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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술 하셨어요?'라고 누가 물으면, 나는 늘 약간 고개를 숙이면서 무언가 잘못이라도 한 듯 수줍게 대답하곤 했다. '아...... .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요' 역아인 경우에는 자연분만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

임신 27주부터 한결같이 내 가슴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는 아기 때문에 나는 무척 애를 태웠었다. 주위에서 나중에 자리를 잘 잡는 경우도 있다고 많이 들었기에 처음에는 별로 걱정도 하지 않고 '그까짓 것' 했지만 32주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수시로 고양이자세 체조를 하면서 아기 머리가 아래를 향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35주가 넘고도 아기가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이자 나는 너무나도 불안해서 수시로 인터넷 카페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역아'에 관한 글을 읽고 또 읽었다.

who are you?
who are you? by bie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육중한 배를 하고서 고양이 체조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가만히 서 있어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데 무릎을 꿇고 배를 아래로 내렸다 올렸다 하면 허리에 얼마나 무리가 가겠는가. 그런데도 자연분만을 하고자 나는 수시로 고양이 체조를 했고 나중에는 물구나무서기까지 시도했었다. 물구나무서기는 잘못 하다가 큰일 날 것 같아서 결국 하지 않았지만 수술을 계획한 38주 4일 되던 날까지도 자연분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끝내 아기는 자리를 바꾸지 않았고 나는 제왕절개를 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까지 힘을 줘야 하며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진통을 열 시간 넘게 참아 내야만 하는 것이 자연분만이다. 힘을 주다가 얼굴에 있는 실핏줄이 다 터지는 사람들도 숱하고 하도 이를 악물어서 치아가 상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물론 마취를 하기에 고통스러운 아픔은 없지만 척추 마취를 하고 정신이 말짱한 상태로 분만 수술의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들어야만 한다. 무서워서 벌벌 떨리고 심장이 밖으로 나오려는 상황을 인내하면서, 내 배를 가르고 잡아 당기고 아기를 꺼내고 피와 불순물을 다 제거하기 위해 위에서 배를 내리 누르는 모든 상황들을 그야말로 이겨내야만 한다.


자연분만은 아기를 낳음과 동시에 모든 고통도 사라진다고 들었다.(아, 회음부의 상처가 심한 분들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많이 불편하단다.) 반면 제왕절개 수술의 경우는 낳고 나서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마약 성분이 들어 있다는 무통 진통제가 있는데 뭐가 그리 아플까 하시는 분들께 무통 주사가 정말 無痛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고 연거푸 설명해도 듣는 사람은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오죽하면 친정 엄마까지도 '별이(태명)가 엄마 힘들까봐 거꾸로 있는 것이라며 제왕절개를 앞두고 심란해 하는 당신 딸을 위로 하셨을까.' 내가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제왕절개의 아픔을 아무리 설명해도 엄마는 그래도 자연분만에 비하면 세발의 피밖엔 되지 않는다며 제왕절개는 '거저 낳는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나중에 제대로 회복이 안 돼 앉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당신 딸을 보시곤 너무나도 마음 아파 하셨지만 그래도 자연분만의 위대함에 대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실 것이다. 나도 자연분만을 한 산모들이 그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아기를 낳았다는 것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제왕절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들엔 억울한 생각이 든다.



bisous
bisous by Alain Bachelli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제왕절개를 하면 쉽게 아기를 낳는 것이고 너무 쉽게 낳다 보니 자연분만한 엄마에 비해 모성애도 적으며 모유수유 또한 어렵다는 잘못된 생각들이 내가 가장 속상한 부분이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제왕절개도 정말 아프며 특히 물 한모금 먹지 못하고 꼼짝달싹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던, 밤에는 통증이 더욱 심해져서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던 수술 후 첫 이틀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그리고 모유에 관한 부분은 자연분만을 한 다른 산모들과 마찬가지로 출산 후 삼일이 지난 날부터 초유가 돌기 시작하더니 한 달이 조금 넘은 지금은 모유로만 아기를 기르고 있다.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도 자연분만한 산모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때면 괜시리 위축되어 방청객처럼 감탄사만 연발하며 듣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후회스럽다. 같이 맞장구 치면서 제왕절개를 한 내 이야기도 함께 했어야 되는데 말이다. 임신/출산 관련 카페에 가 보면 많은 임신부들이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는데, 물론 자연스러운 것이 좋기는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무리하게 자연분만만을 고집하지 말고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 똑같이 열 달 동안의 임신 기간을 거쳤고 힘든 분만 과정을 이겨낸 제왕절개한 엄마들 더이상 기죽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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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해 드릴 요랑으로 연락 없이 고향집에 내려갔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서둘렀더니 아침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부모님이 1박 2일 동안 부부동반으로 나들이를 다녀 오신다는 것이 아닌가. 하필이면 이 때, 약간 아쉬웠지만 며칠 동안 집에서 지낼 계획이었는지라 웃는 낯으로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재미있게 다녀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나는 대학 때부터 집을 떠나서 생활했기에 혼자서 지내는 것에는 이골이 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내가 혼자서 집에 있다는 것이 걱정이셨나보다.

'가스 밸브는 꼭 잠그고 잘 때 창문이랑 문 단속 철저하게 해. 누가 와도 절대 문 열어주지 말고 집에 없는 것 처럼 소리도 내지 말고 문 꼭 잠그고 있고, 알았지? 무서우면 불 하나 켜 두고 라디오 들으면서 자고...... .' 내 나이 서른 하나, 엄마는 내 나이 때 이미 동생과 나를 유치원에 보내셨으면서도 딸이 마냥 어리게 느껴지시나 보다.

나는 속으로 무척 우스웠지만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엄마와 약속했다. 다 큰 내가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이색적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올 줄 몰라서 밥도 반찬도 마땅한 것이 없다며 걱정하셨지만 혼자서 척척 잘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미안해 하시는 부모님의 등을 떠밀어 모임에 보내 드리고 나는 혼자가 됐다.


참 이상한 것이 엄마가 나를 애 취급 하셔서 그랬는지 갑자기 혼자서 보내는 1박 2일이 너무 무료하고 두려워졌다.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을 챙겨온 가방은 쳐다보기도 싫어졌고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싫었다. 침대에 뒹굴거리면서 철지난 텔레비전 재방송을 보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가 또다시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면서 그렇게 오후까지 시간을 때웠다.

점심은 밥만 겨우해서 냉장고에 있던 김치들과 먹었고 저녁은 라면으로 해결했다. 닭볶음탕, 갈비찜도 뚝딱 만들고 크림소스 스파게티며 매운탕도 만들 수 있는 나인데 말이다. 또다시 침대에서 왼쪽으로 뒹굴 오른쪽으로 뒹굴거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삽십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산책 겸 다녀오기로 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어차피 다음날에도 아무것도 해 먹기 싫을 것 같아서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 빵으로 끼니를 떼우려는 심산이었다.

마트로 걸어가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산책하러 나왔다고 말씀드리니 화들짝 놀라시는 엄마, 밤중에 위험하니 얼른 들어가라고 다시 신신당부를 하신다. 시계를 보니 겨우 9시다.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을 때, 대학원 수업만 9시가 넘어서 끝났었고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랬는데 나는 다시 아이가 됐다. 엄마의 말씀을 들으니 순간 또 무서워져서 얼른 빵만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방마다 불을 다 밝히고 늦게까지 라디오를 들으면서 인터넷을 하다가 새벽녘이 돼서야 겨우 잠을 잘 수가 있었는데, 아예 밤을 새워 버리고 부모님이 오신다는 오후 늦게나 일어날까 하는 한심한 생각까지 했다. 부모님이 퇴근하시기를 기다리던 그 옛날의 나처럼 혼자서 지내는 1박 2일이 너무나 길고 싫었다. 문득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찡했던 글 한 단락이 떠올랐다.

이제 막 출산을 한 어떤 산모가 친정에 와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단다. 밤이 되어 산모와 신생아가 한 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거실에서 산모의 부모님이 하시는 얘기가 들렸단다. 친정 엄마가 친정 아빠에게 '아기'가 이불을 잘 덮고 자고 있는지 좀 보고 오라고 부탁하는 얘기였다. 산모의 친정 아빠는 아기와 산모가 자고 있는 방으로 조심조심 들어오더니 갓난아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산모의 이불을 잘 덮어 주고는 방을 나갔다고 한다. 그 할아버지에게는 자기 딸이 영원히 '아기'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산모도 그 마음을 헤아리고는 눈물을 지었단다.

나도 갑자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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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됨과 동시에 여기 저기에서 청첩장이 쏟아지더니 5월이 되니까 아예 들이 붓기 시작했다. 다들 친한 사람들이기에 축하를 해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꺼번에 여러 장의 청첩장이 손에 들어오니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축,의,금' 늘 고놈의 돈이 문제다. 가장 기쁘게 축하해 주어야 할 날에 돈 걱정이 왠말이냐 말이다. 그래도 5월의 신부가 가장 아름답다는 망언을 한 사람을 찾아내어 따지듯 묻고 싶다. 신부는 다 예쁘지 왜 유독 5월이냐고 말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5월을 몸 보신의 달로 지정하고 매주 한 차례 이상의 뷔폐음식을 아주 즐겁게 먹어 주기로 했다.(5월을 축하의 달로 지정하지 못한 나는 역시 속물!)

어제도 결혼식장에 다녀 왔는데 특이하게도 이 결혼식에는 들러리가 있었다. 신부가 입장하기 전에 귀엽게 정장을 차려 입은 앙증맞은 꼬마들이 먼저 등장해서 신부가 사뿐히 즈려밟을 꽃길을 만들어 주었다. 결혼식이 무엇인지, 자기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신랑 신부의 미니어쳐 같았던 두 꼬마 아이들은 꽃을 뿌리면서 자기들끼리 신이 났다. 연신 헤헤거리면서 결혼식장을 한결 밝게 만들어 주었던 꼬마 아이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7살짜리 사내 아이가 신부의 조카라고 했다. 은근히 길게 느껴졌던 주례사가 끝나고 덩달아 눈시울을 적셨던 부모님을 향한 인사도 끝났다. 신부 측에 서서 배시시 웃으며 사진 촬영까지 끝내니 이제 본격적인 식사시간(??).

이 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식당으로 향해서 결혼식의 어느 순서보다도 더 엄숙한 자세로 음식을 뜨고 있는데,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 온다. 그냥 우는 정도가 아니라 숨이 넘어가는 정도였기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 내 경건한 식사 의식을 방해하는 자가 누구인지 보기 위해 나는 식당 내부를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엄마에게 잡힌 팔과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온몸으로 울고 있는 아이가 이내 눈에 들어왔다. 더웠던지 정장 자켓은 벗겨지고 없었지만 아까 들러리를 섰던 그 남자 아이가 틀림없었다. 그렇게도 해맑게 웃더니만 뭐가 맘에 안 들어서 온 식당을 소란스럽게 만드는지 내 신경이 온통 그 쪽으로 쏠렸다.

그럼에도 음식을 한가득 먹음직스럽게 담아 와서 자리에 앉는데, 같이 갔던 동료가 한 마디 한다. '정말 웃기지 않니? 아까 울던 남자애 말야. 같이 들러리 했던 여자애하고 사귀는 사이인데 여자애가 먼저 집에 간다고 그렇게도 서럽게 울었단다. 듣자하니 걔네 엄마들끼리 벌써부터 사돈 맺자고 약속까지 하고 유치원에서도 다른 애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둘이서만 논다네' 일곱살 짜리 꼬마가 밥을 마다하고 사랑 때문에 그토록 서럽게 울었다니, 문득 그득한 내 뷔폐 접시가 부끄러워졌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참 빨리도 성숙해서 유치원에만 들어가도 사귀는 사람이 있고 초등학생들은 자기의 여자친구에게 반지며 각종 선물들을 기념일마다 사 준단다. 요즘 신세대 엄마들은 자녀들의 이성 교제에 관대해서 어린 자식들이 그들의 이성친구와 어떻게 지내는지 늘 궁금해 하고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분위기란다. 이미 짝이 맺어진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놀 때도 자신의 상대와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두루두루 친구를 사귈 기회를 놓치게 된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남자 친구의 'ㄴ'도 겪어보지 못한 나와는 정말 세대 차이가 나는 아이들인 것이다.

그런데 아동전문가들은 아이들이 너무 일찍부터 이성 교제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내가 생각해도 아이들은 동성끼리의 우정을 먼저 쌓으면서 사회성을 길러야 하고 다양한 또래 아이들과 교류하면서 자라야 할 시기가 있는데, 이성 교제를 하느라 그 기간을 놓치는 것이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똑소리가 나서 애인지 어른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도 있다. 나는 너무 똑똑한 아이들에겐 왠지 거부감마저 드는데, 아이는 아이다운 것이 더 예뻐보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어른처럼 섹시 댄스를 추거나 트로트를 구성지게 부르는 아이들이 거북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내가 그 아이들의 엄마가 아니기에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다소 모자란 듯 보여도 순수하고 아이답게 길러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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