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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은근히 치사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택시 요금 표시기이다. 그깟(?) 몇 백원, 평소에는 옛다 과자 하나 사 먹어라. 하며 동네 꼬마에게 선심을 쓸 수도 있다. 그런데 택시만 타면 그깟(?) 몇 백원 때문에 가슴은 벌렁벌렁하고 손에는 땀이 흥건해지니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의연해지자고 마음을 먹고 택시를 타는 순간부터 아예 택시 요금 표시기 쪽으론 눈길 한 번 안주지만 조금만 막힌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가자미 눈이 되어 요금부터 확인하게 된다. 택시를 탈 때마다 있는 일이다.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은 선천적인 짠순이인 내가 택시를 타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나 나는 시골 출신이라 서울의 교통 체증을 서울에서 십 년이 넘게 생활하고 있는 지금도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택시를 잘못 탔다간 의도하지 않게 떡볶이 몇 접시 쯤은 금방 날려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아기와 함께 외출을 할 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된다. 특히나 잘 모르는 길을 아기띠를 메고서 헤메기라도 하면 그 날 할 일을 망치는 것은 물론이요, 무릎이며 허리에 어마어마한 후유증이 남기 때문에 떡볶이 몇 접시가 대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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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miNiaTURe wOrLd by 27147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방배동에 일이 있어서 다솔이와 함께 나가게 되었다.

지하철만 탈 수 있는 곳이면 유모차를 가지고 나갔을텐데 지하철에 버스까지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8.8kg이 된 다솔이를 어깨에 메고 기저귀 가방은 들고 일을 보러 갔다. 우리끼리(다솔이와 나) 아기띠를 메고 멀리 가 본 적은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의외로 순조롭게 일이 착착 진행이 됐다. 이제 버스로 세 정거장 가서 도보로 100m 가량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이었다.

나는 100m가 마음에 걸려서 버스 대신 택시를 선택했다. 택시를 착 하고 타면 목적지까지 척 하고 데려다 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나는 엄청난 맘고생을 해야만 했다.

내가 목적지를 이야기할 때부터 택시 기사 아저씨는 그 곳을 잘 모르는 듯 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유명한 상호를 가진 곳이니 요즘 택시엔 다 있는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만 하면 됐다. 그러나 오십 대로 보이는 그 아저씨는 초보 택시 기사였던 듯, 네비게이션을 입력하는 손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자꾸만 틀린 글자를 클릭했고 내가 보는게 부담스러웠는지 어험,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혼잣말로 'OO사거리에 있는 거기로구먼'하며 그냥 출발이었다.

Taxi
Taxi by Stephan Gey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나는 그 날도 의도적으로 요금 표시기 쪽을 외면하면서 창밖 풍경을 보고 있었는데, 차 안에 참 오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자꾸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것이 미심쩍었지만 나도 초행길이라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저씨를 무작정 의심만 할 수는 없었다.

요금 표시기에 말들은 하염없이 달리고, 버스로 세 정거장이면 간다는 길은 정처가 없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자미가 되어서 흘끔 요금을 봤는데 기본 요금이면 될 줄 알았던 것이 자꾸만 백 원 씩 올라가고 있었다.

아저씨 여기가 맞나요? 방배역에서 세 정거장이면 간다던데요. 대답이 없는 아저씨는 길을 잃은 것이었을까? 아까 본 것이 분명한 그 골목을 다시 지나 와서야 나와 다솔이를 내려 주었다. 요금은? 맘 같아서는 좀 깎아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나는 소심한 A형. 요금을 내는 손이 아마도 부들부들 떨렸을 것이다. 길을 잃은 것은 택시 아저씨인데 왜 요금은 내가 다 내야 되는 것이지? 좀 억울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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