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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아기를 낳으러 가는 날-금식이라 먹지도 못할 바나나는 왜 꼭 쥐고 갔는지
(우)아기를 낳은 직후



출산 후 호르몬의 영향으로 머리카락의 30%가 빠집니다.
뭐?? 30%??
조금 놀랐지만 감이 오지 않아서 그냥 그런가 했다. 호르몬의 영향이라니까, 또 일시적이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니까 그러려니 했었다. 나는 임신 기간동안 열심히 <임신, 출산> 관련 책을 읽었기에(육아책도 미리 읽어 두는 것이 좋다. 정작 아기를 낳고나면 아예 책을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둬야 된다.) 출산 후 탈모 현상이 심하기는 하지만, 임신 중에는 머리카락이 잘 빠지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한꺼번에 조금 더 많이 빠진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임신 기간에는 정말로 머리카락이 덜 빠져서 원래 머리숱 없던 내가 임신 기간 동안 만큼은 삼단같이 탐스럽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자랑할 수 있었었다. '호르몬의 영향'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해서 보기 싫은 팔, 다리, 몸통의 '털'들은 다 없애주면서도 머리카락은 풍성하고 윤기있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열 달 동안 고생하는 임신부를 그렇게라도 위로하듯 말이다.

다솔이를 낳았고 토실토실 살 찌우며 백 일을 보냈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른들 말씀이 출산 후 백 일부터 머리카락과의 전쟁이 시작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자고나면 한 웅큼씩 빠진다더니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길 때마다 머리카락이 참 슬프게도 빠졌다. 어떤 엄마는 슬프다고도 했고 또 다른 엄마는 무섭다고도 했다. 머리를 감을 때 수채구멍이 막힐까봐 조마조마 할 정도였다.

그러나 육아에 전념을 하다보면 어느새 머리카락 따위에는 무신경해지기 마련이다. 나도 머리를 감고 말리는 시간에 차라리 한숨 더 자는게 낫겠다며 길게 기르던 머리카락을 싹뚝, 아주 속시원이 잘라 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이제 다솔이 돌보기도 익숙해졌고 슬슬 멋부리기에도 관심이 생길무렵,
이를 닦다가 거울 속에서 잔디인형을 발견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로 보면 더욱 삐죽삐죽 나와서 어떤 사람들은 왜 앞머리를 그 지경으로 잘랐느냐고, 미용실 안 가고 혼자서 자르다 실패했느냐고 물어보기도 할 정도이다.

거울에 코를 박고 머리카락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마에서부터 2센티미터가 넘게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새로 나는 중이었다. 화장을 할 때 갑자기 훤하게 넓어진 이마를 채우느라 어두운색 섀도우를 빈 이마에 마구마구 칠해야만 했었는데, 이게 원래 내 이마 크기가 아니었다!

가르마를 탈 때도 앞부분에 새로난 머리 때문에 일자로 쭉 타지지가 않고, 앞부분은 에센스나 왁스로 눌러줘야만 잔디인형처럼 삐죽나온 머리카락들이 안정을 찾지만, 그래도 새로 나 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머리카락이 원래대로 다 나 줄건지, 일부분만 날 건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갓 출산을 해서 뭉텅이로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들은 안심을 해도 괜찮겠다.
영영 빠지는 것은 아니고 되돌아오니 말이다.

요즘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잔디인형이 된 내 머리카락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제 머리 좀 보세요'
이 말 속에는 '그 간의 제 수고를 좀 알아주세요'라는 뜻이 함축돼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출산과 육아의 수고를 잊어버리려는 주윗 사람들에게 다시금 생색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삐죽삐죽 머리카락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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