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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예쁘장한 여학생 한 명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톡톡 치는 것이 눈에 띈다. 한 눈에 봐도 '도'를 공부하고 있는 아가씨가 분명하다. 옛날이었다면 모를까 이제는 언론을 통해서도 정체가 들통난 마당에 그녀의 손길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을 터. 역시나 행인들은 벌레라도 본 듯 몸서리치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만하면 상처가 될 만도 한데 여학생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오히려 터질듯 방긋거리며 또 다른 사람의 어깨를 톡 건드린다.

초보인가, 아무나 붙잡고 늘어지는 폼이 한 명에게도 '도'를 전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경기 탓에 도의 세계도 먹고 살기가 힘든 까닭인지 이 사람 저 사람 닥치는 대로 일단 붙잡고 보려는 심산인 듯 보였다. 그래도 예전에는 관상을 보는 척(얼굴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는 말을 해야 되므로) 한참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가 적당한 목표물(?)이 나타나면 말을 걸던데 이제는 딱 봐도 아무나 집적댔다.

나는 한 때 사나흘에 한 번 꼴로 '도를 아십니까?'에 걸렸었다. 길을 물으려나 싶어 대꾸를 했다하면 백발백중, 내 미모에 반해서 말을 거나 생각하면 역시나! 얼굴에서 이상하게 기운이 느껴진다며 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속삭이던 사람들이었다. 죽상을 하고 다닐 때였으니까 노량진에서 교원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몸이 피곤하거나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꾸미지 못했을 때, 그래서 몰골이 말이 아닐 때 꼭 그런 사람들에게 붙잡였었다.


하루는 나이가 좀 있는 아줌마와 젊은 여자가 학원 수업을 받고 집으로 가는 나에게 도를 권하길래 대체 어쩌려나 보려고 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척을 했다. 그랬더니 가까운 커피숍에 가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좀 하잔다. 얼른 눈에 띄는 곳에 셋이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는데 나더러 계산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나를 위한 것이니까 내 정성이 들어가야 된다고...... . 그럴 줄 알았음 멀더라도 편의점으로 가는 거였다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쨌든 나이 든 아줌마는 사주를 보듯 내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묻더니 내가 덕을 많이 쌓아 조상님들이 나를 도와주신다고 듣기 좋은 말들을 쫙 늘어놓았다. 앞으로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이고 집안 식구들과 내 건강은 어떤지 지난 날에 힘든 일은 없었는지 물으며 이야기가 한참을 빙빙 겉돌더니 결국 종착한 곳은 '돈'이었다. 조상님들이 내 앞길을 터 주시려고 애쓰는 만큼 나도 그에 맞는 보답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성의껏 재물을 준비해서 제사를 준비하면 되는데 당시 나처럼 백수인 사람들은 보통 백만 원 정도로 한다고 했다. 지역별로 제사를 지내는 곳이 마련 돼 있는 듯 나에게 OO동으로 얼른 같이 가자고 부추겼다. 아무리 들어도 허무맹랑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커피값 만 이천 원이 아까워서 죽을 지경인 나에게 백만 원을 준비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대낮에 커피숍에서 듣기엔 참 민망하고도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대체 이런 아줌마와 왜 함께 다니는지 궁금하기도 걱정스럽기도 해서 젊은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는데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도 인상이 안 좋아서 너무 놀랐지만 짐짓 태연한척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도 그녀는 묵묵부답. 대신 아줌마가 대답을 해 주었다.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안 좋은 기운을 그녀가 온몸으로 다 받아내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할 수도 없고 저리도 힘들어 하는 것이란다. 뭐 아까는 내 얼굴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보인다고 하더니 손바닥 뒤집듯 잘도 말이 바뀌었다. '네, 잘 들었어요'하고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은데, 오랫만에 한 건 올린다 싶어 열변을 토하던 아줌마가 쉽사리 놔 줄리 없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겨우겨우 그녀들에게서 벗어난 것 같다.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호기심에 그녀들을 따라갔었는데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니었을까? 해맑은 얼굴로 사람들 사이에 서서 도를 권하는 여학생이 참 추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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