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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주세요! 오늘이 바로 제 생일이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기념일에 무감각한 저는(이런 제 성격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 중이랍니다.) 솔직히 생일이라고 특별히 마음이 들뜨거나 기쁘지는 않은데요, 반대로 낭만이 철철 넘치는 남편은 밤 12시를 넘긴 시각부터 계속해서 유난을 떨고 있습니다. 눈만 마주치면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부터 건네더니 이제는 수시로 집으로 전화를 해서까지 축하를 남발하고 있네요. 뭐, 그런 남편의 호들갑이 기분 좋긴 해요.

생일날엔 반찬부터가 다르죠. 오늘은 아침부터 미역국에 무친 나물에 소갈비찜까지 두둑하게 먹고 저녁엔 작게나마 생일 잔치를 벌이려고 해요. 가족들과 둘러 앉아 케이크에 나이 수 대로 초를 꽂고, 잠시 소원을 빈 다음 후후 불어 끄는 게 잔치의 전부이지만 그래도 행복한 생일 저녁을 보낼 것 같아요.

아, 선물이요?
당연히 있지요. 올 해 생일엔 특별히 더 귀하고 감동적인 선물을 받았어요. 어찌나 자랑을 하고 싶은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싶어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죠. 얼른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 선물을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에요.

다솔이가 낮잠을 자는 틈을 타 메일을 확인했다가 두 명의 학생에게서 생일 기념 메일을 받았어요. 제가 중국에 있을 때 가르쳤던 중국인 학생들이지요. 저는 웨이팡 교육대학 한국어학과에서 1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다솔이를 임신해서, 임신 7개월 때 학교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었답니다. 다솔이가 2009년 9월 생이니까 아이들과 헤어진지 벌써 햇수로 2년이 됐지요.

제가 떠난 후 또 다른 한국인 선생님을 만났을 텐데도 저를 기억해 주고 제 생일까지 기억해 준다는 것이 정말 감격스러웠답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일부는 졸업 후 취업을 했고 일부는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어요. 아이들은 가끔씩 자신들의 소식을 메일에 담아 전해 오는데, 아무리 한국어과 학생들이라고 해도 한국어 자판을 외워서(자판에 한글이 써 있진 않으니까요.) 메일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의 메일이 저에게는 더 특별하게 느껴지지요.




중국 대학은 모든 학생들이 다 기숙사 생활을 하거든요?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대학교 1학년들이었는데 한국어학과 특성상 모두 여학생이었지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부모님과 거의 처음 떨어져서 먼 곳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하나같이 다 외롭고 힘든 상황이었어요. 학생들은 저를 선생님이자 엄마로 생각했고 저는 학생들을 딸처럼 여겼었어요.

한국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그만큼 순진하고 착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어도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내용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을 보면서, 교실에서는 인성 교육, 감성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답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저는 월급의 일부를 떼어서 매달 아이들과 생일 잔치를 열었었어요. 제가 근무하던 학교는 중국에서도 아주 작은 시골이었기 때문에 아이들 중에는 생일 케이크를 먹어 보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고 제대로 생일을 축하받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어요. 스무 살이 되도록 생일 잔치를 처음 열어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암튼 그 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음에 저는 감사하고 있답니다.




학생들은 저에게 메일을 보내어 취업 문제, 남자 친구 문제, 앞으로의 진로 문제 등등의 고민 상담을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자신의 최근 사진을 보내 주기도 해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엄격하게 제한했던 각종 이모티콘들이나 인터넷 용어들을 볼 때면 속상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성심성의껏 답장을 써요. 고민이 있을 때 저를 생각해 주어서 뿌듯한 마음도 들고요.

중국에 오면 꼭 자기의 집에서 머물라는 아이들, 공짜 여행은 떼어 놓은 당상이죠?
이런 제자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답니다. 오늘은 제 생일이니까 자랑 좀 해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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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내 친구 S는 기어이 다시 말 해보라며 추궁하기 시작한다. 아니, 내가 왜 아줌마야? 누나지. 자, 따라해봐 누나...... . 마트에서 믹스커피를 고르다가 내가 사은품에 눈이 멀어 이것 저것 들었다 놨다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왜 저런 상황이 연출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은품으로 밀폐 용기를 주는 커피를 살 것인지, 머그컵을 주는 커피를 살 것인지 도무지 결정이 되지 않아서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보려고 고개를 돌렸더니 생뚱맞은 누나 타령이다. 제 눈에도 삼십 대 누나는 너무했는지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서 있는 아이는 이리 저리 눈을 굴리며 엄마를 찾는 폼이 여차하면 울 태세다. S도 한껏 뿔이 나 있는 상태라 내가 말리지 않으면 더 민망한 상황으로 번질 것 같아서 나는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친구는 동갑인 나에게 자신이 몇 살로 보이냐며 씩씩거린다. 5년 이상을 봐 온 사이이기에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는 여전히 스물 여섯으로 보인다. 그러나 타인의 눈, 특히나 거짓말을 못하는 아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겠는가. 사실 나는 아줌마라는 호칭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대학교 3학년이던 스물 두 살 때 이미 꼬마아이들에게서 아줌마 소리를 숱하게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 당시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가게는 만화책이며 복권에 자판기까지 잡다한 것들도 갖추고 있었다. 5시간씩 삼교대로 돌아갔는데 나는 오후 3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 했다.


시간대 별로 손님 층이 달랐는데, 내 고객(?)은 주로 초등학생들이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놀러 나온 아이들은 만화책이나 만화 영화를 빌리고자 가게로 몰려왔고 그들에게 나는 당연히 아줌마로 불렸다. 열 살 짜리 아이에게 누나는 열 둘이나 열 넷 정도이지 스물 두 살 늙은이(?)가 아닌 것이었다. 개중에는 '누나, 언니'하며 나를 따르는 영특(?)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냥 아줌마였고 나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에게 아줌마는 별로 기분 나쁜 호칭이 아니지만 친구는 몹시 화가 났나 보다.

하긴 호칭이라는 것이 사람의 기분을 좌우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70대 쯤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그 분들의 나이정도 되면 나 정도는 어려보이므로) 길을 물어보실 요랑으로 나를 불러세울 때, 다른 호칭이 아닌 학생으로 불러주셨을 때 반색하며 급친절 상태로 돌입했던 경험이 있다. 행여나 시력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 학생이라고 불러주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호칭 중 가장 듣기 좋은 것이 학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영낙없이 아줌마로 불릴 수밖에 없는 나잇대로 접어들었고 아줌마는 괜찮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라는 호칭은 손자, 손녀에게서가 아니면 정말 듣고 싶지가 않다. 더이상 나아갈 단계가 없어서 그런가, 호칭을 듣는 순간 더 늙어질 것 같아서 그런가, 아직 할머니라는 말은 들어보지 않아서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호칭에 심술이 난다. 요즘에는 60대 어르신들도 아주 젊어 보이셔서 그냥 아줌마, 아저씨로 부르면 될 것 같은데 굳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들으면 괜한 심통이 난다. 친구가 아줌마라는 단어에 나타내는 반응을 나는 할머니에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자취방 주인집 아줌마와 마주쳤을 때, 아줌마라고 불렀더니 기뻐하시는 얼굴을 많이 보았다. 나를 만나면 굉장히 반가워 해 주시는 까닭도 나에게 특별히 김장김치까지 주신 까닭도 이유는 호칭에 있지 않을까?

학생-아가씨-아줌마-할머니 중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학생이요, 가장 듣기 싫은 말은 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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