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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나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래로 전력질주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릴 때야 학교에서 시키는 것은 무조건 해야 되는 줄 알았기 때문에 1년에 딱 한 번 체력장이 있을 때 달리기를 했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슬슬 꾀가 생겨서 체력장 100미터 달리기 때도 미리 친구(나와 비슷하게 운동에 소질이 없는...... .)와 약속하고 속도를 맞춰서 뛰었고(기록이 25초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생이 되었을 땐 그마저도 하지 않아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뛰지 않았으니 어쩌면 나는 이제 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을 지도 모른다.

버스 정류장에 다다르기 전에 내가 타야 될 차가 도착하거나, 저 멀리 신호등 불빛이 녹색으로 바뀌면 나는 오히려 더욱 천천히 걷는다. 어차피 다음번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서 달리기 보다 빠르게 걷기가 더 운동 효과가 있다며 런닝머신을 할 때도 한 번도 뛴 적이 없다. 이런 내가 오늘 뛰고 싶어졌다.


'남자의 자격'에서는 2주에 걸쳐서 아저씨들의 하프 마라톤 도전기를 보여주었다. 지난주에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전 각 출연진들의 체력을 검사해 보았고 이번주 방송분에서는 실제로 마라톤에 참가한 모습이 방송됐다. 마라톤은 아무나 아무때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이경규, 김태원, 이윤석, 김국진, 이정진, 김성민, 윤형빈. 이 일곱 명의 남자들은 대회를 앞두고 저마다 개인 연습을 했다. 그래도 2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완주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지난주에 황영조 코치와 연습을 하면서 김태원과 이윤석은 아예 마라톤을 해서는 안된다는 평을 받았고 김국진과 이정진을 제외하고는 체력상 완주를 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내가 생각해도 김태원의 체력으로 '뛴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듯 싶었다. 이경규와 이윤석도 마찬가지여서 방송상 뛰는 시늉만 하다가 포기할 것이 뻔하다고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기대해 볼 수 있는 사람은 근육질 이정진과 열정 넘치는 김성민, 그리고 늘 열심히 하려고 애쓰는 윤형빈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방송에서 이 일곱 남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국민 할매 김태원은 특별한 경우니까 열외시켜주고, 국민 약골 이윤석과 뺀질 대마왕 이경규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끝내 이겨 하프 마라톤을 완주 해 낸 것이다. 둘 다 체력에 한계가 와서 쉬며 걸으며 치료받기를 반복하다가 장장 5시간 정도만에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다른 남자들도 쉬웠던 것은 아니다. 경기 내내 안정을 잃지 않았던 김국진을 빼고는 모두 포기와 도전 사이에서 계속되는 갈등을 한 것 같다. 이정진은 무릎 통증으로 고생을 했고 늘 힘이 넘치던 김성민도 이번 방송에서는 완전히 방전된 모습을 보였다. 윤형빈도 무척이나 힘겨워 했지만 마라톤에 참가했던 일반인 아저씨들의 도움 덕분에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막판에는 내내 선두를 유지하던 김국진을 제치고 일등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마라톤에는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져 있다고 하더니 결승선을 통과한 남자들은 알 듯 모를 듯한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보였고 특히나 감성이 풍부한 김성민은 유독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 보는 내가 더 감동적이었다. 내 저질체력으로 하프 마라톤은 가당치도 않겠지만 이 방송을 보면서 처음으로 나도 한 번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외로운 질주 과연 나도 내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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