자들은 어느새 전투 중이었음을 잊고 대답하고, 따라 웃고, 동참해 줄 것이다. 단, 사소한 다툼이었을 때에 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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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 지 얼마 안 되는 가은이 엄마는 나와 동갑내기이다. 고등학교때부터 친하게 지내 온 내 친구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골드(?) 미스들이 많아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마음을 완전히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은이 엄마는 일찍 결혼한 까닭에 벌써 두 아이의 엄마이고 나와 여러모로 잘 맞는 것 같아서 나는 그녀와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신나는지 모른다.

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서 '시집살이요'를 같이 배웠지만 시집 무서운 줄 모르는 친구들에게 시금치가 쓰게 느껴지는 까닭을 백 번 이야기 해 봐야 헛일이요, 아기라고는 명절 때 조카들 얼굴 잠시 본 친구들이 내가 걸렸던 유선염의 아픔과 아기 키우는 재미를 이해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은 서로 존대를 하는 가은 엄마와 얼른 친해져서 가끔은 남편 흉도 좀 보고 때로는 육아 문제도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가은 엄마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아이도 일찍 낳아서 큰 아이 가은이가 벌써 여섯 살이 됐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다솔이를 안아 보며 귀여워 하는 그녀에게 나는 '무심코' 셋째 계획은 없냐고 물어봤다. 정말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그랬는데 가은 엄마는 '저도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가은 아빠가 괜찮다고, 딸 둘이라도 괜찮으니 잘 기르자고 했어요'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식당 놀이방에서 가은이와 함께 손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는 가희가 눈에 들어왔다. 딸만 둘인 가은, 가희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들 계획 없냐'는 얘길 들어왔으면 별 뜻없이 한 내 말에 그렇게 반응했을까. 나는 정말 미안해져서 엄마에게는 아들보다는 친구같은 딸이 더 좋다며 나도 둘째는 꼭 딸을 낳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지만 내 진심이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한편, 다솔이가 백일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였다. 그 사진관에는 미리 촬영을 하고 있던 아기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돌사진을 찍으러 온 듯 보였다. 그 아이의 촬영이 끝나고 다솔이 차례가 되어 나는 내 아들의 활약을 신나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아기들이 사진 찍을 때 부모는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 밖엔 할 일이 없다.) 앞서 사진을 찍었던 그 아이도 다솔이의 모습을 함께 보고 있었는데 나는 또 '무심코' 아이를 안고 있던 아이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아기 몇 킬로예요?' 나는 그저 돌 즈음이 되면 아기들의 몸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 지가 궁금했었을 뿐이었다.



아이 엄마는 조금 당황하는 듯 하더니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고, 그러나 절대로 아기가 약하지는 않다고 완고하게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그 엄마가 아기의 몸무게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다솔이가 신생아일 때 한동안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가서(2.5kg남짓) 매일 매일 체중만 점검하던 때가 떠올랐다. 다시 봐도 그 아기는 그렇게 말라보이지 않았는데도 엄마 된 입장에서는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던진 내 말이 그녀의 아픈 곳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낯선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줌마가 되니 왜이리 오지랖이 넓어지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일에도 이러쿵 저러쿵 참견하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실수를 몇 번이나 저질렀을까. 말은 어떨 땐 칼보다 더 날카롭기도 하다 그러므로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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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서의 일이다. 밖이 그렇게 추웠나? 새삼스레 창문을 여시고 바깥 날씨를 가늠하는 엄마께 그저 헤헤헤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이동하고 마트 안은 따뜻할 것이기 분명하므로 얇은 니트 가디건 하나 걸치신 엄마와는 달리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완전무장이었다.

귀까지 덮는 군고구마 장수 모자에 목 위까지 깃을 올린 패팅 점퍼에 어그부츠까지. 몸 안으로 바람 한 점 안 들여 보내겠다고 작정을 한 것 같이 보였을 것이다. 그 위에다 목도리를 두를까 마스크를 쓸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역시 마스크가 더 안전할 것 같아서 눈만 빼꼼 내 놓고 마트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 마트 안은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바글거렸고 나는 내 똑똑한 판단력을 기특해하며 안심하고 장을 봤다. 난방을 얼마나 했는지 삐질삐질 땀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나는 털모자를 벗지도 마스크를 내리지도 않았다. 좀 갑갑하고 불편한 것이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내 친정은 경북 안동이다.
서울 사람들은 절대로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지역의 번화가 풍경인데,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에게?' 정도 될까? 무슨 뜻이냐 하면 친구와 함께 시내 중심에서 약속을 하고 음, 구체적으로 안동에서 가장 큰 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그 친구와 만나 서로 간단히 안부를 물은 후 커피를 마시든 밥을 먹든 분위기 좋은 곳을 골라 들어가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십여 분 쯤 거리를 배회했다고 치자.

오랫만에 만난 친구라 할 말도 많고 마땅히 들어갈 장소도 없었다면? 아마 이들은 십여 분 동안 시내를 세 바퀴쯤 뱅뱅 돌며 모든 밥집, 찻집 간판을 다 훑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일 것이다. 한참 얘기를 하다가 마주 오는 행인이 낯이 익어서 어디서 본 사람이었더라, 기억을 더듬으면 아까 두 바퀴째 돌 때 나를 앞질러 가던 사람이고 그 사람과 또 마주칠 확률은 70% 이상. 지역의 번화가는 주말에도 비교적 한산하기 때문에 좀 길게 놀 경우 같은 사람과 다섯 번 이상 마주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까닭에 나는 친정에 내려갈 때면 집 앞에 있는 수퍼마켓에 갈 때에도 추레한 몰골로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손바닥 보듯 빤한 동네에서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다녔다간 금세 누군가에 눈에 띌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었다는 소리, 늙었다는 소리, 살 쪘다는 소리는 진짜 듣기 싫은데 동창이라도 만나게 되면? 생각만해도 자존심이 상한다. 몰골이 말이 아닐 땐 아예 집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가야 될 땐 비비크림에 립글로스는 필수, 머리가 부스스하다면 모자는 선택이다. 귀찮음이 극에 달해서 씻기는 싫고 장은 봐야 되면 완전무장으로 신분을 숨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기 낳더니 아줌마 다 됐네, 역시 나이와 주름살은 속일 수가 없어, 어머! 쟤 살 찐 것 좀 봐. 평생 이런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이 모든 여자들의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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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예쁘장한 여학생 한 명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톡톡 치는 것이 눈에 띈다. 한 눈에 봐도 '도'를 공부하고 있는 아가씨가 분명하다. 옛날이었다면 모를까 이제는 언론을 통해서도 정체가 들통난 마당에 그녀의 손길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을 터. 역시나 행인들은 벌레라도 본 듯 몸서리치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만하면 상처가 될 만도 한데 여학생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오히려 터질듯 방긋거리며 또 다른 사람의 어깨를 톡 건드린다.

초보인가, 아무나 붙잡고 늘어지는 폼이 한 명에게도 '도'를 전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경기 탓에 도의 세계도 먹고 살기가 힘든 까닭인지 이 사람 저 사람 닥치는 대로 일단 붙잡고 보려는 심산인 듯 보였다. 그래도 예전에는 관상을 보는 척(얼굴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는 말을 해야 되므로) 한참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가 적당한 목표물(?)이 나타나면 말을 걸던데 이제는 딱 봐도 아무나 집적댔다.

나는 한 때 사나흘에 한 번 꼴로 '도를 아십니까?'에 걸렸었다. 길을 물으려나 싶어 대꾸를 했다하면 백발백중, 내 미모에 반해서 말을 거나 생각하면 역시나! 얼굴에서 이상하게 기운이 느껴진다며 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속삭이던 사람들이었다. 죽상을 하고 다닐 때였으니까 노량진에서 교원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몸이 피곤하거나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꾸미지 못했을 때, 그래서 몰골이 말이 아닐 때 꼭 그런 사람들에게 붙잡였었다.


하루는 나이가 좀 있는 아줌마와 젊은 여자가 학원 수업을 받고 집으로 가는 나에게 도를 권하길래 대체 어쩌려나 보려고 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척을 했다. 그랬더니 가까운 커피숍에 가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좀 하잔다. 얼른 눈에 띄는 곳에 셋이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는데 나더러 계산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나를 위한 것이니까 내 정성이 들어가야 된다고...... . 그럴 줄 알았음 멀더라도 편의점으로 가는 거였다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쨌든 나이 든 아줌마는 사주를 보듯 내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묻더니 내가 덕을 많이 쌓아 조상님들이 나를 도와주신다고 듣기 좋은 말들을 쫙 늘어놓았다. 앞으로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이고 집안 식구들과 내 건강은 어떤지 지난 날에 힘든 일은 없었는지 물으며 이야기가 한참을 빙빙 겉돌더니 결국 종착한 곳은 '돈'이었다. 조상님들이 내 앞길을 터 주시려고 애쓰는 만큼 나도 그에 맞는 보답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성의껏 재물을 준비해서 제사를 준비하면 되는데 당시 나처럼 백수인 사람들은 보통 백만 원 정도로 한다고 했다. 지역별로 제사를 지내는 곳이 마련 돼 있는 듯 나에게 OO동으로 얼른 같이 가자고 부추겼다. 아무리 들어도 허무맹랑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커피값 만 이천 원이 아까워서 죽을 지경인 나에게 백만 원을 준비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대낮에 커피숍에서 듣기엔 참 민망하고도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대체 이런 아줌마와 왜 함께 다니는지 궁금하기도 걱정스럽기도 해서 젊은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는데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도 인상이 안 좋아서 너무 놀랐지만 짐짓 태연한척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도 그녀는 묵묵부답. 대신 아줌마가 대답을 해 주었다.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안 좋은 기운을 그녀가 온몸으로 다 받아내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할 수도 없고 저리도 힘들어 하는 것이란다. 뭐 아까는 내 얼굴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보인다고 하더니 손바닥 뒤집듯 잘도 말이 바뀌었다. '네, 잘 들었어요'하고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은데, 오랫만에 한 건 올린다 싶어 열변을 토하던 아줌마가 쉽사리 놔 줄리 없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겨우겨우 그녀들에게서 벗어난 것 같다.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호기심에 그녀들을 따라갔었는데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니었을까? 해맑은 얼굴로 사람들 사이에 서서 도를 권하는 여학생이 참 추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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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조리극이 따로 없었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 그럴 수밖에 없다는 듯, 온 가족들은 각자 있던 자리에서 모두 나와 거실로 모였지만 모두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다. '아, 내 글, 내 글, 날렸으면 어떡하지'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 나를 비롯하여 무슨 일인지 재차 확인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곧이어 할 텔레비전 드라마를 아쉬워하는 동생과 틀림없이 내일 아침까진 이럴 것이라는 아버지의 체념까지 전부 자신의 말만 잔뜩 쏟아놓았다.

밤 10시가 가까웠을 때였다. 갑자기 '팟'하는 소리와 함께 일순간 어둠이 해일처럼 나를 덮쳤고 불빛하나 없는 방안에서 잠시 두려움에 몸을 떨었던 것 같다. 곳곳에 있던 가족들은 하나같이 이게 무슨 일이냐며 더듬더듬 길을 찾아 거실로 모였는데 각자 처한 상황이 달라서인지, 모두들 걱정이 컸기 때문인지 우스꽝스러운 현대 부조리극의 한 장면처럼 자기 말을 하기에 바빴다.

그 극의 주인공은 단연 '나'였던 게 분명한데 가장 심하게 절규한 사람도 가장 나중까지 안정을 찾지 못한 사람도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내 글'을 외치며 소파에 얼굴을 잠시 묻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내 글'을 외치다가 옆에 있던 곰인형을 흔들면서 '안돼'라고 소리친 것도 나였다. 몇 분간 아수라장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내 양초를 찾아 불을 켜고 전력 공사에 전화를 거는 등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나는 컴퓨터로 쓰던 글이 한꺼번에 날아 갔을까봐 끝까지 전전긍긍했다.



휴대폰을 켜 주변을 조금 밝힌다음(휴대폰을 발명한 사람에게 축복을) 양초를 2개 찾아 불을 켰다. 그것만으로도 실내는 꽤 밝아졌고 심지어 낭만적인 분위기마저 만들어졌다. 새삼스럽게 전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우리집은 전기레인지로 밥을 해 먹고 수돗물도 전기를 통해서 끌어오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전기는 소중했다. 심지어 화장실 물도 내릴 수 없었다.

옛날 사람들은 호롱불 하나 켜고도 살았다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새삼 존경스러웠고 동시에 안쓰러웠다. 야행성인 우리는 다음날 아침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경우 이 밤을 무엇을 하면서 보낼 것인지에 관해 조금 이야기를 했는데, 어디서 '몰래카메라'라도 찍고 있는 듯 정말 우스운 장면이 연출 됐다. 주전부리라도 있으면 그걸 먹으면서 시간을 보낼텐데 그 날따라 사다 둔 과자도 없고 물을 끓일 수 없으니(전기레인지) 라면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부조리극에서 코미디로 장면이 바뀐 듯 엄마께서 할 수 있는 건 운동 뿐이라시며 다이어트공 위에서 탱탱탱 몸을 튕기시자 아빠도 덩달아 훌라우프를 돌리기 시작하셨다. 시간은 열시 삼십 분이 조금 넘었고 집 밖도 하나 같이 깜깜한 것으로 보아 온 동네가 정전인 것이 분명하고 우리 집은 수개월 전 '00동'에서 '00리'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촌동네라 금방 고쳐질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일찍 잘까 더 기다려 볼까 고민을 하다가 누워서 기다리겠다는 절충안을 내고 소파에 드러 누워 버렸다.


다이어트 공이 탱탱탱 굴러가는 소리와 훌라우프가 휙휙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락말락하는 사이에 불빛이 몇 번 깜박깜박 하면서 불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더니 거짓말처럼 눈 앞이 환해졌다. 그세 정전의 원인이 밝혀진 모양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가족들은 재빨리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왔고 집안 분위기도 다시 활기차졌다. ...... 나만 빼고.

다시 켠 컴퓨터 속에 역시나 내 글은 존재 하지 않았고 다들 평온을 되찾았는데 나 혼자만 더 큰 절규를 외쳤다.
'내 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전을 경험해 보니 전기는 진짜 진짜 소중한 존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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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아버지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계셨다. 그 날 따라 일이 너무 많은 탓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으셨단다. 야간 운전 중 최대의 적은 졸음이고 아버지도 어김없이 졸음과 싸워야만 했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기를 수십 번. 애를 써 봤지만 너무 피곤하셨기에 당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에 빠져 버리셨고 얼마 쯤 지났을까,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떠 보니 어찌 된 상황인지 눈 앞이 깜깜하셨단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을 있는 힘껏 밟으셨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사고를 예감하시곤 운전대에 머리를 숙이고 담담히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셨는데...... .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고개를 드시고 천천히 좌우를 살피며 상황을 가늠했는데, 당신이 앉아 계시던 곳이 차 안은 맞았으나 자동차가 있던 곳은 고속도로 위가 아닌 휴게소 주차장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지 않는 까닭에 '필름이 끊기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지를 못하셨었는데, 이번에 '술'이 아닌 '잠'에 취하셔서 난생 처음으로 필름이 끊기는 경험을 하시게 된 것이었다. 한참 후에야 기억은 조각조각 돌아왔고 그 조각엔 휴게소 주차장에서 잠깐 주무시기로 한 아버지의 모습도 있었다.

'아빠, 그럴 땐 이 방법을 쓰시면 되는데요...... .'
내 머리를 스치고 간, 잠을 쫓아내는 용한 비법이 있어 아버지께 전수해 드렸다.

나는 예전에 몸서리나는 '임용고사' 시험을 대비해서 공부했었다. 3년 동안 한 공부로도 임용에 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공부하는 기술은 꽤 익혔다. 야간 운전과 마찬가지로 시험 공부를 할 때에도 가장 큰 적은 졸음이다. 교사 임용 시험은 1년에 한 번 밖에 없고 그 시험에 불합격하면 또다시 1년을 공부해야 했기에 수험생들은 누구나 자기 몸을 던져서 공부를 해야만 한다. 장기간 공부를 하는 까닭에 늘 피곤에 쩔어 있었고 항상 잠이 부족했다.

그 때 나는 졸음을 한 방에 해결하는 비법 하나를 터득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건강에는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커피 더하기 ㅂ카스' 이것이 내가 남몰래 써 먹던 비법인데 너무 싱거운가? 그런데 정말 효과가 있다. 계획했던 공부의 양에 비해 성과가 턱없이 부족할 때, 당장 모의고사가 코 앞인데 책상에서라도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이 죽을 지경일 때 이 방법을 한 번 써 보자. 정말 용하다.

나는 원래 갈색 병에 들어 있는 음료를 마시지 못했다.(맥주는 제외하고) 어린 시절 엄청나게 구역질 나던 물약으로 된 멀미약이 갈색 병에 들어 있었던 까닭에 그것을 연상시키는 다른 음료까지 마시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누구에겐가 물 밖으로 튕겨져 나가 다 죽어가던 금붕어에게 ㅂ카스를 부어 주니 기력을 회복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를 들었다. 들을 땐 웃어 넘겼지만 공부를 하다가 몸이 너무 힘들었을 때 믿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갈색병에 든 ㅂ카스를 마셔 보았는데 생각보다 맛도 괜찮을 뿐만 아니라 꽤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을 응용하여 졸음이 쏟아져 더 이상의 공부를 하기 힘들 정도가 될 때 가끔씩(장기적으로 먹으면 몸에 좋지 않으므로 절대로 ㅂ카스를 자주 마시면 안된다.) '커피 더하기 ㅂ카스'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고 연이어 ㅂ카스를 마셔 주는 것인데, 어마어마한 양의 카페인이 한꺼번에 몸 속으로 쏟아져서 그런지 마시는 순간 마약한 사람처럼(물론 마약을 한 사람의 모습이 어떤지 정확하기 알 지는 못한다.) 기분이 두둥실 뜨면서 묵직했던 몸까지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하루 정도는 말짱한 정신으로 밀린 공부를 말끔히 끝낼 수 있다.

공부를 하든, 운전을 하든 이길 수 없는 졸음 때문에 너무 힘이 들 땐 커피 더하기 ㅂ카스를 마셔보자. 다시 한 번 당부해 드리지만 절대로 자주 이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 보름에 한 번 꼴로? 그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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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 보는 순간 쏙 빠져들게 돼 버린 드라마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 나왔던 이야기다. 극중 나반석(최철호)은 너무 반듯하고 순수해서 연애에 서툰 한의사인데, 자신이 반한 여자 이신영(박진희)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기로 어렵게 결정한다. 영국에 일이 있어 다녀오면서 그녀를 기쁘게 할 선물을 하나 사 오는데 그것은 바로 초콜릿이다.

서른 넷의 남자가 동갑내기 여자에게 줄 귀국 선물로 고른 것이 초콜릿이라니, 그 남자 참 몰라도 너무 모른다. 편지 한 장 없이 달랑 초콜릿 한 상자를 선물하다니 좀 심하잖소!(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선물이 있다며 나반석이 며칠 전부터 약속을 잡았었고 이신영은 그것을 건네 받으러 인천공항으로 마중까지 나온 상황이다.) 친구들과 함께 선물을 열어 보았다가 당황한 이신영은 친구들과 일일이 초콜릿을 녹여 먹으면서 그 속에 들어 있을 지도 모를 '반지'를 찾는다.

첫 선물로 웬 반지? 하시겠지만, 열정이 넘쳐 앞서나가는 것이 '달랑' 초콜릿 한 상자 던져주는 것 보다야 낫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을 더듬어 봐도 초콜릿으로 좋아한다는 고백을 주고 받던 것은 초등학교 때나 하던 일이니까 말이다. 혹여 오해를 하실까봐 미리 말씀을 드리는데, 절대로 선물의 '가격'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초콜릿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너무 순수하다.


결국 선물이 정말 초콜릿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여자들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 남자를 폭탄으로 규정짓는다.(명색이 한의사인데.) 남자에 목숨거는 여자 정다정(엄지원)마저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가면서 어떻게 이 남자와 사귈 수 있냐며 나반석을 거부했다.

참 애석하게도 여자들은 뻔히 알면서도 '선수'에게 마음이 끌리는 반면, 착한 것이 틀림없는 순진남을 보면 한숨부터 나올 때가 많다. 고급 기술을 구사하는 바람둥이를 만나 된통 당해 울지언정 순수한 폭탄남 때문에 속터지는 것 보다야 낫다고 생각한다. 너무 착해서 헤어지기가 죄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남동생이 적극 추천해서 보게 된 케이블 방송 '총각 연애하다'에 나오는 무수한 총각들도 청정지역에 살고 있는 순수남인 동시에 폭탄이다. 총각들과 소개팅을 한 여성들은 하나같이 남자들이 착한 것은 알겠는데 절대로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고 고백한다. 내 동생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방송이라며 '총각 연애하다'를 소개했지만, 내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소개팅녀들처럼 행동을 했을 것이다.


연애경험이 전무하여 여자들의 마음을 전혀 들여다 볼 줄 모르는 순진한 남자들, 자신들의 실수 때문에 화가 나 있는 여성들을 보고 오히려 자신의 매력에 빠져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가엾은 남자들, 여자친구들에게 줄 선물이라면 서른이 훌쩍 넘었어도 맨먼저 꽃 한 송이와 곰인형을 떠올리는 철없는 남자들, 여자들이 아무리 암시를 줘도 전혀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허허 웃기만 하는 속없는 남자들...... . 정말 미안하지만 폭탄이라고 부를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이들이 영영 폭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롤러코스터 중 '여자가 화났다'를 열심히 보면서 여자들의 심리 상태를 열심히 공부하고 주변에 친구인 여자들을 만들어 그녀들과 자주 교류하다보면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순진한 남자들은 다른 이유로 폭탄이 된 것이 아니라 너무 몰라서 폭탄이 된 경우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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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인 지 모른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한 책을 읽은 것이. 남편이 육아책을 한 보따리 선물(?)해 주어서 숙제하듯(뭐,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서도) 읽거나 남편의 책장에 꽂힌 경제, 경영 책 중 제목에 끌리는 것들만 골라서 읽다가 포기하다가를 반복했었다. 나를 위한 책,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소설책은 어떤 게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막연히 '시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워낙 오랫동안 책을 안 사다 보니 요즘 나온 책 중에 어떤 책이 재미있는지 자신있게 고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솔이가 이유식 할 때가 돼서 관련 책을 고르려고 인터넷 서점에 들렀다가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를 쓴 작가다.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부터 귀가 닳도록 듣던 문제작인데, 이삼십대 여성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소설로 통했다. 돈이 궁하던 시절이었기에 되도록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애를 썼지만 워낙 인기있던 책이라 2년이 넘도록(!!!) 대출에 실패해서 결국 사서 봐야 했던 책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고 나서는 나도 스스로 '정이현' 전도사가 됐는데, 최강희, 지현우, 이선균이 출연했던 동명의 드라마는 최강희의 머리 모양과 옷 입는 스타일만 유행시키곤 쫄딱 망했었다. 그 정이현 작가가 새로운 소설 <너는 모른다>를 내 놓은 것이다.

앗싸 가오리! 어떤 제품이 좋을 지 모를 땐 명품을 구입하면 되듯, 어떤 책이 재미있을 지 모를 땐 아는 작가의 책을 사면 된다. 아기 이유식 책은 뒷전으로 하고 나는 얼른 이 명품책을 구입했다. 얼마 후 책이 도착했고 나는 들뜬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첫장을 열었다.

배신! 처음 몇 장을 읽고나서 내가 느낀 감정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고 나서 너무 감탄해서 정이현 작가의 다른 소설도 모두 찾아 읽어 봤다. 그랬기에 나는 그녀의 소설이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녀 특유의 적나라한 냉소가 때때론 내게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소설은 이전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배신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소설 전반에 깔려 있는 음울한 기운에도 불구하고 뒷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서 한 번 펼친 책장을 쉽사리 덮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 미안했지만 딱 하루만 다솔이에게 불량 엄마가 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젖만 물리고 나머지 시간은 되도록 오래, 되도록 많이 자게 한 후 다솔이와 놀아주는 대신 책을 읽었다.

책장을 넘길 수록 이야기 속에 깊이 빠져들었고 시간이 지날 수록 더더욱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됐다. '배신'이라던 생각은 '역시'라는 감탄으로 바뀐지 오래였다. 진짜 진짜 진짜 재미있었다. 이 소설 속에는 참 다양한 상처를 숨기고 살아온 사람들이 나온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서로 소통하지 않기 때문에 속으로만 앓고 있다. 이혼과 재혼의 과정을 겪으면서 가족 구성원들 개개인의 삶에 생겨버린 어쩔 수 없는 생채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스스로도 가벼운 상처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속으로 곪고 터지기를 반복하면서 몸 전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다.

드러내기 싫은 속내까지 철저하게 보여진 이후에 바닥까지 내려갔던 뭉개진 자존심도, 절대로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가족간의 사랑도 다시금 되찾게 된다. 소설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 모든 내용을 공개해 버리면 안되니까 두루뭉술하게 썼지만 결론은 아주 재미있다는 것!

비록 영화 <올드보이>처럼 볼 땐 너무 재미있어서 감탄을 했지만 다 보고 나서는 마음 속에 무언가 묵직하고 찜찜한 것이 남는다는 것이 흠이지만, 그만큼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주는 책이기도 하다. 나처럼 재미있는 소설책을 찾아 헤메는 분들께 자신있게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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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그[(명사) 1. 마루나 방 바닥에 까는 거칠게 짠 직물 제품 2. 무릎을 덮는 담요]'에 관한 강의를 듣고 와서인지 이제는 인테리어 잡지를 봐도 텔레비전 드라마를 봐도 내 눈에 먼저 들어 오는 것은 보송보송한 러그다. 문맹이 글을 깨치고 나면 그저 배경에 불과했던 각종 간판들의 글자들이 눈에 띄고, 인쇄물에 있는 글자들이 읽혀서 눈을 뗄 수 없는 것 처럼 이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러그들이 보는 족족 나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고보니 그럴싸한 공간엔 늘 러그가 있었다. 아기가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을 보며 행복하게 웃는 가족이 있었던 기저귀 광고 속에도, 신혼 부부가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평안한 오후를 보내던 오렌지 주스 광고 속에도, 꼬마가 문제를 푸느라 머리를 싸맨 모습이 귀엽던 학습지 광고 속에도 언제나 러그가 있었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아기의 무릎을 폭신하게 감싸주던 포근한 느낌의 러그가, 신혼의 단꿈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어주던 소파 아래의 러그가, 꼬마의 방을 더욱 귀엽게 표현해 주던 러그가 늘 있었던 것이다. 그저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

잡지 속 인테리어 사진을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러그가 사실은 꽤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집이지만 어쩐지 허전하게 느껴질 때, 작은 크기의 러그 한 장만 깔아 보면 훨씬 더 아늑하고 세련되게 집을 연출 할 수가 있다. 소재와 색에 따라 러그 전체의 크기와 직물의 길이에 따라 주는 느낌이 천차만별이어서 러그를 깔 공간이 갖는 기능과 안주인의 개성에 따라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러그가 멀게 느껴지는 까닭은 왠지 모르게 비싸보이기 때문인데, 요즘에는 실용적으로 나온 제품들이 많으므로 안목이 있는 사람은 인터넷으로 저렴한 것을 구매할 수 있다. 안목을 갖기 전에는 무조건 많이 만져보고, 멋지게 꾸며 놓은 것들을 많이 보러 다니며 안목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동대문이나 지하 상가에 발품을 팔면 팔 수록, 잡지 속 사진을 보면 볼 수록 눈이 깨치게 된다.

비싼 것은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에 이르는 것도 물론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뭣 하러 그리 비싼 러그를 사서 '모시고' 사는가 싶다. 십만원대(이것도 생각에 따라서는 비싸겠지만)의 러그로도 훨씬 더 아늑하고 분위기 있는 집을 연출할 수 있다.


내가 배운 것에 따르면 거실 소파 아래나 침대 발치에 러그를 까는 것이 가장 쉽고, 좀 더 작은 크기의 러그를 아이들 방의 의자나 책상 아래에 까는 것도 멋스럽다. 현대적인 무늬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며 단순한 거실은 단색보다는 화려한 무늬가 있는 제품이 공간에 활기를 주기에 좋다. 대게 바닥 색상에 맞추어 러그를 고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보다는 가구나 벽면 색상이나 스타일에 맞춘 것이 더 멋지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속 박진희의 집에도 폭신한 느낌의 러그가 깔려져 있는데 추운 겨울, 집안 분위기를 한결 더 아늑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맨발로 밟았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 화장실 앞에 깔아 놓은 발판도 러그의 일종이니 이미 우리는 누구나 러그를 한 개쯤은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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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학교 다니는 여자예요!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남편과 함께 2010년 우리 가정의 계획을 세우다가 내린 결정이다. 나는 아기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엄마, 아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솔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놀이방에 가기 전까지는 일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솔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당분간 나홀로 방학인 셈.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보낼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내린 결정이 바로 다시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아기를 둘러업고 학교를 다니겠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방송통신대학교'에 편입하기로 결심을 했다. 나는 이미 대학을 졸업했으니 다시 1학년부터 할 필요는 없고 3학년으로 원서접수까지 마친 상태이다. 아직 합격자 발표가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이 대학은 졸업은 무척이나 어렵지만 입학은 비교적 쉽기 때문에 내 멋대로 합격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이러다 떨어지면 왠 망신?!? 편입학은 대학교 때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방송통신대학교는 이름답게 집에서 컴퓨터로 방송을 보며 수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나처럼 집밖을 제대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나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정말 좋다. 수업료도 저렴하기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도 추천해 드리고 싶다.

나는 학부에서 국어국문학을 졸업했고 국어교육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중어중문학과로 편입을 하게 된다.(내 멋대로 이미 합격)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 중 대다수의 학생들이 중국인이라 내가 하는 일에도 중국어가 필요하지만, 내가 다시 학생이 되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어 공부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터넷 동영상 강의로 중국어를 배우다가 좀 더 깊이있게 배우고 싶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됐다.

그런데 회화를 조금 할 수는 있지만 쓰기 실력은 형편이 없기 때문에 3학년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가 있을지 정말 걱정스럽다. 3학년 즈음 되면 어려운 숙제도 많을 것이고 손발이 벌벌 떨리는 시험은? 공부는 정말 재미있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중간, 기말 고사는 역시나 두려움의 대상이다. 방송통신대학교가 졸업을 잘 시켜주지 않기로 유명하던데, 내가 2년 만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할 수 있을 지는 걱정스럽지만 다솔이를 기르는 동안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무언가 나에게도 뜻깊은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이 정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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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일이 있어서 다솔 아빠에게 다솔이를 맡겨 두고 오랫만에 혼자서 외출을 했다. 6개월 정도 만에 다시 타게 된 지하철이(임신 후기와 출산 후 4개월 동안 승용차만 타고 다녔었다. ) 무척이나 색다르게 느껴졌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할 설렘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몽실몽실 올라왔다. 마치 출산 후 내내 집에만 있다가 처음으로 바깥공기를 마셨을 때의 그 기분 같았다.

그동안 기억 상실증에라도 걸렸는지 멀지도 낯설지도 않은 곳에 가는 데도 몇 번을 도중에 멈춰서서 노선도를 보고 또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씨는 또 왜 그리 추웠는지 모자와 마스크가 없었더라면? 으, 상상하기도 싫다.

오늘 날씨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나는 외출 준비를 정말이지 철저하게 했다. 내복은 필수로 입어 주고 두툼한 바지에 두툼한 니트를 입고 그 위에는 넉넉한 사이즈의 가디건까지 걸쳤다. 그리고 패딩 점퍼로 마무리. 머리와 귀를 통해 체온의 80퍼센트가 빠져 나간다고 하니까 귀까지 덮는 군밤장수 모자를 쓰고 볼살은 마스크를 써서 보호했다. 한마디로 '멋'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무조건 따뜻하게 껴입는 패션을 선 보인 것이다.

집에서 나올 때는 멋내다가 얼어 죽는다, 따뜻한게 최고지 하면서 별 생각없이 나갔다. 그런데 오늘 내가 간 목적지는 인테리어 업체에서 주최한 교양강좌, 그야말로 교양이 넘치는 사람들을만 가득 모인 자리였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강좌였는데 교양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옷차림에서도 교양이 넘치는지, 별로 꾸미지도 않았지만 다들 참 세련되게 차려입고 오셨다. 그 중 딱 한 사람, 나만 빼고 말이다.

둘둘 만 두루마리 휴지처럼 마구잡이로 껴 입은 사람은 진짜 나 하나 밖에 없었다. 모자 쓰고 갈 생각에 머리도 안 감고(!!!) 나간 터라 군밤장수 모자를 벗을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던 강좌(러그와 카페트에 관한 인테리어 강좌였는데 다음에 포스팅 할 생각임)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새삼스레 옛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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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 아빠와 데이트를 하던 몇 해 전 겨울, 그 해 겨울도 따뜻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면레깅스도 아닌 스타킹 하나를 신고서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었다. 생각만 해도 추워서 오싹해지는데 그 땐 어찌 그리도 헐벗고 다닐 수 있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더 과거로 가 보니 역시나 계절과 상관없이 헐벗고 다니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한겨울에도 멋내느라 반바지를 입고 다녔으니 정말 다시 생각해도 대단했었다.

내복을 입고서 스타킹을 신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겨울에 반바지를 입을 생각이 사라진지는 오래 됐는데, 그래도 너무 둘둘 말아서 눈사람 처럼 입고 다니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솔 아빠에게 오늘 내가 느꼈던 것을 이야기 하면서 내가 어쩌면 텔레비전에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다솔 아빠가 의아해 한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아줌마를 변신시켜 주는 방송을 하던데 오늘 내 모습이 완벽한 '변신 전'의 모습이었다고 말하면서 웃으니 다솔 아빠도 웃는다. 내일도 일이 있는데 내일은 눈사람이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다녀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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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심장은 쿵쿵거리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숫자를 세게 된다. 일, 이, 삼...... . 속으로 센 숫자가 삼십을 넘어가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붉으락푸르락 해 진 얼굴을 하고서 남편을 째려 보는데, 이제서야 눈치를 챈 남편은 '이제 곧 닫으려고 했지' 하면서 무려 1분이 넘도록 열어 두었던 냉장고 문을 그제서야 닫는다.

냉장고에 야채나 반찬통 등을 넣을 때 미리 준비를 해 두었다가 한꺼번에 넣으면 참 좋을 것을 남편은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 둔 채 하나씩 가져다 넣기 때문에 매번 나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내 잔소리에 내가 지겨워져서 애써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전기 절약에 별로 관심이 없는 그이 탓에 내 속만 새까맣게 탄다.

나는 유난스럽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알뜰한 편인데 희안한 것은 우리집 식구들 중 누구도 나만큼 절약형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어려웠던 가정 형편 덕(??)에 일찍부터 스스로 아낄 줄 알게 됐던 것 같다. 에어컨을 처음 샀을 때 부모님은 전기세를 걱정하셔서 출근하실 때마다 '똑똑하게 사용할 것'을 당부하셨지만 나는 혼자 집에 있을 때 한 번도 에어컨을 켠 적이 없다.


좀 우습지만 대학에 다닐 때 내 별명은 '총장딸'이었는데 아버지가 대학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별명을 갖게 된 이유도 비슷하다.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친구들이 반찬을 다 먹는지 남기는지 도끼눈을 뜨고 지켰기 때문이다.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친구들은, 반찬은 으레 남기는 것으로 생각하여 늘 식판에 풍성하게 담아 와서는 남은 반찬을 버리곤 했지만 내 식판은 항상 싹싹 비워져서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다가 학생회실에서 종이컵 대신 머그컵을 쓰고, 이면지도 버리지 말라고 늘 잔소리를 해 댔으니 '총장딸'로 불릴 만도 했다.

몇 년 전부터 '친환경'이란 말이 화제가 되기에 대체 친환경이 뭔가 싶어 알아 봤더니,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고 잘 보존해서 우리 후손들에게 녹색 지구를 물려 주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제서야 친환경 붐이 일어나서 먹을 거리, 입을 거리, 전자 제품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들을 환경을 생각해서 만들고 있는데, 나는 이미 어렸을 적부터 자타공인 '친환경인'이었다. 유난스럽게 느껴졌던 내 모든 짠순이 생활들이 사실은 현대 가장 필요한 친환경적 생활방식이었던 것이다.

친환경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원 절약, 물 절약, 전기 절약인데 자원이나 물이야 눈에 보이는 것이라 쉽게 아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전기를 아끼는 것은 쉽지 않다. 방심하는 사이 아까운 전기가 줄줄줄 샐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쓰지 않는 전자 제품의 플러그는 콘센트에서 빼 두어야 되고 전자 제품을 살 때는 모양과 가격만 보지 말고 소비 전력이 적은 제품을 선택해야 된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 자랑할 것이 있다. 그동안 전기세가 아까워서 여러가지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속 세탁'만 해 왔던 애물단지 드럼 세탁기를 얼마 전에 '삼성 하우젠 버블세탁기'로 바꾸었다. 하우젠 버블세탁기는 되도록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고 제품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연간소비전력량이나 탄소배출량까지 신경을 썼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광고에서 한가인이 나와서 '원, 투, 쓰리, 포 버블 버블~' 할 때마다 너무나 갖고 싶어서 내 가슴에도 뽀글뽀끌 거품이 일었는데 여러 가지를 계산해 보니 역시나 바꾸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구입하게 됐다.

삼성 하우젠은 거품 세탁 기능이 있어서 세탁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 전력과 물을 아낄 수 있고 빨래를 할 때 거품이 많이 나기 때문에 속옷이나 아기 옷을 손상없이 빨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피부에 직접 닿는 옷을 세탁할 때 옷감을 부드럽게 유지해 주는 기능이 있어서 피부, 특히나 아기 피부를 보호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기 옷을 빨 때마다 세제 찌꺼기가 남아 있지는 않은 지 옷감에 손상이 가지 않는 지 늘 걱정스러웠는데 이번에 한시름 덜게 됐다.



게다가 살균 통세척 기능이 있어서 전용 세제 없이도 70도 고온의 물로 세탁조를 고속 회전시켜 세탁조에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1/300만 수준으로 줄여 주고, 곰팡이와 물때까지 제거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세탁 30회마다 통세척 시기를 알려줘서 세탁조를 오랫동안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통세척을 한 번 하는데 드는 비용은 겨우 180원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정말 부담이 없다.

옛말에는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아줌마 셋만 모이면 친환경이니, 에코니 하는 이야기들뿐이다. 자녀가 생기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고 풍족하게 누릴 수 있는 자연 환경을 물려줘야 되겠다는 사명감 또한 생겼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들렸을 지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은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필요 없는 전깃불 하나, 아무 생각 없이 샀던 전자 제품의 소비전력 확인 등으로 누구나 쉽게 녹색 지구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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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력(?)을 다해 화장을 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원래부터 머리 손질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생머리일 때도 파마 머리일 때도 그저 드라이어로 젖은 머리만 바짝 말리는 것으로 외출 준비는 끝이다. 머리 모양을 예쁘게 하려고 하면 할 수록 더욱 어색해지고 엉망징창이 됐기 때문에 머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됐을 수도 있고, 어쩌면 화장에 들이는 공과 시간이 너무 많아서 머리는 대충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당연히 미용실에 가는 것은 연중 행사요, 단골을 지정해 두지도 않는다. 맘 내키는 대로 A매장에도 갔다가 B매장에도 가는데 솔직히 내 눈에는 A나 B나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1mm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미용사들이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겠지만 문외한인 내 눈에 그 정도의 경지가 보일 리 없다. 아무튼 여러 가지 사정상 1년 하고도 6개월 동안 미용실에 가지 못해서 부스스를 넘어서 초라해 보이기 시작하여 오랫만에 미용실을 찾게 됐다.

그동안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길어 버려 관리하기가 너무 힘들었기에 큰 맘 먹고 단발로 싹둑 자르기로 했다. 머릿속에는 가인을 떠올리고 있지만 그녀를 닮기엔 너무 넓데데한가? 미용사 언니가 나는 힘없는 머릿결에 볼품없는 머리숱의 소유자이기에 머리를 자르고 볼륨매직을 해 줘야만 예뻐보일 수 있다기에 전문가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고 장장 세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미용실에 붙들려 있어야만 했다.


목선이 드러나는 단발 머리에 볼륨 좀 줄 뿐인데 세 시간이 넘도록 지지고 볶고를 해야 한다니 좀이 쑤셔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곳곳에서 풍기는 파마약 냄새 중화제 냄새에 눈이 빠지고 몸이 배배 꼬여 꽈배기가 될 무렵, 그런 내 모습이 안 쓰러웠는지 차 한 잔과 함께 두툼한 잡지책이 전달 돼 왔다. 그나마 읽을 거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대충 그림만 보며 휘리릭 넘기다가 '트로피 와이프'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우리 말로 해석하면 '상 부인'쯤 되는 말인가? 호기심이 생겨 내용을 읽다가 나는 머리를 만 채 미용실 천장을 뚫고 날아갈 뻔 했다. 잡지책은 아무렇지도 않은 심상한 말투로 설명을 해 주었는데, 트로피 와이프의 뜻은 다음과 같다. 여러 번의 이혼을 경험한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이 어느 정도 나이도 들고 인정도 받게 되자 그간의 수고를 보상 받듯 트,로,피 처럼 미혼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 하는 것이란다. 이 무슨 빵꾸똥꾸 같은 말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늙으막하게 처녀 장가를 가는 것을 미화시켜서 이런 표현을 쓰는가 본데, 나이 차이가 상상초월이었다. 열 두 살 연하는 기본이고 어떤 80대 재벌은 63세 연하(절대 오타 아님)를 '상 부인'으로 받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단다. 외국 배우들의 사례를 먼저 나열하다가 우리 나라 배우들도 몇몇 거론이 됐던데 그 분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서 여기다 옮기지는 않겠으나 좀 심한 듯 했다.


그냥 사랑해서 결혼하다 보니 나이 차이가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이혼을 한 명예와 재력을 갖춘 남성이 상으로 미모의 미혼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라니, 누가 지어낸 말인지 참 나빴다. 63세 연하와 결혼을 했다는 80대 할아버지를 비롯한 외국 배우들이야 우리 나라 잡지를 사서 읽을 리가 없으니 괜찮다쳐도 우리 나라 배우들이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여 이런 빵꾸똥꾸같은 기사를 써 놓은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화가나겠나. 특히 아내들이 이 잡지를 본다면?

미용실에서 우연히 알게 된 '트로피 와이프'라는 단어를 내 인생 최악의 단어로 지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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