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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생각만 해도 살 떨리는 수능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내가 수능 시험을 본 것은 벌써 까마득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몸서리처지게 싫고 끔찍한 날이다. 단 한 순간의 평가로 평생이 좌지우지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이 과언이 아닌것이, 어떤 대학 어떤 학과에 진학하느냐에 따라서 친구도 달라지고 선생님도 달라지며 직장도 달라진다. 그러면 당연히 직장 동료도 달라지고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달라지니까 배우자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시험인가 말이다.

수능 당일보다 더 싫은 날은 시험 하루 전날이 아닐까 싶다. 나는 컨디션 조절을 한다며 일찍부터 자리에 누웠지만 밤이 늦도록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얼른 그 밤이 지나가기를 바랐었다. 다시 시험을 치른다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잠시 생각도 해 봤지만 역시나 수능 시험은 너무나 긴장되기에 그냥 이대로 만족하기로 한다.

다행히 올해엔 매년 있었던 수능 한파는 없었고 시험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출제됐다고 들었다. 수험생들은 이제 끝이라는 해방감을 잠시 즐기다가 다시금 원서쓰기 전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요즘 입시제도는 잘 모르지만 우리 땐 수능이 끝나도 논술 시험과 면접 시험 등을 또 준비해야 돼서 합격 통지서를 받기 전까지는 결코 끝이 아니었다.

케이블 방송에 '80일만에 서울대 가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열등 의식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인지 나는 대학 입시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방송을 꼬박꼬박 다 챙겨보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아, 내가 진작에 이 비법을 전수 받았더라면...... .'하면서 말이다.

이 방송은 돈이 없어서 고액 족집게 과외를 받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수험생들을 위해 탄생했다고 소개하면서 국내 최초로 텔레비전을 통해 공짜로 족집게 과외의 비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실제로 몸값 높은 학원 선생님들을 섭외해서 그들이 다년간 연구한 비법을 아낌없이 소개해 주는데, 그 비법을 전수 받은 몇 명의 학생들이 실제로 수능 시험을 치렀으니까 점수로써 그 효능을 검증하게 될 것이다.

이 방송에 참여한 학생들 중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은 꿈도 못 꿀 실력의 소유자도 있고 목표는 서울대지만 실제 점수는 거기에 미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학생도 있다. 방송을 보니 '과외'답게 각 학생의 상황에 적절하게 지도를 해 주는 것 같은데 오늘 시험을 본 결과가 어떠할지 정말 궁금하다.

방송에 참여한 선생님들은 방송이 끝난 후 아마 몸값이 두배는 더 오르지 않을까 싶다. 점수를 팍팍 올려주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이는데 1점이 간절한 학생들은 이왕이면 그 선생님들에게 직접 배워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물론 돈만 있다면 말이다. 이제는 수능시험과 전혀 상관이 없는 나 조차도 방송을 보면 볼 수록 나도 좋은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았다면...... . 하는 생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이 방송은 전국의 돈 없는 수험생들에게도 좋은 대학에 갈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는 자신들의 방송 취지에 역행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 같다. 고액과외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까지 팔을 걷어 부치고 그 속으로 뛰어 들게 만들 마력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비법'을 전수해 주지 못하는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만 더 확산시킬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런데 급하게 성적을 올려 80일만에 서울대에 간 학생은 과연 행복한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어찌어찌해서 운 좋게 서울대에 갔다고 치자, 나는 4년 내내 그 엄청난 열등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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