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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오후, 늘 그렇듯 느즈막히 아점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는 중에 후배에게서 호들갑스러운 전화가 왔다.
"언니, 글쎄 말야~"
...... .
내용은 이러하다. 후배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영어캠프에 조교로 참여 중인데 캠프 기간 동안 학생은 물론 조교까지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후배와 함께 방을 배정 받은 모 여인이 후배가 보기에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니, 그게 말이나 돼? 우리가 무슨 미스코리아 합숙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동안 쌓인 게 많은 지, 터 놓을 사람이 없었던 지 후배는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후배의 말에 따르면 그 여인(?)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그 날 입을 옷을 코디하고, 코디한 옷에 맞추어 매니큐어 색이며, 화장의 콘셉트가 달라진단다. 기숙사에 달려 있는 붙박이 장에 그 여인이 걸어 놓은 코트와 갖가지 색상의 구두. 그리고 그것을 담아 왔을 거다한 캐리어 가방을 본 후 후배는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옷을 고르고 바비리스로 머리를 말며 옷과 기분에 따라 완벽한 화장을 끝낸 후 7시에 기숙사 식당으로 아침밥을 먹으러 간다는 그 여인. 후배와 전화를 하고 있었던 오후 2시의 내 몰골이 심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약속이 있을 땐 왠만큼 꾸미고 나가는 편이다. 화장하는 것을 여성의 특권으로 여기기에, 화장을 즐거운 놀이의 일종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장소에서 가장 돋보이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이기에. 그렇지만 한 달 내내 열리는 영어 캠프장에서 매일 바쁜 일정에 쫓기면서까지 완벽한 화장과 의상을 유지할 자신은 없다.
후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그 여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으른 여자는 절대 미녀가 될 수 없다. 미녀는 타고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꾸며서 안 예쁜 여자는 없지만, 주위에는 자신의 美를 온전히 드러내는 이가 많지는 않다.
화장대에 넣어 두기만 했던 갖가지 아이새도우들을 의상과 장소에 맞게 적절히 연출하고
헤어스타일도 가끔씩 바꿔보자. 나는 늘 긴 생머리를 고수해 왔기에 얼마전에는 헤어롤을 사서 변화를 주고 싶을 때면 웨이브머리를 하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곤 한다. 번거로워도 이런 노력들이 결국에는 우리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무릎 나온 운동복과 목 늘어진 티셔츠, 부스스한 머리와 푸석한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부끄럽긴하지만 용서해주기로 한다. 미녀도 집에서는 좀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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