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밀린 이메일도 다 확인했고(뭐 그다지 영양가 있는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터넷 기사들도 쫙 훓었다. 일주일 정도 컴퓨터 없이 살았더니 어찌나 답답하던지, 예전에는 인터넷 안 하고 어찌 살았나 싶다.
텔레비전에서 디도스 바이러스 얘기호 한창 시끄러울 때에도 난 강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설마 내가 그 바이러스에 걸릴까 싶었던 것이다. 의도적으로 해를 입히려고 누군가가 만들어서 뿌린 바이러스이니 기업이나 국가 주요 기관의 컴퓨터가 주 목적일 텐데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내 컴퓨터에까지 침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으로는 뉴스에서 컴퓨터를 켤 때 F8 버튼을 누르고 안전모드로 넘어가게 되면 날짜를 일정 기간 이전으로 설정해 두라는 내용을 보고 있으면서도 태연하게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아뿔싸, 컴퓨터가 부팅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몇 시간동안 컴퓨터가 켜지지 않았지만 나는 그 때까지도 설마설마 했다. 전원에 문제가 있는지 다른 부속품의 수명이 다 했는지, 나는 컴퓨터를 조금 안다는 친구에게는 모두 전화를 해서 내 컴퓨터의 상태를 설명했다. 친구의 말로는 디도스 바이러스가 확실하단다. 이번 바이러스를 고치고 프로그램들을 새로 깔려면 못 줘도 20만원이 넘게 들 것이라면서 안 그래도 속상한 내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20만원이면 떡볶이가 몇 그릇이고 크림빵이 몇 개인가.
정말 억울했다.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을 여러 개 돌리면서 내 나름대로 대비를 하긴 했는데, 이렇게 맥없이 당하다니. 뉴스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더라도...... .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었기에 고장난 컴퓨터와 며칠 더 실랑이 하다가 결국 출장 수리 아저씨를 불렀다.
친구들의 조언대로 컴퓨터를 아주 잘 아는 듯 이것저것 참견하면서 아저씨 옆에 바짝 붙어서 그 아저씨가 어떻게 수리를 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전에 컴퓨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출장 수리 아저씨에게 하드와 함게 8만원의 출장비를 속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바짝 긴장을 했다. 거의 10년 전쯤이었는데 대학생이었던 내가 컴퓨터를 잘 모르는 것을 알고는 컴퓨터를 수리하러 온 아저씨가 용량이 컸던 내 하드를 떼어가고 겨우 2기가짜리 하드를 붙여 놓고는 출장비 8만원을 요구했던 것이다. 나중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어찌나 속상하던지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속이 쓰리다.
아무튼 이번에는 호락호락하게 보이지 않았던지 그 아저씨는 출장비 2만원만을 청구했다. 그, 러, 나! 내 컴퓨터는 결국 고쳐지지 못했다. 아저씨가 원인을 진단은 해 주었지만 바이러스로 인한 부품 손상이라서 용산까지 하드를 가지고 가야 한단다. 아저씨에게 그 부품을 사면 훨씬 더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직접 가지고 가서 부품을 갈아 끼워야 한단다. 그래도 원인을 알았으니 답답했던 마음이 좀 풀어지긴 했지만 차도 없는 내가 지하철을 타고 낑낑대면서 컴퓨터를 용산까지 가져 가서 고칠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비 때문에 빨리 고칠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나는 노트북을 놀리고 있는 친구에게 우는 소리를 했다. 착한 친구는 나를 가엾이 여기고 기꺼이 노트북을 빌려 주었고 나는 이 대신 잇몸으로 다시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됐다.
무릎팍 도사에서 안철수 편을 재미있게 보았는데 내가 당해보니 안철수 연구소에서 무료 백신을 배포하는 일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됐다. 공익을 위해 당시 적자를 면치 못했던 회사를 팔지 않았던 안철수 씨. 이번 디도스 사건 이후로 회사의 주식이 연일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는데 남 잘 되는 일에 배 아프지 않은 이유가 그 사람의 진심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나저나 내 컴퓨터는 언제 고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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