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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를 염두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만나면 찻집이나 밥집에서 먹고 마시며 수다만 떨면서 몇 시간이고 같은 장소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우리의 놀이(?) 방식에 조금 변화를 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자주 만나든 못 만나든 이 친구만 만나면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다섯 시간을 쉴 새 없이 얘기해도 샘물이 샘솟듯 이야깃 거리가 자꾸만 생겼다. 그래서 이 친구와 만날 땐 샐러드 뷔폐에 가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일 때가 많다.

찻집에서 만나면 차 마시다가 배가 고파져서 곁들이로 먹는 쿠키나 케이크 같은 것들을 시켜 먹고, 커피나 차도 또 시키고 그러다 보면 배는 부른데 제대로 된 식사는 못해서 잔뜩 먹고 나서도 무언가 허전하다. 그래서 헤어지는 길에 길가에서 파는 떡볶이와 순대라도 먹어야만 속이 든든하게 만족스러워지곤 했다. 술을 별로 즐기지 않기 때문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싶으면 찻집에서 또다른 찻집으로 옮기거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덜 끝난 수다를 마저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좀 더 활동적인 놀이를 하면서 젊음(?)을 느껴 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해서 하게 된 것이 스케이트였다.

무슨 용기에서 스케이트장을 약속 장소로 잡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100미터 달리기를 손잡고 달리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100미터가 너무 길게 느껴져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 위해 손까지 잡고 달려야 했다. 엄청 빨리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23초! 체력장을 하면 저질 체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떡하니 찍혀있는 5등급에, 매일 연습해서 본 실기 시험에서는 한 번도 좋은 성적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우리가 스케이트를 탈 줄 알 리가 없었다. 어렸을 때 롤러스케이트는 좀 탔어서 비슷하게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분야일 줄이야. 스케이트 실력이 형편없는 여-여 커플이 스케이트장에 들어서니 시작부터가 쉽지 않았다. 쌩쌩은 아니더라도 멋지게 앞으로 나갈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제대로 서 있기 조차 불편했다. 발도 아프고 비틀비틀 넘어질까봐 두렵고,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내가 먼저 얘기 했으니 재미있는 척이라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연인들처럼 손을 잡고 탔는데, 둘다 초보이다보니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어느 정도 자기의 몸을 가눌 수 있기 전까지 개인 연습을 하고나서 다시 만나서 같이 타기로 했다. 팔을 허공에 휘저으면서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옆으로 씽씽 잘도 달린다. 곳곳에서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이들이 피겨 스케이트를 연습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볼 땐 쉬워보였는데 이 정도로 어려울 지는 정말 몰랐다. 또 한번 김연아가 존경스러워지는 순간!

그렇게 계속 어기적 거리기를 몇 바퀴째, 드디어 슬슬 요령이 생기려고 했다. 제법 앞으로 가기도 하고 가다가 친구와 만나서 조금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탈 수도 있게 됐다. 조금 더 빨리 가 볼까 하는 욕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려는 찰나 꽈당! 무지 민망한 자세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찌나 세게 넘어졌는지 하늘이 다 노랬다. 창피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팠다. 안전 요원 청년들이 얼른 일어나라며 손짓을 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민폐라고 생각했는지 결국 안전 요원이 도와줘서 그의 손에 이끌려 설 수 있었고 의자에 앉아서 아픈 엉덩이를 달랠 수 있었다.



넘어진 핑계를 대고 스케이트장을 빠져 나와서 친구와 밥을 먹고 헤어졌는데, 집에 오니 엉덩이 통증이 너무 심했다. 꼬리뼈를 심하게 부딪힌 것 같았는데 몸의 중심부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만 움직여도 꼬리뼈가 아파왔다. 그 동안에는 꼬리뼈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중요한 부위일 줄 몰랐다. 몸에 힘이 조금만 들어가도 그 부분이 아팠고 웃을 때도 얼굴은 웃는데 엉덩이는 울었다. 내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라고 말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하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바르는 파스를 듬뿍 발라주었지만 나을 기미가 없는 내 꼬리뼈. 아무래도 주말 내내 누워만 있어야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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