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 때가 되어 배는 고픈데 날씨는 덥고, 그렇다고 입맛이 절대로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뭐 좀 특별한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니까 편하게 시켜 먹어도 됐겠지만 닭튀김? 피자? 자장면? 암만 생각해 봐도 마땅히 주문할 음식이 없었다. 들여다 보나마나 그 속에 있는 것들은 뻔하지만 나는 한참이나 목을 넣고 냉장고 속을 샅샅이 살펴 봤다. 그 때 비닐팩에 들어 있는 반포기 정도 남은 배추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벌써부터 입가에 군침이 돌았다.
서울 사람들은 이름조차 생소한 '배추전'을 내 고향 경상북도 안동시에서는 참 자주도 해 먹는다. (예전에는 우리 나라 전 지역에서 배추전을 만들어 먹는 줄 알았는데 서울 토박이들은 배추전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연히 먹어 보지도 못했겠고 아무런 양념이 들어 있지 않은 생배추로 전을 부쳐 먹는것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배추전이란 생배추를 달걀 푼 부침가루 옷을 입혀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부쳐 낸 음식이다. 너무 간단하고 소박해서 과연 맛이 있을까 의심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정말 맛있다. 매콤한 김치전도 맛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배추전을 더 좋아한다. 드셔보지 않으신 분들은 고개만 갸우뚱하지 마시고 시간이 나실 때 꼭 한 번 드셔 보시길 권해 드린다.
부침가루를 물에 개고 달걀 하나를 깨 넣어 부침 옷을 만들었다. 거기다가 하나씩 떼어내어 깨끗하게 씻어 놓은 배춧잎을 푹 적셔서 옷을 입히고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 줄기 부분과 입사귀 부분을 지그재그로 넣어 준다.(다른 입사귀와 조금씩 겹쳐서 넣고 부침가루로 경계를 붙여 주면 된다.) 이 때 줄기 부분은 두꺼우니까 손으로 미리 쪼개 주어 잘 익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평소에는 살 때문에 걱정스러워서 기름을 극도로 아껴서 넣지만 오늘 만큼은 넉넉하게 둘러줬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배추전이 한 장 두 장 쌓이는 것을 보니 어찌나 흐뭇하던지. 한 번 뒤집은 다음, 줄기 부분에 부침옷이 제대로 묻지 않았으면 숟가락으로 조금 떠서 그 부분에 조금 더 옷을 입혀 준다. 엄마와 함께 배추전을 만들 때, 엄마께서는 내가 부침옷을 너무 많이 바르는 것을 염려하셨지만 나는 너무 헐벗은 배추전보다는 도톰하게 옷을 입고 있는 배추전이 더 맛있다.
앞과 뒤가 노릇하게 잘 익었으면 네모 모양으로 잘 잘라서 미리 준비 한 초간장에 찍어서 냠냠 먹으면 된다. 혼자서 배추 반포기를 다 먹어 버렸다. 너무 맛있어서 절대로 멈출 수 없었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하던데 비 올 때 빗소리를 들으면서 먹기엔 딱일 것 같다. 별미가 생각나실 땐 싸고, 쉽고, 맛있는 배추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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