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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마친 후 다솔이와 함께 거실에서 집안 어지럽히기 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다. 책장에서 책을 서너권 뽑아 바닥에 촥 하고 뿌리는 다솔이에게 질 세라 나는 장난감 바구니를 뒤집어 엎어 더 이상 디딜 틈 없는 곳에 좌르륵 쏟아 부었다. 촥촥, 좌르르, 촥촥, 좌르르 우리는 마주 보며 가끔씩 깔깔 웃으면서 누가 누가 더 빨리 누가누가 더 심하게 온 집안을 아수라장을 만드는지 내기하듯 놀고 있는데, 컴퓨터방 안에서 와! 하는 소리와 함께 다솔 아빠가 등장했다.

내 걱정과는 달리 다솔 아빠는 폭탄이 떨어진듯 어수선한 거실 바닥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나와 다솔이를 데리고 컴퓨터 방으로 들어간다. 뭐지? 남편이 자랑스런 얼굴로 보여 준 인터넷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유 먹은 남자 아이 모두 똑똑'

크흐흐--. 그렇다! 바로 이거다! 이런 기쁨을 맛 보고자 나는 유선염에 세 번 걸려 가면서까지 모유 수유를 고집했고 현재까지 16개월 동안 완모(완전히 모유만 먹이는 것을 뜻하는 엄마들끼리의 암호)를 했던 것이다. 기사를 본 후 나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어깨를 우뚝 세우고 비비안리 처럼 턱까지 치켜든 후 남편에게 아수라장이 된 거실을 함께 치워줄 것을 부탁했고, 남편은 흔쾌히 책을 책꽂이에 장난감을 바구니에 넣어 주었다.

나는 아이를 똑똑하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모유 먹인 엄마이므로...... .



오히려 예전에는 분유가 귀한 대접을 받았기에 돈이 있는 사람들은 분유 수유를 고집했다던데, 요즘 엄마들은 자연의 것을 최고로 여기는 풍토 때문인지 대부분 모유 수유를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모유를 먹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분유 수유 엄마들로부터 엄청난 칭찬과 박수를 받는데,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같은 양의 칭찬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모유 수유를 처음 시도할 때에는 출산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요령도 없고 모유량도 충분치 않아서 고생을 좀 하지만 일단 백 일 이상만 잘 먹이게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정말 쉬운 것이 모유 수유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배고파할 때 낮이든 밤이든 집에서나 밖에서나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먹이면 되는 것이 모유인데, 반면 분유 수유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한결같이 준비할 것이 많다.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70도로 식힌 물을 젖병에 절반정도 따르고, 분유를 넣고 다시 물을 절반 따라서 30도가 될 정도로 식히고 나서야 아기에게 먹일 수가 있는데, 이 과정을 돌이 지날 때까지(돌이 지나고 나면 생우유를 먹일 수 있으니까) 밤낮없이 계속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많은 젖병은 누가 씻지?


내가 모유 수유를 고집한 데에는 참 쉽다는 이유도 있지만 또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을 잘 챙겨 본 분들이라면 아마 기억하실 텐데 시즌 몇이었던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얘기가 나온다.

앉은 자리에서 초콜릿과 크림이 듬뿍 들어간 도넛 여러 개를 게 눈 감추듯 하던 한 날씬맘이 자신은 아이의 건강을 위해 되도록 오래 모유 수유를 할 것이라며 다섯 살이 된 아이에게 (회사 수유실에서)젖을 물리고 그 사실을 안 동료들은 경악한다.

그녀 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그녀의 상사인 쌍둥이 엄마는 대책을 세우게 되는데, 목이 마를 때 마다 엄마를 찾는 아이를 몰래 불러다 '초코 우유'를 먹이게 되고 그 달콤함을 맛 본 아이는 더 이상 모유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의 건강을 위해 모유 수유를 한다던 날씬맘은 대성 통곡을 하면서, 이제 앞으로 자신의 체중관리는 누가 해 주냐며 더 이상 기름진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운다.

내가 모유 수유를 고집하는 숨겨진 이유는 바로 '다이어트' 때문이다. 언제였던가 무슨 일이었는지 다솔이가 밤새 모유를 먹으며 나를 무진장 괴롭혔던 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배와 등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전날 뷔폐에서 과식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집에 돌아와 케이크까지 듬뿍 먹고 잠에 들었는데...... .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모유 수유를 하면 살이 잘 빠진다는 이야기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출산 초기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던 까닭이 아기가 모든 영양을 쏙쏙 가져가 버리기 때문인데, 다솔이는 이제 밥도 먹고 간식도 먹기에 모유는 하루에 500cc 정도만 먹으면 되지만 그것이 무시하지 못할 양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삼일 만에 케이크 하나를 다 먹어 치우고, 닭튀김이며 피자를 별 고민 없이 먹고 한밤중에 라면까지 끓여 먹는 ( 365일 다이어트 중인 사람으로서는)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르는 데도 몸무게에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모유 수유는 정말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 (단, 그렇다고 매일매일 과식을 일 삼으면 안 됩니다.)

이제 서서히 다솔이도 젖을 떼고 생우유로 넘어 가야 할 텐데, 그럼 나는 <위기의 주부들> 속 날씬맘처럼 서운해질지도 모른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되는 쉬운 방법 대신 살을 빼기 위해 런닝 머신을 뛰는 힘든 방법을 선택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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