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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부싸움은 며칠 지나면 왜 다투었는지, 정말 다투긴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소소한 이유 때문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화성에서 왔느니 금성에서 왔느니 식상하게 다시 이야기하지 않아도 원래부터 다르게 살아 온 두 사람이기에 늘 쿵짝이 잘 맞을 수는 없고 가끔씩 욱하거나 꽁해질 때가 있다. 오히려 욱할 땐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하니까 일이 쉽게 풀리지만 꽁할 때가 문제다.

작은 삐걱거림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이야기 하는 것이 치사하게 느껴져서 속으로 삭이는 순간, 곧 우리 부부의 전쟁은 시작된다. 내가 갑자기 입을 꼭 다물고 꽁해지는 것은 곧 선전포고이며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싸움이라고 해 봤자 별 것 없다.

나는 나 대로 남편은 남편 대로, 각자 자신의 컴퓨터만 노려 보면서 몇 시간이고 버티는 것, 침묵하는 것,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나도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 텔레비전에서 우스운 장면이 나와도 혀를 깨물며 웃음을 참는 것, 배가 고파 꼬르륵 소리가 나도 '밥'이란 단어를 먼저 꺼내지 않는 것, 그러다 자신의 휴대 전화가 울리면 아무렇지도 않는 심상한 아니 쾌활한 목소리로 신나게 통화를 하는 것. 그래서 손하나 까딱 않고 상대의 마음을 할퀴는 것...... .

우리의 싸움은 오래 버티기 내기와도 비슷해서 더 많이 화가 날 수록 더 오래 꽁해져 있는데, 이럴 때 남편이 먼저 미안하다고 그만 화 풀라고 너스레를 떨어 주면 참 좋으련만 '당신의 행복은 나의 행복, 당신의 불행은 나의 불행'을 무슨 공식 처럼 외우고 있는 내 남편 님은 '당신의 꽁은 나의 꽁'으로 응수해 버리니 참 심란하다.

늘 그래왔기에 나는 내가 화를 푸는 순간 마법이 풀리듯 남편의 화도 풀리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일정시간을 버티면서 스스로 속상했던 감정을 달랜 후에는 남편과 현명하게 화해하기에 돌입한다. 컴퓨터를 하다가 잠깐씩 남편을 쳐다보는 것, 책이나 달력을 보며 뜻도 없이 괜히 혼잣말을 하는 것, 간간히 웃는 것 그러다 다시 한번 남편을 바라 보는 것 등이 전쟁의 끝을 알리는 신호이며 이제 그만 휴전하고 싶다는 전갈이다.


그러다 문득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깍둑깍둑 재료를 손질하고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면서 남편에게 간을 봐 달라고 한다. 나는 이미 남편의 식성을 잘 알고 있는 일등 아내이므로 평소에는 간을 봐 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지만 이럴 땐 찌개를 호호 불어 남편의 입가로 가져 가는 것이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밝은 음색으로 남편을 부른다. '당신의 행복은 나의 행복, 당신의 불행은 나의 불행'이 공식이니 당신의 화풀림을 대입하면 당연히 나의 화풀림이라는 답이 나온다.

또 어떨 땐 뜬금없이 책을 읽겠다는 표현을 하면서 하필이면 꼭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한 책을 남편에게 좀 내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려진 책이 '명심보감'일 때도 있지만 당연히 상관없다. 나도 남편도 그 책의 제목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말이다.

한편 가장 쉬운 화해 방법은 역시나 아이를 이용(?)하는 것인데 둘이서 아기 목욕을 시키거나, 옷을 갈아 입히거나 발달 상황을 점검해 보거나 혹은 꺄르르 웃는 아기의 얼굴을 바라 보게만 해도 남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을 스르르 풀어 버리게 된다.

여자의 마음은 복잡한 실타래 같아서 그것이 꼬여 버리면 하나 하나 풀어내기가 어간 어렵지 않으나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엉킨 부분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 버리면 손쉽게 원상복구 시킬 수 있는 것 같다. 남자 친구나 남편들과 작은 다툼이 있었을 땐 어떤 방법을 쓰든 상관없이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웃고, 무언가를 같이하면 남자들은 어느새 전투 중이었음을 잊고 대답하고, 따라 웃고, 동참해 줄 것이다. 단, 사소한 다툼이었을 때에 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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