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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트 안이나 거리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저렴한 화장품 가게들을 참 좋아한다. 나는 외출 전에 완벽한(?) 화장을 끝낸 후에는 수정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화장품을 아예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입술이 너무 밋밋해지거나 건조해서 얼굴이 당길 때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서 촉촉하게 립글로스를 바르거나 얼굴에 스프레이형 화장수를 칙칙 뿌리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쓰던 화장품이라도 화장솜이나 면봉으로 입구를 깨끗하게 닦아낸 후에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특별히 거리낄 건 없다.

이번에는 설날 맞이 아이섀도우를 사러 미샤에 들렀는데 저렴한 가격에 발림성 좋은 제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마음에 드는 것이 꽤 있어서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도 함께 사서 계산대에 서니 이색적인 행사 중이었다. 네모난 종이 상자의 위가 뚫어져 있길래, 처음에는 모금함인 줄 알았는데 만원이상 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 상자라고 했다. 상자 안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휘휘 저어 한 주먹 꺼내면 딸려나온 모든 견본을 주는 것이었다. 이럴 땐 손이 작은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시리 떨려서 심호흡을 하고 상자 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견본들을 가득 집어서 꺼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구멍이 작아서 손이 잘 빠지지 않는다. 역시 만만하지 않은 미샤. 몇 개를 떨어뜨리고 나서야 겨우 손이 빠졌는데, 그래도 마음에 드는 수확량이었다. 클렌징 젤, 클렌징 폼(각각 20ml짜리 튜브형), 스킨로션 작은 것 4개, 에센스2개.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흐뭇해 하면서 집으로 오는데, 이번 행사가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모두 기분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샤측에서도 어차피 고객들에게 사은품은 줘야 되는 것인데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준다는 설명이 얼마나 솔깃한가 말이다. 고객들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재량껏 가져올 수 있으니 왠지모를 뿌듯함이 들기 때문에 만족스럽지만, 사실은 입구가 작아서 생각대로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득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이 떠올랐다. 아기 원숭이가 사탕 단지 속에서 손을 꺼내지 못해서 울고 있을 때, 엄마 원숭이가 말한다. '얘야, 손에 쥔 사탕을 조금만 놓아보렴'. 울음을 그친 원숭이가 자기가 움켜 쥔 사탕의 절반을 떨어뜨리자 거짓말 처럼 손이 쑥 빠졌다는 이야기 말이다. 공짜로 얻는 사은품이야 많으면 많을 수록 좋겠지만 그것을 더 가져가겠다고 낑낑대던 내 모습이 아기 원숭이와 비슷하지는 않았을까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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