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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이 친구를 데리고 나의 자취방에 놀러왔을 때의 이야기이다.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집안 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게에 가서 과일이며 과자며 반찬 거리들을 잔뜩 사서 돌아왔다. 그리고 혼자서는 잘 해 먹지 않던 갖가지 밑반찬과 음식들을 가득 만들어 두었다. 마치 평소에도 이렇게 살아왔던 것 처럼 말이다. 동생 혼자만 왔어도 그랬을 판에 친구까지 온다니 타지에서도 어엿한 모습으로 잘(?) 살고 있는 이상적인 누나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동생과 친구가 도착했고 그들이 집에 있는 동안, 크림스파게티에서부터 갈비찜까지 없는 실력을 발휘해가며 각종 음식들을 만들어주며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능력있는 누나의 모습을 연출(?)했다. 나는 동생들이 늦게 들어와서 내가 미리 밥을 먹고 난 다음에 따로 밥상을 차려줄 때도 그들의 주위를 떠나지 않고 이것 저것 물으면서 자상한 누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러다 문득 자기 가까이에 있는 반찬만 먹는 동생의 친구를 봤다. 아뿔싸.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친한 척 했던 이런 내 행동이 동생의 친구에게는 얼마나 불편하게 느껴졌을까.


얼른 그들에게서 벗어나 방으로 들어오니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였던 것 같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시면서 동생과 나를 외갓집에 맡겨두셨는데, 나는 다른 집에서 생활했던 3박 4일이 엄청나게 길고 힘들게 느껴졌었다. 부모님이 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어린 동생과 괜한 설움을 이기지 못해 밤에는 몰래 울기도 했었다. 외갓댁 어른들이 잘 대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신세를 지고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었다.

한창 많이 클 때라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식사시간이었다. 그 때 뒤늦은 사춘기를 앓았었는지 어쨌는지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외갓집 식구들인데 왜 그런 압박을 받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불편함 때문에 내 주위에 놓여진 반찬만 먹긴 했지만 분명히 집에서와 같은 양의 밥을 먹었고 반찬도 많았는데도 스스로 눈칫밥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먹고 돌아서면 허기가 졌다. 속으로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먹고 싶은 음식의 목록을 생각해 놓을 정도였다. 한 날은 동생이랑 몰래 근처 가게에 가서 숨겨놓았던 비상금으로 과자를 사 먹었는데, 어찌나 달고 맛있었는지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썼던 것 같다.

옛 기억을 떠올리니 동생의 친구에게 무척 미안해졌다. 내 진심과는 다르게 그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서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동생의 친구도 우리 집에 있는 내내 왠지 모를 배고픔과 허전함 때문에 힘들었을까? 그나마 그들은 종일 집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아니니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왜 눈칫밥은 같은 양을 먹어도 허기가 지는 것일까. 분명히 배는 부른데 먹어도 먹어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눈칫밥의 특징인 것 같다. 어쩌면 눈치 없고 낯두꺼운 사람이 세상 살기는 편하겠다는 눈칫밥 보다 더 영양가 없는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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