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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중에서.

뜻도 몰랐으면서 그저 연애시라고 생각했던 까닭에 학창 시절 입에 달고 살았던, 멋도 모르던 내가 멋도 몰라 더 좋아했던 '꽃'이라는 시다. 이 시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랬는지, 내 생각이 원래 그러해서 이 시를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렸을 적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이름'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철이 덜 들었었기에, 아무리 멋있는 남자를 만나도 이름이 우스꽝스러우면 절대 가까이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기도 했었다. 분위기를 잡아야 될 시점에서 그저 나직히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피식 웃음보가 터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연예인의 본명을 듣고 깔깔대는 까닭도 그렇지 않나, 귀엽고 앙증맞은 소녀시대의 써니가 사실은 순규였고 엠블랙의 미르의 본명은 방철용이라니 순식간에 이미지가 바뀌는 순간이다. 



다솔이는 왜 '다솔'이가 되었을까?


이다솔(李多率).
남편과 내가 열 달의 임신 기간 동안 머리를 싸매어 지은 이름이다. 다솔이라는 이름을 미리 지어놓고 아들이든 딸이든 (우리는 출산을 하고 나서야 다솔이의 성별을 알았으므로) 이 이름을 쓰겠노라고 결정해 놓았다.

우리 부부처럼 아기 이름을 부모가 짓는 경우도 있지만 집안의 분위기에 따라 할아버지가 지어 주시는 경우도 참 많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집안의 돌림자를 쓰게 되는데, 어르신들이 지은 이름은 대체로 우직하거나 뜻이 좋지만 자칫 촌스러운 이름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심사숙고해서 지어 오신 이름을 두고 아들도 아닌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받게 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임신 기간 내내 아기 이름 짓기에 몰두 해야만 한다.

한편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 다른 엄마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의외로 작명소에 가서 아기 이름을 받아 오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작명하시는 분께 아기가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가르쳐 주고 후한 이름 값까지 치르고 나면 훗날 여러 복을 받게 될 좋은 이름을 받을 수 있다. 요즘 작명소는 뜻이 좋으면서도 현대적인(?) 이름으로 지어주는 것이 유행이라고 들었다.

어떤 방식으로 아기 이름을 짓느냐는 전적으로 부모의 철학에 달려 있지만 어떻게 해서 지어진 이름이든 사랑을 담아 많이 많이 불러주는 것이 좋겟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이름이란 중성적이고 너무 흔하지 않으면서 나쁜 것을 연상시키지 않고 동시에 너무 어렵지 않은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름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까다롭기도 하다.) 그래서 부르기도 쉽고 쓰기도 쉬우며 한자로도 멋있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고르느라 열달 내내 고생을 했다.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한글표를 요리조리 섞어서 이름을 조합해 보기도 하고 간판의 글자를 보면서도 이름을 생각하는 등 갖은 정성을 쏟다가 마침내 성경에서 답을 찾았다. 남편과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기에 성경 속 인물 중 본받을 만한 인물의 이름을 따기로 한 것이었다.

미소년이면서도 용맹스러웠던 '다윗'과 지혜로운자의 표상인 '솔로몬'의 첫글자를 따서 드디어 뜻도 좋고 부르기도 쉬운 '다솔'이라는 이름을 얻은 순간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다솔이의 이름이 한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중에,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솔이가 백발 노인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 이름이 '다솔'인건 좀 웃기지 않겠냐고 우려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그런데 그저 부르기에 예쁘라고 다솔이라고 지은 것이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의 용맹함과 지혜를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다솔이라고 했다면 변명(?)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한글로 이름을 먼저 정하고 한문을 골랐는데 리더십을 가진 아이로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많을 '多'에 이끌 '率'을 썼다.

오늘 재미삼아 다솔이의 이름풀이를 해 봤는데, 너무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대박!!
임신 기간 내내 고심했던 보람이 있었다. 이름풀이는 그냥 심심풀이로 재미삼아 해 보는 거지만 그래도 결과가 좋으니 기분도 좋았다. 종교인으로서 운세를 보고 좋아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솔이의 이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기분 좋게 불려져 다솔이가 그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꽃'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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