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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랫만에 놀러간 친척 언니 집. 언니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넋을 놓고 드라마를 보고 있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나의 사촌 언니는 육아와 회사일을 병행하고 있는 만능 워킹맘이다. 늘 바쁜 언니이기에 그동안 제대로 본 드라마가 없어서 텔레비전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집중해서 보는 폼새가 영 희안했다. 나중에야 나를 발견한 언니는 케이블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스페셜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몇 번씩 스쳐 보기만 했던 드라마라 나에겐 생소한 것이었는데, 언니는 이미 이 드라마의 마니아인 듯 보였다. 드라마의 줄거리를 잘 모르는 나에게 등장인물 소개에서부터 각각 인물의 성격 소개까지 장황하게 설명해 주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삼십대 직장 여성들의 삶과 사랑을 담아 놓은 드라마인데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마치 자신을 대변해 주는 듯 하다고 했다.



케이블은 자극적인 소재가 많고 다소 억지스러운 구석도 많아서 나는 몇몇 내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일절 눈길한 번 주지 않았었지만, 언니의 말을 듣고나자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막돼먹은 영애씨에 관한 기삿거리를 찾아봤고 시즌 1부터 다시보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막돼먹은 영애씨는 이미 숱한 마니아들을 거느린 대단한 드라마였다. 케이블 방송에서 시청률 1%를 넘긴다는 것은 그 프로그램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은 그만큼 그 시장이 아직까지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제작비가 열악한 케이블 쪽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편성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막돼먹은 영애씨는 그 흔한 자극적인 침대신(?)도 없이 시즌 4까지 제작한 케이블계의 대박 드라마였던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출산드라(아직도 나에겐 이 캐릭터가 너무 강하게 각인됐다.) 김현숙을 필두로 정다혜, 윤서현, 도지원, 최원준 등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살아 숨쉬는 막강 연기를 자랑한다. 모든 배우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각각의 캐릭터가 살아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김현숙을 제외하고는 배우들의 본명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출연진 중에 소위 스타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나같이 어찌나 연기를 잘 하는지 배우들의 내공들이 만만치 않음이 느껴졌다.


다큐 드라마인 막돼먹은 영애씨는 말 그대로 다큐와 드라마를 섞어 놓은 듯 하다. 등장인물의 속 마음과 상황 설명을 나레이션으로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나는 이것 또한 이 드라마의 성공에 힘을 실어 준 하나의 색다른 장치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삼순이'를 보면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대변해주는 삼순이의 언행에 속 시원함을 느꼈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표현이 더 자유로운 케이블 대표인 영애씨는 시원함을 넘어선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해 준다. 이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은 어떤 사람들인 지 보고 싶을 정도로 정말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솔직하고도 담백하게 드라마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래서 또 다큐이기도 한가보다.

요즘 세상에선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는 뚱뚱함을 가지고 있는 삼심 대 노처녀 영애의 좌충우돌 인생기. 뚱뚱하지만 늘 예쁜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는 그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엔 금방 얼굴을 일글어뜨리고, 불의를 보면 주먹부터 날리는 그녀, 그러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앞에선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가 되는 그녀 영애가 남같지 않음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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