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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30분, 멋쟁이들이 그득하다는 홍대의 한 커피숍. 친구들과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시켜 놓고 수다를 떠는 동안 내 눈은 쉴새가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다들 멋있었는가. 젊음과 패션의 거리답게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현직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늘씬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나와 같은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미인들이 꽤 많다. 서른 하나가 주는 압박감이 예상보다 심한 모양인지, 친구들의 화제는 어느새 아이크림에서 피부과의 시술로 넘어가 있는 중이고, 한 시간이 넘게 계속되는 탄력+노화방지+동안 이야기에 시들해진 나는 슬쩍 건너편의 여대생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삼십대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은 연예인은 최강희란다. 강아지형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표정, 묘하게 순수한 정신세계까지, 그녀가 가진 모든 것들은 그녀의 나이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서른 두 살이라는 나이를 하고도 교복이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최강희를 닮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늙기 싫어'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때마침 카페를 흐르는 노래 '노바디'에 맞추어 친구들의 이야기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원더걸스에게로 넘어갔다. 그 귀여운 얼굴들을 하고 그토록 섹시한 춤을 출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느냐고 다른 친구가 덧붙인다. 맞다. 원더걸스의 다섯 아이(?)들은 정말 감탄할 정도로 다양한 표정들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 참 좋아한다.

깜찍한 어깨춤이 일품이었던 '텔미'에서부터 요염이 가득한 '노바디'까지 전국을 춤바람에 몰아넣은 그녀들 덕에 춤 학원들도 돈 좀 벌었을 것이다. 원더걸스 예쁘긴 정말 이쁘지, 그런데 걔네들 아직도 고등학생이라며? 그 나이 땐 원래 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야, 그 때 나는 세수만 해도 얼굴이 빛났었어. 하긴 우린 그 때 화장은 생각도 안 했었잖아. 그건 그렇지...... . 한 친구의 문제제기에 우리는 금세 너도나도 왕년(?) 생각이 났다.

하긴 나도 왕년(??)에는 정말 예뻤었던 것 같다. 긴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청초한 원피스를 입으면 화장을 하지 않아도 참 멋졌다. 특별한 날에는 조금만 신경을 써서 꾸며도 홍대 멋쟁이들은 명함을 못 내밀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지금 내 시선을 온통 빼앗고 있는 건너편 탁자의 저 여대생, 그녀보다도 훨씬 더 멋졌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나는 컴퓨터를 켜고 미니홈피에 접속했다. 대학시절 아리따웠던 나를 확인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예뻤던 나를 발견하면 의기양양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드디어 사진첩을 거꾸로 돌려서 대학 시절의 어린 나를 찾았다. 천천히 한 장씩 감상을 하며 나는 왕년의 인기녀 미녀 '일레드'를 구경했다. 그런데 사진을 넘길수록 무언가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진 속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는 그 얼굴은 분명 앳된 모습의 내가 맞는데, 상상했던 것만큼의 '초절정 꽃미녀'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 가까워질수록 내 모습은 더 예뻐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촌스럽고 어색한 화장에서 벗어나 점점 더 세련돼 졌으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사진도 찍을 줄 알게 됐다. 살이 좀 붙긴 했지만 생각만큼 얼굴도 크게 노쇠(??)하지는 않았다. 결국 사진첩을 통해 내가 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워진 내 모습이었다. 그렇다. 바로 '지금'이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멋진 순간이다. 그러니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옛날에 미련을 둘 필요는 전혀 없다. 현재의 나를 사랑하고 내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은 칭찬할 만 하지만, 왕년의 나에 얽매어 즐겨야 할 현재를 후회와 한탄으로 보내는 것은 어리석다는 말이다. 젊고 어린 여성들을 보며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질투하지 말고, 내가 가진 성숙함과 연륜있는 아름다움을 뽐내자. 누가 아는가? 그녀들도 몰래 우리를 훔쳐보며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부러워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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