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랑 같이 외출을 했을 때, 다른 여인들이 가지고 있는 샤넬 가방을 볼 때마다 저는 남편에게 '나도 샤넬 가방 꼭 사 줘~'라고 말을 하는데요, 막상 남편이 정말로 오백 만원 짜리 샤넬 가방을 사서 온다면? 과연 제가 처음부터 기뻐할 수 있을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세 달 째 미용실에 가지 못해서 머리가 덥수룩해진 남편을 집 앞에 새로 생긴 미용실로 보내 놓고 저는 다솔이와 집에서 놀고 있었어요. 얼마 후 산뜻해진 모습으로 돌아 온 남편의 손에는 헤어드라이기가 들려 져 있었지요. 그 미용실이 개업을 하면서 대대적인 이벤트를 벌인다는 현수막 광고를 봤기에, 개업 선물로 받아 왔나 보다 했는데, 남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습니다.
삽십 만원 짜리 VIP 쿠폰을 끊었다는 것! 헤어드라이기는 거기에 대한 사은품이었던 것이었어요.
VIP 쿠폰을 끊으면 갈 때 마다 15%씩 할인을 받을 수 있고, 적립금도 더 많이 주어지고, 또 무슨무슨 혜택이 있다고 하는데, 이미 제 귀에는 혜택들은 하나도 들리지 않고...... 삼십 만원, 삼십 만원, 삼십 만원...만 맴돌았어요. 당연히 얼굴도 일그러졌겠죠.
남편은 뭘 해 주고 한 번도 좋은 소리 들은 적 없다며 잔뜩 뿔이나서 볼멘소리를 하는데,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이에요.) 이미 삼십 만원은 지불했고 무를 수도 없는데 남편이 절 위해 준비한 이벤트라니 정말 고맙다고 가벼운 뽀뽀라도 해 줘야 할 상황이었지요.
사실 저는 일 년에 미용실에 두 번 갈까 말까...하는 머리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인데, 출산하고 나면 저를 위한 투자를 좀 하고 단골 미용실도 만들어 보자고 벼르고 있긴 했었어요. 그런데 출산 후에 머리를 제대로 하려면 적어도 지금부터 4~5개월은 지난 후에야 가능하고, 저희는 얼마 후 이사를 할 예정이기 때문에 남편의 선물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에요.
남편이 머리를 하고 온 다음날 저도 예약을 하고 미용실에 갔어요. 거의 1년 만에 미용실에 간 것이지요. 임신 중에는 머리카락이 잘 빠지지 않아서 숱은 많아 지는데 정리를 하지 못해서 완전히 엉망징창인 상태였을 거예요. 임신 35주가 되어, 이제 슬슬 출산을 준비해야 하기에 (신생아 돌보는데 머리가 너무 길면 감기도 귀찮찮아요.) 정리를 좀 하려고 생각하고 있긴 했었어요.
다솔이 낳고 4개월 지난 후에 머리 감는 일이 너무 귀찮아서 단발로 잘랐다가 엄청 후회를 했었기에 어깨선은 조금 넘는 범위 내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하려고 맘 먹었어요. 예전에 웨이브 파마 한 것이 아직 남아 있어서 잘못 자르면 절대 풀지는 못하고 묶어서만 다녀야 할 지도 모르기에 길이는 신중하게 잘라야 했답니다.
예약을 하고 갔는데,
와우! VIP가 좋긴 좋네요. 담당 미용사가 정해져 있고, 어찌나 융슝하게 대우를 해 주는지 이야~~ 역시나 돈이 좋긴 좋다는 생각과 이 정도 대우를 받을 정도면 삼십 만원 정도야 (어차피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머리는 해 줘야 되니까요.) 기분 좋게 쓸 수 있겠다 싶었어요. 미용실에 가 보니 더 혜택이 많은 50만원권, 80만원권 쿠폰도 있더라고요.
고급 미용실 답게 각종 음료도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메뉴도 정말 다양했어요.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페모카, 녹차, 둥글레차, 밀크 쉐이크, 녹차 쉐이크, 곡물 쉐이크, 초코 쉐이크, 딸기 쉐이크, 망고 쉐이크, 오렌지주스에 토스트까지.
예약 시간 보다 너무 일찍 가서 딸기 쉐이크를 마시면서 잡지를 읽으며 잠시 기다렸어요. 틈만 나면 토스트 드릴까요? 마실 거 한 잔 드릴까요, 묻는 미용실 직원. 이 맛에 VIP 하나 봅니다.
머리를 정리하러 갔는데, 임신 중이라 다른 것은 하지 못하는 저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영양팩을 서비스로 또 해 주더라고요. 앰플 바르고 스팀 기계에서 뜨거운 바람도 좀 쐬고...... .
오랫만에 기분 전환 좀 하라며 드라이도 곱게 해 주셨어요.
사실 병원에서는 임신 후반부에 파마를 해도 괜찮다고 말씀하시거든요? 태아에게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나 오래 앉아 있어야 되기 때문에 임신부에게는 좀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이 임신 & 출산 책의 의견이기도 한데, 그래도 왠지 모를 찜찜함 때문에 저는 파마를 선택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임신 6개월 넘어서면서 파마를 했다는 임신부들도 왕왕있고, 심지어 뿌리 부분을 피해서 염색을 했다는(염색도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없지만, 염색약이 워낙 독하니까 파마보다 훨씬 더 꺼려지잖아요.) 임신부도 있었어요. 파마와 염색에 대한 확실한 연구 결과가 없고 병원에서도 큰 무리는 없다고 하니 선택은 임신부 자신의 몫인 것 같아요.
아무런 약속이 없는 것이 아쉬워서 다솔이를 데리고 단지 내 놀이터라도 다녀와야겠다고 결심하면서 마지막 셀카를 찍었답니다. 모든 사진은 니콘 쿨픽스 s1200pj로 찍은 것이에요.
오랫만에 혼자 미용실에 가서 딸기 쉐이크도 먹고, 잡지책도 보고, 수다도 실컷 떨었더니 기분이 참 좋았답니다.
여보! 미용실 쿠폰 끊어줘서 정말 고마워!! 히힛!
앞으로도 많이많이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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