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했다. 가끔씩 보는 패션잡지에서 패션 제안이라며 내 놓은 수십만원의 옷가지들에 혀를 끌끌차고, 명품의 정의조차 알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변해버렸다. 물론 워낙에 그 쪽으로는 문외한이었기에 나의 변화는 무지에서 자각정도이지만, 그래도 고급 브랜드에 눈을 뜨고나니 각종 브랜드의 값비싼 가방을 들고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가짜가 많은 루이비통 가방은 5분에 한 명 꼴로 들고 지나간다고 해서 5분 가방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흔한 루이비통 가방이 눈에 보이면 당연스레 가짜려니 하는데, 하나에 몇 백만원씩 하는 진짜 고급 브랜드를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소위 명품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매스컴 덕분(?)이다. 내가 즐겨보는 케이블 방송 중에는 스타들의 패션을 진단해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각종 진귀한 브랜드의 제품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처음 보는 세상이 신기해서 계속 보며 그들의 설명을 듣다보니 이제는 일이백만원 정도 하는 물건은 싸게 느껴질 정도고 오십만원 정도 하는 가방 정도는 사도 될 듯한 착각까지 생길 지경에 이르렀다. 그 돈이면 십만원짜리 가방에 옷이며 신발이며를 잔뜩 사고도 며칠은 잘 먹겠다고 고개를 젓던 내가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증상(?)을 앓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더 있나보다. 얼마 전 서점에 들러서 신작들을 보던 중에 내 맘에 쏙 드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 두 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압구정 다이어리'와 '청담동 여자들'이었다. 신작인데도 벌써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책 사는 데는 돈 아끼지 말자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얼른 그 두권의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중 소설인 '압구정 다이어리'는 내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알고 보니 논스톱 작가였던 정수현이 쓴 책이었다. 정신없이 읽느라 처음에는 그 책이 소설인지도 몰랐을 정도니 말 다했다. 내가 픽션과 논픽션을 착각한 까닭에는 그 책 속에는 실제 압구정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뭐, 압구정에 즐겨다니지 않으니 그 지도조차 정수현 작가가 창조해 낸 가상의 것일지도 모르나 내 짐작으론 실제 압구정의 모습일 것 같다. 케이블 온스타일을 즐겨보고 스타들의 행사장 드레스에 관심을 갖던 나는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녹여놓은 그 책이 정말로 신기했다. 처음 압구정을 방문하는 비압구정인(?)들이 마치 늘상 압구정이나 청담에서 놀았던 척(?)하기에도 좋을 만큼 상세한 지침서이다. 압구정에서는 어떤 카페가 유명하고 그 곳에서는 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 새로 생긴 나이트에는 무슨 옷을 입고가야 무사 통과인지, 압구정 사람들의 관심사는 도대체 무엇인지 정말 사실같은 소설이다.
텔레비전과 각종 잡지, 그리고 책을 통해 압구정 훔쳐보기를 한 나, 삼십년 동안 세워 온 가치관이 한 순간에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니 오래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의 소탈한 내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값비싼 물건을 마음내키는 대로 사 들일 형편도 되지 않으니 어쩌면 생각보다 더 빨리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아주 재미있고 유쾌하게 훔쳐보고 있고 '고가 브랜드는 절대 안 된다'에서 '형편껏 적당히'로 생각도 바뀌었다. 하루하루 아둥바둥 살아가기에도 빠듯한 생활에 명품이 왠말이냐 할 수도 있지만 차곡차곡 모아뒀던 돈을 투자해서 자신이 갖고 싶었던 브랜드의 가방이나 신발을 사는 것이 잘못된 일만은 아니지 싶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또한 살아가는 힘, 사는 재미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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