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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기는 케이블 방송 중에는 연예인들의 옷차림과 가방, 구두, 액세서리 등의 전체적인 조화를 평가해 주는 것들이 있는데 노홍철이 진행(!!)하는 '트렌드리포트 필'이 그런 부류다.

공식적인 행사에 초대된 연예인들이 포토라인에 서서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 그 장면을 방송 진행자들이 찬찬히 훑어 보면서 연예인이 입은 옷의 브랜드명과 대략적인 가격 등을 말해준다. 또한 그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무엇무엇이 잘 되었고 잘못 되었는지를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데 전문가들의 평이라 그런지 듣고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아무래도 요즘은 시상식이 많은 연말이라서 그런지 여배우들의 드레스를 주제로 하여 잘 입은 드레스와 못 입은 드레스를 평가해 주는 내용이 많았다. 나 같은 일반인이 결혼식 때 말고 드레스를 입을 일이 또 어디있겠냐만 예쁜 여자 연예인을 보는 재미로 그림의 떡을 구경했다.

여자 연예인들은 영화제나 시상식이 있기 만을 기다렸던 것 처럼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너나할 것 없이 파격적인 노출 의상을 선보였는데 역시나 예쁘긴 정말 예뻤다.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나도 예쁘고 근사해서 감탄을 하면서 보고 있노라니 진행자들은 어김없이 드레스와 액세서리의 가격을 읊어준다. A양이 입은 B사의 드레스는 5천만원대이며!!! 포인트로 한 블링블링한 귀고리와 반지 등의 액세서리는 모두 다해 억대란다.


시상식 때 여배우들에게 드레스를 협찬해주는 이유가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고 유명한 여배우들이 입은 것은 그 다음날이면 완판이 된다고 하던데, 수천만원이 넘는 드레스를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진짜 궁금했다. 그 보다 더 궁금한 것은 대체 그 드레스를 입고 어디에 가느냐인데, 역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것 같다.

대다수의 여배우들은 앞섶이 깊게 파져서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덮고 있는 드레스를 양면테이프로 고정한단다. 이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 됐지만 처음엔 당연히 드레스 자체에 고정 기능이 있는 줄 알았다. 아찔한 모양의 드레스이지만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단단한 고정 장치가 돼 있어서 그 옷을 입고 맘껏 춤을 춰도 원치 않는 노출 사건이 생기지는 않을 줄 알았었다. 왜냐하면 옷 값이 너무나 비싸니까 말이다.

명품 가방은 속을 꽉 채우지 않아도 모양이 늘 한결같이 잡혀있고, 명품 구두는 아찔한 높이의 굽을 신어도 발이 아프지 않으며 명품 드레스는 입고서 널뛰기를 해도 벗겨지지 않는 것인 줄 알았었는데, 그래서 비싼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라니 정말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수천만원 짜리 옷을 입으면서 양면 테이프로 드레스와 맨살을 붙이는 광경이라니! 잠시 생각해봤는데 참 우스꽝스러운 것 같다. 겉보기엔 우아한 백조가 물 밑에서는 빠른 발길질을 하듯, 살을 에는 추위를 참으며 영하의 기온에 홑겹 드레스만을 입으며 고운 미소를 지어야 하다니. 가슴이 드러날 듯 말 듯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서 한 껏 포즈를 취하지만 사실은 온통 양면 테이프로 붙여 두었다니.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웃고 있는데 귓가로 또다른 여배우의 옷차림을 설명하는 소리가 들린다. 'C사의 드레스 3천만원대, 클러치 5백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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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좀 민망한 공감을 했던 적이 있다. C는 모 프로그램에 나와서 6개월 동안 머리를 한 번도 감지 않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발언에 경악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김C는 그 특유의 능청스럽고 순한 웃음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6개월 동안의 고행(?)과 인내를 끝으로 머리카락을 잘라냈을 때(당시 그는 레게머리를 했었단다.)의 기분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고. 극심한 간지러움과 찝찝함을 한껏 참았다가 6개월 치의 더러움을 한 번에 씻어냈을 때의 그 쾌감. 민망한 일이지만 나도 그 기분을 안다. ?!? 그럼 나도 6개월 동안?
 

예전에 교원임용고사 경쟁률 높이기에 여념이 없었을 땐, 나도 김C 못지 않았었다. 수험 생활이 길어질수록 학원보다는 온라인 강의를 선호하게 됐기에, 내 생활은 거의 집에서 이루어졌었다.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교원임용고사의 체감 난이도는 사법고시를 능가하는 것이었기에 주중에는 방에 콕 처박혀서 공부만 했었다. 고시생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그럴 수밖에 없다.) 나도 그 땐 온 종일 운동복 차림에 상투 머리를 하고서 책상 머리에 앉아 있었다. 밖에는 나갈 이유도 없거니와 나갈 필요도 없었다. 정 답답할 땐 모자 하나 눌러쓰고 동네 한 바퀴면 충분할 때였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김C처럼 6개월 동안 한 번도 머리를 감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1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더러움을 유지(?) 했었던 것 같다. 참 역설적이게도 그 당시 교회에서의 내 별명은 패션 리더였다. 심할 땐 1주일에 두 번 꼴로 머리를 감는 주제에 패션 리더가 왠 말이냐 마는, 1주일에 한 번 하는 그 외출이 내겐 정말 소중한 것이었기에 교회를 갈 때 정말 공을 들였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도 없는 양말 하나도 정성껏 골랐고, 신발을 신어버리면 보이지도 않을 패티큐어까지 했으니 다른 곳은 말해 무엇하랴.



 
사람들은 내 부지런함과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에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난 속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그들은 절대 짐작하지 못했겠지만 1주일에 한 번, 나는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C의 말처럼 켜켜이 쌓여 있던 더러움을 한꺼번에 덜어내는 기쁨(??)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나 개운한지 날아갈 것은 기분마저 든다.

 

사실, 내가 나의 민망한 얘기를 장황하게 쏟아낸 까닭은 다른 얘기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즘 연말이다 보니 각종 시상식 등에서 여자 연예인들의 아찔한 노출 수위가 연일 관심 거리인데, (나도 여자이지만)여자들은 노출에 관해 다소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 노출은 즐기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나? 각종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에 관해 얘기할 기회에 있으면, 뭇 여성들은 한결같이 노출의 이유는 자기 만족때문이라고 말한다. , , , 정말? 정말 그런가?

 

같은 여자끼리의 비밀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패션 리더라고 불리는 것을 은근히 즐기면서 온갖 치장을 다 하고 다니는 나이지만 집에서의 내 모습은 참혹하다. 만약 자기 만족을 위해서라면 나는 아무런 약속이 없고 집에만 쭉 있을 계획이라도 외출할 때와 동일한 화장과 옷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날 보지 않을 땐 늘 헐렁한 티셔츠에 상투머리이다. 그리고 집 근처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신할 땐 그런 험한 몰골을 하고 잠깐씩 나갔다가 들어오기도 한다.


어쩌면 이 글을 보신 분들 중에 그건 게으른 네 성정 탓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나만 그런가? 휴일 오후 자신의 모습을 곰곰이 생각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이유가 꼭 다른 이의 시선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추레한 모습으로 밖에 나갔을 때 온종일 기운이 없고 자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도, 내 맘에 쏙 드는 차림으로 외출했을 때 저절로 발걸음이 가벼워 지는 이유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쁘고 멋진 자신의 모습 덕에 사람들은 더 당당해 질 수 있다.

우리는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을 관리하는 것은 어떤 땐 정말 힘이 드는 것이기에, 그 과정을 이겨내고 당당하고 멋지게 자신을 표현한 사람들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고 존경스럽다. 다만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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