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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해도 표시가 나지 않고, 안 하면 금방 마음이 심란해 지는 것이 바로 청소가 아닐까 싶어요. 거실이 아수라장으로 변한지 오래, 발바닥이 끈적거리고 자세히 보지 않아도 다솔이가 흘렸을 것이 뻔한(아니면 다솔 아빠!) 얼룩들이 곳곳에 말라 붙어서 내 기분을 찐득하게 만들기에, 주말 동안 치우고 또 치웠는데 별로 달라진 것이 없네요.

치우고 돌아서면 다솔 군 & 다솔 아빠가가 아무렇게나 내던지거나 버려놓은 요구르트병, 휴지 조각, 맥주캔이 발 밑에 걸리고, 또 치우고 돌아서면 악마의 미소를 지은 다솔 군이 책장에서 책을 빼 휙휙, 장난감들을 홱홱, 정말 꽥 소리 나게 울화가 치밀지만 어금니 꽉 깨물고 웃는 낯으로 다솔이를 타이릅니다.


걸레를 빨기 싫어서 샘플로 받은 물휴지로 거의 기다시피 거실의 얼룩들을 닦아 내고 있는데, 이제야 알아챘다는듯 한 마디 하는 다솔 아빠. 청소하는 거야? 왜??? 육중해진 몸으로 바닦을 닦는 아내에게 어디 할 소리냐고요. 두 사람을 집에서 내 보내든지, 재우든지 한 후에 청소를 해야 마무리가 지어질 것 같아서 그만 두고 책상을 정리하던 중에 중국에서 쓴 가계부 겸 일기장을 발견했어요.




일기 쓰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다솔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한 장도 써 보질 못했네요. 여유가 생기면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해야겠어요. 2007년 후반부터 쓴 일기장이었는데 첫장에는 독서 목록도 있고(제가 좋아하는 한국 소설, 요즘엔 통 못 읽었어요.) 이후에는 중국에서 약 2년간 생활하면서 쓴 가계부겸 일기가 있었어요.




저는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사전을 찾아가며 해당 품목을 번역해서 써 두었는데요, 은근히 중국어 공부가 되더라고요. 어학 공부가 뭐 별건가요? 필요한 것부터 익히는게 좋죠. 그 땐 참 알뜰하게 잘 살았던 것 같은데...... .




중국에서도 인터넷도 하고 블로그도 했었는데, 통신 환경이 좋지 않아서 너...무 느렸어요. 그래서 대부분 그날 그날의 이야기들을 일기로 남겨 두었었답니다. 손글씨를 쓰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일이 제게는 참 소중한 시간이었거든요. 천천히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마음도 정리하고, 계획도 세우고...... .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읽는데 그 때의 일들이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나더라고요. 외국에서 살게 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잖아요? 기회가 된다면 또 비슷한 경험을 해 보고 싶은데,  완전히 가는 것은 싫고 적당하게 2년 정도 또 나갔다 올 수 있을까요? 그 땐 블로그로 일상을 정리할 것 같긴 해요.




제가 있던 곳이 중국 산동성 청주시라는 작은 도시라서 참 물가가 쌌었는데, 가게에서 양 손 가득 무겁게 장을 봐도 정말 저렴하게 살 수가 있었어요. 한국에서의 장 보기와 중국에서의 장 보기가 너무 심한게 차이가 난다는 생각을 하면서 휘리릭 일기장을 넘겼는데요,





마침 다솔이를 임신하고 있던 중이어서, 임신 중 몸무게 변화를 계획(?) 했던 내용을 발견했어요. 다솔이와 '달'이는 생일이 약 한 달 반 정도 차이가 나거든요. 저는 다솔이를 임신했을 때 나름대로 몸무게 사수에 성공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 수치를 참고하면 둘째 '달'이 때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달에 1kg씩 찌는 걸 목표로 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시장'에 몸무게를 재러 갔었답니다. 병원이 아니고 시장이요. 중국돈 0.5위안(1위안이 약 170원 정도일 걸요?)을 내면 옛날식 기계로 키와 몸무게를 재 주는데요, 결과지를 잘라서 주기 때문에 일기장에 붙이면서 몸무게를 점검했었어요. 저에게 중요한 것은 몸무게였기에 키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어쩜 저리도 정확하게 156이라고 나왔을까요? 까치발 좀 들 걸 그랬네요.


현재 임신 28주가 조금 넘은 제 몸무게는 55kg, 다솔이때와 비교해서 정확히 2kg이 더 나가는 상황이에요. 중국에서는 못 미더워서 빵류, 과자류를 안 먹었었는데(한창 멜라민 파동이 있었던 시기였지요.) 지금은 조금의 허기를 못 참고 열량 높은 것들을 마구 먹기 때문인 것 같아요. 건강하게 식단 잘 조절하면서 다솔이 때 처럼 몸무게 사수에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두서없이 글을 쓰다보니, 청소 얘기- 가계부, 일기장 얘기- 몸무게 얘기까지 참 다양하게도 이야기가 흘러갔네요. 국어 시간이었다면 하나의 소재로 글을 써야 된다며 야단 맞았겠지만, 블로그에 올리는 일상 이야기니까 꾸짖지 말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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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내년엔 멋진 남자친구를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 내년엔 꼭 승진을 하고 싶은 마음, 내년엔 기필코 결혼을 하고 말리라는 마음, 내년엔 어여쁜 아기를 낳고 싶은 마음, 내년엔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픈 마음...... .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2009년을 설레며 기다리는 지금, 그래서인지 유독 새해 일기장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나도 작년 일기장의 여백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은근슬쩍 2009년형 일기장에 손길이 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으라는데, 캐캐묵은(?? 사실은 겨우 1년된) 일기장에 내 새로운 계획들을 넣을 수는 없지. 예쁜  새 일기장을 또 사고 싶어서 속이 빤히 보이는 자기위안으로 나를 속이면서 말이다.
 
나에게는 예전에 비해 일기장을 가득가득 채우지 않게 된 계기가 있다.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좋아하고 시시콜콜 기록하기를 좋아했던 나였었기에 매해 큼지막한 일기장을 준비하고 그 해가 다 가기전에 빼곡하게 모든 여백을 채웠었다. 친구와 싸웠던 일부터 외식했던 기록과 영수증, 좋아하던 선배에 관한 마음까지 그 해에 나에게 일어났던 거의 모든 사실을 일기장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일기장은 내 삶 그 자체였고 나는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일기장을 채우는 일이 눈에 띄게 게을러졌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매 해 새롭게 일기장이 등장할 때면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쪽으로 저절로 눈이 가게 된다.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에서 소설을 보다가 훔치고 싶은 글귀가 있어서 일기장을 펴 그 내용을 옮겨썼다. 나를 매료시켰던 한 단락의 내용을 모두 옮겨적고 나서도 내내 그 소설에 취해있었는데, 정신줄을 잠시 놓쳤는지 그만 일기장을 도서관에 두고 와 버린 것이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고 다음날 도서관에 가 봤지만 일기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의 기분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들었다. 내 삶의 기록들이 빠짐없이 적혀있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읽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것 같았다. 그 후 몇 주가 지나도록 일기장은 소식이 없었고 나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다시 일기장을 장만해야 할 지 이제 일기 쓰기를 그만 두어야 할 지를 결정하려는 즈음에 전화 한 통이 왔다.

모 동아리방이었다. 한 여학생이 책상 속에서 발견하고는 연락처를 찾아 내게 전화한 것이었다.  내 일기장이 왜 그 동아리방의 책상 속에 들어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그것을 수습하러 갔다. 왠지 그 동아리의 모든 사람이 내 삶을 낱낱이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정말 부끄러웠다. 타인의 손을 탄 내 일기장은 나에게로 돌아온 지 몇 주가 지나도록 외면을 받았다. 어떤 얘기를 써 놓았을 지 너무나도 걱정이 됐기에 그것을 펼쳐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한 달이 지난 이후에야 다시 일기장을 열어 볼 수가 있었지만 그 전처럼 속속들이 내 삶을 적어 둘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이후부터는 일기장 쓰는 방법부터가 달라졌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메모하는 것과 잊어버리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을 기록해 두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내 시시콜콜한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방심한 사이 타인에 의해 내 감정이 들추어지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니 그 때의 당혹감이 정확히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금 일기장에 내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기발하고 갖고 싶은 일기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2009년형 일기장의 유혹에 못 이겨 결국 올해도 새로운 일기장을 사 버린 나는 이 일기장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일기장에 진실을 담을 수 없게 된 내 잃어버린 순수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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