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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옆 자리에서 수근거리는 소리에 머리카락이 쭈뼛선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자기네들끼리 하는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 소리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자기들의 목소리를 못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듣든 말든 상관 않는 것인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분이 불쾌하고 내 가슴이 더 떨렸다. '저기 서 있는 저 여자, 정말 더워보이지 않냐? 저 몸을 해 가지고 또 먹는 것 좀 봐라. 저러니 살이 안 찌고 배기냐? 재,수,없,어' 재수가 없다니! 정말 너무했다.

먹고 있던 막대 사탕으로 그 여자를 가리키면서 수군대고 있는 여고생들. 슬쩍 쳐다보니 민망할 정도로 꽉 끼는 상의와 다리가 훤히 보이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다. 간혹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교복을 수선해서 입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나는 특별히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니었는데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입시 준비 때문에 외모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늘 펑퍼짐한 모습으로 학교와 집을 오갔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든, 잘 못하는 아이든 다들 어찌나 겉모습에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


연하게 화장을 하고 다니는 애들이 태반이고 귀를 뚫고 파마를 한 아이들도 자주 눈에 띈다. 학교 교사인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 아이들이 어찌나 외모에 관심이 많은지, 머리 모양을 조금만 바꾸어도 금세 알아차리고 새 옷이라도 입고 가면 난리도 아니란다. 그 정도로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니 뚱뚱한 여자가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대놓고 수군거리다니 정말 심했다.

그 아이들의 말에 오르내린 여자는 맞은편 지하철 문 쪽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솔직히 한 눈에 봐도 뚱뚱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욕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다. 나도 시간은 없고 너무 배가 고플 땐 지하철이든 버스든 상관 않고 빵이며 과자를 먹으면서 이동할 때가 많다. 그 여자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몸집이 좀 있다는 이유로 지하철에서 무언가를 먹는다고 그런 말을 들어야 하다니, 정말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별 반응이 없다. 정말 아무것도 못 들었으면 좋으련만,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도 출입구 쪽에 서 있던 그녀를 흘끔 쳐다보는데, 그 여자가 못 들었을 리가 없다. 무신경한 눈초리로 계속 빵과 우유를 먹고 있던 그 여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내가 다 목이 맸다. 만약 이야기를 듣고서도 못 들은 척 해야 했던 상황이었다면 체하지나 않았을지 걱정이다.

이번에는 버스에서 만난 여고생들의 얘기다. 같은 반 친구로 보이는 네 명의 여학생들이 버스를 탈 때부터 왁자지껄 심상치 않더니 타자마자 욕설을 내뱉는다. 나는 세상에 그렇게 다양한 욕설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있는 욕도 모자라서 욕설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 하는 아이들, 그들의 입방아 도마에서 난도질 당한 사람은 학교의 선생님인 듯 했다. 버스를 전세낸 듯 큰소리로 떠들어 댔으니 아마도 그 버스를 탄 승객들은 모두 그 학교의 수학 선생님의 신상에 대해 다 알게 됐을 것이다.

친절하게 교복까지 입고 있으니 어느 학교 선생님인지도 대충 알려졌다. 수학선생님은 남자이고, 이름은 아마도 최XX일 것이며, 머리숱이 약간 없는 데다가 실력마저 없어서 어려운 문제가 나올 때마다 손이 흥건할 정도로 땀을 흘리면서 몇 달 째 빨지 않은 손수건으로 손이며 벗겨진 머리를 닦는 것이 버릇이란다. 꼴(?)에 자기도 남자라고 예쁜 애들을 밝히고 가끔씩 멋있는 척을 하는데 역겨워서 화장실로 직행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라고...... .


사실 아이들이 거친 욕설과 함께 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은 곧 있으면 보게 될 시험 때문이었다. 수학 때문에 정말 미치겠다는 하소연과 함께 시작한 이야기가 선생님에 대한 흉으로 끝이 나게 됐는데(사실은 내가 내리는 순간까지 이야기가 끝이 나지는 않았다.) 결국 시험 스트레스를 이런 방법으로 풀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학창시절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무척 힘들어 했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혹시나 버스 안에 그 선생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타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대놓고 그런 욕설을 퍼붓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았나 싶다.

그들을 지도해야 할 위치이면서도 서슬퍼런 아이들의 입담에 혹시나 당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내 모습이 정말 부끄럽다. 그렇지만, 요즘 여고생들 정말 무섭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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