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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들은 왜 '오빠' 소리에 살살 녹을까?
    세상 사는 이야기 2009. 4. 18. 22:51
    벌써 십여 분째. 버스 앞 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실랑이를 벌이는 연인때문에 나는 기분이 심히 좋지 않다. 서슬 퍼런 내 눈초리가 느껴지지도 않는지, 사랑하는 그들에게 나는 그저 배경에 불과한 것인지 사람많은 버스 안에서 둘만의 영화를 찍고 있는 그들이다. 딱 한 번만 오빠라고 불러 달라며 애걸복걸하는 남자와 능숙한 솜씨로 그런 남자를 더욱 안달나게 만드는 여자. 여자는 불러 줄 듯 말 듯 감질나는 몸짓과 눈짓과 손짓으로 남자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내 마음을 신경질 나게 만들고 있었다. 남자는 한계에 다달았는지 이제 '한 번만'하던 검지 손가락을 편 채로 몸을 배배 꼬며 여자의 팔을 잡고 늘어지고, 여자는 그런 남자가 재밌어 죽겠다는 듯 한참을 깔깔대더니 못 이기는 척 귓속말로 '오빠'를 불러 준다. 남자가 흡족한 듯 여자의 어깨를 감싸면서 드디어 볼썽 사나운 상황은 끝이났다.

    왜 남자들은 나이가 적든 많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오빠'라는 말에 사족을 못 쓰는 것일까?


    나는 남동생만 하나지만 친척 오빠들이 많고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교회 오빠(!)들과도 친하게 지낸 편이어서 주변에 여러 오빠들이 있다. 나에게 있어 '오빠'란 그저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남자를 의미하는 호칭에 불과하다.(나이가 아주 많으면 아저씨, 할아버지니까) 그래서 십 수년 동안 오빠들을 부르면서 그것에 별다른 감흥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누나'에는 없는 특별한 의미가 '오빠'에게는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졸업한 국어국문학과에는 남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동기 40명 중에서 남자들은 고작 7명, 2학년이 되자 대부분 군입대를 해서 ROTC를 지원할 2명하고만 같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와서 대학에 들어가면 수많은 남학생들과 교류를 할 수 있을 줄 알았기에 엄청 실망을 했었다. 그런데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아 선배 언니들이 신입생 여자들을 집합(?) 시키며 당부하는 말이, 남자들에게 절대로 '오빠'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빠'라고 부르는 순간 남자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줄로 오해할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붙이면서 반드시 '선배'라는 호칭을 쓸 것을 명령했다. 도대체 그런 생각을 하는 바보가 어디 있다고 어이없는 명령을 하느냐고 분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 후배들이 여자 선배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을 금하는 법칙은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학을 다니다 보니 '오빠'가 왜 금기어가 되었는지를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선후배 사이로 거리를 두고 지내던 사람들이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호칭도 선배에서 '오빠'로 변화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고, 특별한 관계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할 때도 '오빠'라는 호칭이 쓰이는 것을 봤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나이가 조금 많은 남자를 부르는 말에 불과했기 때문에 꾸짖을 선배들이 없어진 3학년이 되던 해부터는 마음껏 '오빠'를 부르고 다녔다.(그 때는 이미 그렇게 부를 수 남자들도 많이 줄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남자 선배들은 내가 '오빠'라고 부를 때마다 괜히 얼굴을 붉히고 심할 경우 움찔 놀라기도 했다. 말의 내용은 똑같고 부르는 말을 그저 '선배'에서 '오빠'로만 바꾸었을 뿐인데도 선배들이 나를 대해주는 태도가 한결같이 부드러워졌다. 역시 '오빠'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별 뜻 없는 '오빠' 소리에 듣는 오빠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우쭐해진 남자들이 '오빠가 말이야~, 오빠 생각은, 오빠가 밥 사줄게...... .' 하면서 말머리마다 자신을 오빠라고 지칭하는 것을 들을 때면, 내숭 100단 여자가 'oo이 배고파요, oo이 추워요'하며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몸서리가 쳐 질 때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해 본 적은 없었지만 '오빠, 오빠'하면서 추켜세워 주기만 해도 그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드라마를 속에서도 남자들이 '오빠' 소리에 헤롱헤롱하면서 선물을 사 주기도 하고, 머리 끝까지 솓구쳤던 화를 싹 풀어내며 히죽거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는 특히나 젊었든 늙었든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남자라면 다 '오빠'소리에 살살 녹는 것 같이 묘사되고 있는데, 도대체 왜, 남자들은 '오빠' 소리에 사족을 못 쓰는 것인가?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댓글 2

    •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04.21 08:25

      남자들이 잘 듣지 못하는 말이 ' 오빠 '라서 그런게 아닐까 해요. 억양자체가 귀여운것 같기도 하구요.

      보통 남자들은 오빠라는 말보다 더 좋아 하는 말이 '자기'란 말을 더 좋아해요.
      처음 사귈때 오빠 소리를 많이 듣다가 시간이 지나면 호칭이 ' 자기'나 결혼 해서 애기가 생기면 '누구아빠'라고 많이 불려요.

      저도 친 여동생 이나 사촌 여동생들 한테는 오빠라고 많이 불리지만 다른데서는 오빠소리 듣기 어려워요^^
      여자분들도 친해지기 전에는 오빠라고 잘 안하는 점도 있구요.

      친근함과 첫 연애를 시작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오빠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s://snaprush.tistory.com BlogIcon 크라바트 2009.04.21 19:23 신고

      오빠라는 말의 뉘앙스때문입니다.
      오빠라고 불리는 순간 그 남자에게는 '꼬꼬마 때부터 같이 커온 나와 정말 친숙한 여동생' 이라는 느낌으로 와 닿습니다.
      즉,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히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 를 뜻하는 단어가 아닌.. 그 이상의 감정의 산물이란 거죠.
      그래서, 여성들이 실제로는 아무생각 없이 오빠라 부른다 할지라도 정작 그 말을 듣는 남자들은 오빠라고 부르는 여성에게 살가움을 느낌과 동시에 '아, 이 애가 날 서스럼없이 좋아해 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서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지는 마음이 막 우러나오는 겁니다.
      설사 그런 점을 노리고서 부른다 하더라도 이 '오빠' 라는 말 한마디에 수많은 남자들이 헤롱헤롱 헤어나질 못하는 이유가 바로 마법의 주문과도 같은 늬앙스 때문인 거죠.
      '오빠' 라는 울림..진언 '옴'에 절대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 고유의 주문이자 문화유산이 아닐까 싶습니다...ㅎㅎ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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